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당장 데려와요!
그날 밤.
거처에 돌아온 장진영은 곧장 음악 감상실로 이동했다.
무려 수천만 원 상당의 음악 감상 시스템이 구비된 장소였다.
블루투스로 스마트 폰과 연결.
음악을 재생한다.
< 별빛의 숲 >
클래식 기반의 발라드 음악.
곡 구성, 연주 방식, 가사.
‘보컬에 담긴 감성까지... 정말 완벽해.’
듣고 있노라면 지친 마음을 위로 받는 기분이 든다.
당장 아름다운 숲으로 달려가 별빛을 보며 이 음악을 듣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엄청난 음악을 겨우 고등학생이 만들었다니....’
놀란 것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사실 그룹 하나를 프로듀싱하고 있어요.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오디션 준비 팀인데....’
문 라이트.
동갑내기 소녀 여섯 명이 모인 그룹이다.
< 블루 웨이브 >
“근래에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한 여름곡이 나오지 않았지.”
그런데 그 가능성을 보이는 그룹이, 대형 기획사나 유명 중견 회사가 아닌 일개 소년, 소녀들에게서 나왔다.
그 영상을 본 순간이 바로 그의 음악 인생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
한참 동안 고민하던 장진영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더 이상의 고민이 의미 없게 만들어 버려야지.”
일생일대의 베팅이 필요한 순간이다.
“김민, 그 친구라면....”
젊은 시절, 쓰디쓴 실패로 완전히 소멸해 버린 줄 알았던 야심이....
“이번에야 말로 가능할 지도 몰라.”
... 다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냐. 대단한 건 분명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기대하지는 말자. 침착하고 냉정하게....”
하지만 애써 냉혹한 현실을 끼얹으며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엔터 산업은 현실을 올바로 직시할 수 있는 눈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날. 장진영은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회사에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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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출근한 즉시 실무 관리자들 중, 자신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을 모두 소집한다.
그 중에는 A&R팀 이정연 팀장 역시 포함됐다.
“어제 제가 누구하고 미팅했는지는 다 알고 있죠?”
고개를 끄덕이는 팀장들.
“그런데 제가 대화중에 진짜 놀라운 것들을 접했어요. 이건 김민 그 친구를 연결해 준 정연이.. 아니, 이정연 팀장도 몰랐던 사실일 거예요.”
“.......?”
의아함으로 물드는 눈빛들.
“일단 곡부터 감상한 뒤 이야기 해보도록 합시다.”
제일 먼저, <별빛의 숲>이 울려 퍼진다.
감수성 넘치는 클래시컬한 발라드 음악!
후렴 부분에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입혀지며 가슴이 절로 웅장해지는 체험은 언제 들어도 환상적이다.
지난 밤, 수십 번도 넘게 곡을 반복해서 감상한 그가 이지경인데 다른 사람들은 과연 오죽할까?
궁금해서 반응을 집중적으로 살피니....
“와....”
“고등학생이 이런 곡을 만들었다고?”
“정말... 정말 좋은 곡이예요!”
냉정하기로 유명한 이정연 팀장 역시 흥분과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어때요?”
“이거 끝내주는데요? 정말 어제 회사에 방문했던 그 고등학생 소년이 만들고 부른 노래예요?”
“감수성이 이거... 와, 요즘 애들한테 나올 수 있는 그런 게 아닌데? 듣다가 울컥해가지고...창피하게 정말....”
만족스러운 반응.
장진영 대표는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마지막으로 이정연 팀장의 물었다.
그녀는 신입 시절의 그때처럼, 반짝 반짝 별빛을 품은 눈동자로 말한다.
“노래, 보컬, 감성, 세 박자가 완벽했다고 봐요. 확 뜰만한 곡은 절대 아닌데, 굉장히 오랫동안 맴돌며 아주 천천히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의 감성을 파고들 그런 곡이죠.”
“정확히 봤어.”
씩 웃으며 대답한다.
“이런 게 바로 유행을 떠나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그런 곡이야. 그리고 이런 곡을 만들고 부른 아이가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라는 거지.”
이어 모두에게 말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게 뭐냐면, 이 친구 트렌디한 곡 잘 만들고 프로듀싱, 컨셉 기획 능력도 굉장해요. 제가 지금부터 완전 상반된 두 개의 컨셉을 소개해 줄 거예요. 한 개는 어제 우리가 받았던 곡, 나머지 한 개는 비공갠데...그 친구가 저에게만 보여준 영상이에요.”
<시간 있어요?>와 <블루 웨이브>가 연달아 소개된다.
그것을 직접 소개하는 장진영 대표는 자신이 즉석으로 무언가를 첨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내용을 빼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줬을 뿐이다.
고풍스러운 블루 노트 재즈 공연장을 기반으로, 클럽 감성을 적절히 담아낸 <시간 있어요?>.클래식 슈트에 약간의 파격을 적용하며 우아함과 트렌디함을 동시에 잡았고, 이는 곡의 컨셉과 더할 나위 없이 일치한다.
“이건 누가 봐도 대표님 한 명만을 모티브로 잡고 만든 곡이군요.”
