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20화 (20/205)

20화. 오디션 (3)

장진영 대표가 직접 스탠드 마이크 설치와 음향 세팅을 돕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움에 빠졌다.

“뭐야, 대체 누군데 저 아이에게 저렇게 자상하게 대해주는 거야?”

“뭐라도 되나?”

수군대는 음성들.

김민의 정체를 알고 있는 팀장급 인원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한다.

챠라랑.

맑은 기타 소리가 연습실 스피커를 통해 전달된다.

“하나 둘... 리버브 조금만 줄여주세요. 네. 지금이 딱 좋네요. 감사합니다.”

노래 장전 완료!

깊게 심호흡을 해본다.

‘지금은 공황 장애 따위에 억눌릴 때가 아니야. 노래. 노래를 하자. 나만의 노래.’

눈을 감고.

혼란과 흥분 탓에 들썩이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힌다.

'됐어.'

그리고 나서야 다시 눈을 뜨고, 화사한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넸다.

“팀장님들이야 절 이미 잘 아시겠지만 다른 분들은 절 처음 뵙죠? 일단 노래부터 하고 인사는 나중에 드리도록 할게요.”

그리고 최명중을 보며 검지를 들어 보인다.

첫 번째 트랙을 재생해 달라는 신호였다.

영롱하고 예쁜 피아노 루프를 시작으로.

킥.

스냅과 크랩.

하이햇과 기타가 들어오며 화음을 쌓기 시작한다.

[ 짝! 짝! ]

김민은 손을 높이 들어 올려 박수를 치며 호응을 유도한다.

시원하고, 경쾌하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전주와 아름다운 소년의 미소는 사람들을 금방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요

휴대폰 끄고

가방만 매고.

비행기 타고

저 하늘 너머

어디론가 떠나요

머릿속까지 확 트이게 해주는 청량한 미성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어쩌면 이렇게 시원한 노래가 있을 수 있을까?

마치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기분이다.

반주도.

노래도.

그리고 아름다운 소년의 달콤하고 설레는 미소도.

모든 요소들이 너무나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환상의 휴양지를 이곳에 펼쳐낸다.

트로피컬 하우스 분위기는 이팩트를 먹은 전자 기타 사운드의 등장과 함께 팝락으로 돌변한다.

그저 달콤한 미소로 문을 두드릴 뿐이었던 소년은. 두 팔을 좌우로 펼치고 힘껏 성량을 뿜어낸다.

드디어 찾았어요!

꿈꾸던 바다가 눈앞에 있어요!

마침내 알았어요!

답답한 이곳을 벗어나면

마음이 가는 곳에

내가 있었어요!

웃음이 나와요

지금 이 순간.

내 인생 최고의 날이예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보컬과 사운드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느 새 청중이 된 이들은 열심히 박수를 치며 몸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첫 번째 무대가 그렇게 끝나고.

[ 저벅. 저벅. ]

모래 밟히는 소리.

아련하게 휘몰아치는 밤바람에 맞춰 춤을 추는 파도 소리.

머릿속에 풍경이 상세히 그려진다.

깊은 밤.

어두운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던 소년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수풀이 부딪히는 소리.

귀뚜라미 울음 소리.

그 순간 사람들은 깨달았다.

‘숲이다!’

‘사운드 디자인 진짜 예쁘고 자연스럽게 잘 했네.’

소리만으로도 풍경이 그려지는 색다른 경험!

반면, 장진영 대표와 이정연 팀장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이거... 그거 맞지?’

‘맞는 것 같아요!’

무언의 시선 속에 오가는 대화.

두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며 김민을 바라본다.

가녀리고 작은 체구로 엄청난 성량을 뿜어내며 장내를 압도하던 소년이.

“.......”

지금은 눈을 감은 채 바람 소리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이어지는 것은 별빛의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피아노 연주.

“어머...!”

“어후...!”

특히 여성들은 마음 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감성적인 화음에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이어 지극히 맑고 깨끗한....

그런데 어딘가 애처롭게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별빛을 따라 도착한 곳에.

희망이 그윽한 숲이 있어요.

바람이 날 인도했어요.

별을 품은 신비의 숲이.

날 따뜻하게 감싸줘요.

“어어....”

“뭐야, 예쁜데 왜 슬퍼....”

가슴이 조여 오며.

눈시울이 점점 뜨거워진다.

마음.

