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곡을 팔자 (1)
“오, 제육에서 불맛난다!”
“뭐야, 불고기 왜 이렇게 맛있어?”
"어머니 요리 진짜 잘하시는데?”
리액션 좋고!
“어머, 입맛에 맞나보다. 내심 걱정했는데 참 다행이네. 오호호!”
우리 어머니 기분은 더 좋고!
평상시였다면 손님 한 두 명 정도 들어와서 국밥, 혹은 라면 정도나 먹고 있을 조용한 시간대였다.
아침과 점심 사이였기 때문.
그런데 오늘은 굉장히 활력이 넘치고, 웃음도 가득하다.
덜컹!
“어? 아빠?!”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한창 잠들어 계셨어야 할 분이 어쩐 일로...?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덕분에 다들 먹다 멀고 일어서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엄마는 좋은 시간을 방해한 아버지를 세차게 째려보며 일침을 날리신다.
“피곤하다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행차하셨어?”
“아니, 그냥 아들 친구들 온다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후식거리 좀 사왔어.”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들고 온 쇼핑백에서 빵이며 조각 케이크 같은 것들을 꺼내 놓으신다.
“치즈 케이크다!”
“감사합니다!”
적절한 후식 제공으로 여자 아이들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한 아버지.
그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더니 만 원짜리 몇 장을 내게 건네주신다.
“이거 가지고 애들하고 맛있는 거 사먹어라.”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한 번 쭉 둘러보시더니.
“식사 마저 해. 난 이만 가봐야겠다.”
뭐라고 할 틈조차 주지 않고 휙 나가 버리셨다.
말 그대로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지신 것이다.
엄마가 혀를 차신다.
“으이구 저 양반. 아들 친구 온다니 궁금해서 자다 말고 급히 나왔나보다. 하여튼 아들 일이라면....”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빙그레 웃으시며 자상하게 말씀하셨다.
“제육이랑 불고기 더 줄까? 많이 먹어. 너희들 주려고 많이 만들어놨으니까.”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때는 손님으로 올 게요!”
“음식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식사 하면서, 혹은 끝나고 나면 뭐라도 좀 물어보고 그럴 줄 알았는데.
“손님은 됐고, 얼굴하고 이름 다 기억해뒀으니 생각나면 언제든지 편하게 찾아오렴.”
말 그대로 음식만 먹이시고 그대로 돌려보내신다. 아이들은 설거지라도 하려고 했지만 엄마가 등을 떠밀어서 내보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민이는 좋겠다. 사실 우리 엄마 요리 진짜 못하거든.”
“요리 솜씨는 둘째 치고, 뭔가 사람을 굉장히 편하게 만들어주는 아우라 같은 것을 가지고 계신 분이야.”
쏟아지는 엄마 칭찬에 내가 다 뿌듯하다.
지희가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어머니 음식 솜씨 진짜 좋으시더라. 간도 굉장히 적절하고... 정말 내입맛에 딱이었어. 나 앞으로 자주 오려고.”
“나도!”
애들이 요리가 정말 맛있긴 했나보다.
무슨 청담동 연습실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엄마 요리만 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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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라이트 애들의 연습과 명중이의 미디 공부를 봐주는 동안 생각했다.
‘돈을 벌자. 가급적 많은 돈을 벌어서 서울 좋은 아파트로 이사 가고, 엄마 아빠가 원하던 가게도 하나씩 차려 드리고 우리 서연이 양궁으로 올림픽에도 내보내고.’
이전 삶에서 나는 가족들에게 굉장히 많은 빚을 졌다.
가족이 없었다면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종자돈을 마련해서 이것저것 투자를 해봐야지.’
이전 삶에서 나는 투자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주식, 코인, 부동산, 심지어 NFT 경매까지.
정말 안 해본 게 없었다.
뮤지션을 자처했던 내가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으니까.
이번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난 가급적 많은 돈을 벌고 싶다.
많을수록 좋은 게 바로 돈이라는 녀석이 아니던가?
