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5화 (5/205)

5화. 아이돌 지망생들

교문.

아니, 교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난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있었다.

"어? 주연아 안녕! 내일 봐!"

"나? 당연히 댄스 연습실이지!"

"야! 그거 내일 꼭 가져와! 너 빌려주기로 해놓고 또 안 가져오면 진짜...!"

확실히 나하고는 결이 다른 애다.

먼저 인사하고, 말 걸면 웃는 얼굴로 잘 대답해주고.

세상에, 무슨 교문 걸어나기까지 대략 열 명 넘는 사람하고 대화를 한 것 같다.

"반장. 얘 원래 이런 성격이었어?"

"음 예전부터 유독 친구가 많긴 했지."

최명중도 함께였다.

굉장히 자연스럽게 합류했는데, 아무래도 춤과 노래에 이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정확히는 작곡, 프로듀싱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지만.

버스 정류장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 주목을 받았다.

"우리 연습실이 청담동 쪽에 있거든. 자주 쓰는 곳이 있어. 거기에 가서 우리 댄스 팀 애들하고 조인할 거야!"

나하고 최명중은 말이 많은 타입이 아니다. 그래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반지희 혼자서 띄우고 있었다.

생기발랄하게 계속 웃으며 말을 하는데, 그 모습이 퍽 매력적이었던지 주변에서 계속 힐끔거린다.

"짠! 바로 이 건물에 있어!"

도착한 곳은 청담동 로데오 거리의 신축 빌딩 앞.

"와...."

잘 아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옆 건물의 헤어숍 블루 카펫.

저곳 원장님이 소문난 실력자로, 많은 톱스타들을 전담할 정도로 유명한 분이다.

참고로 아이돌 시절 종종 신세졌던 곳이다.

"이곳에 연습실이 있다니... 설마 너도 부자야?"

"아, 그건 아니고 여기 연습실 대여해주는 곳이야. 한 시간에 6000원 정도 하는데 가성비가 좋아서 자주 사용하고 있어."

아, 연습실 렌탈....

그래도 한 시간에 6000원이라면 결코 적은 돈은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이 건물이 네 어머니 건물이라는 건 왜 이야기 안 하냐?"

"......!"

최명중이 태클을 걸었다.

난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여기가 반지희 어머니 건물이야?!"

"참고로 그래. 좌우 합쳐서 세 개의 빌딩 모두 반지희 가족 소유 건물이야. 참고로 저기 블루 카펫이라는 미용실은 이모가 하시는 곳이지."

“정말!?”

블루 카펫이 반지희 이모님이 하시는 곳이라고?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다니는 미용실로 유명한 곳인데...?

반지희가 민망한 듯 최명중을 툭 밀친다.

"야. 너는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그래!"

“말은 제대로 해야지. 사실 저 연습실도 미희 누나 소유잖아.”

“그 분은 또 누구야?”

“반미희라고, 지희 친 언닌데 굉장히 유명한 댄서야.”

하....

이제 보니 이 녀석들, 나하고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구나!

청담동 건물주 부모님이라니.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졌어!

얘들아, 우리 우정 영원한 거지?!

"그만 떠들고 빨리 들어가자. 애들 기다리고 있어!"

우리 두 사람의 등을 떠미는 반지희.

잠시 후 펼쳐진 장소는 지금까지 모든 생각을 머릿속에서 날리기에 충분했다.

[ 하나, 둘... 턴! ]

심장을 울리는 음악.

열기로 가득한 연습실.

걸 그룹을 연상케 할 정도로 어여쁜 다섯 명의 소녀들 중 한 명은 놀랍게도 내가 아는 얼굴이다.

'쟤가 반지희 친구였어?'

아이돌 데뷔 이후.

회사에서 뒤이어 신인 걸 그룹을 런칭했다.

<숲의 아이들>

동화 풍 요정 컨셉으로 데뷔한 미소녀들은 엄청난 기세로 차트 1위를 휩쓸더니, 단숨에 한국 1티어 걸 그룹으로 격상했다.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누렸다.

그 비주얼 리더인 주세아가 내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얘들아 나 왔어!

춤과 음악이 멈추고 다섯 명의 소녀들이 우릴 돌아본다.

"어? 명중이 아니야?"

