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미래를 그리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나와 택시에 탑승한 순간 입을 떼셨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보고도 믿을 수가 없네. 내 아들이 저렇게 큰 회사의 전속 프로듀서가 되다니....”
“저도 실감이 안 나요. 설마 이 정도로 저를 대우 해줄 줄은 몰랐거든요.”
아버지는 품에 안고 있던 계약서를 꺼내 쭉 훑어보신다. 시선이 정지된 곳은... 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계약금이 얼마고 연봉이 또 얼마여? 거기에 곡 판매대금까지 합하면...?”
“계약금과 곡비는 내일 오전 중으로 들어올 거고 연봉은 월급으로 환산해서 매달 25일에 입금 될 거예요. 판매한 곡에 대한 저작권료는 앨범 발매 이후 매달 말일에 정산될 예정이고요.”
아버지의 입이 떡 벌어진다.
난 슥 웃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계약 내용이 굉장히 좋았어.’
내 계약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속 기간 3년에 5000만원.
이는 회사에 직원으로 입사한 것이 아니라 뮤지션으로서 전속 계약을 했기에 받은 대우였다.
추가로.
<블루 웨이브> <시간 있어요?>
위 두 곡은 각각 천만 원씩, 총 2천만 원에 팔았다.
별빛의 숲은 팔지 않았다.
왜냐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 이름으로 발표할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장진영 대표가 가장 탐냈고, 계속 설득해서 마음이 잠깐 흔들리긴 했지만 끝내 거절했다.
그래도 포기는 하지 않은 눈치더라.
설득할 시간을 달라나?
무슨 짓을 하려는 지 모르겠지만 마음대로 해보라는 마음에 그 부분은 승낙했다.
‘원래 내 입봉액이 300만원이었지? 진짜 출세했다. 김민!’
곡당 300만원이 적게 보이는가?
천만에!
알고 보면 신인 작곡가 치고 준수한 액수다.
사실 곡을 팔아도 곡비를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부분 프로젝트가 중간에 엎어졌을 때 그런 경우를 겪게 된다.
이 경우 철저히 을의 입장인 외주 작곡가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못한다
발매되어야 정산을 받을 수 있고, 이게 업계 관행이다.
‘하지만 난 다르지.’
직접 써서 넘긴 곡이 컨펌 되고, 판매 계약 작성이 완료된 즉시 곡비를 정산 받는다. 프로듀싱을 맡게 되면 계약이 따로 적용되어 추가금을 받는다.
‘작사, 작곡, 편곡, 믹싱, 마스터링 등의 회사 업무를 꾸준히 해주는 대가로 받는 연봉까지 합하면....’
전생에서 상상할 수 없는 돈을 학생 신분에 벌게 되었다.
‘이게 꿈이라면 제발 깨지 말아라. 제발.’
“오빠. 이제라도 솔직히 말해 봐! JJ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가 됐다는 거 거짓말이지?! 오빠가 무슨.....”
짝!
“이놈의 계집애가 오빠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무슨, 무슨...!?”
딸내미의 작은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갈긴 어머니는 방긋 미소 지으며 친히 닭다리를 뜯어 먹여주신다.
“우리 아들 이거 먹어 봐!”
서연이의 오리 주둥이만 빼면, 집안에 웃음이 가득하다. 오늘만큼은 나도 사양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잔뜩 깔아 놓은 치킨과 피자를 마음껏 음미했다.
평소 그다지 즐겨 먹는 음식은 아니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어머니가 친히 주문한 것들이다.
“그러면 오빠가 정말 JJ 엔터테인먼트 전속 프로듀서가 됐다는 거지? 앞으로 엔 플라워, 매트로 보이즈 같은 인기 아이돌 그룹들에게 곡도 주고 그러는 거야?”
양궁 유망주라고 해도 서연이 또한 트렌드에 민감한 초등학생 소녀!
평생 그래본 적 없었는데.
