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고민 (1)
회의실로 돌아온 장진영 대표는 이정연 팀장에게 물었다.
“민이 쟤 천재 확실한 것 같지?”
“네. 이전의 사운드도 그렇고 방금 들었던 Scarlet Love, 트렌드를 몇 발자국은 앞지른 느낌이 있어요.”
“나 살면서 재능 좀 있다거나, 천재 소리까지 들었던 사람들 정말 많이 만나봤어. 그런데 알고 보면 정말 재능이 특출났던 건 아니야. 대부분은 운이 좋았을 뿐이었어. 극히 소수는 천재 냄새를 살짝 풍겼지만 워낙 희미해서 지워져 버렸고. 그런데 민이 쟤는....”
“그냥 아이돌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더군요.”
“비주얼 하나만으로도 존재감이 굉장히 강한데 심지어 음악적 재능까지 특출나. 이런 애들은 아이돌 그룹 하면 안 돼. 팀 동료들의 개성을 완전 지워 버리거든. 본인이 잘하려고 노력해도 결말이 좋지 않을 거야.”
“매트로 보이즈 탈퇴해서 독립한 주온 씨처럼 말이죠?”
기습적인 말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매트로 보이즈의 주온.
재미교포 출신은 그는 뛰어난 외모와 압도적인 퍼포먼스 능력, 음악적 재능을 기반으로 매트로 보이즈를 인기 그룹으로 띄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문제는 존재감이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혼자서만 너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것이다.
팀 멤버들의 견제가 심해지자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해
주온은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거기서 독립 레이블을 차렸고, 지금은 미국 힙합 씬에서 굉장히 주목 받는 아시아 계 뮤지션이 되었다.
jj 입장에서는 굉장히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내가 주온이 사건 때문에 팀 밸런스 엄청 생각하게 된 거잖아. 특정 누구만 밀어주는 것도 금지 시켰고.”
“듣고 보니 확실히 민이 씨가 주온 씨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정연 팀장이 말했다.
“그렇게 보면, 민이 씨는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시키면 안 되겠네요.”
“그런 점에서는 주세아. 그 친구도 조금 처치가 곤란하긴 해. 엄청난 보석인 건 맞는데 존재감이 민이처럼 압도적이라서 팀이 좋게 유지될 리가 없거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음?”
이정연 팀장은 자신의 소견을 거침없이 말했다.
“주세아 양 혼자라면 분명 지나친 존재감 때문에 팀워크에 문제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성격 때문에 라도요.”
“성격이 왜?”
“굉장히 차갑고 냉정합니다.”
“아....”
“하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는 캐릭터가 참 재미있게 바뀌더군요. 그 문 라이트라는 팀의 리더가 반지희 양이었습니다. 주세아 양은 반지희 양이 확실히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도 좋은 원석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가 두 사람의 발탁과 팀 조합을 강력히 주장한 겁니다.”
“아, 그러니까 주세아에게는 반지희라는 소울 메이트 겸 리더가 있으니 괜찮다?”
“반지희 양은 붙임성이나 친화력 같은 부분이 굉장히 좋습니다. 리더십도 있고요. 둘을 붙여 놓으면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이런 부분이 민이 씨하고는 다르죠.”
“그러면 그 친구는 어때? 최명중이라는....”
“사실 제가 연락처를 받아 권유해봤는데, 아이돌이 될 마음이 전혀 없답니다.”
“그럴 것 같더라. 아무튼 반지희 같은 메이트가 민이에게는 없다는 게 문제라는 거잖아. 그러면 민이에게 리더 겸 프로듀서로서 권한을 부여하고 알아서 세팅해보라고 하면 어떨까?”
“회사 주도가 아닌 민이 씨 주도로 진행해보자는 건가요?”
“바로 그거지.”
“나쁜 생각 같지는 않습니다만....”
잠시 고민하던 이정연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제 생각에는 그냥 솔로로 활동시키는 게 가장 나을 것 같습니다.”
“아까우니까 그렇지. 개는 어쨌든 끌고 가기로 한 애들은 확실히 책임지고 성장시킬 수 있는 애야. 문 라이트 프로듀싱이 그 증거잖아. 내가 이야기 해보니까.. 와, 개 정말 보통이 아니더라고.”
“그 부분은 저도 공감합니다. 아무래도 회사 입장에서는 한 사람만 빛나는 것보다는, 여기에 영향을 받은 다른 아티스트들 함께 성장해서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좋으니까요.”
“바로 그거야. 그리고 이건 민이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야. 프로듀서로서 확실한 자기편이 존재한다는 건 녀석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이정연 팀장은 장진영 대표를 냉철한 시선으로 보며말했다.
“대표님은 이미 마음을 결정하셨군요.”
