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내가 작정하고 나서면
내가 작정하고 나서면 그깟 청소년 페스티벌 석권하는 것 정도야 문제도 아니지!
"... 옴마야,"
라는 생각은 십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지워졌다.
내가 성급했다.
"이거 이렇게 하면 돼?"
"아니, 조금 더 그루브를 줘서...."
"이 다음 동작이 뭐야?"
안무 하나도 모르잖아?!
동작은 외우고 있다더니 이 거짓말쟁이들!
"잠깐. 잠깐만...!"
모든 것을 중지시킨다.
터질 듯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춤 이렇게 안 췄잖아요. 처음에 들어왔을 때 추던 춤은 대체 뭐예요?"
"아, 그거 1년 전부터 지희 언니한테 배운 루틴인데...."
1년?
"어디 해봐요."
내 말에 모두의 눈빛이 달라진다.
자신만만한 기색!
"어디 보여줄까?"
"해보자고!"
표정만큼은 톱 아이돌인데?
처음 연습실에 들어왔을 때 울려 퍼졌던 음악과 춤이 시작된다.
행동과 표정에 자신감이 넘친다.
저 기본적인 안무 루틴을 1년 동안 배웠다니 자신감이 있을 만 하지.
'하지만....'
동작이 리드미컬 하지 못하다.
흔히, 비트를 가지고 논다고들 하지?
일정한 킥, 퍼커션 비트만 외워서 거기에 맞춰 리듬을 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박자를 잘개, 다양한 방식으로 쪼개 자신만의 리듬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방송에 나가서 춤과 노래로 먹고 살고 싶다면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얘들은 그게 안 되네.'
아무리 봐도 춤 제대로 배운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잠깐, 잠시 멈춰 봐요."
난 음악을 멈춘 뒤, 모두에게 새롭게 주문했다.
"배운 안무 말고, 지금 이 음악에 프리스타일로 춤을 춰 봐요. 한 명씩."
"프, 프리스타일?"
"그게 뭔데?"
"아, 나 알아! 마음대로 한 번 춤춰보라는 거지?"
"아, 그거였어? 난 또...."
"사실 난 특정 규격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인재거든! 프리스타일이 더 어울리는 체질이야!"
얼씨구.
다시 음악을 켜놓고 끝에서부터 한 명씩 프리스타일 댄싱을 시켜본다.
"휘익, 휘이익!"
"이야~ 죽인다!"
"그렇지!"
어디서 또 본 건 있어서 열심히 함성을 질러준다.
그러나 내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다음."
힘이 빠진 탓에 목소리가 점점 무감정해진다.
그러건 말건, 이미 자기들 기분에 흠뻑 취해 온갖 막춤을 추고 있다.
그 다음은 주세아!
'조금 기대 해봐도 되겠지?'
자, 미래의 KPOP 1티어 나가신다!
귀엽게 살랑 살랑, 힙합 스타일 그루브를 타며 앞으로 나아간 주세아는.
"오오오오!"
"나왔다! 주세아의 장기인 파핑!
난데없이 어설픈 파핀을 시도하는 게 아닌가?
이러지 마.
주세아 넌 진지한 얼굴로 개그 치는 캐릭터가 아니란 말이야!
마지막으로 반지희.
"오호."
처음으로 내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가장 기본이 잘 되어 있었던 것이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비트를 즐기며 절도 있는 동작으로 숙지한 안무들을 펼치고 있었다.
'얘가 제일 잘하네.'
물론 이 중에서 가장 낫다는 거지, 대형 기획사 연습생 평균 수준에 비춰보면....
'이건 안 되겠네.'
"됐어요. 스톱. 음악 멈춰 줘요."
소녀들은 기세등등하다.
"어때? 우리 쩔지?"
자신감은 쩐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줘요. 알았죠?""알았으니까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어떻게 말해야 상처주지 않을까.
난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바쁜 일이 있었는데... 미안한데 저 급히 가볼게요! 우리 다음에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도록 해요!"
"뻥치시네!"
"어딜 도망가시려고!"
"출입문 막아!"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야. 그렇게 춤 잘 추면 네가 한 번 보여줘봐!"
"맞아! 맞아!"
"잘 추는 게 어떤 건지 보여줘요!"
소녀들이 잔뜩 뿔이 났다.
주세아조차도 굉장히 매섭고 차가운 얼굴로 날 째려보고 있다.
“그러면 조금만....”
[ 쿵! 쿵! ]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 이거 민망한데....
그런데 생각과 내 몸은 반사적으로 리듬을 타고 움직인다.
관절을 꺾고.
퉁기고.
부드럽게 웨이브를 타며 슬쩍 리듬을 저는 듯하다가 정박에 발을....
[ 쾅! ]
과거로 돌아온 거라 몸이 기억할 리가 없는데, 의지대로 잘 움직여준다.
배우고, 노력하면 잘 할 수 있지만... 춤이든 노래든. 재능을 타고난 애들이 진짜 잘한다.
그리고 난 그 재능을 어느 정도는 타고난 축에 속한 사람이고.
굳이 안무를 따라하지는 않는다.
내 느낌에 맞춰, 몸이 가는대로 춤을 출 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이 없이 추다 문득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아, 이거 걸스 힙합이지?'
걸 그룹의 음악이고, 지켜보는 이들도 여자아이들이니 그에 맞는 춤을 춰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춤추는 방식을 변경했다.
