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25화 (25/205)

25화. 고민 (2)

장진영 대표는 메트로 보이즈를 상대로 보컬 디렉팅을 진행 중이었다.

“잠깐만, 너 아까부터 계속 음 떨어지는데, 연습 안 했냐?”

[ 연습 했는데.... ]

“연습한 게 이 정도야?”

[ ....... ]

“야, 이게 내가 만든 곡도 아니고 심지어 너희들이 만들어서 내게 가져온 거잖아. 이걸로 내달라고. 그런데 이게 뭐야? 나하고 지금 장난해?”

분위기가 굉장히 살벌했다.

장진영대표의 저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조금만 흥이 나도 주체 못하고 춤을 추고, 유치한 장난도 스스럼 없이 걸던 사람이 성난 맹수가 되어 있었다.

녹음실 분위기가 굉장히 무겁다.

나와 이정연 팀장은 눈치를 보며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

끊어 오르는 화를 애써 가라앉히려는 듯, 바닥만 쳐다보고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나서야 조용히 말했다.

“10분 쉬자.”

[ 네. 감사합니다. ]

눈치 보며 휴대폰을 걸어 둔 매트로 보이즈 멤버가 부스와 녹음실을 벗어난다.

문이 닫히는 순간 장진영 대표가 머리를 감싸 쥐고 스트레스를 드러낸다.

“아, 저것들... 곡도 어디서 90년대 발라드 음악 같은 거 들고 오더니 연습도 제대로 안 해왔어. 아니, 다 떠나서 내가 그렇게 뭐라고 했는데 왜 실력이 안 늘지? 내가 지원도 많이 해줬거든?”90년대 같은 발라드 음악이라.

제대로 만들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문제는 그조차도 어설프니 장진영 대표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다.

혼자 불평을 쏟아내던 장진영 대표이 나를 향한다.

반사적으로 움찔하는 내게.

“넌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진다.

네? 뭐가요?

“쟤들, 데뷔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왜 노래 실력이 그 모양 그대로일까?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래. 이유가 뭘까?”

음, 이제 보니 뭔가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곡 한 번 들어 봐. 굉장할 거야 아주.”

대뜸 지금까지 녹음한 분량의 트랙을 재생한다.

무려 수천만 원이 달하는 초고가 모니터링 스피커에서, 90년대 풍 노래방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응? 편곡이 왜 이러지?

이건 내가 알던 게 아닌데?

설마 정식 버전은 장진영 대표나 다른 프로듀서가 따로 손을 본 결과물이었던가?

이런 걸 발매하려고 했다니... 베짱이 두둑하다.

편곡에 비해 보컬 녹음 상태는 훌륭했다.

당연하지.

이것만큼은 장진영 대표의 결과물이니.

반면 그에 반해 멜로디와 가사가 조금 아쉽다.

아니, 지금 들으니 가사도 멜로디도 상당 부분이 어색하고 이상하다.

이것도 나중에 따로 손을 본 모양이다.

하지만 원곡 소스가 그 모양이니 수정해봐야 한계는 명확하다. 이런 상황이니 발매 당시 반응이 미미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심지어 팬들조차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까지.”

보컬 녹음이 후렴구 중간까지만 진행됐다.

장진영 대표가 절망을 담은 표정으로 물었다.

“어때?”

“뭐... 공연장에서 눈물바다 만들어보겠다고 작정하고 만든 곡이라는 건 알겠네요.”

“편곡, 멜로디뿐만 아니라 가사도 진짜 유치해. 지금은 헤어지지만,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거야. 너희들의 사랑, 믿음, 신뢰.....”

“어억...!”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소름이 밀려왔다.

장진영 대표가 괴로워했다.

“아무리 팬이라도 이런 노래 듣고 좋아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할수록 괴롭다. 분명 이거 그대로 내면 팬들이 나한테 뭐라고 할 거야. 자기 오빠들 포기하고 버린 거냐며... 그럴거라면 소속사가 대체 왜 필요한 거냐며.”

