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37화 (37/205)

37화. 새로운 인연.

이번 <시간 있어요?>작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이익을 말하자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뮤직 비디오를 담당해 주신 정상구 감독님.

안무를 담당해 준 레드 스켈레톤의 백종훈 단장님.

바로 두 분과 친분이 깊어졌다는 것.

춤과 영상, 각자의 분야에서 국내 톱이고, 이후로도 계속 그 자리를 지켜나갈 분들이다.

그런데 이런 걸 떠나서 굉장히 좋은 분들이다.

나에 대해 아무 편견을 갖지 않고 날 인정해주셨고, 더 나은 쓰임새를 위해 고민해 주셨으니까.

그래서 더 친분을 다지고 싶은 마음에, 내가 먼저 다가가 연락처 교환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대표님은 아무래도 내가 두 분과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셨던 모양이다.

[ 너도 오늘 저녁은 우리 집에서 저녁 식사 같이 하자. 정상구 감독님, 백종훈 단장도 참석할 거야. ]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날 난 처음으로 청담동, 한강 조망의 최고급 빌라에 입성할 수 있었다.

@

“와, 집 굉장히 좋은데... 이런 곳에서 혼자 사는 거예요?”

“말 그대로 화려한 싱글이네요.”

감독님과 단장님은 말이라도 할 여력이 있나보다.

나는 어마어마한 집 내부 풍경에 놀라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있는데.

대체 얼마나 벌어야 이런 엄청나게 호화스러운 집에서 혼자 살 수 있는 걸까?

참고로, 장진영 대표는 원래 결혼을 했었는데 아이 없이 부인과 살다가 이혼한 전례가 있다.

당시 신혼집이 지금 이 집은 아니었지만 그때도 굉장히 호화스러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톱스타의 결혼은 언제나 떠들썩하고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는 법 아니겠나?

아무튼... 부럽다!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직접 만들어봤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어서 드세요!”

“우와... 잘 먹을게요!”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정도로 뭔가 많이 차려졌네요!”

말 그대로.식탁도 굉장히 호화스러웠다.

티본스테이크에, 연어 샐러드에... 어우야.

식사를 마친 뒤 커피와 차를 한 잔 마시며 장진영 대표가 슬쩍 운을 띄웠다.

“이제 슬슬 너도 앨범 발매 준비 해야지?”

“오, 정말이에요?”

“민이도 앨범을 내요?”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한다.

나도 놀란 얼굴로 물었다.

“혹시 대략적인 활동 일정 정해졌어요?”

“응. <시간 있어요?> 활동 끝나면 조금 텀을 두고 너하고 네 앨범을 런칭할 계획이야.”

“아....”

심장이 두근거린다.

장진영 대표가 슥 웃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그러니 지금부터 미리 작업 들어가야지. 뮤직비디오라든가.”

정상구 감독님을 한 번 보고.

“안무라든가.”

이어 백종훈 단장님도 한 번 보고.

진위를 파악한 두 분이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보고 뮤직 비디오 만들어 달라고?”

“민이 데뷔곡이 댄스 음악이에요.”

“일단 두 분 섭외하고 싶은 건 맞고, 댄스... 곡은 아닌데 일단 들어보시겠어요?”

“그야 물론이죠! 어서 들어봅시다.”

“궁금하네요. 본인 데뷔 앨범은 어떤 식으로 만들었을지.”

들뜬 두 사람에게 장진영 대표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간다.

“듣는 순간 작업 맡아 주셔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알겠으니 어서 들어보자니까요?”

“빨리 틀어주세요. 궁금해서 미치겠네.”

두 사람은 이미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덩달아 기분이 들뜬 나도 장진영 대표를 바라본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김민 데뷔 앨범. 비공개 음악 감상회 시작하겠습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과 <별빛의 숲>이 연이어 울려 퍼진다.

집안 음향 시스템이 굉장히 호화스럽게 구성되어 있었는데, 스튜디오에서 듣는 모니터링 전용 스피커가 아닌, 수억 짜리 음악 감상용 스피커로 듣는 내 노래는 나에게도 새로웠다.

