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39화 (39/205)

39화. 입봉작 (2)

터덜터덜, 재즈 클럽에 입성한 장진영은 힘든 얼굴로 바에 앉아 주문한 칵테일을 털어 넣는다.

[ 저기, 혹시 시간 있어요? ]

[ 그쪽에게 줄 시간은 없는데요? ]

좋아하는 여자에게 수줍게 고백했다가 차갑게 거절당한 그림이, 악몽처럼 그를 괴롭힌다.

보다 못한 중년의 바텐더가 이유를 묻자 솔직하게 대답한다.

바텐더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 Min! ]

갑자기 소리친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바텐더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장진영을 가리킨다.

나는 잔잔한 재즈곡 연주를 멈춘다.

영문 모르는 관객들이 웅성인다.

나는 정장 상의를 벗고, 답답한 소매, 목 부근 단추를 풀어 젖힌다. 그리고 힘찬 연주로 분위기를 전환, 넋을 놓고 있던 장진영을 무대 위로 이끈다.

내 역할은 고민 해결사!

그가 노래로 자신의 사연을 고백하면 그것을 듣고 알라딘의 지니처럼 온갖 변신을 이끌어낸다.

정장 상의를 파격적인 핑크색 상의로 갈아입혀주고. 너드 같은 머리를 헤집어 순식간에 트렌디한 헤어스타일로 바꿔준다.

센스 있는 선글라스로 바꿔 착용시켜준 뒤, 향수를 뿌려준다.

겸사겸사 여성을 유혹할 수 있는 멋진 춤 동작도 가르쳐주고.

마치 뮤지컬 같은 구성이다.

곡이 끝났을 때 그는 더 이상 너드가 아니다.

트렌드하고, 약간의 파격을 부릴 줄 아는 멋진 남자로 변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습에 굉장히 만족스러워한다.

이 정도면 그녀의 마음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소년을 찾지만 거짓말처럼 사라진 상황!

뮤직 비디오는 그렇게 끝나 버린다.

“오오!”

“재미있는데? 구성도 괜찮아!”

“뭔가 살짝 알라딘 구성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 왜, 동굴에서 지니 처음 만났을 때 부르는 노래. 그 뭐지?”

“Friend Like Me?”

“맞아. 그 장면 때 지니가 알라딘을 막 변신시켜주잖아.”

“오, 그러고 보니...?”

일단 내부 반응은 굉장히 좋다.

연출도 신박하고, 구성도 재미있다는 모양.

그런데 사실 나도 꽤 놀라고 있었다.

우선 작중 내 비중이 꽤나 높다는 것.

그리고 소위 말하는 ‘때깔’이 기가 막힐 정도로 멋지게 뽑혔다는 것.

장진영 대표가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어때? 잘 될 것 같아?”

난 씩 웃었다.

“물론이죠. 대박 날 것 같은데요?”

“내일부터는 방송을 돌아야 하니 딱 한 번만 맞춰보고 일찍 퇴근합시다.”

다시 연습이 시작됐다.

오늘은 날이 날이니만큼 회사 관계자들도 모여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연습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제부터 대중음악 작곡가라면 누구나 달고 사는... ‘1시간의 지옥’이 시작될 참이기 때문이었다.

음원과 뮤직 비디오가 공개됐으니, 이제부터 한 시간 후 스트리밍 차트의 첫 실시간 순위가 공개될 것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차트 순위가 1시간 마다 변동하다.

그때의 등락이 천국과 지옥을 좌우한다.

그 파괴력은 주식이 오르는 것 이상으로 강렬하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른다.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의 연습은 끝!

장진영 대표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너도 오늘은 작업하지 말고 집에 가서 쉬어. 그리고 이거 받아.”

흰 봉투 하나.

살짝 내부를 보니 만 원짜리 지폐가 꽤나 많이 담겨 있었다.

내가 놀란 얼굴로 바라보자 싱긋 웃으며 말한다.

“내가 주는 첫 용돈. 그거 가지고 부모님께 뭐라도 좀 사드리고 해. 너 드디어 입봉했는데, 그것도 알려드리고 해야 하지 않겠니?”