‘그런데 자본금이 없으니 어떤 종목이 언제 크게 오를지 알고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네.’
특히 지금은 비트 코인 광풍이 불기 이전이라 가격이 굉장히 저렴하다.
지금 최대한 땡겨둬야 차후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곡을 팔자!’지금으로서는 이것 밖에 답이 없다.
웹소설 작가 생활도 해봤지만 그건 정말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효율도 그리 좋지 않고, 무엇보다 나하고는 잘 맞지 않은 직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으니 나중에, 여유가 좀 되면 슬슬 시도해볼 생각이다.
뮤튜브.
뮤튜브는...
‘해본 적이 없네.’
얼굴만 비추면 욕을 먹었으니까.
그리고 그것도 사실 알고 보면 굉장히 효율이 떨어지는 직업이다.
투자를 위한 종자돈이 급한 상황인데 언제 뮤튜브 촬영을 해서 돈은 또 어느 세월에 벌 수 있을까?
맥북을 열어 틈틈이 작업해 둔 미디 파일들을 확인해 본다.‘여기서 몇 곡을 수정해서 돌려보자.’
이전 삶에서 다양한 곡을 썼다.
그 중에는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것도 있지만, 조용히 묻힌 것도 상당하다.
‘곡이 좋아서 성공한 것도, 나빠서 실패한 것도 아니야. 모든 것은 타이밍이 중요하니까.’
어떤 가수가 부를 것인가.
타이틀인가 수록곡인가.
발매 시기는?
프로모션은?
고려해야 할 것이 굉장히 많다.
이전 삶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곡을 온갖 회사에 돌린다고 곡을 팔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전략이 필요하다.
‘일단 발라드는 승산이 없지. 그 쪽 시장은 철밥통들이 꽉 잡고 있으니까.’
애당초 대중에 이름이 알려져서 성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발라드 가수 자체가 몇 없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곡을 쓰거나, 아니면 업계 최고의 작곡가들과 호흡을 맞춘다.
내가 지금 상황에서 프로 작곡가로 데뷔하려면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트렌디한 댄스곡으로 노려야 한다. 수요도 굉장히 많고 유행이 급변하는 시장이라 신인이 들어갈 여지가 제법 있다.
‘대형 기획사에서 밀어주는 아이돌 그룹 타이틀이 제일 좋긴 한데....“
이 쪽도 난이도가 너무 높다.
기본적으로 대형 기획사는 자본과 인프라 구축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곡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중요한 건 결국 기획사가 정한 앨범 컨셉이다.
이 컨셉이 안 맞으면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반려, 혹은 잘 해봐야 데이터베이스 신세를 지게 된다.
‘기획사 성향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이 시기 국내 가요계는 세 곳의 대형 기획사가 엄청난 위상을 떨치고 있다.
내가 몸담았던 KM 엔터테인먼트.
힙합 크루 성향이 짙은 LK 엔터테인먼트.
톱 프로듀서이자 작곡가, 댄스 가수인 장진영 대표가 이끄는 JJ 엔터테인먼트.
‘이 중에서 내가 노려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일까?’
아티스트 육성 커리귤럼, A&R 시스템이 굉장히 치밀하게 설계 된 KM?
자사의 천재적인 아티스트, 프로듀서 군단 위주로 돌아가는 LK?
‘아니지. 바로 장진영 대표의 JJ야.’
거쳐야 할 관문이 많은 두 기획사와 달리, JJ는 장진영 대표, 이 한 사람만 공략하면 되기 때문이다.
철저히 그 한 명에 의해 모든 것이 좌우되는 회사였다.
그리고 이 사람을 취향을 나는 굉장히 잘 알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 사람 팬이었고 내 롤 모델이었으니....
‘그렇다면... 이 곡을 수정해서 공략을 해보자.’
장진영 대표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그를 생각하며 열심히 만들었던 남자 솔로 댄스곡.
그러나 결국 주지는 못했다.왜냐면 간신히 작업을 끝마치고 전문 업체에 믹싱, 마스터링을 맡겨 둔 사이에 회귀를 해버려서....
