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그 아이 누구야? (2)
무려 1200명에 달하는 방청객들이 앉아 있었다.
무대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내내 하염없이 몸이 떨렸다.
그리고, 원망하기도 했던.
나에게 큰 상처를 줬지만 동시에 꿈을 심어준 방송 현장.
그것이 긴 세월을 지나 또 다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목을 두터운 팔로 감싸더니 귀에 속삭였다.
“방청객 보지 말라고 했지?”
“아....”
“아예 인식 자체를 하지 마. 그냥 없다고 생각해. 혹은 호박 농장에 왔다고 생각하거나?”
뜬금없이....
“호박농장이요?”
“응. 여기는 농장이고, 저기 앉아 있는 1200명은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호박인거지. 그렇게 생각해 봐. 그것도 나름 웃기잖아?”“........”
한 번 상상해보니 재미있는 그림이었다.
내 미소에 백종훈 단장도 웃으며 말했다.
“알았지? 무대 위에서는 같이 호흡을 맞추는 우리만 보는 거야.”
[ 자, 오랜만에 돌아온 아시아 최고의 프로듀서. 대한민국 최고의 댄스 가수. 장진영 씨의 무대입니다! ]
마침내 올라갈 시간이다.
우리는 재빨리 달려가 각자 위치에 자리 잡았다.
대표님은 다른 장소에서, 핀 조명과 함께 박수와 함성 속에서 등장했다.
두근.
관객을 의식한 순간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찔해졌다. 우황청심환이 효용이 없었다. 그래서 황급히 백종훈 단장과 레드 스켈레톤 댄스 팀을 보고, 그들과의 호흡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당연하다.
무대 앞에 방송 촬영 장비와 스텝, 그리고 방청객들이 무려 1200여명이 있는데 어떻게 인식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나는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심정으로.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점점 효과가 나타난다.
관객이 지워진다.
더불어 무대 위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우리’만 남는다.
어느 새 이곳은 촬영장이 아닌 소속사 연습실이었다.
내게 있어서 가장 편하고, 또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 중 하나.
나와 눈이 마주친 장진영 대표가 슥 미소를 짓는다.
얼굴은 농담으로라도 잘 생겼다고 말할 수 없는... 험악한 쪽에 가깝지만 무대 위에서 진지하게 춤추고 노래 부를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매력적인 그였다.
나 역시 미소로 응답하며 최선의 퍼포먼스로 서포터를 시작한다.
헤어스타일을 만져주고 의상을 갈아입혀주고.
매력적이고 멋진 댄스를 가르쳐 주는 나는 지금 이 순간만큼 램프의 지니와 같은 존재였다.
자신의 매력을 알지 못하는 저 불쌍한 중생을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줄 사명을 지닌.
집중력이 극한에 이르는 순간.
연습 때만 나왔던 버릇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그와 함께 ‘연기’를 한다.표정으로, 제스처로, 춤 동작으로.
보통 댄스 가수들은 서포터 역할의 댄서가 이런 식으로 튀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장진영 대표는 달랐다.
무대 위 모두가 자신의 전력을 다할 때 비로소 청중을 감동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어느 새 레드 스켈레톤 댄서들 역시 함께 호흡을 맞춰 연기를 주고받는다.
하나 둘씩 변화하는 모습이 신기해하며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너드인 주인공과 함께 춤을 배우기도 한다.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 팔을 좌우로 뻗어, 빙글 빙글 턴을 하다가 높이 뛰어오르기도 한다.
리허설에서조차 맞추지 않았던 즉흥 동작이었다.
차라리 뮤지컬에 가까운 분위기.
이것이 처음 곡과 안무를 구상했을 때 의도했던 방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껏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와 호흡을 주고받는 장진의 대표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나 보였다.
그렇게 나의 첫 방송 무대가 끝났다.
장진영 대표를 뒤로하고 나와 댄서들은 일제히 무대에서 내려갔다.
백종훈 단장이 환한 얼굴로 수건과 물을 건네며 격려했다.
“잘했어! 아주 좋았어!”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턱을 치며 들며 물었다.
“어때? 효과 상당하지?”
“상당한 정도가 아니라 굉장하던데요?”
“그렇다니까.”
토크가 시작됐다.
댄서들은 모두 대기실로 돌아갔지만 나는 조연출과 함께 무대 바로 옆에서 대기했다.
큐사인이 떨어지면 바로 올라가서 토크에 합류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뭐하고 지냈기에 이렇게 컴백이 늦었던 거죠?”
“아시겠지만 제가 엔터 회사를 운영하고 있잖아요. 사실 그 문제 때문에....”
토크에서 관객을 인지 밖으로 밀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토크 목적이 단순히 게스트와 호스트가 대화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방청객과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기에.
그래서 호스트는 수시로 방청객들에게 말을 걸며 토크에 참여시킨다. 이런 상황이라면 백종훈 단장에게 얻은 노하우를 온전히 발휘하기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셨을지 모르겠는데, 저는 사실 무대를 보면서 장진영 씨 말고 또 다른 사람에게 계속 눈길을 가더라고요. 댄서 중 한 명인데... 유난히도 나이가 어리고 또 굉장히 예쁘장하게 잘 생긴 친구던데....”
드디어 내가 올라갈 때가 다가왔다.
“준비해주세요. 신호 드릴 때 올라가시면 됩니다.”
“사실 그 친구가 누구냐면....”
“잠깐만요.”
“네?”
“우리 그냥 당사자를 불러서 직접 물어봅시다.”
“아, 그럴까요?”
바로 그때 조연출이 신호했다.
“올라가세요!”
[ 와아아! ]
“......!”