내게는 너무 과분하고 잘난 여동생의 반짝 거리는 시선 앞에 괜히 으스대고 싶어졌다.
“물론이지. 조만간 오빠가 만든 곡으로 장진영 대표가 가수 활동 시작할 거야.”
“아니, 그 아저씨는 중요하지 않고 엔 플라워! 매트로 보이즈! 이 두 그룹이 중요하단 말이야!”
“장진영 대표에게 곡주는 것 가지고는 자랑거리가 안 돼?”
“응! 솔직히 장진영 프로듀서... 분명 대단한 사람이긴 하지만 우리 또래들 사이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으니까.”
“그래? 하하....”
안타깝지만 부정하기는 힘든 사실이다.
장진영 대표는 예나 지금이나 10대, 특히 여자애들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었다.
꽃미남도 아니고, 파격적인 예술가 이미지가 강한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엔 플라워, 매트로 보이즈에게 곡을 줘야겠네.”
“아니 뭐,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건 아닌데....”
“그 두 팀에게 곡을 줘야 자랑스러운 오빠가 될 수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지금도 충분히 자랑스럽고 멋지지만.....”
당황해서 어버버하던 서연이는 결국 수습에 실패하고 신경질을 부린다.
“이씽, 나 오빠랑 말 안 해!”
끝내 울상을 짓는 서연이의 귀여운 모습에 나와 부모님은 웃음을 터트렸다.
가족 파티가 끝났다.
치우고 잘 준비를 하느라 부산할 때, 조용히 아버지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그 돈 있잖냐.”
“네.”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번 돈이니까.”
“.......”
“집안 살림에 보탤 생각 같은 걸 하고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거절하마. 그럴 필요 없다.”
아빠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강조하셨다.
“모으든 쓰든, 네 뜻대로. 우리는 절대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알았어?”
찡한 기분이 느껴진다.
그래. 우리 부모님은 이런 분들이다.
자녀들이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고 언제나 묵묵히 뒤에서 큰 힘이 되어주셨던 분들.
단순히 내 육신의 부모라서가 아니라,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니 끝없이 존중하며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보답을 하고 싶어.’
어떻게든 내 힘으로 호강시켜드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뗐다.
“부탁이 있어요.”
“뭔데?”
“저 주식 투자하고 싶어요.”
깊은 밤.
잠들기 전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했다.
“주식 계좌가 계설 되고, 계약금과 곡비가 들어오면 해외 주식에 분산 투자하자.”
회귀했고, 투자 경험이 있으며 수천만 원 규모의 종자돈이 생겼다. 미래 정보를 알고 있으니 이것을 이용해 돈을 벌어 볼 생각이다.
‘클라우드로 사업을 전환해서 다시 한 번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MS. 주가가 4000조 가까이 꾸준히 상승하는 애플. 그리고 전기차의 혁신을 주도하며 자동차 회사 최초 시총 1조 달러 고지를 밟게 되는 테슬라.’
현 시점에서.
장기적인 투자처로 굉장히 좋은 곳들이다.
‘암호화폐 열풍이 곧 시작될 테니, 미리 발을 담가두는 것도 좋겠지.’
장기적인 투자처는 못 되고, 최고점 때 엑시트하면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코인은 딱 거기까지야.’
이후로는 MS, 애플, 테슬라 같은 장기 투자처에 돈을 붓다가, 목돈이 모이고 정권이 바뀌는 시점에 부동산 투자를 진행하면 될 것 같다.
‘대략적인 투자 계획은 이 정도로 짜두면 되겠지.’
사실, 내 인생 목표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가수가 되어 아시아 그 어떤 뮤지션도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에 도달하고 싶다.
단 적인 예를 들자면 빌보드 1위 달성, 미국 3대 뮤직 어워드 석권 같은 것이 있겠지.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국내 최정상에 도달하는 일조차도 버겁고 어렵게 느껴진다.
회귀를 했다고?
그래서?
