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43화 (43/205)

43화. 그 아이 누구야? (4)

유정연의 슈퍼스타는 평균 시청률 자체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늦은 밤에 방영하는 프로그램이고, 이름처럼 슈퍼스타들만 출연하는 방송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 작곡가, 톱 프로듀서인 유정연이 진행하는 고품격 음악 전문 방송이라는 점.

스타급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실력파 뮤지션을 발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점 등.

이 같은 장점들로 나름 튼튼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덕분에 꾸준한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었고.

그러다 가끔씩 인기 많은 뮤지션들이 출연하면 시청률이 소폭 상승할 때가 있다.

현재 모든 차트를 압도하며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히트곡 <시간 있어요?>.

그 주인공 장진영의 출연 소식은 여느 때보다 많은 시청자를 TV앞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시청자들 중에는 김민의 지인과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민의 아버지는 오늘 따라 유난히 허전하고 아쉽게 느껴지는 소파 자리를 보고 볼멘소리를 한다.

“이 녀석 오늘도 안 온데? 회사에 연락해 봤어?”

“이정연 팀장님이 오늘도 연락 주셨어. 세심하게 잘 챙기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시네.”

“쯧.”

어머니의 대답에 아버지를 혀를 찬다.

그런 말을 들어도 직접 얼굴 보고 확인하지 않은 이상 걱정되는 게 당연했다.

“아무리 일이 중요해도... 부모가 걱정하는 거 뻔히 알고 있으면 얼굴 한 번은 비춰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문자와 전화는 꼬박 꼬박하잖아. 그게 어디야?”

“그런 걸로 돼? 얼굴을 봐야지. 얼굴을!”

아버지는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자식새끼 얼굴 보는 게 무슨 연예인 얼굴 보는 것보다 힘들어졌구만.”

“얼마나 못봤다고 그런 소리야?”

“거의 일주일을 못 본 것 같으니 하는 말 아니야?”

“일주일은 무슨... 그러는 자기도 예전에....”

그때 서연이 소리쳤다.

“방송 시작한다!”

다툼을 멎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시작되는 방송을 가족 모두가 진지한 얼굴로 바라봤다.

한참 후에 아버지가 물었다.

“민이는 대체 언제 나오는 거냐?”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마침내 장진영 대표가 출연했다.

가족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음악.

하루에 몇 번도 더 듣는 <시간 있어요?>가 시작됐다.

가수 장진영과 댄서들이 보여주는 화려하고 신나는 무대!

“어? 오빠다. 오빠!”

“어이구, 내 아들 맞네!”“민이 맞아? 민이 맞는 거야? 어?”

방금 전까지 지루함을 애써 참고 있던 가족들이 신이 나서 박수를 치고 환호한다.

카메라가 가수 장진영 만큼이나 김민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었다.

어머니가 감탄했다.

“우리 아들 춤추는 거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굉장히 잘하네.”

“일단 제일 어리고 잘 생겼잖아! 그거 하나만으로 확 눈에 띄지!”

말다툼 할 때는 언제고. 아들 칭찬을 주고받는 부모님.

반면 서연은 장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뜬 채 집중하고 있었다.

무대가 끝나도 댄서들이 모두 들어갔다.

토크가 시작된 것이다.

“뭐야, 이걸로 끝이야?”

“어어... 우리 아들 어디 갔어?”

서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오빠가 분명 비중 있게 나올 거라고 했는데...?”

물론 방금 무대에서도 꽤 비중이 있긴 했지만....

그런데 고민하기 무섭게 다시 김민이 등장했다.

“아이고 또 나왔네!”

“아들 나왔어?”

실망해서 자리에서 일어섰던 아버지가 황급히 소파에 복귀했다.

카메라에 단독 샷으로 잡힌 김민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오빠 알기를 톰과 제리의 톰처럼 여기는 서연이조차도.

“와... 우리 오빠 진짜 잘 생겼다. 저거 보정 아니야?”

이런 말을 중얼거릴 정도.

이후부터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비중 있게 다뤄졌다.

부모님과 서연이는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특히.

[ 우리 민이는 춤의 천재에요. ]

장진영 대표의 이 발언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더더욱.

단 하나의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운다.

전화가 걸려 와도 확인조차 안한 채 휴대폰 전원을 꺼버릴 정도였다.

“민이가 춤의 천재라고?”

“처음 듣는 이야긴데....”

“오빠가...?”

그런데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세계 최고라는 댄스 팀이 영상 너머로 등장.

시험이랍시고 굉장히 고난이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줬을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것들 민이 웃기는 용도로 써먹으려고 저러는 거 아니야? 아니, 솔직히 저런 걸 어떻게 한 번 보고 따라한 말이야? 나 같은 놈은 평생을 해도 못하겠구먼!”

오죽하면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정도였다.

어머니와 서연이도 그 말에 공감했다.

그만큼 춤이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워보였기 때문이었다.