“이거 우리 곡 아닌 것 같지?”
“뭐야, 우리도 좀 들려주지.”
“치사하게 자기 혼자만 듣고 있네.”
"......?"
엄마 깜짝이야!
어느 새 땀으로 흠뻑 젖은 애들이 나와 명중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반지희가 내 시야에 파고들더니 상단에 표기된 미디 파일의 제목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시간 있어요? 이게 제목이야?"
“집중을 못하게 만드네.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니, 그냥 네가 뭐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서 그러는 거야!”
"음악 만들고 있었던 거지? 나도 들려줘!"
“좋은 거 있으면 같이 좀 듣자!”
애들이 참 당당하기도 하다.
침묵을 거절로 오해한 소녀들이 단체 행동을 게시했다.
“우리도 음악이 듣고 싶다!”
“들려 달라! 들려 달라!”
안 들려주면 끝장을 볼 기세다.
시위하는 광경이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골치가 아프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여섯 명이 말괄량이들이라.
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졌으니 그만 하자. 들려줄게."
“헤헤.”
승리의 미소를 짓는 소녀들.
반지희는 보란 듯 최명중을 타박했다.
“야, 이렇게 그냥 대놓고 요구하면 되지. 네가 무슨 멍멍이도 아니고 민이가 봐줄 때까지 쳐다보고 있냐?”
“.......?”
뭐야, 명중이도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고?
당연히 자기 할 일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시선에 최명중이 당황하며 변명했다.
“뭔가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기에 궁금해서...."
너도 얘들이랑 똑같구나.
피식 웃음이 나온다.
“궁금하면 그냥 물어보지 그랬어. 미안하게... 아무튼 자.”
맥북을 스피커 모드로 설정을 바꾼 뒤, 처음부터 음악을 재생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들어 봐."
[ 둥! 둥! 두두둥! ]
긴장감을 만들어낸 묵직한 드럼 비트.
이어 한순간에 터져 나온 웅장하며 경쾌한 빅밴드 사운드가 온 몸을 들썩거리게 만든다.
이어지는 나레이션.
[ 저기, 혹시 시간 있어요? ]
[ 그쪽에게 줄 시간은 없는데요? ]
터져 나온 비명 소리, 유리창 깨지는 소리.
올드한 빅밴드 스윙 재즈에서, 힙합과 EDM 사운드를 접목한 댄스 음악이 입혀진다.
“오오오!”
“조, 좋다!”
“뭐지? 굉장히 고급스럽게 신나는데?”
정박을 강하게 쳐주는 킥 비트가 온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음에 들었던 여자에게 대시했다가 처절하게 차여 버렸다!
대체 뭐가 문제지?
혼자 고민만 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편하게 그녀를 포기할까?
아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이미 깊이 빠져 버렸거든!
그녀를 분석하자.
무엇을 좋아하지?
어떤 스타일을 선호할까?
그녀가 날 봐줬으면 해.
그녀의 사랑이 필요해.
... 뭐 대략 이런 내용이다.
이게 가사라는 건 아니고.
유치할 수도 있지만... 참 솔직하지 않나?
누구나 공감할 거다.
이성에 푹 빠져들어서 그 이상형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을.
한 번 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나?
그녀, 혹은 그의 이상형으로 나타나 당당히 대시하고 사귀게 되는 순간!
<시간있어요?>는 바로 그 과정을 그린 음악이다.
음악이 모두 끝났다.
나는 내심 조마조마해 하며 물었다.
"어때? 괜찮아?"
“이 음악을 정말 네가 만들었어?”
“음악 잘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굉장한 수준일 줄은 몰랐어!”
반응이 꽤나 좋다.
심지어 최명중은....
“나도 이런 곡 만들어보고 싶어. 가르쳐줘!”
굉장히 뜨거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애들을 진정시키고 질문을 던졌다.
“이 곡, 너희들 생각에 누가 부르면 좋을 것 같아?”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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