4화. 주목 받다.
“디즈니 필름 콘서트에 온 기분이야!”
“진짜 노래 잘 부른다. 여자 노래를 어떻게 저렇게 예쁘게...!”
학생들이 실기 시험이라는 것조차 잊은 채, 잔뜩 흥분한 얼굴로 함성과 박수를 내지르고 있었다.
선생님도 흥분한 얼굴로 박수치며 다가와 묻는다.
"너 뭐야? 피아노는 언제부터 친 거야? 노래는 또 왜 그렇게 잘 하니? 남자애가 여자 보컬 곡을 무슨... 내 팔 봐. 나 닭살 돋았잖아!"
팡! 팡!
얼마나 흥분하셨는지, 내 등짝에 강 스파이크를 연타로 날리실 정도다.
"너 다른 것도 연주할 수 있니?"
"네. 뭐. 얼마든지...."
"그러면 기다려. 빨리 끝내고 앵콜 한 번 들어보자."
"앵콜이요?"
"애들 반응을 보렴. 다들 저렇게 앵콜을 원하잖니?"
실제로, 애들은 한 목소리로 앵콜을 연호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 난감하다.
"넌 무조건 만점이야. 일단 자리에 가서 앉아 있다가 다시 부르면 나와. 알았지?"
이후 진행된 실기 평가의 분위기는 상당히 묘했다.
“14번!”
“넵!”
“넌 뭐할 거야?”
“피아노 칠게요!”
“... 너도?”
“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배웠어요!”
“아, 그래?”
다들 굉장한 열의를 가지고 시험에 임한다. 심지어 지참한 리코더를 사용하지 않고, 당당히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는 애들도 있었다.
캐논이라든가, 작은별 변주곡 같은 것들.
심지어 현재 인기 있는 발라드 음악으로 시험 치는 애들도 있었다.
“얘들이 갑자기 왜 이래? 너희들 설마 김민 하는 거 보고 자극 받은 거니? 분위기가 이상하네.”
의문을 제기하는 얼굴은 뿌듯함으로 가득하다.
“다른 반하고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네. 너희가 제일 낫다!”
애들이 또 단순하다.
저 칭찬 한 마디에 자극 받아 더 열성적으로 평가에 임하기 시작했으니.
나는 두 명을 눈 여겨 봤다.
제일 먼저 반장 최명중.
“저는 산타루치아를 부르겠습니다.”
뭐랄까?
엄청난 미성도 아니고 특별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깔끔하네.”
음정과 박자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지킨다.
지금까지 들은 노래 중 가장 기본기가 좋다,
녀석은 당연히 가창 시험 만점.
두 번째로 눈여겨 본 사람은.
“반지희!”
바로 쟤.
크고 맑은 눈동자에 화려한 이목구비.
깔끔한 단발 머리.
단연 눈에 띄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네!”
“넌 어떤 음악으로 할래?”
“저는 이리나의 봄바람 부를게요!”
“악보 있어?”
“아니요! 대신 MR 준비해왔어요!”
휴대폰으로 MR을 크게 틀어 놓은 뒤 본인만의 감성에 취해 발라드 곡을 부른다.
프로의 내 기준에는 많이 못 미치는 실력이다.
하지만 듣기 좋은 미성이고, 최명중처럼 음정 박자가 꽤나 정확한 편이었다.
‘가수가 꿈인가? 나쁘지 않아.’
무려 30분 만에 실기 시험을 끝내 버린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보고 소리친다.
"얘들아! 김민 공연 다시 보고 싶지 않니?"
"네에!"
열렬히 소리치는 아이들.
"박수!"
"와아아!"
이렇게까지 환호하니, 난 머쓱한 얼굴로 나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
어우야.
이러지 마
기대감 가득한 눈빛이 내 가녀린 온 몸을 마구 압박한다.
그래도 뭐... 원하는 걸 들려줘야겠지?
그날 음악 실기 수행평가는 사실상 애니메이션 OST 매들리 콘서트 장이었다.
@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
No!
"너 피아노 진짜 잘 치던데, 언제부터 배운 거야?"
"어, 음... 제대로 배운 건 아니고 그냥 혼자 틈날 때마다 연습했어."
"노래 부를 때 톤이 그렇게 하이 톤이야?"
"응."
"보컬은 어디에서 배우고 있어? 학원? 아니면... 기획사?!"
"그것도 그냥 혼자 하다 보니...."
그냥 피아노 치고 노래 한 번 불렀을 뿐인데 반에서 인기 스타가 됐다.
내 주위에 가득한 남녀 학생들.
질문을 마구 쏟아내는 그들의 눈빛에 나에 대한 호감이 가득했다.
"너 가수 할 거야?"
가창 시험 때 눈여겨봤던 화려한 이목구비의 여학생, 반지희가 물음을 던진다. 얘가 나에게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응. 이것저것 준비는 하고 있어."
"와아!"
내 대답에 사방에서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반지희가 이것저것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너 피아노 말고 다룰 줄 아는 악기 또 있어?"
"많지. 기타, 드럼... 뭐 어지간한 악기는 다 다룰 수 있어."
“우와! 그러면, 그러면 혹시 미디도 다룰 줄 알아?”
가능하냐고?
내가 그걸로 먹고 살았던 사람인데?
난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제일 잘 다루는 게 바로 미디야.”
"우와아!"
이제는 아예 눈에서 레이저 빔을 쏘아 보낼 기세다.
얘는 안 그래도 눈이 커서 조금 부담스럽다.
"그러면... 잠깐 기다려 봐!"
잠시 후, 반지희는 은색의 맥북을 꺼내 가지고 오더니 내 책상에 펼쳐 보인다.
