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31화 (31/205)

31화. 진정한 재능 (1)

일반적으로 대중 음악계에서 칭하는 프로듀서란, 사실은 편곡가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JJ 엔터테인먼트는 크게 알려진 인기 뮤지션이 매트로 보이즈와 엔 플라워라서 그렇지, 파고 들어가면 라인업이 굉장히 풍부한 편이다.

이들의 편곡을 맡아서 해줘야 하는 것도 계약상 내 업무에 포함된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오호.”

내 노트북에 편곡 자료를 담아 와서 학교에서 작업하는 틈틈이, 최명중에게도 강의를 해줬다. 반지희도 처음에는 조금 관심을 보이더니 아무래도 자기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며 포기 선언을 해버렸다.

“... 이런 식으로 작업하면 편해지는 거지. 이해했어?”

“응. 확실히 알았어.”

가르치면서 알게 된 사실.

최명중은 확실히 비트메이커로서 자질이 있다. 악기 소스를 선택하는 감각도 있고, 어떤 장르든 특징을 한 번 알려주면 확실히 기억하는 머리도 있었다.

프로듀서로서 능력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

학교 끝나고 소속사로 가는 길.

그 어느 때보다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오늘부터 안무 연습이 시작되는구나.’

난 장진영 대표의 댄서 제안을 받아들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생각하기에 크게 두 가지의 장점이 있었다.

장진영 대표의 인맥들과 만나 얼굴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것.

그가 가진 다양한 방송, 공연 활동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는 것!

이 두 가지는 이전 삶에서 내가 배우지 못한 것들이니 더더욱 가치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춤, 춤을 제대로 배울 수 있어.’

나는 춤에 꽤나 자신이 있는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90년대부터 대한민국 최고의 춤꾼으로 꼽혔던 장진영 대표에 비할 바는 아니다.

심지어 그는 2000년대부터는 안무가로서도 맹활약을 보여온 사람이었다. 배울 게 굉장히 많고, 나조차 모르고 있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기회다.

회사 도착 시간은 오후 네 시.

연습은 저녁 식사 이후 일곱 시 정각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그때가 아니면 시간이 없었다. 장진영 대표나 나나 각자 업무가 있는 사람이기에.

나는 제일 먼저 이정연 팀장 자리로 향했다.

“어제 못했던 이야기 하러 왔어요.”

“아, 잠깐 기다려요. 진짜 곧 끝나요.”

원래 어제 뭔가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는데, 장진영 대표와의 대화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오늘로 미뤄졌다.

엄청난 손놀림으로 문서 여백을 채워나간 이정연 팀장은 누군가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끝났다! 우리 카페테리아 가서 뭐라도 좀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할까요?”

그녀와 카페테리아로 가는 길.

“어? 어디가세요 정연 씨?”

그 인간과 마주쳤다.

그 티꺼운 아저씨.

이름이 뭐더라? 강, 강....

“안녕하세요. 민철 씨. 여기 민이 씨와 함께 카페테리아 가는 중이예요.”

맞아. 강민철.

매트로 보이즈 곡 몇 번 써줬다는 전속 프로듀서.

그는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요? 그러면 저도 같이 가요!”

뭐? 누구 마음대로?

한 마디 하려는 찰나.

“죄송하지만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자리는 다음 기회에 마련해 볼게요. 업무 상 중요한 논의를 하려는 거라서요.”

그렇게 말하는 이정연 팀장의 얼굴에는 싸늘한 카리스마가 가득하다.

“네? 네에. 그,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죠.”

그는 민망할 얼굴로 대답한 뒤, 물러서기 전 나를 슥 째려본다.

괜히 까이고 민망하니 나한테 지랄이네.

확 눈알을 뽑아버릴까 그냥... 내가 만만히 보이나?

나는 무난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정연 팀장은 레몬 에이드 한잔을 주문한 뒤, 창가 자리에 들고와 앉았다.

위치상으로 깊은 이야기를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곳이다.