가장 약한 부분을 자극하는 아픈 노래 소리에 저절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난 버림 받았어요.

지치고 힘들었죠.

나를 위한 세상은 없었어요

꿈은 환상일 뿐이었죠.

세상은 회색빛이었고.

희망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난 어둠속에 홀로 버려졌어요.

깊은 아픔이 묻어난다.

무엇이 저 어린 소년을 그토록 지치고 힘들게 만든 걸까?

정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문 라이트 멤버들.

그리고 최명중은 어느 새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별빛의 숲이 내게 속삭여요.

이곳이 저를 위한 곳이래요.

참 다행이에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요.

휘몰아치는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 속에서.

소년은 소리치고 있었다.

상처와 희망을 노래한다.

폭풍이 가라앉고.

소년은 다시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바람을 따라 도착한 곳에.

별을 품은 숲이 있어요.

그곳은 별빛의 숲이에요.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와아아!"

"감동적이었어!"

"노래 진짜 좋다!"

"분위기 끝내 주는데?!"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모두가 격정적으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연습생과 직원.

엔 플라워, 매트로 보이즈. 장진영 대표.

그리고 문 라이트 멤버들과 최명중까지.

모두를 웃고 울게 만든 소년.

김민은 눈을 뜨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

공연이 끝나고서야 심장이 다시 빨리 뛰기 시작했다.

몰입이 깨지자마자 다시 공황증, 대인기피증이 몰려오려는 것이다.

그래서 황급히 쏟아지는 관심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야. 어딜 가 인마! 인사는 해야지! 누군지 알려주겠다며?”

장진영 대표가 버럭 소리쳤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그러기로 했지.

머뭇거리던 나는 평가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저는 평가 안 해요?”

“너한테 그게 왜 필요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자기소개나 하라니까?”

왜 필요 하냐니.

... 솔직히 대놓고 칭찬 좀 받아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눈치도 없어요 하여튼.

“흠흠!”

헛기침을 터트린 뒤, 민망함을 참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얼마 전 JJ 엔터테인먼트 전속 프로듀서이자 가수로 계약한 김민이라고 합니다.”

“프, 프로듀서?!”

“아니, 저렇게 어린데?”

“설마... 지금 부른 노래들은 모두 직접 기획하고 만든 것들이야?!”

경악하는 사람들.

그런데 내가 하는 행동이 답답했던 걸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장진영 대표가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마이크를 뽑고 멘트를 시작한다.

“김민이는 나하고 이정연 팀장이 같이 발굴한 천재 소년이야. 참고로 내 이번 활동곡도 이 친구가 작곡하고 프로듀싱까지 다 했어."

이번에는 방금 전과 비교할 수 조차 없을 정도의 강력한 여파가 휘몰아쳤다.

“말도 안 돼! 고등학생이라고?!”

“으아아! 나 그러면 애한테 사랑을 느꼈던 거야?!”

엔 플라워 비주얼 센터이자 리더인 ‘루아’가 머리를 감싸 쥐며 절규한다.

와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것도 잠시 뿐.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마구 쏟아낸다.

“방금 그 노래들, 직접 작업했어요?”

“아직 발표 안 된 거 맞죠? 그렇죠?”

“프로듀서라고 하셨는데... 방금 부른 노래 가수에게 줄 생각은 없나요? 이를 테면 우리 엔 플라워라던가...!”

특히 엔 플라워 아홉 명이 적극적이었다.

몰려와서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흉흉한 기세를 드러낸다.

“야. 민이 무서워하잖아! 좀 떨어져!”

“아니, 우리가 뭐가 무섭다고...!”

“해치지 않아요. 잡아먹지 않을 테니 안심해요!”

한바탕 소란 끝에 간신히 분위기가 정리되자 장진영 대표는 한숨을 내쉰다.

“저 녀석들 언제 철 들려고....”

그러더니 이번에는 문 라이트 멤버들에게 손짓한다.

멤버들이 앞으로 나오자 소개를 시작한다.

“평가 다 했지? 그러면 이제 이 친구들도 소개할게. 팀 이름은 문 라이트. 사실 오늘 이 자리는 이 친구들 오디션 보는 자리였어. 왜 굳이 이런 자리를 마련했냐면.....”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을 이어간다.

“문 라이트 친구들을 팀으로 조직해서 훈련시키고, 곡과 안무, 기획까지 다 짜주며 프로듀싱한 사람이 여기 있는 김민이거든.”

