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계획 변경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노래 실력은 어땠냐고?
모르겠다.
왜냐면 나도 정신없이 놀았거든.
기분 좋게 걷다 보니 언덕 위에 있는 오래된 빌라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집이다.
이 글자만 보면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달동네에서 힘겹게 살아갈 것 같지만, 그 정도로 못 살지는 않는다.
겉은 허름해 보이지만, 들어가면 넓고 관리도 깨끗하게 잘 되어 있어서 아늑하다.
"왔어? 오늘 늦었네?"
거실에 어머니만 홀로 TV 드라마를 보고 계셨다.
"아버지는?"
"대리 운전 나갔지."
아버지는 낮에는 회사원으로, 밤에는 대리 운전기사로 일하고 계신다.
내가 어린 시절 작게 사업을 하셨는데 크게 실패한 탓이다.
"엄마는 오늘 가계 문 몇 시에 닫았어?"
"오늘은 몸이 좀 피곤해서 일찍 닫았어. 아홉 시?"
"서연이는 자고 있지?"
"그렇지 뭐."
아버지, 어머니, 나, 여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 의외로 드물다.
여동생은 어려서 양궁에 재능을 보여 협회에서 지원을 받으며 훈련 중이다.
지금도 늦게까지 연습하고 와서 피곤해서 곯아 떨어졌겠지.
"배고프면 밥 차려줄까? 밥 먹을래?"
엄마가 이 시간 늦게까지 깨어 있는 이유.
드라마 본방 사수 때문에?
원래 잠이 없으셔서?
아니더라.
정말 철이 없었다.
나만 생각했고, 원망만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보인다.
굳은 살, 크고 작은 상처들.
이 모든 것이 고단한 삶의 흔적들.
아마 원래 같았으면 됐다고 짧게 대답하고 방에 처박혔겠지.
다가올 내일을 두려워하며
그러나 지금의 난 다르다.
"밥은 됐고 과일 없어? 우리 과일이나 같이 먹자."
"그럴까?"
밝아지는 표정.
TV고 뭐고 급히 일어서서 주방으로 향한다.
방으로 가서 가방과 교복을 벗고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엄마가 이미 거실에서 사과와 감 따위를 깎고 있었다.
앞에 가서 앉으며 손을 내민다.
"줘 봐. 내가 과일 깎는 게 뭔지 보여줄 테니까."
"네가 과일도 깎을 줄 알아?"
"나 잘 깎아. 줘봐. 보여줄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과도와 사과를 건네는 엄마.
허세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이전 삶, 카페 주인장 노릇을 하며 단련한 과일 다루는 솜씨를 개방한다!
"우와! 뭐야, 왜 이렇게 능숙하게 잘 깎아?"
"엄마 깎아주려고 배웠지."
"어이고,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주거니 받거니.
사소한 대화, 어색한 애교에도 엄마는 굉장히 기쁘고 흐뭇해한다.
...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이게 뭐가 그리 힘들고 어렵고 귀찮은 일이라고....
"됐다. 먹자."
배는 부르지만, 내색하지 않고 우걱우걱 사과 조각을 맛있게 씹어 먹는다. 엄마도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
“맞다. 나 당분간 조금 늦을 것 같아.”
“무슨 일이니?”
음악 수행 평가를 기점으로 시작된 반지희와 다섯 소녀들에 얽힌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그랬어?”
“응. 그래서....”
엄마는 굉장히 흥미롭게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정말 내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나와의 대화가 즐겁기 때문인지.
어느 쪽이든 내게는 찡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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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거실로 나가보니 엄마와 동생 서연이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머리를 감았는지, 수건으로 감아 고정하고 있었다.
툭, 가볍게 뒤통수를 치고 옆 자리에 앉는다.
나름의 인사였는데.
"뭐야, 왜 때려? 엄마! 오빠가 막 때려!"
쪼꼬만게 목소리는 엄청 크고 성깔도 사납다.
"야, 오빠가 너 귀엽고 예뻐서 그러는 거야."
"......."
나름 진심이었는데, 반쯤 씹다만 바퀴벌레를 발견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짜식이.
딱!
작고 하얀 이마에 아주 가볍게 딱밤을 날리고 내 앞에 차려진 아침을 먹는다.
그러다 왠지 세한 느낌이 들어 옆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순간.
덥석!
녀석이 내 왼쪽 손목을 깨무는 게 아닌가?
이 뱅갈 고양이 같은 계집애!
딱! 딱!
"놔? 안 놔? 어쭈!"
"악악악!"
딱밤을 때릴수록 악에 받쳐 더 세게 깨문다.
결국 엄마한테 등짝을 한 대 얻어맞고서야 떨어졌다.
분이 풀리지 않는지 치켜 뜬 눈으로 날 노려본다.