그녀는 음료를 한 모금 들이킨 뒤 어제 못 다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엔 플라워 미니 앨범 제작 문제로 대화 좀 하자고 했었죠? 사실 곡 하나를 더 부탁하고 싶어요. 원래 예정하고 있던 곡들이 몇 개 있었는데 갑자기 등장한 스칼렛 러브와 어울리는 곡이 없어서요.”

“원래 어떤 스타일의 곡을 준비하셨었죠?”

“ 라는 제목의 곡이었는데, 사랑에 의문과 환상을 가진 소녀들의 귀여운 망상을 녹여낸 댄스곡이죠.”

아, 기억났다.

엔 플라워에 이름값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나름 준수한 성적을 거둔 곡이었다.

장진영 대표가 만들었고, 엔 플라워가 지켜본 청순 큐티 컨셉이 제대로 녹아 들어 있었지.

멜로디에 뽕끼가 가득하고 사이드 체인을 걸어 놓은 베이스가 꿀렁 꿀렁 쳐주는 맛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선호했던 곡이다.

“개인적으로 그 곡도 참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스칼렛 러브의 분위기가 워낙 독특한 면이 있으니 거기에 맞는 곡과 주제로 트랙을 재구성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스칼렛 러브 분위기가 맞는 수록곡이라.”

말을 듣는 순간 몇 가지 키워드가 떠올랐다.

‘힙합과 808 베이스.’

그리고 굉장히 미니멀한 구성으로 감성 빌드업을 진행하는 편곡!

‘이게 가장 중요하지.’

왜냐면 그것이 바로 엔 플라워 멤버들이 좋아하는 느낌이니까!

‘... 이런 구성의 힙합 음악인데, 약간 트로트 느낌의 멜로디를 가미해 볼까?’

그러니까 이런 거지.

사운드는 그녀들이 추구하는 미니멀한 힙합으로.

멜로디는 굉장히 한국적인 트로트 느낌으로.

여기까지, 키워드가 완성되자 몇 가지 악상이 떠올랐다.

영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녹음 모드 on!

“음음음~ 나나나~”

그 자리에서 웅얼대며 녹음을 시작한다.

멜로디먼저.

그리고 그 위에 비트 박스로 드럼 리듬을.

‘오, 이걸 작업실에 가져가서 잘 풀면 꽤 멋진 곡이 나올 것 같은...데?’

혼자 신이 나서 계획을 정리하다가, 날 향한 시선을 느끼고 정신줄을 되찾았다.

이정연 팀장이 바로 코앞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 거리는 눈동자로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곡 만든 거죠? 저 그런 식으로 악곡 구상하는 거 처음 봐요!”

“그래요?”

보통 작곡가들 이런 식으로 많이 하지 않나?

“어떤 식으로 만들 거예요? 간략하게라도 알려줄 수 있어요?”

“어....”

어떻게 말해야할까?

일단 편곡된 스칼렛 러브와 연관된 이야기는 빼는 게 좋겠지? 본인들이 기획까지 짜서 역 제안을 할 예정이라고 했으니.

“일단, 사운드는 외국 힙합 스타일로 만들 건데, 베이스 셋을 808로 쓸 거예요. 뭔지 아시죠?”

“외국 힙합 음악에서 많이 사용되는 악기죠?”

“거의 치즈와 버터 수준으로 그네들에게는 익숙한 사운드예요. 아무튼 중요한 건 이거죠. 외국적인 사운드에 한국적인 트로트 멜로디를 입히는 거죠. 그렇다고 진짜 무슨 힙합 뽕짝을 만들겠다는 건 아니고요. 감이 오시죠?”

“외국적인 힙합 사운드에 한국정적인 멜로디라....”

그녀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도 꽤나 재미있는 곡이 되겠어요.”

“중요한 건 이 노래를 수준급의 가창력과 랩 실력을 갖춘 엔 플라워가 부른다는 거죠.”

난 씩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힙합과 트로트가 절묘하게 믹스된, 굉장히 재미있는 리듬과 사운드의 음악이 될 거예요.”