“응. 민이 녀석에게 전권을 주고 팀 세팅과 운영을 맡겨보고 싶어. 그렇게 해야 녀석이 더 빛을 발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반발이 심할 겁니다. 아무리 재능이 좋다고 하지만... 대표님이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편애한다는 말이 나와서 좋을 게 없어요.”
“그게 문젠데....”
곰곰이 생각하던 장진영 대표가 씩 웃었다.
“누가 밀어주기보다는, 쟤는 그래도 되는 애구나. 라는 걸 납득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이런 거지.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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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장진영 대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야, 넌 혼자가 좋냐 여럿이 좋냐? ]
참 뜬금없다.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 야, 척하면 딱 알아들어야지. 네 데뷔 말이야. 솔로가 좋은지 그룹 데뷔가 좋은 지 묻고 있는 거야. ]
“아....”
난 곰곰이 생각하고 대답했다.
“두 가지 모두 장단점이 뚜렷해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가 곤란하네요.”
[ 오... 그래? ]
“왜요?”
[ 아니, 당연히 솔로 데뷔가 좋다고 말할 줄 알았거든. ]
“솔로는 아무래도 확장성에 한계가 있잖아요. 자유의 대가로 감당해야 할 부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룹은 불편하고 고려할 게 많지만 확장성에서 좋고, 각기 다른 매력과 캐릭터로 다양한 팬들을 흡수할 수 있으니 해외 진출에도 굉장히 용이해요.”
[ 캬... 너... 이 자식! ]
내 대답에 굉장히 감동한 눈치였다.
“팀워크만 확실히 맞는다면, 팀 데뷔도 확실히 좋은 카드가 될 수 있죠. 하면서 솔로도 하면 되는 거니까요. 제 입장이라면 제 방식대로 팀원을 트레이닝 해서 프로듀서로서 입지를 넓힐 수도 있고요.”
[ 그렇지. 이 자식, 네가 뭘 아는 구나! 너 혹시 내 마음 속 들여다보기라도 한 거야? 어제 정연이에게 했던 이야기를 아주 그대로 하네? 기특하게.... ]
대충 무슨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내 데뷔 문제로 이정연 팀장님과 여러 대화를 나눈 모양이다. 오늘은 그 통보를 해주려는 걸 테고.
[ 끝나고 바로 내 방으로 와. 아, 너 스칼렛 러브 언제 완성할 수 있어? ]
“말씀 하신 브라스 세션 녹음까지 하려면 꽤 걸릴 텐데....”
[ 그건 나중에 하고. 데모곡만 엔 플라워 애들에게 들려주고 바로 기획, 안무 작업 들어가려고 하는 거야.]
“굳이 안무까지 필요할까요? 그거 엔 플라워 분들이 마음에 안 들어 할 수 있고....”
소심하게 바람을 꺼내본다.
“그냥 수록곡 중 하나로 조용히 묻힐 수도 있는데요.”
[ 야. ]
갑자기 정색하는 장진영 대표.
살짝 긴장했는데.
[ 헛소리 그만해. ]
“......?”
[ 판단은 내가해. ]
“......!”
[ 으하하. 이거 벌써 입에 붙었네? 야! 이렇게 좋은 곡 만들었으면서 무슨... 나라면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어! ]
이 양반이 정말... 의자 들고 한 번 찾아가?
깨방정을 떨던 장진영 대표가 다시 재촉했다.
[ 아무튼 얼개라도 언제 완성 가능하냐고. ]
“얼개 수준이라면 오늘 끝낼 수도 있어요.”
[ 오케이. 그러면 곡은 내일 받는 걸로 하고 곡비 미리 입금해 줄게. 오늘 끝나면 바로 회사로 와. 형이 맛있는 거 사줄게. ]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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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교실에 앉아 생각했다.
솔로와 그룹 데뷔.
어떤 것이 내게 더 이로운 일일까?
‘사실 자신 있으면 솔로로 활동하는 게 더 좋지.’
아무리 생각해도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
무엇보다도 이전 삶에서 그룹 활동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니, 더더욱 솔로에 마음이 간다.
그럼에도 그룹 활동에 문을 열어놓은 이유.
해외 시장 진출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전 삶에 솔로 가수로서 국내에서 일인 군단의 위세를 보여주던 음원 깡패들은 해외 시장에서는 분명한 한계를 보였다.
대부분이 한국에 맞는 감성 발라드 음악을 선호했고, 당장 이런 음악들은 옆 나라 일본만 가도 비주얼도 되는 실력파들이 무수히 많기에 경쟁이 어려웠다.
퍼포먼스 형 솔로 가수?
춤. 노래. 외모. 퍼포먼스가 다 뛰어났던 몇몇 가수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적이 있긴 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솔로 퍼포머들은 국내 명성에 어울리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생에 KPOP 아이돌 그룹이 미국 시장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축약하면 빡센 군무와 화려한 뮤직 비디오.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게 가능한 게 우리 나라뿐이었거든.