얘 지금 화난 척 한 게 아니라 진짜 성질이 난 거다.
겨우 그 정도가지고....
어처구니없지만 이 모습이 반갑기도 해서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미안하다. 내가 죽을죄를 졌다.”
“.......”
“용돈 줄 테니 화 풀어.”
만원짜리 두 장을 건네고서야 집안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 한 장은 안 받더라.
"엄마 학교 다녀올게!"
후다닥 식사를 마친 서연이는 번개처럼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간다.
"엄마. 나도 다녀올게."
아빠는 새벽 늦게 들어와서 한창 주무시고 계신다.
금방 다시 깨어나 일을 가시겠지?
엄마도 식당 출근하면 밤 늦게까지 고생 하실 테고.
하여튼 그 놈의 돈이 웬수다.
빨리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도 서연이고, 우리 가족 모두 호강시켜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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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연습을 지켜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반발하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파워풀한 걸스 힙합은 너희들에게 안 어울려. 그건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연습하도록 하고 지금은 다른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어."
“무슨 시도?"
"생각한 거라도 있는 거야?"
불안한 눈빛들.
“요는 이거잖아. KM 같은 대형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발탁되서 가수 데뷔하는 것. 맞지?”
“응!”
“너희 이대로는 본선이 문제가 아니라 예선 통과도 어려워. 노선을 바꿔보자. 걸 크러시 말고 청순 귀염 컨셉으로. 너희는 그게 더 맞을 것 같아.”
걸 크러쉬는 이미지도 맞아야 하지만, 춤 베이스부터가 고난이도의 스트릿 댄스 베이스라서 타고난 센스와 충분한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청순 귀염 컨셉은 전혀 다르다.
노래나 춤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스타일만 받쳐준다면 충분히 돋보일 수 있다.
춤도 대체적으로 쉬운 편이고.
사실 청순 귀염 컨셉은 한계가 명확하다.
20대 중반만 되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래에는 거의 마이너 수준까지 위상이 떨어진다. 반대로 조건만 맞는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대중적인 컨셉이다.
지금 얘들에게는 최상의 컨셉이다.
“잠깐 기다려봐.”
내 노트북을 꺼내 음악 하나를 재생한다.
<블루 웨이브>
팝. 락. 디스코를 섞은 하우스 비트 트랙인데 시원한 여름, 연인과 꿈같은 휴가를 즐기고 싶은 소녀의 낭만을 담은 댄스 팝이다.
“내가 만든 곡인데... 일단 한 번 들어봐.”
철썩 철썩.
쏴아아아.
인트로는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하와이안 뮤직 샘플링 사운드로 시작된다.
바다 가자!
느닷없는 깜찍한 비명소리.
그리고 시작되는 펑키하고 파핑한 사운드!
방방 뛰고 싶게 만드는 유쾌 발랄한 전주는 초반부터 리스너의 마음을 확 끌어당긴다.
그리고 시작되는 노래.
‘아무래도 여자 곡이다 보니... 가이드 보컬이 굉장히 재수 없고 유치하게 들리네.’
아무리 변성기 전이고 음역대가 높다곤 하지만 나는 남자다. 여자 음역 대를 억지로 흉내 내는 걸 내 귀로 듣고 있자니 민망하고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그런데 명중이와 여섯 소녀들은 굉장히 몰입해서 듣고 있다.
온 몸을 들썩들썩 거리면서.
아무래도 곡이 꽤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어느 중. 소 기획사에서 런칭한 5인조 아이돌 걸 그룹에게 주었던 음악이다.
여름 노래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서 줬는데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더라.
초반 반응이 좋았고, 활동과 마케팅만 제대로 했다면 공석인 썸머퀸 자리도 노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욕하고 싸우고 왕따 시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그러다 그게 이슈화되면서 다 끝장났다.
더불어 내 곡까지 아이돌 계의 흑역사로 파묻혀 버렸다.
안타까운 순간이었지.
잠시 상념에 젖어 있는 동안 음악이 끝났다.
“와! 이거 진짜 좋다!”
“완벽한 여름 노랜데? 이거 정말 네가 만든 거야?!”
“멋지다! 이거 우리가 부르고 싶은데... 아, 안 되겠지?”
“딱 내 스타일이야!”
다들 신이 났다.
“이 곡으로 처음부터 제대로 준비해서 도전해보자. 너희는 연습생이 되기 위해서. 난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서 이 곡과 컨셉을 팔기 위해. 함께 윈윈해보자는 거지.”
이게 블루 웨이브를 꺼내든 내 목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준비 상태로는 KM 페스티벌은무리였다. 당장 대회는 며칠 안 남았는데 연습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바로 이것.
“굳이 KM에서 데뷔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안 그래?”
