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38화 (38/205)

38화. 입봉작 (1)

땀을 많이 흘린 탓일까.

아니면 평상시 안 쓰던 두뇌 분위를 풀가동 시킨 탓일까.

당이 많이 떨어진 느낌에 편의점으로 가서 초콜릿과 달콤한 음료수 하나를 구입했다.

바깥 자리에 앉아, 도로 위를 달리는 차를 보며 생각했다.

... 간만에 너무 신나서 지나치게 나댄 것 같은데?

아주 소설을 한바탕 풀고 온 기분이다.

내가 뭐라고 전문 댄서들에게 감히 조언 질을....

왠지, 당분간은 이불 킥을 맹연습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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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이 떠난 뒤, 백종훈 단장은 팀원들에게 진지 물었다.

“너희들 생각하기에는 어떤 것 같아?”

“진짜 천재죠.”

“아니, 쟤 심지어 본업이 작곡가 겸 가수잖아요. 그런데 또 어지간한 아이돌 비주얼 센터보다 예쁘고 잘 생겼어. 현실 속에 나타난 만화 캐릭터 같은 느낌이에요.”

“착한 것 같으면서 당돌하고 성격도 좀 있어 보이고... 그래서 좋던데.”

사방에서 쏟아지는 평가 질에 백종훈 단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 거 말고 이 녀석들아. 민아가 내놓은 아이디어. 어떤 것 같냐고.”

“아, 그....”

“감동이 부족하다는 이야기 말이죠?”

“뭐, 듣고 보니 공감이 가던....”

[ 한창 물이 올랐는데, 마무리 제대로 안 하고 끝낸 느낌이 들어요. 스토리텔링 하려면 끝까지 좀 잘해야죠. 지금은 전반적으로 너무 어수선해요. 흑마술사와 스켈레톤의 설정, 퍼포먼스 등을 다시 한 번 정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

당연히 춤에 대한 지적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정말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었지.’

그런데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자신들의 퍼포먼스는 종합 예술작품을 표방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캐릭터 설정과 시나리오가 허접하다는 지적이었으니....

‘이건 받아들여야겠지?’

심지어 김민은 지적에서 끝내지 않고, 나름의 해결안도 제안했다.

[ 제 생각에는, 시나리오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를 ‘미련’으로 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

‘미련.’

[ 흑마술사가 어째서 댄싱 스켈레톤을 깨워서 함께 춤을 추었는지, 이들과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

‘미련에 대한 이유.’

[ 이 미련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앞뒤를 다시 짜맞춰보면 꽤 좋은 해답이 나올 것 같단 말이죠. ]

“.......”

백종훈 단장이 눈을 빛냈다.

“다들 모여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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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왜 말 안 했어?”

반지희를 비롯해 여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엔 플라워 수록곡 작업에 몰입해 있었기에, 일단 트랙을 저장, 보안을 위해 노트북을 닫은 뒤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거!”

반지희는 뭔가 뿔이 잔뜩 난 얼굴로 영상을 보여준다.

그곳에 뉴욕 재즈에서, 클래식 수트를 입은 채 재즈 피아노를 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이어,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

<시간 있어요?> 인트로가 한창 연주되더니 나와 장진영 대표가 신나게 춤을 춘다.

그리고 후렴구 한 소절을 부르고 영상 종료.

뭐야, 티저 영상이 나온 건가?

반지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이 정도면 그냥 댄서가 아니라 거의 주연 급인데? 너 왜 나한테 사기 쳤어? 얼마 나오지도 않을 거라더니!”“나도 몰랐어. 현장에서 감독님이 이것저것 몇 가지 시켜보시더니 갑자기 시퀀스를 바꿔 버린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데?”

“아, 그게....”

간단히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이 학생들이 하나 둘씩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다들 <시간 있어요?> 티저 영상을 보고 몰려온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다음 수업 시간 때도 이어졌다.

“선생님! 김민 뮤직 비디오 출연했어요!”

“오, 정말? 어디?”