“아....”

그것까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는데...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좀 사드리고, 그러면서 네가 만들고 출연한 뮤직 비디오도 보여드리고 그래. 오늘 같은 날은 작업하는 게 아니야.”

“.......”

봉투를 챙겨 넣으며 생각했다.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가족 신세 정말 많이 졌지.

특히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아들 작업에 보태라며 지갑도 열어주셨다.

그래.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퇴근하는 길.

알람이 울렸다.

뮤직 비디오 공개로부터 한 시간이 지났단 뜻이다.

드디어 첫 실시간 차트가 나오....[ 우와아아! ]

[ 크아아악! ]

생각하기 무섭게 문자가 쏟아졌다.

정말 쉬지 않고 뭔가가 계속 날아온다.

문 라이트 애들 여섯 명.

최명중. 레드 스켈레톤 형님들, 엔 플라워 누님들 등등.

이게 무슨 일일까 싶었는데, 곧 한 가지 가정에 닿게 되었다.

‘설마... 설마...?’

메시지는 나중에 확인하고.

음악 앱을 열어 조심스레 메인의 실시간 차트를 확인해본다.

일단 100위부터 천천히 올라가볼까?

90위...없고.

80위, 70위, 60위....

쭉쭉 올라간다.

장진영 대표의 싱글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순위가 높다는 것.

마침내 50위권을 넘었다.

40위, 30위, 20위.

그리고....

[ 이번 역은.... ]

“아, 내려야지!”

버스에서 내리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자, 다시 순위를 확인해 볼까?

19위부터 천천히 다시 올라간다.

없고, 없고, 없고....

마침내 10위권에 진입했을 때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있었다.

일부러 알림 설정을 해지했기에 누가 어떤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는지도 알수 없고, 휴대폰은 굉장히 조용하다.

그래서 더더욱 떨린다.

스크롤 끝에 과연 어떤 숫자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생각한 실시간 순위 한계를 넘었다.

5위에도 없었다.

4위에도.

3위에도.

그리고.

“......!”

마침내 발견했다.

순간 심장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실화야?

“아니, 잠깐만. 말도 안 돼. 아무리 대표님이 모처럼 발매한 싱글이라도 이런 순위는....

몇 번이나 새로 고침을 해서 다시 확인해봐도 순위는 변함이 없었다.

내가 본 게 거짓이 아닌 사실.

지금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는 것.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시장 길을 앞둔 버스 정류장.

지나가던 행인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나에게 시선을 보내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알림, 수신 차단 메시지를 해제했다.

그러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최명중이다.

미안하지만 넌 나중에.

부재중 리스트에 다양한 이름이 있다.

그 중 장진영 대표를 터치, 전화를 걸자마자 받는다.

[ 야! 왜 이렇게 전화 안 받아?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 ]

“미리 차트 순위 스포일러 당하기 싫어서 차단 중이었어요.”

[ 그, 그래? 아무튼... 확인했어? ]

“네.”

잠시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그 일로 나 역시 한 가지 알 수 있었다.

내색을 안 했을 뿐.

그 역시 차트 성적을 누구보다 신경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 고생 했다. ]

짧은 한 마디에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난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이 모든 게 다 대표님 덕분이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서서 걸어갔다.

어머니의 식당을 향해서.

말없이 걷다가 순위를 한 번 확인하고.

갑자기 또 한 번 확인해보고.

슬슬 상황이 와 닿자, 이제는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실시간 차트

시간 있어요? - 장진영

“하하....”

1위.

발매와 동시에 실시간 차트 1위!

톱 아이돌 그룹 정도가 아니면 일어나기 힘든 상황!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다.

사실 아직도 자세한 상황은 파악이 안 되지만....

‘뭔가, 놀라운 일이 일어나려고 하고 있어.’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실시간 차트의 수성.

일간, 주간, 월간 차트 기록 등등.

그런데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이 기쁜 소식을, 누구보다도 부모님께 알려드리고 싶었다.

