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30화 (30/205)

30화. 제안

나와 엔 플라워 아홉 멤버들이 사용하는 단체 채팅 방에 수정된 곡을 던져 버리고 잠을 잤다.

곡에 대한 확신이 없이 에라 모르겠다 지르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결과를 확인할 심산이었다.

... 거절당해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당하는 게 낫지. 지금 당하면 스트레스가 극심할 것 같았거든.

그래서 잠에서 깨자마자 심호흡을 하고.

“자. 어디....”

내용을 확인했다.

결과는.

[ 곡 진짜 좋다! 이거 내 스타일임ㅋ ]

[ 바로 이거지. ]

[ 좋은데? 계속 들어도 안 질려. ]

[ 밸런스가 좋은데? ]

“응?”

내심 바라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 했었던 결과.

“아니, 이렇게 반응이 좋다고?”

만장일치 찬성!

[ 다들 마음에 드나본데, 그러면 이 버전 우리가 가져가서 쓰는 것으로...? ]

[ 찬성. ]

[ 나도! ]

결국 엔 플라워 차기 타이틀 싱글로 선정이 되어버렸다.

음, 정말?!

“........”

그래. 그냥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살다 보면 가끔 의도와 상관없이 일이 진행될 때도 있잖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번에도 그런 거라고 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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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

제일 먼저 기상한 엔 플라워 리더, 루아는 빠르게 방 정리와 샤워를 마친 뒤 멤버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일어나! 아침이야!”

미인은 잠이 많더라니... 루아는 그 말이 한참 잘못된 소리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못 생긴 것들이 잠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뭐?”

“또 아침부터 악담하네.”

“아, 저 언니 진짜....”

갓 잠에서 깬 여덟 명의 새로운 꽃들은 걸걸하거나, 꽉 잠긴 음성을 흘리며 부스스 깨어난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더니 여성 매니저가 들어왔다.

“언니 좋은 아침!”

“모두 일어났네? 루아 네가 깨운 거지? 항상 아침마다 고마워!”

양 손 가득 들고 있는 비닐봉지를 거실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루아가 앉아 있는 소파 옆자리에 앉는다.

“뭐하고 있었어?”

“어제 밤 우리 작곡가님이 톡방에 올려준 음악 듣고 있었지.”

“무슨 음악?”

“저번에 이야기 하지 않았나? 우리 타이틀 곡 스칼렛 러브. 수정 몇 가지 요구한 게 있었는데 어제 밤 공유 받았거든.”

“그랬어? 난 몰랐던 일인데?”

“음? 그래?”

엔 플라워 전담 매니저가 무척 많기에 가끔 이런 식의 소통 오류가 발생하곤 했다.

중요한 일이 아니니 패스!

“곡이 이번에 진짜 잘 뽑혔어. 언니도 한 번 들어 봐!”

혼자 이어폰으로 듣던 음악을, 스피커 모드로 바꿔 다시 처음부터 재생한다.

인트로를 장식하는 무게감 있으면서 어딘가 세련되게 들리는 브라스 연주!

“오....”

이어지는 깔끔하다 못해 심플하게 느껴지는 진행과 사운드가 귓가에 쏙쏙 들어온다.

어느 새 매니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3분 조금 넘는 길이의 곡을 모두 듣고 난 감상은....

“오, 이거 굉장히 걸크러시하게 잘 만들어진 힙합 곡이네. 특히 여성들이 듣기에도 정말 좋은 사운드와 감성이 버무려진 게 마음에 들어!”

“그 표현 좋다. 여성들이 듣기에 정말 좋은 사운드와 감성이 버무려졌다는 거. 사실 원곡이 진짜 거칠고 사운드도 막 빵빵 울리고 중2병 감성도 어마어마하고 그랬거든!”

“그랬어?”

“그것도 나름의 맛이 있어서 난 진짜 좋았는데 몇몇 애들이 질색하더라고. 그런 것 때문에 싫다고.”