그때 문이 열리더니 메트로 보이즈 멤버들이 들어온다.

외부의 공기가 유입되며 묘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어? 이 냄새 설마...?

장진영 대표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을 빤히 바라보더니 물었다.

“담배 피고 왔냐?”

“.......”

이건 나도 정말 어이가 없다.

아무리 N년차 고인물 아이돌 그룹이라지만... 지금 자기들 노래 녹음하던 중이었잖아?

장진영 대표는 끝내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야, 됐어. 오늘 녹음 여기서 끝내! 연습이나 더 하고 와!”

@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카페테리아에서 차가운 얼음 음료를 단번에 들이키고도 계속 씩씩대고 있었다.

카페테리아가 높은 층에 마련되어 있었기에 풍경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다. 가리는 게 없는 완벽한 시티 뷰가 가슴을 뻥 뚫어주는....

“재들 내가 계속 데리고 가야하는지 회의감이 들 때가 가끔 있거든? 바로 지금 같은 상황! 아니 저것들 정말 가수가 맞아?”

... 음. 장진영 대표는 다른 의미로 가슴이 뻥 뚫린 모양이다.

굉장히 억울한 얼굴로 나와 이정연 팀장에게 하소연을 한다.

“그래. 뭐, 안 늘수 있어. 연습 열심히 했는데 재능도 부족하고 일정이 많으면 그럴 수 있지! 쉽지 않은 거 알아. 그러면 최소한 노래에 대한 기본 상식은 좀 갖추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녹음 중에 담배? 미친...하.”

음, 아무래도 오늘은 솔로니 그룹이니, 그런 한가한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년에 군 문제로 그룹 활동이 중지되면 회사 입장에서는 큰 수익원 충 한 축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연차도 제법 쌓였고, 마지막은 자신들의 힘으로 장식해보겠기에 기특한 마음으로 수락했더니 결과가 이 모양이라면....

‘나라도 빡치겠네.’

이래서 그룹은 쉽지가 않아.

인기와 함께 생성되는 스타병이라는 게, 참 지독한 녀석이거든.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해도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온몸을 뒤틀며 괴로워하던 장진영 대표가 느닷없이 나에게 총구를 겨눈다.

“민아. 너라면 어떻게 만들래?”

“네?”

“팬송. 만약 네 입장이라면 어떤 식으로 만들 것 같니?”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민이 씨라면 어떤 감성으로 팬송을 만들지.”

기대감 가득한 시선에 부담스러워진다.

팬송.

그래 만들어 주려다가 매트로 보이즈 괘씸해서 날리고 그냥 내 곡으로 만든 게 있었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그런데 굳이 여기서 그걸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팬송. 팬송이라....”

내가 만약 매트로 보이즈라면.

잠시 동안의 이별을 앞두고.

나를 오랫동안 사랑하고 지지해준 팬들에게 노래로 메시지를 전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것이 좋을까?

‘쓸데없이 비장하거나 슬퍼지고 싶지 않아.’

순간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다.

손가락 퉁기고 몸으로 리듬을 타며 되는대로 랩과 노래를 내뱉기 시작했다.

일찍 일어나서 운동 좀 해.

어깨 펴고 다리 뻗고

식사는 꼭 챙겨 먹어.

영양제도 좋아.

활기 찬 아침으로 너의 하루를 시작해 봐

휴대폰 적당히 해.

시험공부 해.

책도 읽어.

일 열심히 해.

가끔은 가족과 친구도 챙기자.

뻔한 잔소리?

널 위한소리.

너에게만 그러는 거야.

사랑해서 그래.

걱정돼서 그래.

그래서 하는 말이야.

사랑해서 하는 말이야.

“음, 우선은 여기까지?”“오오오!”

사방에서 탄성과 박수가

카페테리아에 직원들뿐만 아니라 연습생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는데 나를 향해 감탄하고, 감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장진영 대표만큼 격렬한 반응을 보이지는 못했다.

“야, 넌 정말... 어떻게 그런 걸 즉흥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냐 제목이 뭐야?”