“요즘 춤은 무슨 서커스를 하는구먼. 잰 저런 거 연습한 적이 없을 텐데....”

아버지의 어조에 걱정이 실린다.

화면 속 장진영 대표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 방금 그 음악 다시 틀어주세요. ]

자신감 넘치는 그 대사와 함께 시작되는 놀라운 광경들!

아버지 피셜, 서커스 같다는 그 춤을 완벽히 구현해낸 것이 아닌가?

“.......!”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화면 너머에서도 현장의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관객들은 환상적인 광경을 보여준 김민에게 열렬히 환호했다. 장진영 대표는 얘가 바로 내 새끼라고 자랑하듯, 뿌듯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었다. 도발을 걸었던 유정연 진행자가 굉장히 놀라 말까지 더듬는 광경에 엄청난 쾌감이 일어났다.

곧이어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별빛의 숲.

아직 발매 일정조차 안 잡힌 김민의 데뷔 앨범 수록곡.

아버지가 인트로 사운드를 듣자마자 흥분했다.

“나, 나 저 음악 알아! 그때 들었는데....”

“아 좀 조용히 해!”

“노래 좀 듣자!”

“.......”

청아한 색채로 가슴을 아릿하게 파고드는 노래.

별빛을 연상케 하는 신비한 피아노 연주와,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는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아들의, 오빠의 자랑스러운 모습!

가족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게 만드는 순간이다.

마침내 풀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웅장하고 파워풀하게 연주되며 가슴을 마구 뒤흔들려는 그 순간.

[ ... 여기까지. ]

“아아아!”

“아니, 이렇게 끊는다고? 그냥 다 부르지 왜...?!”

음악이 끝났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유정연 대표는 칭찬을 쏟아낸다.

왜 자신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는지 알겠다며.

모처럼 정말 기대를 하게 만드는 음악이 나온 것 같다며 진심을 드러낸다.

그렇게 방송이 끝나고.

“우리 아들 너무 떨어서 걱정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잘 하네. 응?”

“그런데 쟤는 왜 이렇게 덜덜 떨어서 가족 걱정시키는 거야?”

가족은 생각도 못했다.

김민에게 끔찍한 공황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서연이 한 마디 했다.

“첫 방송인데 당연히 긴장하지. 입장 바꿔 생각해봐. 엄마 아빠라면 안 그럴 것 같아?”

“음.”

“그것도 그러네.”

“저 정도면 첫 방송치고 굉장히 잘한 거지! 심지어 오빠가 메인 게스트도 아니었는데 훨씬 주목 받았잖아!”

그렇게 말한 뒤, 서연은 휴대폰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아빠가 딸의 작고 귀여운 얼굴에 본인의 얼굴을 붙이며 물었다.

“우리 딸 뭐해?”

“방송 반응 좀 보려고. 사람들이 오빠에 대해 뭐라고 하는 지 궁금하지 않아?”

“어? 나도 같이 봐!”

엄마까지 서연의 곁에 붙어 앉는다.

불편한 자세가 연출됐지만 서연은 불평 한 마디 없이 방송 모니터링을 시작한다.

“방송국 시청자 게시판부터 확인해볼게.”

곧 서연은 깜짝 놀랐다.

“어?”

“왜?”

“무슨 일이야?”

사람을 굉장히 애태우는 마법의 단어.

어?

그 금기의 단어를 내뱉을만한 이유가 있었다.

[ 마지막에 부르다만 노래 제목 좀 알려주세요. ]

[ 온통 아저씨들만 나오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엄청난 미소년이.... ]

[ 그 아이 대체 누구야? ]

게시판이 온통 김민과 관련된 내용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오빠에게 엄청 관심을 보이고 있어! 이거 봐봐!”

부모님께 시청자 게시판 상황을 보여주는 서연.

“서연아, 글자 크게 못 키워? 잘 보이네.”

“나도 요새 눈이 침침해져서... 에잇, 이리 좀 줘봐.”

“어? 내 휴대폰 왜 가져가! 아빠!”

@

잠에서 깬 이후 한참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지금 몇 시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본다.

회사 작업실.

벽걸이 LED 시계가 오후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홉시....”

응?

“아홉 시? 학교..!”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테이블로 향했다.

전원이 꺼져 있었다.

‘박대리가 씨가 또 출타하셨네.’

충전 케이블을 연결해서 전원을 켰다.

그러자.

[ 띠링. 띠링. 띠링...! ]

알림 메시지가 미친 듯 쏟아진다.

뭐야, 또 무슨 일인데?

[ 반지희 : 방송 잘 봤어. 그런데 대표님이 아니라 네가 주인공이던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 주세아 : 지금도 곡 작업 중이야? 나 주말에도 아침 일찍 연습실 갈 건데... 가면 볼 수 있어? ]

문 라이트 애들부터.

[ 루아 : 춤을 그렇게 잘 추는지 몰랐어요! 첫 방송이었죠? 화려한 데뷔 축하해요! 이제 음원 발표하고 스타덤에 오를 일만 남았네요! ]

엔 플라워 멤버들.