미래에 성공이 보장된 곡들을 내가 만든 것처럼 훔치기라도 하라는 건가?
창작자로서 양심과 자존심이 있지, 그럴 수는 없다.
다만, 트렌드의 흐름을 알고 있으니 반영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프로듀서 일이라면 주세아 같은, 미래에 성공이 보장된 인재를 미리 확보해 두는 것도 있겠고.
이 정도만 해도 난 경쟁에서 엄청난 우위를 점하게 되는 셈이다.
‘그래도 불안해.’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일종의 줄타기와 같다.
지금은 잘 걷고 있지만, 언제 어떤 식으로 균형이 무너져서 휘청이거나 꼬꾸라질지 모른다.
‘투자 수익은 위기 상황에서 날 다시 일으켜 줄 원동력이 될 거야.’
돈은 그래서 필요하다.
‘반드시 성공한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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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보에 대한 반 친구들의 폭발적인 관심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어제 계약 문제로 JJ 엔터테인먼트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
“전속 계약 하기로 한 거야?”
인싸 되는 게 참 힘들구나.
이래저래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아니. 조율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그러면 언제 결정되는 거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에이....”
흥미를 잃을 아이들이 돌아가자 반지희가 다가와 반짝이는 눈으로 묻는다.
“거짓말이지?”
“음?”
“이미 계약 다 끝난 거지? 맞지?”
“........”
여기서 맞다고 하면 또 다시 보란 듯 소리 지르겠지?
“피곤하다. 나중에 이야기 하자.”
“아아~ 그러지 말고!”
모른 척 외면하며 책상에 엎드려보지만 여기서 포기할 반지희가 아니었다.
“민아~ 어차피 나에게는 말해줘야 하잖아!”
으아~ 귀찮아!
결국 등쌀을 견디다 못한 나는 몸을 일으켜 말했다.
“끝나고 이야기 해 줄게.”
“응?”
“연습실에서 모두 모이면 말해줄 테니 좀 참아. 알았지?”
반지희는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그런데 표정이....
“응. 잘 알아 들었어!”
굉장히 싱글벙글하다.
...하여튼 계집애가 눈치 하나는 빨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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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청담동 연습실.
모두 모아 놓고 중대 발표를 시작했다.
“본론만 간단히 말할게. 난 어제부로 JJ엔터테인먼트와 전속 프로듀서로 계약을 채결했어.”
“우와아아!”
“그러면 이제부터 민이가 진짜 프로듀서가 된 거야?!”
“굉장하다. 고등학생이...대형 기획사 연습생도 아니고 프로듀서....”
다들 환호하고 난리 났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주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하니까.
“장진영 대표님께 너희들 연습 영상을 보여줬어.”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
장진영 대표가 회사 전 직원이 참관하는 오디션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로 끝맺었을 때에는.
“.......”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졌다.
“난 런칭 퀄리티를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어. 이게 무슨 뜻이냐면 춤, 노래는 물론이고 비주얼까지 준비가 완벽해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 입이 가벼운 반지희조차도 입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들로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엄청난 제안이기에.
“오디션에서 통과하면 너희는 JJ엔터테인먼트 정식 연습생이 되는 거야. 그리고 회사 지원 속에 다양한 트레이닝을 받게 되겠지.”“블루 웨이브는 어떻게 되는 거야?”
주세아의 질문.
“그 부분은 아직 논의된 것이 없어. 그리고 그것보다는 오디션에 합격해서 연습생 될 생각부터 해야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에게 선택을 요구했다.
“열심히 해서 같은 회사에서 데뷔 해보자. 알았지?”
“응!”
이후 명중이를 따로 데려가서 물었다.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뭐가?”
“음악 말이야. 앞으로도 계속 취미로만 할 거야?”“........”
“난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너 요즘 하는 거 보면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것 같아서.”
이쯤에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음악에 대한 명중이의 진심을.
그래야 그에 맞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명중이가 힘겹게 입술을 뗐다.
“솔직히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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