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논의하다
[ 오늘 회사에 좀 와라. 민이 네가 회사에 판 곡에 대해 논의 좀 하자. 별빛의 숲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고. ]
이른 아침 장진영 대표가 보내온 문자였다.
시간은 아침 일곱 시.
아직 출근 시간 전일 텐데 참 부지런하기도 하셔라.
냉큼 답신을 보냈다.
[ 네. 학교 끝나고 바로 출발할게요. ]
[ 오, 뭐야. 벌써 일어났어? ]
[ 학교에서 운동하고 있어요. ]
[ 운동? 이 시간에? 무슨 운동회 준비 같은 거 하는 건가? ]
[ 그게 아니라 제 아침 루틴이에요. 이 시간에 운동하는 거. ]
[ 오, 루틴... 그거 좋지! 사람이 부지런해야지. ]
[ 그래야죠! 아무튼 오후에 찾아뵐게요! ]
[ 응. 그래. 운동 열심히 하고 학교 공부 잘 하고! ]
다시 휴대폰을 넣고 운동을 시작한다.
오늘은 아침 공기가 참 맑았다.
“민아. 음악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너 찾는다. 빨리 가봐.”
“나? 나를 왜?”
“5교시가 음악이잖아. 수업과 관련된 일일 것 같은데....”
“........?”
“나도 들은 게 없어서 몰라. 그냥 뇌피셜이야.”
“아하.”
명중이에게 씩 웃어 보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그래도 잠은 자.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왔다.”
등 뒤에서 명중이의 대답이 들려온다.
“그러는 너도 만만치 않아.”
명중이의 예상은 반만 맞았다.
“선생님이 민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불렀어. 사실 오늘 아침에 너와 관련해서 엄청난 이야기를 공유 받았거든. 네가 JJ 엔터테인먼트 전속 프로듀서가 됐다는 내용인데... 그게 사실이니?”
아, 그 정보가 오늘 공유 됐구나.
“네. 맞아요.”
“정말 대단하네! 아니, 내 학생 중에... 심지어 졸업생도 아니고 현재 가르치는 학생 중에서 음악으로 대성한 아이가 나오다니... 어떻게 그렇게 된 거야?”
“에...”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입을 열려는 데.
“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말 안 해도 돼. 내가 물어보지 뭐. 너 음악 만들고, 음반 녹음 디렉팅도 하고 그러는 거야?”
“그렇죠.”
“미디 이용해서?”
“맞아요. 요즘 음악 작업 대부분은 미디로 하니 뭐... 그 외에 연습생이나 가수 트레이닝 같은 것도 담당하게 될 수 있어요. 단순한 비트 메이커 역할을 하는 프로듀서가 아니, 말 그대로 가수 기획을 총괄하는 프로듀서 개념으로 계약한 거라서요.”
“너 곡도 쓰고 그랬어?”
“네. 몇 곡 팔았어요.”
“와... 대단하구나. 굉장해. 난 음악 가르치는 교사면서도 그런 일은 상상도 못하겠다 야.”
음악 선생님은 혀를 내두르시더니, 이내 반짝이는 눈으로 말한다.
“너 그러면 특강 한 번 해볼래?”
이번에는 내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특강이요? 제가요?”
“응. 아침 회의 때 너에 대한 정보 공유 받고 떠오른 거야. 꿈을 이루기까지의 과정, 현직 프로듀서가 된 시점에 하게 되는 일들 같은, 생생한 현정 경험을 공유 받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서 그래. 어때?”
당혹감을 수습한 뒤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전교생 특강이라.
‘어차피 내가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건 알려지게 될 테니 아무 문제없지.’
사실 알려지는 편이 어떤 면에서는 더 좋다.
내가 쓴 곡이 나올 때 최소한 우리 학교 학생들에 한해서는 큰 지지를 얻을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이를 테면 우리 학교를 내 강력한지지 기반으로 만들어 보자는 거지.’
결정 됐다.
“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특강 한 번 해볼게요.”
“어머, 정말?!”
선생님의 표정이 놀라움과 기쁨으로 물든다.
설마 이렇게 흔쾌히 제안에 응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정말 잘 됐다! 고마워!”
“별 말씀을요. 그런데 언제 하는 거죠?”