@

난 트로트를 꽤나 좋아한다.

이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어머니는 식당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트로트 음악을 신명 나게 틀어 놓고 흥얼대며 일을 하셨고, 아버지가 혼자, 혹은 가족을 태우고 운전할 때 언제나 트로트 음악을 크게 틀어 놓으셨다.

두 분은 음악적 취향도 분명하다.

어머니는 엘레지, 블루스, 발라드 트로트 같은 분위기 있는 음악을.

아버지는 록, 댄스 트로트처럼 신나게 목청 높여 부를 수 있는 음악을.

솔직히 말하면 음악 그 자체보다는, 힘들고 고된 일상 속에서, 노래에 감상하고 부를 때만큼은 즐거워하는 두 분의 모습을 좋아했다.

이것이 내가 음악을 사랑하게 된 계기.

결국 내 음악 인생의 시작은 부모님이 사랑하는 트로트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트로트를 만들어서 팔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아예 작업 시도 자체를 안했다.

정말 온갖 장르를 다 만들었는데, 심지어 애니메이션 주제가도 만든 적이 있었는데... 참 이상한 일이지?

이번에는 트로트도 한 번 진지하게 만들어 볼까?

취향 떠나.

우리 나라에서 모든 장르 음악 중 가장 돈 되는 게 바로 트로트라던데....

키워드와 구상이 다 잡혔으니 비트를 찍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먼저 BPM은 아이돌 음악 치고 조금 느린 130으로 설정.

808킥 드럼과 베이스 등으로 기본적인 비트를 완성한 뒤 바로 이어서 가이드 녹음을 했다.

카페테리아에서 휴대폰에 녹음했던 멜로디 라인을 따서, 기분대로 흥얼거려본다.

그렇게 완성된 멜로디를 다시 재생해보니 엘레지(elegy)하다.

이렇게 되면 힙합과 엘레지 트로트의 결합이 되는 건가?

그렇다면 가사도 이 느낌을 따라가 줘야지!

스칼렛 러브가 연인의 배신에 분노하는 노래였던가?

이 노래는 그 이후의 슬픔, 고통, 아픔을 혼자서 감내하는 내용으로 연결되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제목은 뻔하지.

“엘레지(Elegy)가 좋겠군.”@

여섯시 정각.

[ 저녁 식사 같이 하자. 너 순대국밥 좋아하니? ]

장진영 대표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마침 배고프던 참이었기에 냉큼 답장을 보냈다.

[ 없어서 못 먹죠. ]

[ 그래? 잘 됐다. 기가 막히게 하는 집 알고 있거든. ]

이것이 순대국밥 빌런의 탄생이었다.

싫어한다고 대답했어야 했는데...!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연습실로 돌아왔다.

“오늘은 그냥 지켜보기만 해.”

“네?”

장진영 대표가 의미심장한 미소로 말했다.

“안무가 꽤 복잡해졌거든. 외우는 게 쉽지 않을 거야.”

그렇게 시작된 연습.

어제 보긴 했지만, 확실히 동작이 복잡하고 전반적으로 난이도가 상승했다. 내가 짠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훌륭하다.

춤에 웬만한 자신 있는 사람이라도, 단번에 습득하는 건 불가능한 난이도였다.

하지만....

“.......”

첫 번째 안무가 끝나고.

바로 이어진 두 번째 연습 때 조용히 대열에 끼어들었다.

댄서들이 놀란 표정이지만.

“할 수 있겠어?”

장진영 대표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난 대답 대신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그의 고개가 끄덕여진 순간, <시간 있어요?>가 울려 퍼진다.

비트와 함께 내 몸이 움직인다.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외워버린 동작들을 완벽히 재현해낸다.

“......!”

그 광경을 목격한 모든 이들이 경악한다. 이번에는 장진영 대표도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굉장히 당연하고,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한 번 본 동작은 완벽히 외워 따라할 수 있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곡이 끝났을 때.

“........”

연습실에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날 괴물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장진영 대표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외우는 게 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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