본연의 방식에서 걸리쉬(Girlish) 스타일로.
걸리쉬 댄스는 간단히 말하자면 여성스럽게 추는 춤을 의미한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을 때 많이 춘다.
여장을 하고, 심지어 킬힐까지 신은 채.
미래에 스트릿 댄스 씬, 특히 걸리쉬 스타일로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는 천재 댄서가 있었는데, 그를 보고 감명 받아 혼자 연습한 스타일이다.
혼자 신이 나서 추다 보니 음악이 끝나 버렸다.
이거 너무 오버해버린 것 같은데?
멋쩍은 얼굴로 둘러보니.
"와...!"
"세상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지희와 주세아는 안 그래도 큰 눈이 톡 튀어나올 것 같다.
"뭐야, 춤 왜 이렇게 잘 춰!"
"봤어? 막 힘 있게 남자 춤추다가 갑자기 여자 춤으로 바꾼 거?"
"진짜 뭐야, 곡도 잘 만들고 춤도 잘 추고 피아노까지.. 혹시 천재세요?"
음.
또래 아이들의 이런 큰 관심과 칭찬은 처음이라 민망하고 어색하다.
반지희가 내 손을 잡고 마구 흔들며 졸라대기 시작했다.
"야! 네가 하라는 거 다 해 줄 테니까 우리 춤 좀 가르쳐 주면 안 돼?“
“그냥 언니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면 안 될까? 너희 언니 굉장히 유명한 댄서라며.”
“안 돼! 지금 미국 세계 대회 출전 중이란 말이야!”
세계 대회?
유명하다더니... 설마 월드 클래스였어?
“그게 아니라도 졸라봐야 가르쳐 주지도 않아. 네가 가르쳐줘야 돼!”
“맞아. 미희 언니는 이상하게 우리한테만 매정해!”
이상하다고?
난 이유를 알 것 같은데.
나를 향한 시선에 점점 광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 춤 좀 가르쳐 주세요!"
"도와줘요 선생님!"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야, 맨 입으로 도와달라고 하면 해주겠냐? 돈 걷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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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일곱 시가 되어서야 연습실을 나섰다.
나도 몸을 많이 움직이며 크게 소리를 질렀더니 목도 아프고 온 몸에 힘도 없다.
오늘 진짜 많은 일을 겪는구나.
폭력 사건에, 음악 수행 평가에, 아이돌 지망생들 선생님 노릇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배도 고프고, 정신도 바닥났다.
"우리 떡볶이 먹고 가자!"
반지희 외침에 살짝 쳐져 있던 분위기가 살아났다.
뭐, 뭐지? 이 분위기는....
"오늘은 내가 쏜다!"
그 말에 여자 아이들의 광기가 다시금 폭발했다.
"지희가 쏜다니까 가자!"
"아, 다이어트 중인데... 나 빠지면 뒷담화 할 테니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겠네!"
"땀 흘린 뒤 떡튀순이 국룰이지!"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옆에 찰싹 붙어 있던 주세아가 들뜬 얼굴로 팔을 잡아당기며 말한다.
"저기 진짜 맛있는데... 떡볶이 좋아해요?"
주세아.
분명 시크 도도의 화신이었는데 왜 이렇게 귀엽냐?
난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
"물론이죠. 저 떡볶이 킬러예요."
"오빠! 떡튀순 꽉 채워 주세요!"
선봉장은 역시 반지희였다.
주방에 있던 키 크고 잘 생긴 남자 점원이 대꾸한다.
“야, 무슨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것도 아니고, 똑바로 말해. 아니면 항상 주던 대로 줘? 10인분 줄까?”
주방의 외침에 즉각 반발이 터져 나온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많이 먹었어요!?"
“저 오빠가 생사람 잡네. 우리 그렇게 많이 못 먹어요!”
“10인분이 왠 말이야. 그게 사람이 먹을 양이야?!”
거센 반응에도 남자 직원은 피식 웃을 뿐이다.
귀여워 보였던 모양이다.
“적당히 퍼 줄 테니까 가서 앉아 있어.”
“넹!”
“이것저것 많이 섞어 주세요!”
넓은 매장 안.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여섯 소녀들은 누가 보건 말건, 마이페이스로 수다를 떨고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상황이 계속 펼쳐진다.
떡볶이 먹으러 들어온 손님들이 소녀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가, 이후로는 계속 흘끔대며 쳐다본다.
특히 독보적인 비주얼의 주세아가 가장 주목을 받았다.
반지희가 말했다.
“춤은 봤고, 이제 노래 실력도 확인해봐야지?”
“노래방?”
“노래방!”
“콜?”
“콜!”
바르샤 뺨치는 티키타카!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얘네들 조직력이 정말 굉장하다.
선봉장이자 리더 반지희가 기세를 한껏 끌어올린다.
"얘들아 빨리 먹고 가즈아!"
소녀들은 엄청난 기세로 수백만 떡볶이 대군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주세아도 소리 소문 없이 굉장한 양을 감당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알던 모습과 많이 다르네.
아마 저것이 바로 본래 성격일 것이다.
정말 친한 친구들하고만 있을 때 보여주는....
‘그렇다는 건 주세아도 당시 팀 동료들하고 그다지 사이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 새 전쟁은 끝나 버렸다.
“이제 가자!”
그러고 보니 노래방은 거의 처음이네.
어차피 노래 실력도 확인해 봐야 하니... 나쁘지 않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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