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44화 (44/205)

44화. 심상치 않은 조짐 (1)

“지금 뭐하는 짓들이야? 어서 교실로 돌아가!”

학생 주임 선생님의 등판으로 소란이 정리됐다.

그리고 타이밍 맞춰 자리를 비웠던 최명중이 돌아왔다.

정황이 그려진다.

나이스 어시스트 최명중!

그 이후로도 나를 향한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학생 주임, 혹은 다른 선생님들이 등판해서 상황을 정리하는데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학생 주임 선생님이 교내 방송으로 엄중한 공지를 내렸다.

[ 최근 특정 학생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이제부터 눈에 띄는 학생은 엄격하게 처벌할 예정이니.... ]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있었다!

최소한 쉬는 시간 마다 몰려들던 인파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나를 향한 관심이 끊긴 건 아니었지만 그 정도는 참을 만했다.

휴우, 이제 좀 살 것 같은데.

“고맙다. 명중아. 내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됐고, 내 음악 공부만 잘 봐주면 돼. 그리고 노트 정리한 거 복사해놨으니 갈 때 받아가.”

“오, 땡큐! 고마워!”

얼핏 냉정해 보이지만 내 눈에는 보인다.

괜히 민망하니까 일부러 차가운 척 구는 모습이.

자식, 귀여운 맛이 있다니까.

@

회사로 이동하는 동안 다시 한 번 차트 상황을 확인했다.

차트 순위 변동은 없다.

여전히 1위.

벌써 한 달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이제는 이런 게 당연하게 여겨질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니 회사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들떠 있었다.

일단 직원들의 표정이 굉장히 좋았다.

사실 국내 모든 스트리밍 플랫폼의 일간, 주간 차트를 휩쓸어 버리는 건 인기 아이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걸 가수로서 이미 전성기가 지난 가수.

심지어 회사 대표이기도 한 사람이 해냈으니 분위기가 좋은 것도 당연하다.

업무 성과가 가장 좋은 형태로 나타난 것 아닌가?

A&R 팀 자리가 모두 비어 있었다.

회의라도 간 모양.

이정연 팀장 자리에 작은 쇼핑백 하나와 쪽지를 올려놓고 돌아왔다.

별 거 없었다.

주말에 백화점 명품 매장 가서 구매한 여성용 지갑 하나?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작게나마 마련한 선물이에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 Min ]

업무실을 나와 이번에는 대표 집무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지. 지금쯤이면 방송국을 순회하느라 바쁘실 테니까.

마찬가지로 명품 지갑이 든 쇼핑백과 쪽지를 책상에 올려두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한창 작업 중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조심스레 출입문이 열리더니, 이정연 팀장님이 들어오신다.

청바지와 하얀 셔츠, 베이지색 코트.

직장인 여성들이 선호하는 데일리 패션이지만 빼어난 비주얼의 그녀가 입으니 파리 밀라노 패션쇼 현장 같다.

칭찬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굉장히 잘 어울리시네요. 대체 그 패션 감각과 빼어난 미모는 누구로부터 물려받으신 건가요?”

“민이 씨는 고등학생이 사탕발림은 30대 아저씨 수준이네요.”

“너무 고리타분한 칭찬이었나요?”

“아니, 그만큼 능글맞다고요.”

남들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앉는 그녀.

품에서 고급스러운 핑크색 명품 가죽 지갑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잘 쓸게요.”

“혹시라도 누군가 지갑 예쁘다며, 어디서 받았냐고 물어보면 굳이 제 이름 거론하지 않으셔도 돼요. 대표님과 정연 팀장님에게만 드린 선물이라 다른 분들이 섭섭해 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 그런 거였어요?”

휘둥그레지는 눈동자.

“아직까지는 제가 회사에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분이 두 분 뿐이라서 그래요. 대표님은 제 스승님이 되어주셨고, 정연 팀장님은 절 발굴한 이후 지금까지 누나처럼 챙겨주셨잖아요.”

“아하. 그렇군요. 사실 전 자라오면서 동생들에게 좋은 언니, 혹은 누나소리를 들었던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동생들이 복에 겨웠네요. 저에게 정연 팀장님 같은 친누나가 있었다면 이 사람이 우리 누나라며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을 텐데.”“어째서요?”

