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21화 (21/205)

21화. 오디션 결과 (1)

우리는 장진영 대표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많이 배고프죠? 일단 이거라도 먹으면서 조금 참아요. 기다리면 제가 맛있는 거 사줄게요.”

소파에 앉은 우리에게 장진영 대표가 음료수와 가벼운 다과들을 직접 가져다줬다.

“우왕 이거 좋아하는 건데.”

“난 이거.”

역시 우리 애들!

겸양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다!

와구와구, 그 많은 과자를 착실하게 도살하는 광경을 우리는 굉장히 뿌듯하게 지켜본다.

장진영 대표가 넌지시 질문했다.

“서로 어떻게 알게 돼서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건지 궁금한데, 들려줄 수 있어요?”

“저요! 제가 말씀 드릴게요!”

이런 일은 역시 반지희가 나서야지!

손으로 툭툭, 입가의 과자부스러기를 털어 낸 반지희는 재잘재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음악 수행 평가 시간인데 인어공주 OST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몰입하는 사람들.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다른 애들도 마치 처음 듣는 것 마냥 반응이 좋다.

“하하, 그랬어요? 그래서요?”

장진영 대표는 굉장히 즐거워하고 있고.

들으면서 느꼈는데, 지희가 확실히 말재주도 있고 어색한 분위기 좋게 만드는 능력도 탁월하다.

어떤 자리든, 일단 지희가 작정하고 나서면 화기애애하게 돌변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나하고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가 끝나자 장진영 대표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블루웨이브로 프로듀싱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정확히 뭐야?”

“걸스 힙합은 난이도가 굉장히 높잖아요.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음악들이 죄다 그쪽 계통이라 아무래도 경쟁이 치열할 거란 말이죠.”

“그렇지.”

“그런데 제가 처음 봤을 때 이 친구들은 그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들은 아니었어요.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포인트 안무를 떠올리게 된 거죠.”

“그러면 굳이 네가 만들었던 곡을 쓰기로 한 이유는 뭐야?”

“저에게나 이 친구들에게나 가산점이 될 거라고 여겼어요. 민망한 이야긴데, 이 정도 퀄리티의 순수 창작곡으로 참가하는 출연자는 절대 없을 테니 주목 받기도 쉽다는 판단도 있었고요.”

“서로 윈윈한 거네. 넌 포트폴리오를. 이 친구는 본인들에게 맞는 스타일로의 전환을.”

“바로 그거죠.”

“캬, 영리하네.”

감탄사를 한 번 터트린 장진영 대표가 아이들을 칭찬한다.

“오늘 정말 좋았어요. 특히 매력 표현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그것도 민이 프로듀싱이예요?”

“네! 이 중에 네 취향이 한 명 쯤은 있겠지 작전이라던데.....”

“하하하!”

주고받는 대화 분위기가 굉장히 좋다.

평가도 그렇고, 잘하면 전원 합격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왜냐면 오늘 참가한 연습생들 비주얼 퀄리티가 정말 심상치 않았거든! 심지어 그 중에는 내가 알고 있는 엔 플라워 동생 걸그룹 팀 멤버들이 어디에도 없었다.

데뷔조를 포함한 메인 전력은 오늘 참여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저 주세아가 포함되어 있었던 1티어 걸그룹과 라이벌 매치를 벌였던 팀인데....

“최대한 빠른 시간에 합격 여부를 통지해 줄 테니 기다리고 있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알려드릴게요.”

“네!”

설렘이 담긴 대답들.

“그리고....”

시작이구나.

장진영 대표의 시선이 나에게 넘어왔다.

“처음 불렀던 노래 제목이 뭐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에요.”

뭐 매트로 보이즈를 주려고 했다느니, 쓸데없는 이야기는 모두 빼는 게 좋겠다.

난 그 팀하고 아무 상관없는 거야!

제목을 읆조려본 장진영 대표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노래 진짜 좋더라. 나가면 반응 있을 것 같아. 별빛의 숲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데 듣다가 의문점이 생겼거든? 두 곡, 혹시 이야기가 연결되는 거야?"

