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26화 (26/205)

26화. Scarlet Love (1)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장진영 대표와의 대화를 되새겼다.

[ 넌 어떻게 하고 싶니? ]

이 질문이 내 앞에 던져졌을 때.

난 곧장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장진영 대표가 미소 짓는 얼굴로 말했다.

[ 마음 같아서는 당연히 솔로가 하고 싶은데, 진출이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그룹도 나쁘지 않고 미치겠지? 심지어 그룹 리더 프로듀싱 권한까지 준다니까. ]

적중했다.

내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봤다.

[ 바로 선택할 필요 없어.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충분히 고민해보고 대답해 ]

그리고 한 가지 조언했다.

[ 다시 말하지만,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어떤 거였는지 생각해봐. 그래야지 그 결정으로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

@

고민이 많은 것은 장진영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솔로든 데뷔든 그림은 다 좋아 보이는데 말이지.’

제작자 입장에서는 두 가지 포지션 모두 극명한 장단점이 있었다.

결정을 김민에게 맡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안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능성을 모두 열어 놓고 충분한 데뷔를 해야 했다.

‘이건 뭐 행복한 고민이네.’

뜬 눈으로 밤을 지센 장진영 대표는 운동, 샤워, 식사 등의 아침 루틴을 마치고 출근을 했다.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은 메일 확인이었다.

‘어디... 여기 있다.’

어젯밤 열 시 정각에 도착한 메일.

제목 : 스칼렛 러브 가믹싱까지 완료했어요. 듣고 피드백 부탁드려요.

참조에 이정연 팀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씩 미소 지었다.

“약속 지켰네. 예쁜 녀석.”

첨부 파일을 다운로드 받고 스피커 볼륨을 크게 키운다. 그리고 재생시작.

[ 빰빠바밤! ]

웅장한 브라스와 힙합 리듬이 뒤섞인 딥 다크한 댄스 음악이 이어진다.

‘크으...!’

빵빵하면서 임팩트 넘치는 사운드 질감!

그리고 온 몸을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힙합 비트에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이거지. 이거야!”국내에서 이런 사운드 만들 수 있는 사람 정말 흔치 않은데...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노래에 몰입했다.

전주가 끝나고 김민의 앙칼진 랩이 시작된다.

헛소리 그만해.

판단은 내가해.

네가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

절로 엔 플라워 멤버들을 도입해본다.

랩과 멜로디가 적절하게 섞여 있어 파트 구분이 힘들지 않았다.

“여기서 민이가 저번에 선보였던 트럼펫을 위로 길게 불어올리는 춤을....”

잠시 멈칫.

“아니지, 트럼펫 보다는 조금 더 크고 무게감 있는 트롬본이 좋겠네. 다 함께 대열을 짜서 인트로 초반에 빰~ 불어 올리며 시작하는 거지. 아주 좋아!”

이 외에도 몇 가지 포인트가 되는 부분이 있다.

샷건을 장전해서 상대를 겨눈 뒤 리듬에 맞게 빵! 빵! 쏘아대는 부분이라던가.

“애초부터 안무와 비주얼 컨셉까지 생각해서 짠 음악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각이 딱딱 나올 수가 없지.”

비주얼 컨셉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아이돌 시장.

작곡가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아주 훌륭한 연구 자세가 아닌가?‘이제는 곡만 잘 쓰는 것 가지고는 살아남기 어렵단 말이지.’

발라드도 그렇고 댄스 음악도.

아니 모든 음악에 보여주는 비주얼 아트적인 요소의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다.

이런 건 나중에 따로 만들어서 우겨 넣는 식으로는 답이 없다.

애초 음악에 그런 요소들이 적절히 녹아 있어야 모든 요소가 찰떡 같이 붙는 진정한 멀티 콘텐츠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는 그것에 열광하는 법이지.’

귀엽고 사랑스러운 컨셉과 음악으로 데뷔했던 엔 플라워도 슬슬 커다란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처음부터 그런 음악을 했다면 모를까, 어중간하게 컨셉 변화를 시도하면 기존 팬덤을 잃어버리는 뼈아픈 결과만 발생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건 결국 곡 자체의 퀄리티가 문제지.’

