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28화 (28/205)

28화. 조율 (1)

“좋다! 내 취향이야!”

“강렬한데? 아주 좋아!”

굉장히 좋아하는 몇 명.

“어, 좋은데... 이거 너무 컨셉이 확 바뀌는 거 아닌가?”

“음악은 괜찮아. 괜찮은데 컨셉하고 특히 가사가... 우리 하고 맞나?”

신중한 사람 몇 명.

“가사 유치해.”

“내용이 좀 오글거리는데?”

“내 안에 널 죽여 버리겠다니... 어린 시절에 본 웹소설에서 이런 표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진절머리를 치는 몇 명!“.......”생각만큼 화끈한 반응이 아니었기에 루아는 내심 섭섭해 했다.

‘다들 엄청 좋아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리고 새삼, 취향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놀랍기도 했다. 자신은 듣자마자 이건 무조건 대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곡은 절대 놓쳐서는 안 돼.’

오죽하면 장진영 대표와 신인 개발팀장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신인 걸그룹에게 넘겨줄 생각까지 했을까? 심지어 최수연 팀장도 어떻게든 곡을 사수하라며 특명을 내릴 정도였다.

“잘 들어봐. 이 곡이 어떤 곡이냐면....”

루아는 결연한 마음으로 설득을 시작했다.

‘곡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면 애들도 진가를 좀 알아주겠지?’

@

작업실 문이 열리더니 장진영 대표가 지친 얼굴로 들어왔다.

그리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하, 진짜 프로듀서 일 못 해먹겠다.”

이 양반이 갑자기 또 왜 이래?

무슨 일인지 어서 빨리 물어봐달라고 압박을 하는데, 소원 들어줘야지.

“무슨 일 있었어요?”

“야, 들어 봐. 내가 진짜 얘들 때문에 미치겠어.”

이어지는 말은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가 만든 팬 송이랑 스칼렛 러브. 애들에게 들려줬거든? 나 사실 엔 플라워는 그 곡 진짜 좋아할 줄 알았다?”

저렇게 말하는 거 봐서는 반응이 미묘하게 갈렸던 모양이다. 내심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셉이나 분위기, 가사 내용에서 취향을 크게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일단 루라 포함해서 찬성은 세 명. 두 명은 중립. 나머지는 반대.”

“중립은 또 뭐예요?”

“컨셉이 너무 확 바뀌는 것 같아서 염려된다네.”

음, 그 팀 이제 20대 중반 도

“아, 그런 거라면 인정. 그러면 반대 사유는 또 뭐예요?”

“뭐, 뻔하지. 유치하고 오글거리고 가사도 마음에 안 들고.”

“총체적 난국이네요.”

“일단, 루아 포함한 찬성파 세 명은 무조건 이 곡 밀어야 한다는 입장이야.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충분히 먹힐 수 있다고 본다네.”

“그 멤버가 누구예요?”

“한 명은 리더인 루아. 나머지 두 명은 일본인 멤버인 리사, 소라.

아, 일본인 멤버였어?

반응이 갈린 이유가 확실히 납득이 갔다.

“한 마디로 컨셉에 대한 평이 갈렸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음, 일단 내부적으로 어떻게 결론이 날지 기다려봐야지. 결국 노래를 부르는 건 엔 플라워 친구들이니까.”

이런 점은 또 KM과 다르구나.

그 회사는 소속사에서 결정이 내려지면 좋든 싫든  따라야 했는데.

“만약 그 곡을 안 하기로 마음먹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보관해뒀다가 신인 그룹에게 줘야지. 그 애들에게는 다른 곡 써주고.

그러더니 탄식한다.

“사실 여기서부터 꼬이는 거야. 팀 과반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곡과 컨셉 쓰는 게 절대 쉽지 않거든. 난 사실 스칼렛 러브라면 취향은 크게 갈리긴 하겠지만 워낙 잘 만들어진 곡이라 다들 좋다고 할 줄 알았어. 아, 그런데 이게 이렇게 꼬이네.”

“팀 과반수의 찬성표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네요. 설마 지금까지 곡 선정 방식이 쭉 이런 식이었어요?”

“뭐, 그렇지.”

굉장히 민주적인 시스템이긴 하군.

그만큼 의사 결정도 어렵고, 늦어지는 면이 있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든 장단은 있는 법 아닌가?

“그러면 매트로 보이즈 문제는 뭐예요?”

“하, 그게 말이지.”

***

“어때?”

매트로 보이즈를 모아놓고 곡을 들려준 장진영 대표가 조심스레 물었다.

다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아니, 네가 말 좀 해보라며 무언의 시선으로 책임을 떠미는 분위기였다.

결국 이럴 때 나서게 되는 것이 바로 리더였다.

“이거 피디님이 만든 곡 아니죠?”

“응? 어떻게 알았어?”

“그거야 들어보면 아는 거죠. 누구예요? 혹시 그때 그 친구예요? 그 어린 프로듀서....”