오, 역시 알아보셨구나!

"맞아요. 두 곡에 하나의 스토리와 주인공을 가지고 있는 셈이죠."

“음, 그건 정말 신박하더라.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잘 시도하지 않는 방법인데....”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아예 세계관을 만든 거예요. 어두운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자기 스스로에 대한 불확신, 이래저래 상처가 많은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히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이 돼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캐릭터네. 모티브가 누구야?”

그 순간 난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요.”

“... 너?”

“네. 저도 이래저래 아픔이 많은 남자라서....”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결론부터 말해보자. 넌 그 두곡을 묶어서 데뷔 앨범으로 발표하고 싶은 거지?"

“그렇죠. 겸사 겸사 반응도 볼 겸 비공개 테스트를 해본 거죠. 영화 개봉전 시사회 하듯이요."

“영악한 녀석 같으니.”

“그리고 사실 이미 앨범을 거의 다 만들어 놓긴 했어요.”

“뭐, 진짜?”

장진영 대표뿐만 아니라 문 라이트 애들과 명중이도 깜짝 놀랐다.

난 준비한 데모 시디를 꺼내 조심스레 건넸다.

“여기.....”

바다 그림이 끼워진 케이스에 다음과 같은 글씨가 채워져 있다.

김민 첫 번째 여행 일기.

“제목 좋네. 트랙 구성은 inst 까지 네 곡이야?”

“네. 보컬 라인도 좋지만, 그것을 제외한 연주곡도 자신이 있어서요.”

“이거 백퍼센트 미디 편곡이지?”

“아, 피아노는 제가 직접 연주했어요. 꽤 자신 있거든요.”

“... 그래?”

고개를 끄덕인 장진영 대표는 데모 시디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무언가를 고민한다.

[ 짝. ]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어떻게요?”

“이거. 내가 가져가서 다시 제대로 편곡할게.”“... 대표님이 다시 편곡하신다고요?”

"별빛의 숲 오케스트라 미디로 찍은 거지? 그게 너무 아쉬워서 그래. 오케스트레션 고용해서 실 연주로 제대로 뽑으면 정말 멋진 곡 나올 것 같지 않아?"

“그건 그렇죠. 지금까지는 돈이 없어서 못했을 뿐이지."

“그걸 내가 맡아서 제대로 해주겠다는 거야. 기왕이면 믹싱, 마스터링도 싹 다 다시."

좋은 제안이지만, 장진영 대표는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이미 다된 밥에 숟가락 올리는 모양새로 보일 수도 있으니.

하지만 난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굉장히 좋은 제안이다!

“부탁할게요.”

“그래. 열심히 해볼게.”

오히려 기대감이 생긴다.

톱 프로듀서의 손을 거치면 내 음악이 얼마나 더 좋아질지.

대화가 이렇게 마무리됐다.

@

장진영 대표는 명중이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몇 번이나 연습생 제안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떤 말에도 명중이는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대처했다.

‘연예인은 제 길이 아닙니다.’

진짜 쉽게 오지 않는 기횐데, 심지어 장진영 대표의 캐스팅이 아닌가?

그 가치를 알 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거절해 버리더라.

여러 가지 의미로 정말 굉장한 녀석이다.

오디션은 끝났지만 연습은 계속 이어졌다.

“떨어질 수도 있잖아. 바로 다음 오디션 준비해야지.”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된다고 해도 저 아이들을 좋은 소속사에 넣어 줄 생각이다.

가수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뜨거우니까.

그 동안 나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게 됐다.

일종의 직업 특강인데, 연예계와 음악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을 테니, 궁금증을 최대한 풀어 줄 생각이었다.

[ 웅성웅성. ]

그 커다란 강당이 학생과 선생님들로 가득 찼다.

“.......!”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속이 울렁거리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기분이다.

트라우마가 도진 것이다.

굉장히 세게.