곡만 좋으면 나머지는 다 해결된다.

문제는 이 좋은 곡을 만들거나 너무나도 어렵다 못해 운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서....

음악이 끝났을 때. 장진영 대표는 슥 웃었다.

‘이 곡이라면 분명히 먹힌다.’

아침 정기 회의를 마치고, 장진영 대표는 이정연 팀장에게 물었다.

“너도 민이가 어젯밤 보내준 곡 들었지?”

“네.”

“네 감상이 듣고 싶은데, 어땠어?”

“특히 10대가 좋아할 음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노래를 잘 활용하면 해당 연령대의 신규팬 유입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응? 10대 신규팬?”

그런 생각은 못해봤기에 장진영 대표는 눈만 끔뻑 거린다.

“그렇게 생각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요즘 10대들이 열광하며 많이 소비하는 문화적인 요소들이 음악 곳곳에 녹아 들어가 있거든요. 굉장히 세련된 맥시멀리즘 스타일의 음악이에요.”

“매, 맥시멀리즘?”

“원색적이고 화려한 색상, 과감하고 과장된 장식... 이런 컨셉을 잘 활용하는 기획사 우리나라에 딱 두 곳이 있죠?”

“아, LK하고 KM 엔터테인먼트?”

“맞아요. 힙합 레이블 성향이 있는 LK는 맥시멀리즘 스타일을 힙합 패션에 녹여내는 경향이 있고, KM은 그 시대 주류충에서 소비하는 콘텐츠 문화, 게임이나 만화 같은 요소에 현대적인 패션으로 녹여내는 경향이 많죠.”

“오오... 그러면 우리는?”

“그냥 뭐... 조금씩 변형된 장진영 대표님 스타일이죠.”

“... 그게 뭐야?”

“귀여운 파격, 차도남인데 파격, 카리스마 있는 파격.”

“뭐야 그게?”

“대표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거죠.”

“... 욕하는 거지?”

“네.”

“.......”

워낙 당당하게 대답하니 일순 할 말을 잃은 그였다.

이정연 팀장은 표정 변화 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스칼렛 러브는 곡에 담겨 있는 비주얼 디렉팅 적인 요소만 떠올리면 KM 스타일에 가까워요. 10대가 좋아하는 게임, 만화 같은 문화 콘텐츠와 현대 패션의 접목.”

“아, 그런데 곡 기반이 세련된 힙합이라 LK 특유의 색채도 녹아 들어 있다고 말한 거구나?”

“맞아요. 이건 마치 KM 출신 아티스트가, LK 컨셉을 분석해서 만든 음악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니까요.”

“오, 듣고 보니 그렇네. 확실히....”

“중요한 건 이 컨셉을 굉장히 규모감 있게, 그리고 임팩트 넘치는 사운드로 구현했다는 거예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매드 무비로 만들면 웅장해지다 못해 가슴이 터져 나가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도 있는 거죠.”

“... 마지막 비유는 잘 공감이 안 되지만 어쨌든 두 메이저 회사의 장점을 합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파악했어.”

장진영 대표가 활짝 웃었다.

“천잰데, 노력하는 천재라는 거 아니야. 우리 민이가!”

“언제부터 우리 민이....”

“아무튼, 너도 이 음악 제대로 활용하면 뭔가 될 것 같다는 거지?”

“뭔가 될 것 같은 수준이 아니예요. 전 출근길에 이 음악만 계속 반복해서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녀는 씩 웃었다.

“대표님이 그렇게 꿈꾸던 해외 진출. 어쩌면 이 음악이 가능하게 만들어 줄 수 있겠다고.”

두 번째 회의가 열렸다.

비주얼 디렉터. 마케터 등.

팀장급 인력이 모두 참여한 아티스트 기획 회의였다.

“다들 바쁠 텐데 갑자기 회의 소집해서 미안해. 그런데 꼭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있어서... 김민이 어제 완성해서 보내 준 음악이야. 일단 들어보자.”

그 자리에서 스칼렛 러브가 울려 퍼졌다.