나도 돈 많이 벌어서 이런 집에 최고의 하이파이 시스템을 갖춰놓고 살고 싶어!

음악이 이어지는 내내 대표님을 비롯한 세 분은 진지하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괜히 나 혼자 긴장하며 반응을 주시했다.

그렇게 두 곡이 모두 끝나자.

“어이구...!”

“와...!”

두 분이 묘한 감탄사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장진영 대표는 슥 웃으며 물었다.

“소감이 어때요? 뜰 것 같아요?”

“시장 반응은 모르겠고, 민이가 음악 천재라는 건 알겠어.”

“춤뿐만 아니라 음악 만들고 부르는 것도 천재적이었네요. 아니, 어떻게 이런 캐릭터가 현실에 존재할 수 있지? 심지어 굉장히 예쁘게 잘 생겼잖아.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했단 말이야?!”

마지막 백종훈 단장의 감상은 약간 주접이 담겨 있지만... 어쨌든 내게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장진영 대표도 덩달아 들떠서 주접을 시작한다.

“음악 진짜 좋죠? 저 사실 혼자 있을 때 이 앨범만 들어요. 내가 팬이 되어 버렸다니까?”

“이 곡이 왜 좋냐면, 처음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그림들이 쫙 펼쳐지더라니까? 한여름 밤의 꿈과 낭만. 이런 거 있잖아! 나 그런 느낌 굉장히 좋아하거든!”

“첫 곡에 안무가 필요한 거죠? 곡 보내주시면 제가 오늘 바로 가서 팀원들과 함께 구상해볼게요. 아니, 그런데 작업 여부를 떠나 곡이 진짜 좋다. 노래도 굉장히 맑고 투명하고....”

날 향한 두 분의 시선이 점점 심상치 않게 변했다.

영상과 안무.

각자 분야에서 최고의 역량을 지닌 두 분이 작업을 맡아준다면 내 입장에서야 감사할 따름이지!

@

저녁 식사를 기점으로 나와 두 분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정상구 감독님의 경우.

[ 민아. 이런 그림 어떠냐? 그러니까 처음에.... ]

뭔가 영감이 떠오르면 그것을 문자로 마구 늘어놓으신다.

시도 때도 없이!

[ 민아 보고 있지? ]

[ 네. 물론이죠. 계속 보고 있어요! ]

[ 아니, 1 지워지는 게 늦어서 혹시나 했어. ]

[ 수업중이라서 그래요.ㅋㅋㅋ ]

[ 아, 그렇구나. 아무튼...! ]

수업 중이라고 말을 했는데도 이 양반은 절대 개의치 않는다.

어마어마한 투머치였다.

... 대표님 설마 귀찮아서 나한테 떠넘긴 거 아니겠지?

백종훈 단장님의 경우.

[ 우리 사실 이번 활동 끝나면 바로 댄스 대회 참가할 예정이었거든. ]

[ Body Rock이라고. 미국에서 열리는 굉장히 권위 있고 유명한 댄스 대회인데... 혹시 들어봤어? ]

[ 안무도 다 나와서 연습 중이야. 영상 보여줄까? ]

[ 아니, 그럴 게 아니라 오늘 우리 연습실에 와. 직접 보여줄게! ]

뭔가, 계속 미심쩍은 떡밥을 투척해서 날 낚으려고 한다.

속셈이 빤히 보이긴 하지만 싫지는 않다.

Body Rock라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댄스 대회였고, 나 역시 춤을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백종훈 단장님과 레드 스켈레톤 팀이라면 앞으로 꾸준히 도움을 받고 싶은 곳이기도 하니, 이 기회에 빚이라도 지워주면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뭐, 기껏해야 춤 출 때 쓸 음악 좀 봐달라는 거겠지?

“우리 레드 스켈레톤 연습실에 신인 가수 김민 님이 방문해주셨습니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확실히 내가 좋은 인상을 심어주긴 했나보다.