학교 친구들.

그리고.

[ 엄마 : 아들 오늘은 주말에는 집에 올 거지? 가능하면 아침 일찍 와. 밥 차려 줄게. ]

[ 아빠 : 아빠가 치킨 사놨으니까 아침에 와서 먹어. 일 쉬엄쉬엄하고. 몸 축날라. ]

[ 서연이 : 오빠! 내 친구들이 오빠 사인 받아 달래! 오빠 스타 됐어! 근데 집에 언제 올 거야? ]

가족.

요일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토요일이구나.’

유정연의 슈퍼스타는 금요일 밤에 방송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놀라운 양의 부재중 메시지들은 바로 그 방송의 여파였던 것.

‘본상 사수에 실패했네. 가족하고 함께 보려고 했는데....’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저녁 식사 전까지 퇴근한다는 계획이 어그러졌다.

그만큼 힘든 작업 일정으로 심신이 많이 지쳐 있었다는 뜻이다.

“밥이라....”

테이블 위에 배달 음식이 놓여 있었다.

노란색 포스트잇에 예쁜 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 고생 많았어요. 회의 결과는 월요일에 알려줄 테니 주말에는 퇴근해서 집에서 푹 쉬어요. ]

다름 아닌 이정연 팀장님의 문자였다.

휴대용 용기 속에 새우 볶음밥과 각종 반찬, 계란국이 담겨 있었다.

‘어쩌지?’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고.

부모님이 보고 싶어 하니 일단 이건 가져가서 점심이나 저녁 때 먹는 게 좋을 것 같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음식물을 들고 작업실을 나섰다.

회사 바깥으로 나가기 전 잠시 연습실에 들렸다.

평일을 방불케 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중에 반지희와 주세아도 있었다.

음, 연습 열심히 하는데 굳이 방해할 필요 없겠지?

창 너머, 아이들의 사진을 촬영한 뒤 채팅창에 업데이트 했다.

[ 연습 열심히 해. ]

그리고 자리를 떠났다.

@

“10분 휴식!”

“으아아.”

트레이너의 외침에 연습생 전원이 일제히 주저앉았다.

시원한 생수를 나눠 마신 뒤, 꾸물꾸물 휴대폰을 찾아 이동한다.

“어?”

“음?”

부재중 메시지를 확인한 반지희와 주세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두 소녀.

복도에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 정문 출입구 방향 차창을 바라보니 김민이 있었다

“김...!”

“아...!”

그런데 부르기도 전에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두 소녀의 얼굴에 아쉬움이 들어찼다.

“겨우 몇 분을 못 참고 그냥 가버리네. 하여튼 의리가 없어요.”

투덜대는 반지희와 달리, 멀어지는 택시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주세아.

“가자.”

“.......”

“뭐해, 가자니까?”

“지금 갈게.”

@

[ 띠링! ]

메시지가 도착했다.

[ 조금만 기다리지. 우리 금방 나왔는데....(시무룩한 토끼 이모티콘) ]

주세아가 보낸 메시지였다.

그런데 굳이 개인 메시지를...?

아쉬움과 투정이 잠긴 그녀의 메시지가 귀엽고 한편으로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전 삶에서는 여자 아이돌 계를 평정한 시대의 아이콘이자 냉철한 카리스마의 화신이었으니.

그 인상이 워낙 강렬한 탓인지, 가끔 보여주는 인간미가 신선할 때가 많았다.

[ 미안, 집에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셔서. 연습 열심히 해. 월요일에 지희하고 셋이 저녁 식사 같이 하자. ]

[ 응. (해맑은 토끼 이모티콘) ]

즉각적인 답변.

그런데 또 하나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그 주세아가 귀여운 이모티콘을 사용 하다니?

참고로 문 라이트 단톡 방에서는 한 번도 사용하는 걸 못봤다.

말 수가 적은 만큼 채팅도 잘 안하는 편이었고.

“.......”

뭐, 그만큼 많이 친해졌다는 증거겠지?

고민을 털어낸 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유정연의 슈퍼스타 녹화분을 시청했다.

내 장면 위주로!

솔직히 다른 사람들 무대는 별로 안 궁금해서....

@

월요일.

예상대로 학교 전체가 난리 통이었다.

“꺄아악!”

“민이다!”

“민아! 민아!”

얼굴도 모르는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비명을 질러댄다.

남학생들도 신기한 듯 멀찍이 떨어져서 날 관람중이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은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군.

한 여학생이 다가와 조심스레 휴대폰을 내밀었다.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니.

“같이 사진 촬영 좀 해줄래?”

“아아, 뭐....”

별 생각 없이 수락했는데....

“저, 저기 나도....”

“난 사인도 같이....”

그것을 기점으로 우르르 몰려와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했다.

공황발작이 슬슬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음,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무척 험난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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