내가 보기에는 신기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수업을 좀 농땡이 부리고 싶어서 수작 부리는 것 같은데....

아무튼 매 수업 시간마다 이러니 점심시간 때는 학교 전체에 퍼졌다. 심지어 어떤 반에서는 TV로 티저 영상을 계속 틀어 놓고 있다더라.

같은 학교 친구가 굉장히 유명한 뮤지션 신곡 뮤직 비디오에 주연 급으로 나온다니 기대감이 커졌던 모양.

심지어.

“너희들 그거 알아? 저 음악 민이가 만든 거야!”

“오, 정말?”

“맞다. 아이돌이 아니라 프로듀서로 들어갔다고 했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벌써 곡을 쓴다고? 심지어 장진영 싱글...?”

하여튼 반지희 얘는 주접이다.

그래도 밉지는 않았다.

저런 행동 자체가 나를 정말 친구로서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

더불어 휴대폰 채팅창도 지금 불이 날 지경이다.

문 라이트, 엔 플라워. 그리고 레드 스켈레톤 형들 까지.

티저 뜬 거 확인했다며, 정말 잘 뽑힌 것 같으니 좋은 성적도 기대된다는 내용의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정말 이번 생 첫 입봉이 코앞에 다가왔구나!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하니 가슴이 떨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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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중 쉬는 시간.

땀으로 흠뻑 젖은 장진영 대표가 물병을 건네며 물었다.

“티저 봤지?”

“네.”

“반응도 봤어? 댓글 같은 거.”

“아....”

차마 못 보겠더라.

이건 전생 영향이다.

인터넷에 내 이름만 검색하면 온갖 쌍욕에... 뮤튜버 렉카들도 뭔가 아쉬우면 괜히 날 언급해서 조회 수 올리는 용도로 써먹을 정도였으니.

솔직히 말하면 난 댓글이 무섭다.

내가 주저하자 장진영 대표가 진지하게 묻는다.

“왜, 무서워?”

“무섭다기 보다는... 꺼려지네요.”

아니, 사실은 무섭다.

수많은 청중 앞에 서는 것 이상으로 두렵고 무섭다.

장진영 대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그럴 수 있지. 이해해. 사실은 나도 그럴 때가 많으니까.”

“대표님도요?”

이건 의외다.

“멘탈이 엄청 강하신 줄 알았는데요.”

“처음에는 분명 그랬지. 그런데 욕이 튼튼한 내 정신과 육체를 계속 마모시켜. 육체 내구도랑 똑같아. 강철의 몸을 지닌 격투선수도, 한두 방씩 맞다보면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잖아?”

“그렇죠.”

“멘탈도 똑같아. 심지어 이 쪽은 변칙 공격도 굉장히 많아. 진짜 누구라도 버틸 수가 없어. 마음 같아서는 아예 안 보고 내 일에만 전념하고 싶은데 난 회사 대표라 그럴 수도 없어. 심지어 우리 아티스트들 것 까지도 내가 보고 조언 해줘야해. 이게 참 힘들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아예 인터넷 댓글을 안 보고 내 이름도 검색 안하는 방법. 그리고 끝까지 맞서는 방법.”

“........”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말은 못해주겠다. 각자 장단이 있거든. 하지만 분명한 건 있어. 네가 정말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고 싶고 잘되고 싶다면 이런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갑자기 회귀 이전의 삶이 떠오른다.

난 계속 도망치기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뭐....

하지만 회귀 후, 이를 악물고 하나씩 맞서기 시작했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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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뮤튜브 오피셜 티저 댓글을 확인했다.

[ 오, 이번 곡 뭔가 느낌 색다르네. ]

[ 이번에는 스윙인가? 처음에 빅밴드의 스윙 재즈에 일렉트로 스윙으로 바뀌는 것 같은데... 초반 재즈 피아노도 좋다. 곡 기대 됨! ]

[ 오오, 내가 좋아하는 뉴욕 블루노트 재즈 클럽 느낌이 살아 있어! ]

“.......”

쭉 읽어 내리며 하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나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당연했다.

내가 뮤직 비디오 주인공도 아니고....