"뭐야, 범생이가 여긴 웬일이야?"

"그 옆은... 음,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야, 그 인사는 뭐야. 이상하잖아!"

순식간에 우릴 둘러싸며 호호 웃고 떠드는 소녀들.

굉장히 생기발랄한 아이들이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하나 같이 예쁘고, 몸매 좋고 귀티도 나는... 그야말로 특급 인싸들!

음, 확실히 알았다.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

난 이런 곳이 부담스러워!

반지희가 내 목에 팔을 휘감으며 날 소개한다.

“자, 소개 할게. 이쪽은 같은 반 친구 김민. 우리 프로듀싱 해줄 거야!”

소녀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나저나 주세아는 이때도 미친 듯이 예뻤구나.

도회적이고 시크한 매력을 지닌 아이돌에게만 붙는 슬리데린 상의 표본!

AI 미모라는 별명도 같이 가지고 있었는게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다. 성형을 전혀 안 했다는 소리다.

내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반지희가 말을 이어간다.

"쉬는 시간 틈틈이 리믹스를 해봤거든? 완성된 건 아닌데 진짜 끝내줘! 얘 이렇게 보여도 실력 엄청 좋아!"

응? 내가 어떻게 보이는데?

당혹감을 느끼는 나와 달리 소녀들은 박수까지 치며 기뻐한다.

"정말?"

"우리 공연할 음악 말하는 거지? 그걸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완성했다고?"

"여기 이 분 작곡도 할 줄 아는 거야? 대단하다!"

아이구 시끄러워.

반지희도 그렇지만, 이 다섯 소녀도 하나같이 말이 많다. 그룹 이름은 비글즈라고 칭하는 게 좋겠다.

"어디, 보여줘 봐! 깜짝 놀라게 해주자고!"

날 툭 치며 의기양양하게 미소 짓는 반지희.

난 내 가방에 넣어두었던 반지희의 맥북을 꺼내 로직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일단은 가믹싱까지 끝내놓은 첫 번째 리믹스 음악을 재생...하려다가 잠깐만.

이러면 출력이 약하잖아.

“여기 스피커는 블루투스 연결 안 되나?"

"어? 되지! 야! 블루투스!"

"어? 잠깐만!"

"야야! 빨리 움직여! 빨리! 우리 음악 나왔다잖아!"

"꺄아아아!"

으아, 기 빨려 나가는 것 같아!

그런데 명중이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넌 괜찮아?"

"음? 아, 나야 워낙 익숙해져서...."

"모두 다 아는 사이야?"

"몇 명은 반지희와 함께 집안끼리 친한 사이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고, 몇 명은 그 친구들 때문에 알게 됐고."

머뭇거리다가 한 명을 가리키며 묻는다.

"그러면 저기, 저 애도 알아?"

"누구...아, 주세아?"

날 향한 녀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설마...."

"그게 아니라 쟤 KM 엔터테인먼트에서 좋아하는 비주얼이라서 그래. 완벽한 슬리데린 상인데...."

"슬리데린 상은 또 뭐야?"

우리 사이에서 불쑥 얼굴을 내미는 반지희.

아씨, 깜짝이야!

경적 좀 울리고 들어오면 안 되겠니?

"저기 저 친구."

"누구? 아, 세아 말하는 거야?"

"응. 슬리데린 상이라는 게 아이돌 판 용어인데, 저 친구처럼 도회적이고 시크한 인상을 가진 아이돌을 가리키는 거야. 대형 기획사, 그 중에서도 KM 엔터테인먼트에서 좋아하는 상이고."

"넌 그걸 어떻게 알아?"

거기 소속 아이돌이었으니까 알지.

하지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고, 난 적당히 꾸며서 말했다.

"나도 꿈이 가수이자 프로듀서라서 이것저것 시장 조사 많이 하고 있거든."

"오오... 세아야!"

아씨!

제발 급발진 좀 하지 말라고!

애 떨어질 뻔....

"주세아 이리 와 봐! 빨리, 빨리!"

"왜?"

시크하다 못해 냉랭해 보이는 인상의 주세아가 고개를 갸웃갸웃, 쪼르르 다가온다.

반지희는 신이 나서 방금 내게 들은 것들을 이야기해준다.