“그러면?”
“같은 대형 3사 중 LK도 있고 JJ도 있고... KM은 안 그래도 연습생 과포화 상태인데, 거길 또 비집고 들어가겠다고? 난 좀 반댄데.”
“어, 그러네.”
“으음...!”
내 말이 일리가 있었던지 고민을 시작하는 아이들.
사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도 난 KM은 싫다.
대형 3사 중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 톱 엔터테인먼트지만 내게는 양아치 회사일 뿐이다.
당한 건 난데, 오히려 나를 가해자로 몰아붙여 업계에서 아예 매장을 시켜버린 곳이기에.
심지어 일이 터졌을 때만 버리고 끝냈던 것도 아니고, 내가 이름을 드러내며 뭔가 활동할 기미만 보이면 쫓아와 지랄 지랄을 해대더라.
뒤끝도 심한 양아치라는 소리다.
그런 회사에 이런 애들을, 특히 미래 톱스타인 주세아를 순순히 넘길 수는 없다.
반지희가 묻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정말 아이돌이 되고 싶다면 조금 더 현실적인 작전을 짜야지. 난 JJ를 추천해.”
“JJ? 엔 플라워하고 매트로 보이즈 있는 곳이지?”
“대단한 회사라는 건 알겠지만 KM 보다는 조금 못하지 않나?”
“성향이 다른 것뿐이지.”
난 차분하게, 그리고 최대한 알기 쉽게 3대 기획사의 특징을 알려줬다.
“LK는 자기 개성을 최대한 살린 힙합 크루 느낌이야. 그래서 음악도 흑인 음악을 추구하는데... 너희 힙합 알앤비 좋아하고 잘 부를 자신 있니?”
“어....”
“음.”
“그리고 KM은 공장 스타일. 보컬이든 춤이든, 아예 스타일을 획일화시켜서 자기 개성을 완전히 죽이는 대신 팀 전체의 컬러를 부각시키지. 그들이 원하는 명확한 인재상이 있어. 여기에 부합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나도 진입 자체가 힘들어. 입사가 결정되도 다 비슷한 애들끼리 경쟁해야 하는 거고.”
“조금 어렵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아.”
“그러고 보니 KM은 그룹들이 다 비슷비슷해보여. 창법도 그렇고 춤추는 것도....”
“JJ는 굉장히 대중 친화적이야. 사람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친근한 걸 좋아해. 아티스트의 성장을 중요하게 여기고 투자도 많이 해주지. 키워서 같이 가는 회사라고 해야 하나?”
다들 공감이 간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JJ를 타겟으로 같이 준비해보자는 거야. 나도 그렇고 너희도, 그쪽에 어필이 될 요소가 많다고 보거든. 여기가 안 되면 다른 곳에 도전하면 되는 거고.”
KM 페스티벌은 지금 상태로는 입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니, 아예 본선에 진출하는 게 힘들다.
“내가 왜 JJ를 같이 노려보자고 하는 지 이해했어?”“응! 확실히 이해했어.”
“인정. 그 말 듣고 보니 KM 페스티벌 출전은 무리수였던 것 같아!”
참 다행이다.
다들 쓸데 없이 자존심이 세서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성격이 아니라서.
“함께 하는 대신, 나를 프로듀서로서 인정하고 내 지시를 따라줘야 해. 그럴 수 있겠어?”
“물론이지!”
“넵! 프로듀서님!”
“원래 그러기로 하고 우리 봐주고 있었던 거 아니었어?”
마지막은 주세아의 질문이다.
“다르지. 지금까지는 친구로서 이것저것 도움을 주는 관계였을 뿐이었잖아.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티스트 대 프로듀서로 관계로 재설정하자는 거야. 기획사에서 그러듯이.”
“아, 그렇구나. 이해했어. 나도 찬성.”
주세아가 날 보고 배시시 웃는다.
“민이라면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아.”
“.......!”
쟤는 평상시 그렇게 조용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한 번씩 툭툭 터트릴 때가 있다.
이렇게 또 감동을 주네.
아무튼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으니 스케줄 표를 짜서 나눠줬다.
“운동, 식단, 연습... 학년이 같아서 생활 패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가정 하에 짜본 거야.”
“어어....”
“으음.”
일정표를 확인한 모두가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오디션까지 남은 시간도 많지 않고 너희는 기초가 부족하니 그 정도는 해야 해. 내일부터 무조건 여섯시에 일어나서 내가 시키는 대로 루틴 하나 끝낼 때마다 인증샷 보내.”
“인증 샷까지?!”
“응. 그래야지 너희 상태 체크하면서 진도 맞출 수 있지.”
“.......”
눈치만 보는 아이들.
난 조금 냉혹하게 말했다.