주인공보다 더 주목받는 조연은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아직은 티저일 뿐이라, 곡에 대한 자세한 평가도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 지금까지 긴장하고 있었던 게 바보 같다.

이후부터는 편한 마음으로 댓글과 커뮤니티 반응을 확인했다.

현 시점에서 독특한 장르의 댄스 음악과 컨셉이 나온다는 것에 대부분은 호감을 가지고 있다.

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극히 소수.

‘그나저나, 확실히 인기 아이돌 티저에 비하면 반응이 조금 아쉽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왕성하게 현역으로 활동 중이고, 이후로도 차트 등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게 되지만 가수로서는 이미 전성기가 지났다.

‘요즘 세대에는 가수보다는 유명 가수, 아이돌들의 프로듀서로 더 유명하지.’

휴대폰을 접고 머릿속을 비웠다.

‘지금 걱정해봐야 심력 낭비일 뿐이지.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냥 잘 되기를 빌자.’

그 다음 날도 <시간 있어요?> 안무 연습을 진행했다.

“난 오늘 좀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민아. 네가 책임지고 불 끄고 문단속 좀 하고가. 알았지?”

“네!”

장진영 대표가 자리를 벗어나자 눈치만 보던 백종훈 단장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시간 좀 있어?”

“네? 아, 물론이죠. 무슨 일이예요?”

“안무 수정 좀 했거든. 그것 좀 봐달라고.”

그의 눈에 얼핏 광기가 보인다.

아니, 이렇게 지쳐 쓰러지도록 연습해놓고, 또 무언가를 보여주겠다고?

‘춤에 대한 열정이 정말....’

“네. 한 번 보여주시죠.”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단 연출부터가 달라졌다.

오리지널 버전은 흑마술사가 밑도 끝도 없이 댄싱 스켈레톤을 일으켜 함께 춤추고 끝이었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시나리오, 연출이 잡혀 있었다.

함께 춤을 추고 공연하던 이들이 귀족의 무도회에 초청 받았다. 그러나 악독한 귀족은 여자 단원을 마음에 들어 해 끌고 가려고 했고, 단원들이 그것을 저지하다가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겨우 살아난 단원 한 명은 복수를 다짐하며 금지된 흑마술에 손을 대고, 단원들의 무덤으로 가서 그들의 시체를 일으킨다.

그런데 자신이 일으킨 동료들의 시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

공격을 지시해도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죽임을 당했던 여자 단원 스켈레톤이 다가와 손을 잡고, 귀족 앞에서 보여줬던 춤을 천천히 선보인다. 이어 단원들도 함께 춤을 춘다.

복수를 꿈꾸며 흑마술사가 되었던 남자는 처음에는 분노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결국 함께 어울려 한바탕 춤을 춘다.

여기서 복수를 의미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뒷내용이 이어진다.

남자의 동료들을 죽였던 귀족이, 다른 무희들을 상대로 똑같은 짓을 하려다가 암살을 당한 것이다. 알고 보니 암살에 성공한 무희들은 과거 이미 같은 비극을 경험한 전적이 있었다.

복수를 위해 오늘까지 칼을 갈았던 것!

그렇게 한편의 연극과도 같았던 댄싱 뮤지컬이 끝마쳤고.

“와아아아!”

나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쳤다.

“어때? 괜찮았어?”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진짜 기승전결 완벽했고 감동적이었어요! 여기에 스타일링 제대로 꾸미고, 무대 아트도 곁들인다면 정말 한 편의 멋진 작품이 될 것 같네요!”

백종훈 단장과 모두의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런데 문제가 있어.”

“네? 무슨 문제요?”

“음악이 조금 아쉬워서. 일단 내가 어떻게든 리믹스를 해보긴 했는데...너무 허접하잖아.”

“아니,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었는데....”

“이왕이면 노래도 들어가면 좋을 것 같고, 그, 왜! 디즈니 뮤지컬처럼!”

“........”

욕심 많은 아저씨네.

이제 보니 용건이 뻔했다.