“얘가 너 슬리데린 상이라고, KM 가면 무조건 합격할 수 있는 비주얼이래!”

“정말?”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진다.

그나저나 반지희 얘는 왜 자기가 더 들떠서 이러는 걸까?

그냥 성격이 좋은 건가?

"연결 됐어!

스피커 쪽에 있던 여자 아이들의 외침에 화제가 급전환된다.

"어서 들어보자! 궁금해!"

“드랍 더 비트!”

다들 기대감이 커 보인다.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며 미디 트랙을 재생한다.

[ 쿵! 쿵! ]

쉬는 시간 틈틈이 만든 사운드가 연습실을 꽝꽝 울린다.

이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작곡가 모드에 돌입, 믹싱 상태를 체크해본다.

'리드 신스의 하이가 세네. 이큐로 조금 깎아서 전반적으로 부드럽게 다듬어야겠어.'

그렇게 음악이 끝나고.

"......."

난 숨죽여 반응을 주시한다.

결과는.

"꺅! 진짜 좋다! 잘 만들었어!"

"이걸 오늘 하루 만에 만들었다고? 정말?"

"심지어 쉬는 시간 틈틈이 만든 거라잖아!"

"대단한데?"

"우와! 나 이거 찬성! 이걸로 하자!"

폭발적이다.

자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조마조마하긴 했는데... 다행이구만.

특히 주세아는 나를 향한 시선에 경이로움을 담고 있었다.

"지희 친구라고 했으니 저하고 동갑이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음악을 잘 만들어요?"

"곡 만드는 게 취미라서...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조금만 열심히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녀의 칭찬이 내심 기뻤다.

미래의 톱 아이돌 주세아에게 인정받았으니까!

아무튼, 이런 친구들의 반응에 반지희의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간다.

"이 정도면 우리 프로듀서 될 자격 있지?"

"응!"

"심지어 노래도 진짜 잘해! 오늘 음악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 지금 잡담할 시간이 있나?

왠지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난 적당히 끊어줬다.

"연습 안 해?"

“아, 맞다! 안무! 얘들아 연습하자!”

“맞아. 시간 없어! 빨리 연습해야지!”

이제야 뭔가 제대로 좀 진행될 모양이다.

난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녀들을 주시했다.

“이거 시작이 어떻게 되더라?”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 아닌가?”

“그거 아닌 것 같은데....”

“뮤튜브 안무 영상 확인해보면 되지!”

쓰읍, 저거 아무래도 뭔가 좀 이상한데?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다가가 물었다.

“설마 안무 안 짰어요?”

“짤 필요 있어요? 어차피 다 아는 건데.”

“지금 몰라서 뮤튜브 영상 참고하려는 거 아니예요?”

“그게 아니라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확인만 해보려는 거예요.”

“... 설마 안무 보고 그대로 따라하려고요?”

“네!”

“......”

“왜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반지희 친구들 아니랄까봐 하나 같이 천하태평이다.

이런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KM 엔터테인먼트가 주관하는 청소년 페스티벌에서 출연하겠다니....

난 단호하게 말했다.

"기존 안무만 보고 따라 해서 될 일이 아니에요. 세 곡을 믹스하는 과정에서 창작, 변형된 비트가 많이 추가 되서 그 부분에 대한 창작 안무도 필요해요."

"아...."

"BPM도 전반적으로 바뀌어서 그 부분에 대한 대처도... 에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중간에 말을 하다 말았다.

무슨 어미 닭 바라보는 아기 병아리 같은 시선에 마음이 약해졌다.

난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다들 아이돌이 되고 싶은 거죠?"

"응!"

“네!”

반지희와 친구들의 우렁찬 대답!

주세아가 희망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친구들이 다 함께 KM 엔터테인먼트에서 걸 그룹으로 데뷔하는 게 꿈이에요!"

이때는 정말 꿈 많은 소녀였구나.

다시 고민!

'일단, 다들 인물 하나만큼은 보통이 아니야.'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은 주세아.

‘대회에서 말아먹어도 주세아만큼은 캐스팅이 되겠지.’

저 주세아 때문에라도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미래의 톱 아이돌인데, 친해져서 나쁠 것 없지 않나?

“좋아요. 제가 도와줄게요.”

내 대답에 다들 표정이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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