잠시 후 엄마의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었던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크게 소리쳤다.

“엄마!”

그날은 식당 문을 일찍 닫았다.

아버지도 대리 운전 일을 나가지 않으셨고 동생도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왔다.

“고기 먹으러 갑시다. 고기!”

장진영 대표가 챙겨준 용돈의 액수가 상당했다.

이 정도면 삼겹살과 함께 소고기를 부위별로 먹어도 남을 정도였다.

당당히 인근 지역에서 유명한 고기집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잔뜩 주문한 뒤 포식을 시작했다.

“소고기 진짜 맛있어! 입에서 살살 녹아!”

식탐이 있는 서연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흡입했다. 특히 소고기.

사정이 여의치 않은 탓에, 소고기는 그림자도 구경하기가 힘들었으니... 이해가 된다. 안쓰럽기도 하고.

“이것도 먹어.”

“응!”

“엄마 아빠도 빨리 먹어!”

“그래. 먹고 있어.”

“너는 왜 안 먹냐. 어른인 척 굴지 말고 빨리 먹어!”

서로를 챙겨주며 고기와 냉면까지 배불리 먹었다.

식사를 마친 뒤 소화할 겸 인근에 위치한 쇼핑몰로 이동했다.

“여긴 왜 온 거야?”

“이런 곳은 부담스럽다.”

규모도 크고, 고급스러운 쇼핑몰 분위기를 두 분은 굉장히 어색해하셨다.

반면 서연이는 배도 든든하겠다. 기분이 좋은 얼굴이다.

“오빠. 여기 왜 온 거야? 우리 뭐 사주려고?”

“응.”

“어? 정말?!”

깜짝 놀라는 서연이와 부모님.

“우리 편하고 좋은 걸로 가족 신발 하나 맞추자.”

“어? 그러면 난 나이키! 나이키가 좋아!”

“안 그래도 거기 갈 생각으로 온 거야. 여기 얼마 전에 매장이 들어왔거든.”

“우와!”

참고로, 지금까지 우리 가족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장용 신발만 사서 신어왔다.

대표님이 왜 이렇게 용돈을 많이 챙겨주셨나 했는데, 이렇게 쓰라고 챙겨준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도 음원 순위 성적이 굉장히 좋다.

런칭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몇 시간이 지난 지금도 실시간 차트 1위를 수성 중이다.

일간 차트 1위는 확정이고, 이 기세가 이어진다면...?

‘가족과 이 정도 사치를 부릴 여력은 충분하단 말이지.’

매장에서 신발 가격을 본 부모님이 기겁을 했다.

반면 서연이는 좋아서 방방 뛴다.

“나, 이거! 이거 진짜 좋아! 요즘 나온 건데 애들 다 이거 신고 다녀!”

“안 그래도 이거 사려고 온 거야. 신발이 정말 예쁘고 편하게 잘 만들어졌다고 하더라.”

“맞아! 신어 본 애들이 이거 꼭 사라고, 진짜 좋다고 강추 했어!”

어머니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

“이거... 너무 비싼 거 아니냐? 괜찮아?”

아버지도 말은 안할 뿐,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하다.

난 씩 웃으며 말했다.

“왜 이래요? 저 1위 작곡가예요.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요.”

직접 신어보며 발 사이즈를 맞춰본 뒤 내 것까지, 총 네 쌍을 구매했다.

“아껴 신지 말고 편하게 막 신어. 그러라고 있는 신발이니까.”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선물 받은 저 신발을 절대 신지 않을 것이다.

신주단지 모시듯 보관하겠지.

그것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뮤직 비디오 감상회는 집에 돌아와서 했다.

가장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

“자, 시작한다.”

부모님은 물론 서연이까지도 긴장한 얼굴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 역시 새삼 떨린다.

지금처럼 이렇게, 가족과 다함께 내가 출연하고, 만들기까지 한 음악의 뮤직 비디오를 감상한 적은 없었으니까.

화면에 내가 익히 아는 뮤직 비디오가 재생됐다.

나는 그 화면보다는, 가족의 반응을 주시했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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