“아마 다음 주 금요일 오후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참고로, 매주 우리 학교는 매주 금요일 오후마다 동아리 활동을 한다. 이 시간을 빼서 전교생 특강 시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끔 학교 졸업생 출신 명사가 방문해서 특강을 해주곤 했었지?’
그걸 현직 학생인 내가 하게 된 셈이다.
‘때마침 오디션 이후이기도 하니....’
정리를 마친 난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일정 정해지는 대로 연락 주시면 저도 강의 준비할 게요.”
@
학교 수업을 마친 뒤 택시를 타고 JJ 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 아무래도 오늘은 연습을 직접 못 봐줄 것 같아. 춤, 노래, 라이브 퍼포먼스. 영상 세 개 찍어서 나한테 보낸 뒤 검사 맡고 집에 가. ]
문 라이트 애들에게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명중이에게는 별도로 지시했다.
[ 너 요즘 내가 내 준 카피 숙제 한다고 밤늦게까지 잠 안 자지?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좀 쉬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
그리고 덧붙였다.
[ 잘 쉬어주는 것도 중요해! 스승의 말을 귀담아 듣도록! ]
금방 답변이 날아왔다.
[ 스승은 무슨... 네 관리나 신경 써. ]
피식 웃으며 고개를 치켜 드니 멀리, JJ 엔터테인먼트 사옥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앞에 무수히 많은 여학생들이 있었다.
‘연예인이라도 오나?’
택시에서 내린 뒤, 사옥 출입구로 향했다.
인파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빨리 뛴다.
전생, 쫓겨나다시피 팀에서 탈퇴한 직후부터 세상이 나를 비난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종종 있었다.
대인기피증.
시간이 지나며 조금 나아졌고 지금은 괜찮아 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네.’
일반적인 행색의 사람들이 아니라 아이돌 팬클럽이 확실한 무리를 보게 되니 트라우마가 발생한 모양이다.
숨죽여 조심스레 무리를 지나 사옥 입구로 들어간다.
“여기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보안요원이 아닌 정장을 입은 사내가 나를 가로 막는다.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데, 교복 탓에 나를 바깥 무리의 일원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아직 긴장감이 해소되지 않았기에 대답 대신 사원증을 제시했다.
그것을 유심히 살피던 보안 요원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프로듀서?”
목걸이 타입 키 카드 사원증에는 얼굴 사진과 이름, 그리고 간단한 직책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으로
[ Producer 김민 ]
“어... 잠깐만요. 확인 좀....”
본사 직원으로 보이는데, 아직 나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은 건가?
잠시 대기하는 동안, 사옥 앞에 커다란 검은색 승합차 두 대가 멈춰 섰다.
흔히 연예인 벤이라 불리는 녀석이었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꺄아아악!”
“오빠!”
정장을 갖춰 입은 미남자들의 등장과 함께, 거리 일대에 비명이 울려 퍼진다.
심장이 더 빨리 뛰고 호흡도 조금씩 가빠져온다.
아무래도 트라우마가 조금 심각한 모양이다.
‘매트로 보이즈!’
JJ 엔터테인먼트를 밝게 비추는 두 개의 별 중 하나.
“어어? 잠시만...!”
내 신붕을 확인한다던 정장의 남자는 황급히 뛰쳐나간다. 그리고 온 몸으로 팬들을 막으며 매트로 보이즈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 아니, 저기요. 아저씨.
나도 중요한 일이 있어서 들어가야 하는데 키 카드를 가지고 가버리시면....
“후.”
어쩔 수 없군.
잠시 기다리는 수밖에.
팬들의 환호 속에 사옥에 입성한 매트로 보이즈.
가는 동안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손이라도 가볍게 흔들어 줄 법 한데 말이지.
그대로 로비를 지나가더니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서서 한다는 소리가.
“뭐야. 기다려야 하는 거야?”
“엘리베이터도 안 잡아 놨어?”
“아, 매니저 진짜....”
자기만의 대화였겠지만, 다 들린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저것들....’
“미안 미안!”
온 몸을 던져 안전거리를 확보하던 정장의 사내가, 이번에는 황급히 엘리베이터로 달려가 버튼을 누른다.
웃긴 건, 그때까지 저 녀석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난 저런 모습을 굉장히 잘 알고 있다.
