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놀라운 제안
연락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5교시 쉬는 시간.
[ 안녕하세요. JJ 엔터테인먼트 이정연 팀장입니다. 김민 작곡가 님 휴대폰 맞나요? ]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대화중이던 지희, 명중이를 향해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하고 통화를 시작했다.
“네. 맞습니다. 제가 김민입니다. 혹시 제가 보내드린 파일 때문에 연락 주신 건가요?”
[ 네. 맞습니다. pd님께 보여드렸더니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
“.......!”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런 내 모습에 아직 상황을 모르는 친구들의 얼굴에 의문이 피어오른다.
지희가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뭐야? 무슨 일이야?’
‘통화 끝나고 말해줄게.’
[ 혹시 오늘 시간되시나요? 피디님께서 가능하면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아, 그리고 혹시 해서 묻는 건데... 가이드 보컬, 작곡가님이 직접 부르신 건가요? 목소리 들어보니 그런 것 같아서.... ]
“네. 맞습니다. 제가 작업했어요.”
[ 그러면 보내 주신 안무 아이디어 스케치 영상 속 주인공이 혹시.... ]
“접니다.”
그녀는 굉장히 당황했는지 더듬거리며 물었다.
[ 시, 실례지만 나이를 여쭤봐도...? ]
“고등학생입니다.”
뭐야. 왜 말이 없어?
통화 끊겼나?
지희와 명중이에게 사실을 알려줬더니 잠시 아무 말도 못하더라.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이었다.
가장 먼저 정신 줄을 붙잡은 지희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바, 방금 그 팀장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정연 팀장.”
“기다려봐. 검색 한 번 해보자.”
곧 반지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진짜 있네? 사기 전화가 아니었어! 전화번호도 딱 맞네. JJ 엔터테인먼트 A&R 팀!”
사진과 기사 정보들이 잔뜩 노출되어 있었다.
업계뿐만 아니라 아이돌 팬덤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는 모양이다.
사실상 오늘의 대한민국 3대 대형 기획사. JJ 엔터테인먼트의 시스템을 구축한 능력자라고.
그것도 그거지만.
“무슨 회사 직원이 모델이나 여배우만큼 예쁘고 스타일이 좋네. 이 언니하고 친해지고 싶다.”
“.......?”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데려가 달라고?”
“응! 나 JJ엔터테인먼트 구경하고 싶어!”
“나, 나도!”
두 사람 모두 자신도 데려가 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쏘아 보낸다.
마음 같아서야 그러고 싶지만....
"안 돼."
거절할 수밖에 없다.
반지희가 굉장히 서운한 얼굴로 반문했다.
"왜? 어째서?!"
“비즈니스 하러 가는 자리잖아. 안 그래도 나이 어린 게 마음에 걸리는데...너희들까지 데려가면 회사에서 날 어떻게 보겠냐?"
"그건 그래."
내 말을 납득하면서도 시무룩한 표정을 거두지 않는 두 사람.
일단 무시하고, 난 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사실....”
수업을 마치자마자 교실을 벗어났다.
[ 아빠 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
가슴이 두근거린다.
JJ 엔터테인먼트 장진영 대표와의 저녁 식사라니.
내가 그토록 존경하던 뮤지션이 아니던가?
그의 철학과 춤, 음악, 패션.
모든 것을 동경했고 그처럼 되고 싶은 꿈을 꿨다.
이전 삶에서는 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어쩌면...?
“민아, 여기다!”
“아빠!”
정문에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정장을?”
“야, 내가 알아보니 JJ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이 굉장한 곳이더라.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연예 기획사라며? 시총도 무려 2조가 넘던데.”
“어, 엔터 업계에서는 대기업이긴 하지만....”
“그런 자리에 비즈니스 하러 가는 건데 당연히 제대로 갖춰 입어야지. 그게 예의야.”
하나 같이 옮은 말이니 딱히 할 말이 없다.
“아, 저기 택시 오네. 택시!”
그러고 보니 대리 운전하시는 분이 자차도 아직 없으시네. 빨리 돈 벌어서 그것부터 하나 뽑아드리던가 해야....
“안녕하세요. JJ 엔터테인먼트 A&R 팀장 이정연입니다. 찾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청바지에 티셔츠, 긴 생머리.
눈부시게 아름다운 8등신의 미녀가 사옥 로비에서 우리를 맞이해준다.
A&R 팀이라면 음반, 아티스트 기획 핵심 부서로서, 막중한 인무만큼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팀장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장진영 대표를 제외한 최고 실권자겠네.'
“김민 아버지 김정수입니다.”
아버지는 최대한 예를 갖춰 정중히 인사하신다.
나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민입니다.”
이정연 팀장은 햇살처럼 밝은 미소로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안내 받은 곳은 사옥 최상층, 시원하게 뚫린 통창 너머, 강남 시내와 한강까지 한 눈에 보이는 대표 집무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장진영 대표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제가 이 회사 대표이자 프로듀서 장진영입니다!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는 진심이 가득한 담긴 얼굴로 우리 부자를 환대해줬다.
아버지는 TV에서 자주 보던 유명인과의 조우에 완전히 얼어붙은 상황.
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뒤에야 비로소 나에게 시선을 준다.
“김민 학생. 맞죠?”
“네. 대표님 정말 팬이예요.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예요.”
“에이, 립 서비스 아니예요?”
“아니예요! 정말이예요. 대표님에 대해 알려진 건 줄줄 꿰고 있어요!”
난 몇 가지를 이야기 했다.
“미국 하이스쿨 재학 시절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많이 당하셨죠?”
“그, 그랬죠.”