터져 나오는 환호가 나를 움찔하게 만들었지만 애써 담담히 걸어 나갔다.
“자, 우리 프로그램 전통 알죠? 자기소개는 직접 해주세요.”
떨리는 손을 들어 무선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댔다.
방청석을 차마 직시할 자신이 없었기에 불이 들어온 카메라를 바라보고 말했다.
“어... 아,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고, JJ 전속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김민이라고 합니다. 자, 잘 부탁합니다.”
소개하는 순간 사방에서 탄성과 경악성이 터져 나온다.
유정연 작곡가님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수선을 떨기 시작했다.
“여러분 방금 들으셨죠? 고등학교 1학년생인 JJ 엔터테인먼트 전속 프로듀서래요!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제대로 들으신 거 맞아요. 민이는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발굴한 고등학생 프로듀서예요. 참고로 방금 들으신 음악, <시간 있어요?> 작사, 작곡가이기도 하죠.”
“오오오!”
“굉장하다. 어린 나이에 곡을 만든 거야?”
웅성이는 소리와 함께 나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진다.
이쯤에서 찾아갈까 말까, 간만 보고 있던 공황발작이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음, 슬슬 위험한데...?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었어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제부터 객석은 보지 말고 두 분 얼굴만 봐야겠다.
“어려서부터 대표님 팬이었거든요.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어울리고, 또 취향에도 맞을만한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곡 만드는 연습도 했던 거죠.”
“희한하네. 보통 그 나이 또래라면 이런 볼품없는 아저씨보다 멋있거나 예쁜 사람들을 동경하지 않아요?”
“......?”
가만히 있다가 한 대 얻어맞은 장진영 대표가 항의하는 얼굴로 쳐다보지만 얄밉게 외면해 버린다.
어느 순간, 나는 셋이 함께 대화하는 기분으로 말을 이어갔다.
“저를 희한하게 보시면 안 돼요. 왜냐면 제 우상 중이에는 유정연 작곡가님도 계시거든요.”
“아, 정말요?!”
“저 작곡가님이 발표한 모든 음악 달달 외우고 있어요. 제 또 다른 우상이신데... 이래도 제가 희한해요?”
“이제 보니 안목이 있네! 어린 친구가 진짜 멋있는 게 뭔지 알고 있어.”
태도 변화가 웃음을 자아낸다.
흐뭇하게 지켜보던 장진영 대표가 끼어들었다.
“사실 이 친구가 진짜 천재예요.”
“네? 그야 뭐 이 나이에 그런 곡을 만들었으면....”
“아니, 곡 만들고 노래 잘 부르는 능력도 대단하긴 한데 진짜 재능은 따로 있어요. 그것에 비하면 다른 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게 대체 뭔데요?”
장진영 대표는 나를 향한 시선에 자랑스러움을 담아 말했다.
“우리 민이는 춤의 천재예요.”
춤의 천재.
그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유정연 작곡가는 묘한 표정으로 방청객들에게 말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아까 낮에 대기실에서도 들었어요. 자기 제자라고 엄청 자 랑질을 해대는데... 아시죠? 저 속 좁은 거.”
[ 네! ]
“........”
유정연이 속상한 얼굴을 숨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직접 시험해 볼 생각으로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댄스 팀을 초청했어요. 소개합니다! 유니버스 크루!”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댄스 팀이 호명되자 함성이 쏟아진다.
그런데 직접 등장하는 대신, 무대 위 거대한 전광판에서 영상 통화로 연결됐다.
검은 단체복을 맞춰 입은 이들이 힘차게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저희는 유니버스 크루입니다! ]
“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지금 어디 계시나요?”
[ 저희는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댄스 대회. Body Rock Dance Competition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에 있습니다! ]
‘레드 스켈레톤 괜찮으려나. 상대가 너무 센데.’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로 자리 잡은 비보잉 연합 유니버스 크루!
본업인 비보잉 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에서도 압도적인 역량을 지녔다 평가받는 이들이었다.
‘심지어 레드 스켈레톤과 달리 이미 미국에 건너가서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니....’
“아까 전화로 설명 드렸죠? 간단히 테스트 하나 부탁하고 싶다고. 누구도 모르는 어려운 퍼포먼스 한 부분만 지금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긴장감이 밀려온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 네. 그러면 이번 바디 락에서 첫 선을 보일 예정이었던 퍼포먼스를 보여드릴게요! ]
“아, 그거라면 분명 누구도 모르긴 하겠네요. 그런데... 괜찮아요? 지금 이런 곳에서 보여줘도?”
[ 상관없어요. 최종 버전 말고 첫 시안 버전으로 보여드릴 거고. 그것도 극히 일부일 뿐이니까. ]
이어진 퍼포먼스는 리믹스 된 알앤비 음악에 맞춰 다양한 장르의 스트릿 댄스를 조합해 만든 고난이도의 안무였다.
최고 난이도의 비보잉과 파핑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굉장히 현란하고 눈이 즐거웠다. 이게 버려진 시안에 불과하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 레드 스켈레톤 정말 괜찮으려나?
벽에 부딪쳐 좌절하는 모습이 벌써 보이는 것 같지?
[ 여기까지! ]
“와아아!”
굉장한 퍼포먼스에 객석에서 환호가 터죠 나온다.
자신만만했던 장진영 대표의 입가에 미소와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인간적으로 저건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춤의 천재라며 그렇게 자랑하셨잖아요. 자신 없어요?”
“.......”
대답 대신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장진영 대표.
난 자리에서 일어서서 수트 재킷을 벗고 빈 무대로 나아갔다.
“방금 그 음악 다시 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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