“아, 그래서 이런 식으로 바꿔 달라고 너희들이 직접 수정 요청을 한 거야? 대체 원곡이 어쨌기에....”

“그것도 들려줄게!”

그리고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옷을 갖춰 입은 멤버들이 하나씩, 소파를 채워 앉기 시작했다.

“원곡도 와일드하고 좋긴 한데, 확실히 내가 듣기에도 수정된 버전이 너희들에게 정말 잘 맞는 것 같아. 이거 내가 보기에 여자들이 진짜 좋아한다.”

“그치?”

“내가 그것 때문에 수정 요청을 한 거란 말이야!”

“이게 바로 힙합이지! 이전 버전 쓸데없이 힘이 잔뜩 들어갔었다니까?”

“그런데 정말 일주일 만에 우리 요구 사항을 확실하게 반영했어. 실력이 굉장하네.”

어느 새 멤버 아홉 명과 매니저는 수정된 스칼렛 러브에 대한 감상을 열정적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때 알람이 울렸다.

황급히 이를 확인한 매니저가 말했다.

“숍에 갈 시간이다. 빨리 일어나서 가자!”

루아의 눈에 굉장히 신기한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니, 내 생각에 이번 곡이 힙합 음악이긴 하지만 말랑말랑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도 있잖아. 의상을 밝고 화사한 색상보다는 어두운 계통으로 통일해서....”

“아니지. 파워풀하고 로맨틱하게 가야지. 좀 화려해져도 좋을 것 같아. 곡이 굉장히 트렌디하니 그 부분을 강조하는 게 좋지.”

틈만 나면 곡의 컨셉 문제로, 멤버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조수석에 앉아서 그 광경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루아에게, 운전하던 매니저가 속삭이듯 말했다.

“확실히 이번 곡이 좋긴 했나봐. 애들 저렇게 들떠서 열심히 뭔가 하려는 모습 보이는 거 오랜만이잖아.”

듣고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레몬빛 사랑 때 이랬구나.’

장진영 대표가 초안을 만들고, 멤버들이 적극적으로 기획에 참여해 완성한 레몬빛 사랑은 엔 플라워를 탑 티어 반열에 올려준, 굉장히 의미 있는 음악이었다.

‘다들 성공에 대한 의자가 불타올랐던 시절이었지.’

큰 성공을 거두고 나서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어느 순간부터 대화도 사라졌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잠을 좀 자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시간이 벌써 2년 넘게 이어져 왔었는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컨셉 구상하느라 정신이 없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수정된 음악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멤버들의 열정을 자극할 만큼 굉장히 잘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듣기에도 느낌이 굉장히 좋아.’

루아는 리더로서 이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으면, 그래서 유의미한 결과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그래서 김민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 수정 중인 거, 회사에는 알리지 말아주세요. 그 버전으로 우리가 기획을 만들어서 제안을 한 번 해보고 싶거든요. ]

그리고 급히 물었다.

[ 설마 벌써 이미 전달 끝낸 거 아니죠? ]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메시지 확인 표시가 사라지지 않았다.

‘왜 안 읽지? 벌써 시간이 몇 신데....’현재 시간 오후 1시 30분.

김민은 지금 5교시 수업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루아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

5교시, 체육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오니 휴대폰에 중요한 메시지 몇 개가 도착해 있었다.

[ 오늘 끝나고 회사 올 거지? 바로 제 1연습실로 좀 와줄래?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

이건 장진영 대표님 메시지.

[ 엔 플라워 네 번째 미니 앨범 제작 문제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오늘 괜찮으면 회사에서 이야기 좀 할까요? ]

이건 이정연 팀장님.

그리고....

‘엔 플라워 루아?’

개인 톡을 보냈는데, 수정된 스칼렛 러브로 본인들이 기획을 만들어 제안을 하고 싶으니 회사에 알리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오호, 본인들이 한 번 제안을 해보시겠다?

나쁠 것 없지.팀이 본인들의 곡에 그만큼 열정과 애정, 확신도 가지고 있다는 뜻 아닌가?