“2집 앨범 11번 트랙 옐로우 스킨이 바로 그 시절 이야기를 담은 곡이잖아요. 저 비트 하나 까지 상세히 외우고 있어요. 카피도 많이 했고요.”
“와....”
“대표님을 정말 우상이자 롤 모델로 삼고 있었거든요. 대표님 처럼 되고 싶어서 춤, 작사, 작곡, 편곡, 엔지니어, 음악, 스타일링, 아트... 다 열심히 공부했어요. 미국 흑인 음악도 대표님 추천곡 위주로 줄줄 꿰고 있고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존경한다.
오죽하면 내 덕질의 대상이었을까?
“블루 노트 재즈 클럽은 뉴욕에 방문하시면 다른 일정 제쳐두고 무조건 제일 먼저 방문하는 장소죠? 레이 찰스 같은 거장이 공연했던 바로 그 전설의 클럽!”
“어? 레이 찰스도 알아요? 물론 전설적인 뮤지션이긴 하지만 김민 군은 이제 고등학생인데...?”
“명색이 작곡가 프로듀서를 지망한다면서 레이 찰스도 모르면 말이 안 되죠! Hit the road Jack야 워낙 유명한 히트곡이고 What‘d I say는 작곡 계기부터가 전설적이잖아요.”
“그, 그렇죠!”
“클럽 공연 중 레퍼토리가 다 떨어져서 시간이나 때울 생각으로 즉석에서 키보드 리프에 가사를 붙였는데 엄청난 호응을 얻어 정식으로 발표했죠. 그것이 바로 오늘날 레아 찰스를 있게 한 위대한 곡이고요.”
“정말 잘 아시는군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이어갔다.
취향이 워낙 잘 맞으니 대화가 굉장히 잘 통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음악과 존경하는 뮤지션이라는 주제 앞에서 톱 프로듀서 장진영 대표는 어린 아이 시절로 돌아간 듯 보였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내 롤 모델인 사람과 추구하는 방향성이 같은 음악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니 굉장히 신이 났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그때 레이 찰스가....”
“아, 그것도 그렇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재즈 이야기에 푹 빠져 버린 것이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장진영 대표가 작업에 대한 내용으로 흐름을 유도했다.
“들어 보니 김민 군은 재즈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은데, 혹시 다른 재즈 풍 음악도 있어요?”
“재즈를 좋아하고, 재즈 기반 곡도 몇 개 쓰긴 했는데 전 힙합, 알앤비, EDM, 같은 것도 좋아하고 퓨처 베이스나 이것들이 복합된 KPOP 아이돌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요.”
“음악을 정말 좋아하고 잘 아는 구나. 혹시 다른 작품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무엇을 들려줄까?
문득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클래시컬한 발라드 음악을 하나 만들어 둔 게 있는데. 들려드릴까요? 제가 부르려고 쟁겨 둔 곡인데.“
"오, 제목이 뭐예요?"
"별빛의 숲이라고 해요."
장진영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제목 좋다.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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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깔리는 피아노 연주가 별빛이 가득한 신비로운 숲을 연상케 한다.
제목은 <별빛의 숲>
힘든 시기, 세상을 피해 차 한 대 가지고 숲을 찾아다니며 캠핑을 즐겼던 시기가 있는데 바로 그때 만든 음악이다.
사람들에게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도망친 나를, 해과 달과 별, 그리고 예쁜 숲이 위로해줬다.
[나와 비슷한 상처, 아픔을 지닌 사람이 이 노래를 들으면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만든 노래였기에 누구에게 주지 않고 내가 직접 불러 발표했다.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나인 것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철저히 위장해서.
아직 변성기조차 오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보이스 스킬은 업계에서 수십 년을 굴러먹은 프로의 그것이다.
덕분에 굉장히 재미있는 노래가 만들어졌다.
더 신비해졌고, 여린 감수성이 가득 묻어 있다.
어찌 보면 여성이 부른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높고 가는 음색이었다.
난 지금 이 목소리가 굉장히 좋다.
드럼과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들어오며 후렴이 웅장해진다.
언젠가 보고 크게 감명 받았던 밀키웨이, 바로 은하수를 떠올리며 구성한 후렴구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숲 한복판에서.
나는 마음껏 울며, 노래를 부른다.
그것이 내게 큰 위로와 함께,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져다준다.
@
음악이 끝났다.
아빠와 장진영 대표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여운을 음미하는 듯 하다 이따금 탄식을 터트릴 뿐이었다.
설마 곡에 담긴 내 마음을 읽은 걸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장진영 대표가 눈을 뜨고, 날 바라보며 묻는다.
"이거 정말 직접 만든 곡이에요?"
"네. 원하시면 미디 원본 소스도 보여드릴게요."
"의심하는 게 아니라 정말 놀라서 그런 거예요. 놀라서... 아버님은 어떻게 들으셨죠?"
"저요?"
"네.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 들으시는 것 같은데... 맞죠?"
"네. 처음 듣습니다."
"어떠셨어요?"
"그냥...."
아빠의 얼굴이 날 향한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게 가슴을 울리네요. 민망하게 계속 눈물이 나오네. 허허. 난 분명 트로트 취향인데....”
어쩌면 아버지는 이 곡에서 그 감정의 편린을 느끼셨을 지도 모르겠다.
장진영 대표도 젖은 음성으로 말했다.
"들으면서 가장 힘들고 외로웠던 시절이 떠올라서 저도 먹먹했어요. 아마 누구라도 그럴 거예요. 이 노래를 듣게 되면...."
이거 힐링송인데 아프다는 말씀들만 하시니....
후렴구를 손 좀 봐야 하나?
잠시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깜짝 놀랄 제안을 하셨다.
"혹시 이 곡 팔 생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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