음악을 듣는 동안 팀장들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리고 음악이 끝났을 때.

“한 명씩 소감을 말해보자. 비주얼 디렉팅 쪽은 어떻게 들었어?”

금발로 탈색을 한, 풍만한 체구의 30대 여인이 눈을 반짝거린다.

“LK, KM이 추구하는 맥시멀리즘 스타일을 잘 합쳐 놓은 음악 같아요.”

“오오...!”

그 순간 장진영 대표의 시선이 이정연 팀장에게 향했다.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팀장 박하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이정연 팀장도 하연 팀장하고 똑같은 이야기를 했거든. 그래서? 계속 말해봐.”

“컬러는 딥 블랙. 스칼렛 레드. 실버 화이트 이 세 가지를 기반으로 쿨한 여전사 이미지를 만들어 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KM이 하는 것처럼 지나칠 정도로 서브 컬처 이미지를 가져오면 역효과고, 모던 패션을 베이스로 하는 게 좋겠죠.”

그녀는 지참하고 있던 타블렛 pc로 참조 이미지를 보여주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 모습에 장진영 대표는 박하연 디렉터가 이번 음악에 엄청난 영감을 받아 열의가 끊어 오르는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덩달아 신이 났다.

보통 이런 경우, 심상치 않은 결과가 벌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회의가 진행될수록 스칼렛 러브와 엔 플라워의 컨셉 이미지가 점점 뚜렷해졌다.

어떤 스타일로, 어떤 무대와 뮤직 비디오에서 어떤 춤과 노래를 소화하는지.

그런데 신인개발팀장이 아까부터 유독 침묵을 지키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훈 팀장.”

“네?”

“무슨 고민 있어요? 아까부터 표정이 굉장히 심각한 표정인데?”

“아....”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에라 모르겠다는 듯 내질렀다.

“이 컨셉을 굳이 엔 플라워에게 줘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

잠시 침묵.

곧 아담한 키에 붉은 뿔테 안경을 착용한 30대 여성이 찡그린 얼굴로 묻는다.

“그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

화기애애하고 열정이 가득했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변했다.

신인 개발팀장 이정훈은 그녀의 눈치를 보면서도 말을 계속 이어갔다.

“엔 플라워는 기존 컨셉 문제없이 잘 지켜나가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극적인 컨셉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이거 아껴뒀다가 신인 걸그룹에게 주면 안 되나요? 이번에 마침 좋은 인재 둘이 들어왔잖아요. 반지희, 주세아 양. 그 두 친구를 데뷔조에 올려서 이곡으로 데뷔시키면 훨씬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

“지금 그게 말이야 방구야? 우리 애들에게 주기가 아깝다니, 엔 플라워가 어디가 어때서?!”

결국 분노를 폭발시키는 뿔테 안경의 여인.

장진영 대표를 비롯한 회의실의 인원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1팀장 최수연.

그녀야말로 엔 플라워를 데뷔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끌어 온 장본인이며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최수연 팀장은 본인이 담당하는 아티스트를 위해서라면 상대가 설사 장진영이라도 싸우기를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눈치만 보던 이정훈 팀장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쏟아냈다.

“이런 파격적인 컨셉이 더 효과를 드러내려면 신선함이 배경에 깔려 있어야 해요. 생각해보세요. 4년 넘도록 청순 큐티 컨셉을 지켜온 엔 플라워 보다는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남다른 비주얼의 신인 아이돌이 들고 나왔을 때 훨씬 효과가 좋다니까요?”

“오히려 우리 애들이 이 곡을 들고 나왔을 때 더 파격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 안 해보셨어요?”

고성이 오가는 회의실을 보며 장진영 대표는 한숨을 내쉬었다.

굉장히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온 사이였기에 가끔 드러나는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볼 가치는 있어.’

흘끔 이정연 팀장을 바라본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녀 역시 자신과 같은 고민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신선함이 배경에 깔려 있어야 더 파격적인 컨셉이라.’

주세아가 뇌리에 떠오른다.

‘으음, 확실히....’

결국 그날 회의는 어떤 결론도 도출하지 못한 채 끝을 맺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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