스타병!
나와 같은 아이돌 그룹이었던 그 놈들을 포함해, 꽤나 성공한 많은 스타급 연예인들에게서 보이던 행동이었다.
[ 띵! ]
문이 열리자 매트로 보이즈 멤버들은 정장의 사내를 강하게 쓱 째려 보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그들이 사라지고.
“후우.”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 나와 시선이 마주 치더니 아차 싶은 표정을 짓고 다가왔다.
“미안해요. 정신이 없어서....”
“매트로 보이즈 담당 매니저님이세요?”
“네. 뭐... 잠시만요. 금방 확인해 볼게요.”
매트로 보이즈의 현장 매니저였군.
그렇다면 아직 나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저기, 혹시 김민이라는 프로듀서가...어린 학생인데...."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하는 매니저.
곧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통화를 마치고 얼떨떨한 얼굴로 카드키를 건네주며 말했다.
“저, 정말 프로듀서 님이셨군요. 어려 보이시는데 어떻게....”
난 카드키를 받아들고 정중히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했다.
“얼마 전 이 회사 전속 프로듀서가 된 김민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자주 뵙게 될 수도 있을 듯 하니 잘 부탁드려요.”
곧장 장진영 대표 집무실로 이동했다.
“어, 왔어?”
혹시나 했는데 메트로 보이즈는 없었다.
장진영 대표는 환한 미소로 날 반겨줬다.
“어때, 오디션 준비는 잘 되고 있어?”
“열심히 하고 있어요.”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그건 다음 주 오디션 이후에 듣기로 하자. 소파에 앉아서 기다려. 마실 거줄게. 녹차? 아니면 주스?”
“녹차 부탁드릴게요.”
잠시 후, 장진영 대표가 손수 우려준 녹차를 마시며 그가 하는 말들을 귀담아 들었다.
“너도 바쁠 테니 바로 본론부터 들어갈게. 네가 우리에게 총 세 곡을 팔았지? 그 중 두 곡의 사용처가 정해졌어.”
“아, 그래요? 어떤 곡이예요?”
“일단 시간 있어요. 이건 예정대로 내 다음 활동 곡으로 정해졌고 조만간 일정을 세부적으로 짜서 활동 준비에 들어갈 거야. 그래서 말인데.”
장진영 대표가 물었다.
“네가 총괄 프로듀서를 할 수 있겠어?”
“어....”
좋은 기회였지만 난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음반 녹음과 안무 연습, 뮤직 비디오 기획 및 촬영. 컨셉 아트, 무대 구성 등등.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리딩하라는 뜻이었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그것 때문에 들어온 것이긴 하지만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경험이 없어서... 솔직히 자신은 없네요.”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고?”
“물론이죠!”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너하고 나 공동 프로듀싱으로. 일 도와주면서 나한테 일 배워. 프로듀싱 업무 내가 빡세게 가르쳐 줄 테니까.”
“.......!”
로비 층에서와 완전 다른 의미로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프로듀싱 업무를 가르쳐 주겠다.
그 말인즉.
‘날 제자로 삼겠다는 거야!’
자타 공인, 아시아 넘버원 프로듀서의 제안이다.
더불어 내가 존경하는 뮤지션이기도 하고.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내 들뜬 모습에 장진영 대표는 빙긋 웃으며 말한다.
“나 진짜 엄한 사람이야.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하나하나 엄청 세세하게 알려줄 생각이니까. 그건 그렇고, 또 하나는 별빛의 숲인데....”
잠시 말을 아끼며 심각한 표정을 짓던 장진영 대표가 넌지시 물었다.
“기억하지? 내가 설득할 시간 좀 달라고 했던 거.”
“네.”
“나 사실 그 곡을 매트로 보이즈 애들에게 주면 어떨까 싶었거든. 평상시 추구하던 음악과는 결이 다르지만, 잘 꾸미면 좋은 시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애들 보컬 능력이 썩 나쁜 편도 아니고. 일단 팬덤도 두터운 편이라 곡도 잘 될 거야.”
응? 그걸 매트로 보이즈에게 주겠다고?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본성을 알고난 지금은....
“넌 어떻게 생각하니?”
장진영 대표의 눈빛에 난 침음성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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