여기서 솔로 퍼포머들이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한 이유가 나온다.
포지션이 그냥 솔로 뮤지션이 되는 건데, 이렇게 되면 제 2의 마이클 잭슨, 혹은 마돈나 소리를 듣는 미친 사기 캐릭터들하고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 그런 톱 뮤지션을 제외하고서라도 뛰어난 솔로 뮤지션은 정말 너무나도 많다. 헤아리는 것조차 불가능할 만큼.
내가 흑인들보다 흑인 음악을 더 잘할 수 있나?
그들보다 그들의 음악을 더 잘 만들고 소화할 수 있나?
솔직히 말해 자신 없다.
그렇다고 국내 시장으로만 만족하자니 이미 전생의 삶에서 거대한 성공을 지켜본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나도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고 싶다.
세계적인 가수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철저히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과연 회사에서는 어떤 답을 준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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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회사로 이동했다.
반지희는 집에 들렸다가 따로 연습실로 간단다. 어차피 집이 근처라서 도보로도 이동할 수 있다는 데 뭐.
... 부럽다!
“안녕하세요.”“네. 안녕하세요!”
사옥 보안팀도 이제 내 얼굴을 모두 알고 있는 모양. 따로 사원증 제시를 하지 않아도, 얼굴만 보고 바로 통과를 시켜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바로 내 작업실!
회사에서 마련해 준 나만의 소중한 공간!
“어? 뭐야? 왜 화분이 있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몇 가지 물건이 눈에 띈다.
그 중 하나가 크고 작은 화분들!
“대표님의 감성은 아니고, 이정연 팀장님이로군.”
이외에 무드용 LED 조명, 그리고 넉넉한 베이지 색 패브릭 소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외모만큼이나 참 마음씨도 곱고 배려심도 깊은 분이다.
대외적으로는 냉철한 카리스마의 대명사라던데, 난 아무래도 실감을 못하겠다.
나한테는 착하고 자상한 누나야!
가방을 벗고 노트북을 꺼내 작업 데스크 한편에 올려둔다.그리고 교복을 벗고, 따로 챙겨 온 트레이닝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이것으로 활동 준비 완료.
바로 작업실을 나가 A&R 부서가 위치한 사무실로 이동하는데.
“어?”
“응?”
얼핏,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
평범한 직원은 아니고....
사내는 가느다란 눈으로 날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툭 물음을 던진다.
“못 보던 얼굴인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연습생인가?”
...인가?
“몇 살이야?”
...이야?
이 새끼, 언제 봤다고 다짜고짜 반말이지?
확 씨...!
도구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 순간.
[ 땡! ]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출입구가 열렸다.
“어? 민이 씨!”
이정연 팀장님이 있었다.
스키니 진과 흰색 티셔츠, 캔버스화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급격히 차 올랐던 불쾌감이 깨끗히 씻겨나가는 것 같다.
“어? 저, 정연 씨. 아, 안녕하세요.”
날 티껍게 바라보던 사내의 얼굴이 헬렐레 풀어진다. 말도 더듬고.
“아, 네. 민철씨. 인사하셨어요? 이쪽이 이번에 우리 회사에 새로 입사한 전속 프로듀서 김민 씨예요.”
시선이 나를 향하는 순간 표정이 또 다시 티껍게 바뀐다.
네가?
이런 얼굴인데....
참 신기할 놈일세.
만난 지 1분도 안 됐고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사람 굉장히 기분 나쁘게 만들 수 있다니.
“이 쪽은 강민철씨. 민이 씨와 마찬가지로 전속 프로듀서고 매트로 보이즈 작업에 관여하셨어요.”
이정연 팀장님 앞이니, 일단은 웃으며 상대한다.
“안녕하세요. 아직 경험이 짧아서 부족한 게 많아요. 잘 부탁드려요.”
“아, 뭐....”
나하고는 굳이 말을 섞고 싶은 생각도 없나보다.
이 순간 그의 관심은 이정연 팀장에게만 있었다.
“저, 저기... 지난 번 부탁하신 편곡 문제로 잠시 대화를 좀 나누고 싶은데....”
“죄송한데 제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
우와 단호해!
“민이 씨. 대표님 만나러 오신 거죠? 지금 집무실 말고 다른 곳에 계시니 저하고 같이 가요. 셋이 해야 할 일 이야기가 많아요.”
방금 전의 차가운 모습과 대조되는 따스하고 아름다운 미소!
그녀를 쫓아가며 흘끔 뒤돌아본다.
강민철인가 뭐시긴가.
하염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굉장히 아련한 표정으로.
주제 파악을 못하는 놈이라는 건 알겠다.
지금이라도 가서 눈깔을 확 쑤셔 버릴까?
반면 그녀는 그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실 어제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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