“착하지, 예쁘지, 몸매 좋지. 일 잘하지. 현명하지. 카리스마 넘치지... 뭐 칭찬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

입을 씰룩거리던 그녀는.

“아하하!”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렇게 직설적인 칭찬은 처음 들어보네요.”

“그래서 더 진심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러니까 제가 기분 좋아서 웃는 거죠.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다니 뿌듯한 느낌도 드네요. 제가 정말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냉정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도 충분히 아름답고 멋지지만, 이정연 팀장님은 이렇게 진심을 보이며 웃을 때가 훨씬 매력적이다.

“그건 그렇고. 에 대한 내부 검토 회의 결과를 알려드릴게요.”

한순간에 표정이 달라졌다.

업무 모드로 돌아온 것이다.

그와 동시에 참기 힘든 긴장감이 밀려왔다.

내 입장에서야 두 번 다시 쓰기 어려운 역대급의... 영감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었지만.

‘과연 회사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해줄까?’

내 감정과, 회사 사람들의 판단이 다른 경우는 언제나 있어왔다.

이번에도 그럴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녀가 엄중하게 말했다.“는 장진영 대표님의 다음 후속 싱글로 밀기로 했어요.”

“.......”

판단은 잠시.

“잘 됐네요. 다행이다.”

“듣자마자 전율이 일더군요. 저뿐만 아니라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의견이었어요.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이 기세를 이어가보자고. 그만큼 잘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이야기죠.”

“그렇군요. 하하.”

기쁨과 안도감이 밀려온다.

이번에도 해낸 것이다!

작곡가로서.

나와 회사의 판단이 일치했을 때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었다.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이런 맛에 그렇게 힘들고 괴로워도, 작곡 일을 끊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체 이런 음악을 어떻게 만들게 된 거죠? 사실 며칠 동안 민이 씨의 행동을 지켜보며 기대감보다는 걱정과 의아함이 더 들었어요. 왜 갑자기 저러는 걸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어째서...?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건드릴 수 없었다.

“얼굴 표정과 분위기가 평상시와 너무나도 달랐거든요.”

“제가 그랬어요?”

“네. 마치 뭔가 홀리기라도 한 것 같았죠. 이제 작업이 끝났으니 물어보는 거예요. 그때 왜 그랬던 거예요? 어떤 생각으로?”

날 정말 세심하게 살펴봐주셨구나.

내심 고맙기도, 감동스럽기도 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머릿속을 정리한 뒤 천천히 대답을 시작했다.

“저는 이 기세가 장기간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틀림없이 월간 차트 1위도 달성할 거예요.”

“그런가요? 분명 기세가 좋긴 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그렇게 될 거예요. 틀림없이요.”

이쪽에 대한 촉은 내가 굉장히 좋은 편이다.

실제로 이런 능력을 기반으로 중. 소 기획사 출신 무명 아이돌 그룹이나 보컬리스트를 메인 차트 상위권에 올린 전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이 기세를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제 앨범에 그랬던 것처럼 스토리를 이어가면 참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시간 있어요?>에서 너드가 멋진 변신을 이룩했잖아요. 그러면 그걸 멋지게 보여줘야지.”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후속곡을 만들어보자.

그러면 사람들도 흥미와 관심을 계속 가져주겠지?

“강력한 확신을 가진 그 순간, 엄청난 영감이 밀려오더라고요.”

그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신기하고 낯선 경험이었다.

“그래서 영감이 시키는 대로 작업을 시작한 거죠.”

“아....”

“잠시라도 쉬거나 이 페이스를 무너뜨리면 영감이 달아나 버릴 것만 같았어요. 영감이란 존재감은 강하지만 굉장히 변덕스러워요.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붙잡아 둘 수 없어요.”

실제로,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밥을 먹거나.

지쳐서 깜빡 졸기라도 하면 영감은 흐릿해졌다.

자기가 몸소 행차했는데 이렇게 여유를 부릴 시간이 있냐며 항의라도 하듯.