“방금 되는대로 지껄인데 제목이 있겠어요? 음, 굳이 지어야 한다면... 사랑해서 하는 말이야? 아니면 잔소리?”

“잔소리 좋다. 정연아, 이걸로 하자!”“그럴까요?”

아니, 이 사람들 왜 갑자기 급발진이야?

난 손을 저어 거절했다.

“에이, 그래도 팬송인데 그러면 안 되죠!”

“아냐. 그래도 돼.”

“쓸데없이 감정적이지 않고 가볍게 툭툭 던지듯 챙겨주고 잔소리 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와 닿는 것 같아요. 이거 컨템포러리 알앤비 맞죠?”

“맞아. 딱 그 장르 음악이야.”

응?

그, 그런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기에 내심 놀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굉장히 감성적이면서 몽글몽글 예쁘지? 적당히 흥도 있고... 이거 좋다. 내 생각에 이 곡은 매트로 보이즈 팬들 뿐만 아니라 대중도 정말 좋아할 것 같아.”

“얼핏 들으면 러브송 같기도 하고 이별송 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참 묘하네요. 상황에 따라 완전 다르게 들릴 것 같아요.”

심지어 이정연 팀장님도 흥분하고 있었다.

“방금 그거 다시 한 번 부탁해요. 잊어버리기 전에 녹음 해둬야지.”

“.......”

“빨리요!”

내가 머뭇거리자 장진영 대표가 으르렁 거리며 한 마디 한다.

“야, 별빛의 숲.”

어이가 없네.

대체 언제까지 우려먹을 건지....

...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노래를 다시 반복하는 나였다.

“이거 내가 완성해볼게!”

방금 전까지 그렇게 스트레스에 몸부림치더니, 지금은 세상을 얻은 것 같은 얼굴이다.

확실히 기업가보다는 아티스트로서 정체성이 확고해 보인다.

“시간이... 한 시간은 남았네. 내 집무실 가서 이야기 계속할까? 우리 원래 하려던 이야기 있었잖아.”

“아, 저는 회의 때문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금방 끝내고 다시 올 게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 없어. 회의 끝나면 퇴근 시간일 텐데... 정연이 넌 올 필요 없어. 우리 끼리 이야기 끝낼게.”

집무실에 도착해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본론부터 꺼낸다.

“너 일단 솔로로 데뷔하자.”

“솔로요?”

“응. 먼저 네 능력과 가치부터 입증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야 굳이 내가 힘을 실어주지 않아도 네 스스로 카리스마를 갖고 일을 추진할 수 있어.”

표정이 굉장히 진지했다.

“그게 너한테도 좋지 않을까?”

“.......”

기분이 묘하다.

이렇게까지 내 능력을 인정해주면서 자율성을 보장해주려는 소속사 대표라니.

새삼 JJ를 선택하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제안을 넙죽 받아먹지는 않았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솔로로 먼저 데뷔해서 이름을 알린 뒤 그룹으로 데뷔하라는 건가요?”

“그래도 되고 그렇게 안 해도 상관없어.”

“네?”

“선택하는 건 너야. 그리고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난 전폭적으로 널 밀어 줄 거야.”

이제는 감동이 차오를 지경이다.

한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어서 물었다.

“저에게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뭐예요? 보통은 안 이러잖아요.”

“그런데 넌 보통이 아니잖아.”

“......!”

“넌 짧은 시간 동안 굉장히 많은 것들을 보여줬어. 작사, 작곡, 프로듀싱, 춤, 노래... 난 너를 천재라고 생각해. 그리고 천재에게는 천재에 맞는 방식이 있지.”

내가 천재라고?

정신이 멍해진다.

정말 그런 생각은 못 해봤으니까.

“네가 해달라는 걸 다 해주겠다는 약속은 못하겠어. JJ는 나만의 회사도 아니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할게.”

마지막 말이 내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음악 활동에 있어서 절대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하지 않고 네 의견을 존중할게. 대답 됐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러면 다시 묻자. 넌 어떻게 하고 싶니?”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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