“그래. 민이가 모든 곡이 맞아. 우와, 어떻게 알았어?”

“그때 들었던 두 곡이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데, 그 스타일이 어느 정도 베여 있더라고요.”

“아하.”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다시 팀원들과 눈을 한 번씩 마주친 리더는.

“죄송하지만 이 노래 안 부를래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그래도 역시 실제로 듣게 되니 당황스러운 말을 한다.

“그것보다는 우리가 완성중인 I will miss you에 집중하고 싶어요. 어쨌든 이번에 활동 중지하면 최소 3년은 못 움직이잖아요. 모두 군대 다녀와서 다시 뭉쳐서 활동할 수 있다는 보장도 아직 없고.”

“.......”

“어쩌면 팀 이름으로 발매할 수 있는 마지막 곡이 될지 모르니까. 우리 힘으로 데미를 장식해볼래요. 팬들도 그것을 원할 거예요. 그 동안 영상 소통으로 살짝 정보를 흘렸는데 굉장히 기대하더라고요. 우리가 곡 만들고 있다는 소식에.”

***

“이러더라니까? 아예 빼도 박도 못하게 미리 손을 써놨어. 내가 나중에 다른 말 못하도록.”

“아....”

“마음은 알겠는데... 아, 뭐라고 해야 하나. 너무 분수를 모른다고 해야 하나. 게네들은 그 곡이 일단 발매되기만 하면 팬들이 굉장히 좋아해줄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어. 좋게 말하면 책임감이 있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오만한 거네요.”

“더 솔직히 말하면 주제 파악을 못하는 거지. 개들이 무슨 짓을 해도 좋아하며 지지해주는 극성팬들은 진짜 얼마 없어. 대다수는 회사와 팀이 협력해서 쌓아가고 있는 완성된 모습들을 지지해주는 거라고. 개들 역량만으로 가능했다면 우리가 만류할 이유가 없잖아. 난 오히려 그런 거 좋아하고 적극 지지해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건 맞는 말이지.

당장 나에게 해주는 대우만 봐도....

“지금까지 죽어라 잔소리해도 듣는 척도 안하던 녀석들이... 마지막에 와서 갑자기 이러니 내 입장에서는 정말 미치겠는 거지.”

역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사람을 대하는 일인 것 같다.

특히 장진영 대표처럼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케어해야하는 총괄 프로듀서의 자리는...정말 머리 아픈 일인 것 같다.

난 절대 저런 골치 아픈 일에는 손도 대지 말아야지.

내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도 모르고 장진영 대표는 한참을 하소연하다가 돌아갔다.

누군가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고, 굉장히 움직이기 싫은 얼굴로.

사실 그리 충격적인 일은 아니었다.

스칼렛 러브는 애초부터 중2병 감성이 오글거리고 창피해서 팔기 싫었던 곡이고, 팬 송은 어어? 하는 사이 넘어가 버린 곡이니까.

뭐, 본인들이 알아서 처리할 문제라는 거다.

난 이미 곡을 팔았고 돈도 받았으니 더 이상 신경 쓸 문제는 아니지.

... 라고 생각했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둘~ 셋!”

“New~ Flower”

“안녕하세요! 엔 플라워입니다!”

다음 날 오후.

엔 플라워 아홉 명 전원이 내 작업실에 방문했다.

“사실 우리 모두 어제 작곡가님이 만든 곡을 들어봤어요. 스칼렛 러브요!”

리더, 루아가 나서서 이야기를 시작...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권했다.

“서서 그러지 마시고 일단 앉으시죠.”

“네? 아, 네!”

“다른 분들은 잠깐 기다려 주세요. 의자 좀 가지고 올게요.”

“어? 아, 아니 안 그러셔도 되는데...!”

만류를 뒤로 하고 작업실을 나간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휴대용 의자 몇 개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녹차, 사이다. 오렌지 주스. 어떤 게 좋으세요?”

“작업실에 그런 것도 있어요?”

“우와, 음료수 전용 미니 냉장고도 있네?”

“작업실 참 예쁘다!

“뭔가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어!”

아홉 명이 한 마디씩만 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소란스럽다. 굳이 사양하지 않는 그녀들에게 시원한 캔 음료를 하나씩 돌리고 물었다.

“과자 초콜릿도 좀 드실래요?”

“그런 것도 있어요?”

“네. 어쩌다 보니....”

이건 날 예뻐라 해주는 이정연 팀장님이 사주신 거다.

아예 간이 편의점 수준으로 꾸며 주셨더라.

“관리해야 하는데....”

“먹으면 안 되는데....”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인 간식을 보고 서로 눈치만 보는 그녀들.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 좀 먹는다고 살 안 쪄요. 누가 뭐라고 하면 제가 나서서 막아줄 테니 눈치 볼 필요 없어요.”

그래도 망설이기에 핑계거리를 던져준다.