“그래서 나중에는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건반을 칠 수밖에 없었죠.”

힘든 사투 끝에 결국은 해냈다.

곡이 완성되는 순간, 영감은 큰 만족감을 보상으로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아마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뭐 어때요? 뮤지션으로서, 스스로가 듣기에도 굉장히 전율스러운 음악을 만들어냈는데.”

“.......”

“이제 의문이 좀 풀리셨나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정연 팀장님이 대답했다.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해졌어요.”

“......?”

“민이 씨는 제가 아는 그 어떤 사람들과도 다르다는 거요.”

“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무는 대표님이 직접 짜는 중이예요. 전반적인 컨셉은 이메일에 첨부해 준 아이디어 노트를 바탕으로 각 팀에서 세밀하게 확장시킬 예정이고... 혹시 녹음 디렉팅도 직접 진행하실 건가요?”

“아니요. 가능하면 이전처럼 대표님이 직접, 알아서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난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다.

“엔 플라워 후속곡 작업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서요.”

“알겠어요. 최대한 빠르게 일을 진행할 예정이니 아마 다음 달초에 안무 영상, 뮤직 비디오 촬영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난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아니, 그렇게 빨리요?”“지금 이 기세를 이어가야 한다는 판단은 민이 씨만 한 게 아니니까요.”

그녀는 생긋 웃어 보인 뒤 작업실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나는 중얼거렸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본인이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람들과 다르다는 게.”

어떻게 다른지도 이야기 해줘야지!

궁금하게 만들기만 하고 휙 떠나버리다니... 못 됐어!

난 투덜거리며 엔 플라워 수록곡 작업을 다시 이어갔다.

주세아, 반지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연습하면서 힘든 거 없어?”

“연습 자체는 할 만해. 문제는 견제지.”

“견제?”

“이게 날이 갈수록 심해져. 특히 세아는 뭐... 잠깐 혼자 놔두면 시비 못 걸어서 안달이야.”

“세아에게 시비를 걸어?”

“애가 좀 예뻐? 그리고 차가운 느낌이 워낙 강해서 질투심 강한 애들 눈 밖에 나기 쉬운 타입이거든. 오해 받기도 쉽고.”

“그건 그렇지.”

“영악하고 집요한 애들이 정말 많더라. 내가 아무리 데리고 다니면서 보호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잖아? 잠깐 시선을 떼면... 어우.”

생각만 해도 징그럽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반지희.

반면 주세아의 안색은 태평하다.

토끼가 여물을 먹듯, 작은 입을 조심스럽게 오물거리며 열심히 음식을 먹고 있었다.

예쁜 애들은 먹는 것도 예쁘단 말이지.

“그렇게 스트레스가 심하면 내가 손 좀 봐줄까?”

“뭐? 어떻게?”

“방법이야 많지. 예를 들면 애들이 횡포를 부리는 증거 몇 개 수집해서 신인 개발팀장님에게 찔러 넣는다거나.”

“......!”

“아니면 프로듀서 자격으로 사사건건 태클을 걸어서 쫓아내는 수도 있고.”

반지희의 표정이 기괴해진다.

“어때, 내가 그렇게 해줄까?”

“너 그런 끔찍한 말을 참 쉽게 하는구나?”

“쉽게 하는 건 아니야. 다만 너희들이 내 친구고, 내가 데려온 이상 어떻게든 책임을 지려고 하는 거지.”

난 은밀한 어조로 물었다.

“내가 당장 손을 써줄까? 이름만 알려주면....”

“아니, 됐어.”

주세아의 대답이었다.

휴지를 한 장 뽑아 입을 닦는데... 저게 뭐라고 기품 있고 우아하니?

“폭력을 휘두르거나 욕을 한 것도 아니고, 그 아이들 입장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야.”

주세아는 차분한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선을 넘으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맞아. 맞아!”

공감하듯 강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반지희.

네가 나설 일은 아니니 믿고 지켜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내심 바라던 대답이었다.

기특한 마음에 크게 소리쳤다.

“오늘 내가 너희들 먹고 싶은 거 다 사준다! 야, 한우건 뭐건 다 주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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