[ 네. 아직 이야기 안 했으니 그렇게 해보세요. ]

그리고 추가 메시지를 보냈다.

[ 그러면 오늘 밤까지 믹싱, 마스터링 끝내고 자기 전에 보내드릴게요. ]

다음 날아온 메시지에 난 피식 웃었다.

[ 고마워요! 나중에 여유 생기면 따로 소고기 사드릴게요! ]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정연 팀장님부터 만나러 갔다.

나에게 우선순위는 대표님보다는, 항상 세심하게 챙겨주고 먹을 것도 잘 사주는 예쁘고 착한 누나였다.

책상에 앉아 업무에 정신없는 이정연 팀장에게 다가가 말한다.

“저 왔어요.”

“아, 왔어요? 제가 아직 일이 조금 덜 끝나서... 잠깐 작업실에서 기다리고 있을래요? 제가 찾아갈게요.”

“음, 그러면 제 1연습실에서 대표님부터 뵙고 올게요. 제안할 게 있으시다며 오라고 하셔서....”

“아, 그 문제구나. 네. 그러면 그렇게 해요! 제가 그쪽으로 갈 게요.”

방긋 웃는 이정연 팀장님.

대표님의 용건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의문을 품고 제 1연습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 쿵! 쿵! 쿵! 쿵! ]

‘어? 이 음악....’

내가 만들어 준 <시간 있어요?>에 맞춰 댄서들과 함께 안무 연습 중인 장진영 대표가 있었다.

‘벌써 안무가 나왔어?’

회사 업무 때문에 바쁜 사람이... 참 대단도 하셔라.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 연습 광경을 지켜봤다.

근육질의 거구에 팔 다리가 굉장히 길어서 동작이 크고 시원해 보인다.

무엇보다 장진영 대표는 90년대를 주름잡던 최고의 춤꾼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 명성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당시 경쟁자 포지션이었던 이들이 모두 현역에서 은퇴하여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춤꾼이다.

그냥 오래 버텨서 리스팩을 해주는 게 아니라, 실력만 봐도 정말 그렇다.

‘내 안무 시안이 저렇게 바뀌다니... 역시 굉장한 사람이야.’

나의 롤 모델이자 목표이기도 했던 뮤지션 장진영!

그의 본격적인 연습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

심지어 내가 만든 노래 아닌가?

‘내가 제안한 펑크 재즈 기반에 여러 재즈 스타일을 두루두루 접목시켰네. 스윙도 보이고....’

그야말로 재즈 댄스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쏟아 부은 느낌이다.

그래서 굉장히 파워풀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런데 보컬 녹음은 아직 안 했네.’

연습이 더 필요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 쾅! ]

“하아, 하아....”

“10분 휴식!”

“으아아!”

음악이 끝나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 늘어진다.

그만큼 안무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가장 나이가 많은 장진영 대표는 땀에 흠뻑 젖긴 했지만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다.

“역시, 생긴 것뿐만이 아니라 체력도 괴물 같은....”

“뭐?”

“아, 아니요! 안무 굉장히 멋지던데요? 그런데 저거 하면서 라이브 소화하실 수 있겠어요?”

“해야지. 나 정말 이번에 무대 위에서 죽을 각오로 도전할 거야. 그만큼 마음에 드는 곡과 컨셉이라서.”

화제 돌리기 성공!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장진영 대표가 묻는다.

“너 요즘 뭐해?”

“곡 작업 하죠.”

“그것 말고 특별히 하고 있는 건 없는 거지?”

“네.”

“그러면 잘 됐네.”

이어진 장진영 대표의 제안은 나로서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종류의 것이다.

“너 이번에 댄서로 나하고 같이 활동해보자.”

“네?”

“너 아직 제대로 활동해 본 적 없잖아. 이렇게 무대, 방송 경험도 쌓고, 계속 나 따라다니면서 프로듀싱 업무도 배워. 좋은 기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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