“제 성의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는 곡 써주고 싶지 않은데....”

“야, 먹자!”

“프로듀서님 성의 무시하면 안 되지!”

“맞아!”

그깟 과자와 초콜릿이 뭐라고....

내친 김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비장의 쿠키 세트까지 꺼내줬다.

분위기가 굉장히 화기애애해졌다.

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 피디님에게 듣긴 했어요. 내부에서 찬반이 갈렸다면서요?”

“그렇다기 보다는 지금까지 시도해본 적 없는 스타일의 음악이라 조심스러워서....”

내 기분을 배려한 탓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한다.

목적이 뻔히 짐작되는데 이래서야 진척만 느릴 뿐이지.

그래서 내가 먼저 대화에 물꼬를 트기로 했다.

“사실 스칼렛 러브가 취향 좀 탈 곡이죠.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가사 내용이나 분위기 같은 것들이 오글거릴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 오늘 저를 찾아오신 게 그런 부분에 대한 수정 요청 때문 아닌가요?”

“네. 맞아요.”

모두가 루아의 대답에 맞춰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어떤 부분을 수정해 드리면 될지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작곡가 입장에서 수정 요청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선까지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노래를 부르게 되는 건 가수이기에.

하지만 자기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수정만 요구하는 경우가 꽤나 많다.

소위 인기 아이돌이라는 이들에게 그런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기획사에서 깔아준 길만을 편하게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팀 내 인기를 발판으로 솔로 데뷔를 계획하는 아이돌 들은 자존심도 세고 싱어 송 라이터 이미지를 챙기고 싶어 하니 더더욱 골칫거리다.

그런 점에서 엔 플라워는 조금 특이한 존재였다.

“전반적으로 사운드가 너무 강해요. 조금 더 부드럽고 심플하게 다듬어줬으면 좋겠어요. 특히 메인 테마의 브라스요!”

“맞아요! 스피커 말고 사람들이 흔히 듣는 헤드폰, 이어폰으로 몇 번 반복해서 듣다 보면 브라스 소리가 너무 강해서 금방 물리는 경향이 있어요!”

요구 사항이 굉장히 명확하다.

음악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갖춘 것은 아닌데, 어떤 파트가 왜 싫은지, 그것을 어떻게 바꿔 줬으면 좋겠는지를 나름 타당한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그러면 작업이 편해지지.

“이렇게요?”

“네! 그리고....!”

내가 요구 사항들을 잘 이해하고 즉석에서 예제를 적용해 보여주니 한 명씩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요구 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었다.

사운드와 가사 다듬기.

어느 새 멤버들은 굉장히 열정적으로 본인들의 요구가 얼마나 중요하고 타당성 있는 내용인지를 어필하고 있었다.

“경험상, 처음부터 임팩트가 너무 강한 곡들은 쉽게 질리고 인기도 금방 시들해지더라고요."

"지금 무슨 느낌이냐면요. 곡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하이라이트 파트가 이어지는 느낌이에요.”

“임펙트는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만 빵 터트리고 그 이전까지는 미니멀하고 감성적인 느낌으로 빌드업을 진행했으면 좋겠어요.”

“보컬 멜로디만 들으면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지나친 편곡과 오글거리는 가사 내용 때문에 도로 쑥 들어가요!”

...축약해서 두 가지라는 거지.

세부적인 사항은 굉장히 많다.

그래도 나는 집중해서 듣고 심지어 메모해서 모니터 주위에 붙여넣기까지 했다.

분명 일리가 있는 지적들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많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런데도 이 처자들은 이야기를 끊을 생각을 않는다.

나도 내일 학교가야 하는데....

시간을 확인보고 적당한 지점에서 끊기로 했다.

“자!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하죠.”

“네?”

“아, 시간이 벌써...!”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데. 큰일 났다!”

그제야 좀 정신이 돌아온 모양.

나도 과하게 몰입한 탓에 지끈거리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말했다.

“일단 오늘 말씀하신 내용들 최대한 정리해서 적용해 볼게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루아의 물음.

이것저것 재보고 대답했다.

“대충 일주일 정도면 될 것 같네요.”

“그렇게 빨리 가능해요?”

빠르다니.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일부러 넉넉하게 부른 건데....

“네. 일주일 후에 연락드릴게요.”

연락처를 주고받고, 코코아 톡 등록까지 끝마쳤다.

멤버들은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요구사항 잘 들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앞으로 자주 찾아 올 게요!"

"오늘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다음에는 간식 사올게요!"

그렇게 엔 플라워 멤버들을 보낸 뒤, 나는 한숨을 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진이 쭉 빠진다.

그건 그렇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라이트 파트만 이어지는 것 같다라....’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래. 확실히 내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겼군.

‘미니멀하고 감성적으로 조금씩 빌드업을 하다가 후반에 꽝 터트리는 방향으로 진행해봐야겠군.’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