“대표님이 어떤 캐릭티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네요. 특히 기품 속에 파격을 녹여댄 저 스타링일 컨셉은 대표님이 평생을 가져가도 좋은 수준이라 여겨집니다.”
어떤 특정 곡과 컨셉에 대해 만장일치로 이렇게 좋은 의견이 나오기가 참 힘든데....
‘지금 그게 되고 있네.’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
그리고 펼쳐진 블루 웨이브의 노래와 안무 영상.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여섯 명의 미소녀들이, 시원하면서 개성이 톡톡 튀는 댄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다들 물병을 마이크 삼아 라이브까지 소화한다. 특출난 것은 아니지만, 흔들림 없고 기본기 좋다.
“.......!”
팀장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는 것을 본 장진영 대표는 의기양양해졌다.
‘거 봐. 내가 저럴 줄 알았어. 내가 저 영상 때문에 밤새도록 잠도 못자고 얼마나 심란했는데...!’
저런 인재들이 버젓이 강남 중심 어딘가에 있었는데, 왜 자신들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아직 스타일링을 입히지 않은 천연 상태임에도, 전원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외모와 매력이 출중했다.
‘그 중에서도 저 한 명...!’
제일 첫 파트에서 나와 세상 도도한 얼굴로 카메라를 흘겨보며 표정 연기와 안무를 작렬시키는 미소녀.
‘저 아이는 아이돌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
영상이 끝나자 소란이 발생했다.
“어디 기획사 연습생들이죠? 당장 떠오르는 곳이 몇 곳 있긴 한데...?”
“저는 KM 엔터테인먼트가 떠올랐어요. 센터 역할의, 친구가 KM이 선호하는 외모라서...."
“어? KM은 아닐 거예요. 그 소속사 데뷔조 애들 제가 잘 알고 있는데....”
이정연 팀장의 소감은 유난히도 심각했다.
“저 센터. 저런 친구가 경쟁사 아이돌로 나오면 못 당하겠는데...."
장진영 대표는 새어 나오는 미소를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저 친구들, 다른 소속사 연습생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아이들이예요. 김민 그 친구가 발견해서 프로듀싱하고 있는 인재들이기도 하고요.”
“.......!”
모두가 기겁을 했다.
이정연 팀장은 거의 뒤로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그러면 일반인 들이라는 말씀...?”
“네. 참고로 곡도 직접 만들었고 안무, 제스처, 표정 연기... 그것도 모두 김민이 친구들 성향에 맞게 디자인한 거래요.”
“하....”
그런데 이어진 말에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원래 KM 페스티벌에 응모할 예정이었다고 하던데....”
“대표님 미쳤어요? 저걸 왜 경쟁사에 넘겨요? 당장 데려와요!”
“아, 아니 내 말 좀 끝까지....”
“빨리요!”
“어, 으응....”
기세에 압도된 장진영 대표는 저도 모르게 휴대 전화를 꺼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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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시점부터 초조함이 느껴졌다.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등교해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 그 순간에도.
‘과연 내 의도가 먹힐까?’
아버지와 장진영 대표를 만난 날.
나는 큰 도박수를 던졌다.
우리가 함께 준비 중인 블루웨이브 준비 영상을 공개해 버린 것.
그것을 노리는 것은 두 가지.
내 프로듀서로서 역량에 대한 어필.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바로.
'우리 아이들을 데려가달라!'
바로 이것이다.
아이들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JJ에 가려고 했던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협업의 자유로움!
KM의 경우, 전속 아티스트가 타사에 곡을 주거나 프로듀싱을 해주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이 부분은 LK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JJ 엔터테인먼트는 다르다.
타사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해외 뮤지션에게도 곡을 주고 그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한다.
전속 아티스트의 외부 협업을 막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장진영 대표 본인이 나서서 아티스트 간의 협업을 주선하는 경우도 있다.
‘결정적으로, 내 성향이 시스템 위주의 KM 보다는 아티스트 위주의 JJ가 더 맞아.’
그런 걸 고려하면 3대 기획사 중 규모가 제일 떨어지는 부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회사는 내가 키워서 최고로 만들어주면 되니까!
장진영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2교시 수업 시간에.
재빨리 통화를 끊어 버린 뒤 문자를 보냈다.
[ 수업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
심장이 터질 듯 뛴다.
조만간 연락이 올 것이라 짐작하긴 했다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교실 밖으로 튀어나가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교실은 통화하기 적합한 환경이 아니니까.
통화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장진영 대표가 전화를 받았다.
[ 쉬는 시간이야? 지금 통화 가능하지? ]
전날의 대화로 나에게 편하게 말을 놓는 장진영 대표.
"지치셨어요?"
[ 말도 마. 아침부터 엄청 시달렸어. ]
"그거 혹시 저 때문인가요?"
[ 그러니까 너한테 전화했겠지. 지금 통화 가능한 거지? ]
"물론이죠. 말씀하세요!"
기분 좋은 예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가 바라던 일이 실제로 벌어질 것 같은 예감!
그리고 예감이 맞았다.[ 오늘 아침에 네 문제로 실무 책임자 모두 모아서 회의를 열었거든. 그리고 금방 결론이 나왔어. 내용이 뭐냐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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