“싫으면 당장 때려치우던가. 이 정도도 못하면 연습생은 때려 죽여도 못하지.”
“아냐. 할 게! 할 수 있어. 그치?”
이번에도 주세아가 나섰다.
잘된 사람은 이유가 있다.
“그래. 해보자!”
“까짓것....”
“가수 되려면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거지? 오케이. 알았어. 해보지.”
주세아는 잘 할 것 같은데 다른 애들은... 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과연 얼마나 따라올지....
그때 최명중이 물었다.
“나는?”
“응?”
“나는 뭐 없나?”
“네가 저게 왜 필요해?”
“나한테도 음악 가르쳐주기로 했잖아.”
“아....”
그러고 보니 가르쳐 준다고 말만 해놓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잠시 고민해보다가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과외 해줄게. 내일부터 시작하자."
"내일 언제 어디서?"
“시간 아낄 겸, 수업 끝나고 교실에 남아서 하고 가자. 너도 그게 좋지?"
“좋아. 잠깐, 그러면 나도 맥북 하나 사서 로직 프로그램을 깔아야 하는 건가?"
“아무래도 그게 좋겠지? 학생 할인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니 잘 알아보고 구입해. 무턱대고 지르지 말고.”
“알았다."
최명중의 얼굴 표정이 굉장히 들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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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다들 몇 번 들어보더니 금방 외우더라.
내친 김에 파트 분배도 해줬다.
예상대로 훗날 최고의 아이돌이 되는 주세아의 재능이 가장 돋보였다.
매력도 압도적이고.
“주세아가 1절 첫 소절을 하자, 원래 이런 곡들은 시작부분부터 임팩트 있게 치고 나가줘야 전반적으로 뭔가 대단한 것처럼 보여 지거든.”
중심이 정해지니 나머지 파트 분배는 금방 끝났다.
난 몇 번이고 강조했다.
“노래 부를 때 어설프게 누구 따라할 생각 하지 말고 차라리 내 가이드 보컬을 흉내 내. 기본기에 충실하거든."
임시처방이긴 하지만 준비 시간이 워낙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
“안무는 이틀 안으로 다 짜서 단체 채팅 방에 영상으로 만들어 보내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또 뭐 챙겨야 할 게 있나?
“나머지는 떠오르는 대로 그때그때 공지할게.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그때 반지희가 급하게 소리친다.
“야, 팀명! 팀명을 정해야지. 가장 중요한 게 빠졌잖아!”
...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되는데?
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맞아. 제일 중요한 게 빠졌네.”
“난 대체 그거 언제 언급할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다른 애들은 생각이 많이 다른 모양이다.
자신의 말에 동조해주니 반지희가 신이 나서 소리친다.
“우리 떡볶이 먹으면서 논의하자! 내가 쏜다!”
얘는 떡볶이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들렸나...?
그날, 치열한 논쟁 끝에 정해진 팀명은 문 라이트.
왠지 세일러문이 떠오르는 네이밍이지만 본인들이 좋다고 난리니 뭐.
@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블루 웨이브>의 안무 작업에 착수했다.
내가 가장 먼저 진행한 작업은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간단하게나마 곡 주제에 맞는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이다.
반지희는 활기차고 발랄한 여자 친구.
주세아는 도회적이고 시크한 여자 친구.
이런 식으로 각기 다른 여자 친구 캐릭터를 만들어 표정 연기와 제스처를 구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안무를 짠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포인트 안무!
그렇다고 너무 쉬우면 없어 보이니, 포메이션 체인지를 통해 화려함을 입힌다.
그렇게 이틀 만에 안무를 완성한 뒤 시안 영상 촬영에 접어들었다.
문제가 생겼다.
안무가가 나 혼자 뿐이니, 모든 구성을 나 홀로 표현해야 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까?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이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여섯 멤버.
각자에 맞는 안무 시안 영상을 따로 촬영한다.
모든 안무가 노트와 머릿속에 새겨져 있으니 그 자체는 어렵지 않다.
번거로울 뿐이지.
총 여섯 개의 영상을 만들고 보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표정 연기가 디테일하게 보이지 않네.’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또 다시 여섯 번을 촬영했다.
표정과 제스처가 최대한 잘 보이도록.
“됐다.”
그렇게 완성한 영상을 쭉 검토한 뒤....
“뿌리자.”
팀 <문 라이트> 단체 채팅방에 업로드했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본다.
“밤 샜네.”
학교 가야 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학교고 나발이고.
그대로 드러눕고 싶지만 불가능했다.
오늘은 휴일도 아니었고, 몸이 아프거나 사고가 생긴 것도 아니라 결석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꾀병을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운동을 쉬고 대신 잠을 자자!”
힘든 하루를 예감하며,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학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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