댄스 팀 레드 스켈레톤 전원이 날 반겨줬다.

다들 연습하고, 뮤직 비디오 촬영하며 친해진 형, 누나들이었기에 나 역시 기꺼이 어울렸다.

백종훈 단장님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자, 여러분. 지금 시각 오후 네 시 삼십분! 저녁 식사까지 여유가 있으니 손님맞이 공연 한 번 해봅시다. 준비 됐습니까?!”

“됐습니다!”

우렁찬 대답!

당황한 나를 의자까지 끌어와 앉혀두고, 그 앞에서 공연을 시작한다.

얼반 댄스. 나중에는 코레오그래피라는 용어로 불리게 되는 이 장르는 모든 춤 장르를 포용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크리에이티브야 말로 이 장르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는 퍼포먼스는 춤추는 흑마술사와, 그가 부리는 댄싱 스켈레톤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초에 검은 로브를 둘러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흑마법사가 등장하더니 마법을 부려 다양한 비주얼 연출과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이후 스켈레톤을 하나씩 소환해서 점점 거대한 군무 형태로 만드는데, 여기서 얼반 댄스, 코레오그래피 장르 특성이 굉장히 살아난다.

소환된 스켈레톤들은 처음에는 비보잉, 재즈, 발레, 파핑, 락킹 등을 선보인다.

그러다 서로의 영향을 받아 각자의 장르를 흉내 내더니, 결국에는 이 모든 장르를 섞어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인 뒤, 결말에서 모두 만족하고 승천한다.

“어때?”

그야말로 최선을 다한 멋진 퍼포먼스.

난 주저 없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정말 최고였어요! 역시 가수들에게 짜주는 일반적인 방송 안무하고는 급 자체가 다르네요! 그걸 코레오그레피라고 부르죠?”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제가 전문 댄서는 아니지만 춤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잘 알아요!”

내 대답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다들 만족한 표정.

백종현 단장이 묘한 미소로 내게 묻는다.

“너 한 번 보면 춤 모두 따라할 수 있다고 했지? 이것도 할 수 있겠어?”

“네?”

“빨리 대답해 봐. 지금 보여준 안무. 다 외웠어?”

“그야 뭐....”

“그러면 같이 한 번 해보자.”

“지금 바로요?”“왜, 문제 있어?”

내가 문제가 아니라 댄서들의 체력이....

“빨리 와. 같이 해보자!”

“아니, 그런데 아무리 천재라도... 이런 것도 한 번 보고 딸 수 있다고? 그게 말이 되나?”

“궁금해서라도 한 번 더 해봐야겠네.”

... 음, 별 문제 없나보다.

그래서 대열에 합류.

바로 음악에 맞춰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댄싱 스켈레톤의 TO가 없었던 관계로, 나는 파핑 스켈레톤을 카피했다.

“와. 말도 안 돼!”

“진짜 하나도 안 틀리고 똑같이 따라했어!”

“이런 말 미안한데 파핑 스켈레톤... 재현보다 더 잘한 것 같지 않니?”

“어, 나도 보면서 소름 돋았어. 나한테만 그림자가 붙었는데, 나보다 더 잘해!”

“그림자? 양심 있으면 거울 좀 확인해보시지. 그냥 형제라고 하자.”

“아, 인정!”

웃음이 터져 나온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진한 결속력이 나 역시 마음껏 웃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백종훈 단장이 내 앞에 주저앉으며 물었다.

“이 퍼포먼스의 완성도를 어떻게 해야 더 끌어올릴 수 있을까?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

아니, 왜 갑자기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그러나 백종훈 단장의 얼굴은 한없이 진지했다.

그제야, 그의 눈빛 한편에 담겨 있는 절박함이 보였다.

이런 퍼포먼스를 만들어 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만과, 불안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실마리라도 얻고 싶은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

쏟아지는 시선, 그 속에 담긴 관심과 기대감이 조금 부담스럽다.

하지만....

“저라면 이렇게 바꿀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예를 들면....”

마침 떠오르는 게 있으니... 난 천천히 그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