화면에는 굉장히 익숙한 프로그램이 띄워져 있었다.
“로직이네.”
“로직 아는 구나? 너 이 프로그램도 다룰 줄 아는 거야?”
“미디 프로그램은 다 다룰 줄 알아. 너도 이거 할 줄 알아?”
“음, 그건 아니고 뮤튜브 보면서 독학 중이야!”
“작곡가 되려고?”
“그게 아니라 나 이번에 친구들하고 대회 출전하기로 했거든! 리믹스 커버로 도전하기로 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나라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어디 줘봐.”
대강 살펴보니, 원곡 mp3 파일을 불러놓고 이곳저곳에 칼을 댄 흔적이 있다.
그야말로 미디를 이제야 배우기 시작한 초보의 발상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리믹스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
"나 잘 모르겠어. 네가 도와주면 안 돼?"
"일단 음악부터 들어보고."
일단 불러 놓은 원곡 소스 트랙부터 재생해본다.
이 시기 유행하던 걸스 힙합 댄스곡이 울려 퍼진다.
"이걸 어떻게 믹스하고 싶은데?"
“세 곡을 붙여서 한 곡처럼 만들고 싶어.”
한 마디로 최신 유행하는 걸 그룹들의 히트 곡들을 이용해 리믹스 커버 댄스 음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마추어가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지.
‘걸 그룹 커버 댄스니까 bpm은 대략 110 정도로 설정하고 힙합 드럼, 퍼커션 샘플을 이것저것 불러와서 루프시키면...?’
타다닥.. 탁!
빠르게 작업을 마치고 트랙을 재생하자 새로이 구성된 음악이 흘러나온다.
정말 대충한 거라 내가 듣기에는 한없이 부족했지만....
"우와아아!"
"오오오!"
애들이 듣기에는 남달랐던 모양.
“우와! 너 진짜 대단하다! 그래, 이거야. 내가 하고 싶었던 작업이 바로 이런 거였어!”
반지희는 방방 뛰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니, 뭘 이 정도 가지고....
“이거 좋다! 이 스타일로 우리 대회 곡 만들어주라! 꼭 보상할게. 응? 응? 우리 좀 도와줘!”
댄스 대회용 리믹스 작업이라.
굉장히 신선한 제안인데?
“학교 끝나고 나랑 같이 가자! 내가 우리 애들 소개시켜주고 떡볶이도 사줄게!”
...떡볶이?
흥미가 생겨서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 후로 반지희는 쉬는 시간만 되면 맥북을 들고 찾아 와서 작업을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작업하는 동안에는 옆에 꼭 붙어 앉아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이거 사실 KM 엔터테인먼트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페스티벌이거든. 나 나름대로 진지하게 입상을 노리고...."
쉽게 말해, 대형 기획사 주최 오디션 대회에 나가서 입상하고 연습생이 되겠다는 장대한 계획이다.
예쁘고 몸매도 좋겠다.
노래 실력도 음악 시간에 들었던 정도면 나쁘지 않지.
트레이닝 받으면 더 발전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문제는 춤.
그건 오늘 수업 끝나고 확인할 수 있겠지?
'전생에 아무 말 없었던 거 봐서는 결국 떨어진 것 같긴 한데....‘
그건 그렇고.
“너는 여기서 뭐하는 거야?”
반장. 최명중이 옆 자리에 앉아 말없이 내 작업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녀석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진다.
"작곡가들도 이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만드는 거지?"
"응."
"이거 다루려면 화성학 같은 것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음악 이론 같은 거 몰라도 노하우만 알면 누구나 음악 만들 수 있어."
"어? 정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날 보는 최명중.
"곡 만드는 비법 같은 게 따로 있는 거야? 음, 그러니까 수학 공식처럼?"
반지희도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그래. 미국에서 힙합 음악 하는 뮤지션들 중에 그런 사람 많아. 음악을 배우지 않고도 빌보드 차트에도 오르고 그러더라.”
"그래?"
믿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맥북 음악 앱을 켜서 예시곡을 들려준다.
반지희는 신기해하고 끝이지만, 최명중의 반응이 어쩐지 예사롭지 않았다.
굉장히 관심이 많아 보인다.
음악 재생을 멈추고 묻는다.
“너 작곡에 관심 있어?”
“음....”
“혹시라도 관심 있으면 말해. 틈틈이 가르쳐 줄 수 있어.”
순간 녀석의 얼굴에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그때 반지희가 꽤나 흥미로운 제보를 한다.
“해 봐. 너 기타 다룰 줄 알잖아.”
“응? 진짜?”
“응.”
“넌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아?”
“사실 재랑 나랑, 집안끼리 굉장히 친해서 애기 시절부터 알고 지냈어. 아, 그리고 내가 놀라운 사실 알려줄까? 명중이 아버지,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외과 의사시다?”
“그래?”
반장 이 자식, 이제 보니 금수저였구나?
“혹시 너도 꿈이 의사야?”
“응. 그렇긴 한데 어려서부터 음악도 굉장히 좋아했어. 그래서 기타도 혼자 독학해본 거고. 잘하지는 못해.”
“아니야. 믿지 마. 저거 거짓말이야. 명중이 기타 진짜 잘 쳐! 중학교 때는 무슨 대회에 나가서 연주도 하고 그랬어! 내가 똑똑히 봤어!”
집게손가락으로 자신과 명중이의 눈을 번갈아 가리키는 반지희.
최명중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가르쳐 주겠다는데 고민하는 이유가 뭘까아, 의대 진학하려면 공부를 엄청나게 해야 하니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네.
“시간이 오늘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언제든 내키면 말해.”
난 피식 웃으며 리믹스 작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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