본인들의 퍼포먼스에 아이디어를 제안한 나에게 일종의 컨펌을 받고, 통과 되면 곡 제작을 부탁하려던 속셈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오늘 연습부터 눈치를 보더라니!

“뭐, 좋아요. 까짓것, 그 정도는 서비스 해드리죠!”

“오오! 고마워!”

“김민! 김민! 김민!”

난리도 아니다.

내 손을 붙잡고, 헤드 락을 걸고 푸들 마냥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나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물었다.

“그런데 노래는 누가 불러요? 아는 사람 있어요?”

“.......”

그런데 모두가 날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설마....

“저보고 부르라고요?”

“응.”

“네가 만든 곡이니 끝까지 책임져야지!”

“네 앨범 계속 듣고 있는데, 야, 솔직히 내 주위에서 자기가 보컬리스트랍시고 깝치는 애들은 많은데 너만한 실력자는 없어.”

“민이가 불러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헐.”

어이가 없지만, 생각해 보니 굳이 보컬을 영입해서 쓰면 돈도, 시간도 그만큼 소비될 뿐이니 저들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내 입장에서도 작업 한 번에 끝낼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좋아요. 대신 제 안무. 정말 힘 팍 줘서 멋지게 만들어 주셔야 해요! 아셨죠?”

“그건 당연하지!”

“야, 걱정 하지마. 솔로 가수 역사상 최고의 무대로 만들어줄게!”

저희들끼리 환호하는 단원들을 뒤로하고, 백종훈 단장이 다가와 슬그머니 속삭였다.

“민아. 내가 곡비는 꼭 챙겨줄게.”

“어? 정말요?”

“뭐? 야, 아무리 그래도 설마 내가 공짜로 부탁하려고 했을까?”

“전 상관없는데요. 그것보다 제 무대 신경 좀 써줘요. 혹시라도 세계 대회 우승하면 제가 정말 헌신적으로 서포터 해줬다는 거 꼭 언급해주시고. 그러면 돼요.”

기가 막히다는 듯, 백종훈 단장이 내게 물었다.

“정말 돈 안 받아도 돼? 필요 없어?”

“네.”

그깟 곡비 보다야 최고의 안무 팀과 친분을 다질 수 있다면 그게 훨씬 이익이다.

내가 이번 한 번만 춤추고 노래 부를 것도 아닌데....

“아냐. 그래도 최소한의 돈이라도 줘야지. 그래야 나중에 뒷말이 안 나와. 보통 작곡가들 얼마 받냐? 아니, 너 시간 있어요 써주고 얼마 받았어?”

“천만 원이요.”

“.......”

잠시 얼어붙었던 백종훈 단장이 당황한 얼굴로 반문했다.

“처, 천만 원?”

“네. 정말 주실 거예요?”

“어, 비, 비싸네.”

“그러니까 말씀드렸잖아요. 곡비 됐다고. 제 안무 잘 부탁해요.”

“......”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

특히 언제나 예산 부족에 쪼들리는, 레드 스켈레톤 같은 대형 퍼포먼스 팀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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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시간 있어요?> 뮤직 비디오 공개일이 다가왔다. 오늘 뮤직 비디오가 런칭되면 바로 내일, 지상파 음방 방송부터 순회하며 컴백 무대를 갖게 될 예정이다. 나 역시 그 무대에 댄서로 설 것이고.

미리 선생님께 말씀 드렸기에 오늘은 학교를 빠지고 아침부터 연습실에 있었다.

장진영 대표와 레드 스켈레톤 댄스팀. 그리고 회사 직원들과 함께.

한 직원이 소리쳤다.

“잠시 후 뮤직 비디오 업데이트 됩니다!”

“잠시 후가 언젠데?”

“5....”

“5분?”

“4...3...2...1... 지금요.”

“.......!”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장진영 대표를 뒤로하고, 그 직원은 태연하게 연습실 대형 TV를 켰다.

곧 <시간 있어요?> 오피셜 뮤직 비디오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와, 저 사람 누구지?

드립력이 보통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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