이미 우황청심환을 먹었고, 그것도 모자라 처방받은 진정까지 복용한 상태였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이런 상황이 오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선 이유?

‘난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될 거니까.’

가수 중에는 극심한 무대 공포증, 공황 장애로 고생하는 이들이 꽤나 많다.

내가 알기로,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대를 내려온 이들도 있지만, 어떻게든 이겨내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들도 있다.

난 후자처럼 되고 싶다.

그러니 지금 이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

계속 심호흡과 마인드 컨트롤을 병행한다.

난 할 수 있다.

난 1타 강사다.

등등....

벌컥.

“시간 다 됐어. 준비 됐으면 나오렴.”

대기실 문이 열리며 음악 선생님이 스탠바이를 알려왔다.

“후우우.”

깊게 심호흡을 하고.

‘가자.’

문 앞을 나선다.

그러자.

[ 와아아아! ]

무대 아래에 펼쳐진 수많은 인파와, 함성이 날 맞아준다.

[ 쿵쾅. 쿵쾅! ]

“.......!”

심장이 터질 듯 뛰고 머리가 어질해진다.지금 당장 누군가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와 욕설을 내뱉고 폭력을 휘두르며 흉기를 휘두를 것 같다.

실제 이전 삶에서 나는 온갖 일을 경험했다.

혈서, 칼날이 담긴 편지. 온갖 협박 메시지 등등.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거 받아.”

“.......!”

음악 선생님이 마이크를 건네주신 무선 마이크를 받아 들자 떨림이 멎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에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가 있었다.

‘노래, 노래를 부르자.’

굉장히 충동적인 생각이었다.

말없이 다가가 뚜껑을 열고 건반을 눌러 본다.

소리는... 나쁘지 않군.

위뚜껑을 열어 버팀 봉으로 받쳐준 뒤, 날 의아하게 쳐다보는 방송팀에게 손짓했다.

의아해하면서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급히 달려와줬다.“무슨 일이예요?”

“피아노 마이킹 좀 부탁드릴게요.”

“갑자기요?”

“노래 한 곡 하고 시작하려고요.”

“아...네. 뭐.”

세팅은 순식간에 끝났다.

스탠드 마이크를 개방된 위뚜껑 부근으로 향하도록 하고, 간격을 조정한 뒤, 떠오르는 악상 하나를 무작정 연주해본다.

“오오....!”

“노래 부르는 거야.”

자리에 앉자 또 하나의 마이크 스탠드가 설치된다. 내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니 방송팀 학생이 웃는 얼굴로 묻는다.

“노래 한 곡 하신다면서요?”

“아....”

설치 끝.

심호흡을 하고, 학생들을 보며 마이크를 통해 인사한다.

“지금 너무 떨리고 긴장 돼서 그래요. 노래 한 곡 하고 나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은데... 괜찮을까요?”

대답 대신 환호가 울려 퍼진다.

지루한 강의가 될 줄 알았는데 대뜸 라이브 공연이라니.

나라도 졸음이 싹 달아날 것 같다.

건반 위에 열 개의 손가락을 가볍게 올려놓는다.

그리고 잠시 정지.

소음이 완전히 멎고, 마치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은 고요함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

힘 있게 피아노 연주를 시작한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고, 또 자신 있어 하던 노래.

모두들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세계적인 명곡이 흘러  나오기 시작하니 함성이 쏟아진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오로지 한 가지에 몰입하고 있다.

지금도 존경하며, 굉장히 닮고 싶은 최고의 보컬.

Mama. Just Killed a man

어머니.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노래를 시작한 그 순간.

머릿속에 위대한 프레디 머큐리가 떠오른다.

Put a gun against His Head

그의 머리에 총을 대고.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

방아쇠를 당겼더니 죽었어요.

지금 그는 라이브 에이드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로지 그 광경에만 집중한다.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홀로 연습실에 남아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그 시절 그때처럼.

어느 순간 강당에는 내 연주와 노래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성공적인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가 정말 깨끗이 지워져 버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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