“......!”

“쉽게 말하면 김민이 프로듀싱한 그룹이라는 거야. 그래서 너희들에게 평가를 부탁한 거고. 이 친구들을 과연 우리 회사 연습생으로 받아들여도 좋을지.”

“어... 그러면 다른 소속사의 신인 그룹이나 데뷔조도 아니라는 거예요? 한 마디로 그냥 가수 지망생?”

아까 머리를 감싸 쥐며 절규했던 엔 플라워 리더 주아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원래 KM 청소년 페스티벌 출전 준비하고 있던 친구들이었어. 거기 출전하기 전에 잠깐 우리 회사 오디션 보도록 한 거야.”

“어? 잠깐만. 그러면 여기서 떨어지면 KM으로 갈수도 있다는 소리예요?”

“그렇지. 아마 거기서 데뷔하겠지.”

“저기 저 친구 분도?”

날 가리킨다.

장진영 대표는 인상을 썼다.

“아니, 민이는 이미 우리 회사 전속이고 내가 제자로 삼기까지 한 애야. 얘는 어디 안 가지. 아니 못 보내지!”

“아하.”

비로소 상황을 납득한 주아는 씩씩하게 말했다.

“모두 합격 처리해서 팀 인원 그대로 데뷔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춤, 보컬, 무대 연기와 제스처... 이런 것들 기본기가 굉장히 튼튼하더라고요. 꾸미기 좋도록 잘 다듬어져 있어요.”

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건 둘째치고.

내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봤기 때문이다.

꾸미기 좋도록 다듬어져 있다는 말.

역시 톱 인기 그룹 리더는 달라도 뭔가 다르구나!

장진영 대표도 흡족한 얼굴이었다.

“주아가 제대로 봤네. 일단 우리 회사가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방향성과 결이 다른 그룹이야. 캐릭터, 세계관이 굉장히 확고하고 춤과 음악도 대중성이 높아 보이잖아. 맞지?”

그 말에 모두들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 비주얼이 JJ가 아닌 KM 스타일에 가깝다는 것도 놀랍고....”

“잠깐, 우리가 어때서요?”

“듣고 있던 JJ 스타일 기분 나빠지려고 하네요!”

거센 항의가 날아온다.

“어, 아니 그게 아니라....”

“말 제대로 하셔야 할 걸요? 농담이 아니라 표현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우리 진짜 화낼 거예요!”

“우리는 극한의 비주얼 보다는 친근한 매력 쪽에 더 비중을 두니까....”

“아하, 우리는 못 생겼다?”

“와! 휴가까지 반납하고 출근했더니 못 생겼다는 소리나 듣고...."

"씨잉! 나 숙소로 돌아갈 거야!”

그러고 진짜로 나가려고 하니 어쩌겠나?

“미안, 미안! 내가 말실수 했어. 얘들아! 내가 사과할 테니 돌아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지.

... 이제 보니 이 회사가 내가 듣던 것 이상으로 수평적이네.

KM은 사내 정치도 심했고 회장 늙은이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는데.

일단 엔 플라워 이미지는 합격!

굉장히 좋다.

뭐가 문젠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불만 시위를 하듯 인상 쓰고 앉아 있는 매트로 보이즈와 비교하면 천사들이다.

특히 리더 주아.

저 사람 덕분에 잘만 하면 내가 꿈꾸던 최상의 시나리오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은 주아가 날 보며 말했다.

“질문! 오늘 이 자리에서 들었던 모든 노래를 저기 저 어린 프로듀서님이 직접 만든 거 맞죠?”

“응. 맞아.”

“그러면 우리도 곡하고 안무 같은 거 받을 수 있어요?”

그 말에 엔 플라워 멤버 전원의 눈빛에 스위치가 켜졌다.

움찔하는 나와 달리 장진영 대표는 슥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엔 플라워뿐만 아니라 우리 회사 모든 아티스트가 같이 일할 기회가 있을 거야. 아무튼. 평가서 다 작성한 사람 거수!”

모두가 손을 치켜 들었다.

매트로 보이즈까지도.

“이정연 팀장에게 제출하고 나가도 돼.”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장진영 대표는 나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다른 장소로 이동하자.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듣고 싶은 것도 있고.”

그리고 나를 본다.

“특히 민이 너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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