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46화 (46/205)

46화. 심상치 않은 조짐 (3)

학교 끝나자마자 이정연 팀장님 자리로 찾아가 열렬히 소리쳤다.

“이정연! 이정연!”

“그만해요....”

“사랑해요 이정연! 절세미녀 이정연!”

“그만하라고!”

내가 이런 야단법석을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 누구도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딜이 성사된 것이다.

다름 아닌 블랙 로즈 매니지먼트와의 계약 성사!

그 주인공은 바로 우리 대표님.

블랙 로즈 매니지먼트는 흑인 음악계 스타들을 다수 보유한 힘 있는 회사였다. 장진영 대표님은 그렇게 소원하던 미국 진출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만든 음악이 미국에서 정식으로 유통된다는 말과 같았다.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나?

이 모든 것을 이뤄낸 이정연 팀장님을.

“그저 빛과 같은 그 이름을 찬양하라!”

퍽!

결국 옆구리를 한 대 얻어맞고야 말았다.

카페테리아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커피를 한 모금 마신 이정연 팀장님이 솔직한 심정을 말씀하신다.“몇 가지 운이 작용했어요. 일단, 블랙 로즈 매니지먼트의 대표이자 아이작 이스트의 부인인 킴벌리 존스가 저와 대학교 동문이었거든요.”

“...미국 대학교 나오셨어요?”

“네. 아무튼....”

“아니 아니, 바로 건너뛰시면 안 되죠! 미국 어디 대학교 나오셨어요?”

“그게 중요해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게 말을 하다가 마는 건데... 빨리 알려 주세요! 저 이러시면 밤에 잠 못 자요! 궁금해서....”

“........”

“알려줘! 알려줘!”

“하버드 출신이에요. 됐어요?”“.......!”

하, 하버드?!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는...?”

“그건 과장된 정보에요.”

“우와! 세상에... 잠깐만, 그러면 이정연 팀장님은 얼굴도 굉장히 예쁘고 몸매도 엄청 좋고 스타일도 뛰어난 국내 최고 기획사의 에이스인데, 심지어 하버드 출신?!”

“.......”

“어쩐지, 내가 처음보자마자 존경하고 싶고 친해지고 싶었던 게 다 이유가 있었어. 이제 보니 사기 캐릭터가 여기 있었네!”

날 가만히 바라보던 이정연 팀장님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그만해요. 또 얻어맞기 싫으면.”

무시무시한 발언을 내뱉으신다.

“이야기 듣기 싫은 거죠? 저 갈까요?”

“아니요! 죄송합니다. 입 꼭 다물고 있을 게요.”

그녀는 한숨을 내쉰 뒤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유선이긴 했지만 협상 테이블에 킴벌리 존스가 직접 나섰어요. 사전에 여러 가지 정보를 미리 입수했던 저는 대화 방향을 자연스레 대학 시절 이야기로 틀었고, 덕분에 여러 가지 추억을 공유하며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죠.”

“미국은 안 그런 줄 알았는데... 학벌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나 봐요?”

“미국도 지독한 학벌사회에요. 수많은 기업이 내부 추천이나 소개로 인력을 구하는 경우도 많고... 특히 고학력자들은 자신의 대학에 믿음과 자부심이 강하기도 하죠.”

“그렇군요.”

“개인적으로, 민이 씨가 공부와 외국어에 자신이 있다면 하버드. 그게 아니라도 보스턴에 있는 예일 같은 명문대를 지망하는 것을 추천해요. 굉장히 많은 것을 얻고 경험할 수 있거든요.”

“.......”

그건 좀 힘든데.

“중요한 건 이번 협상으로 좋은 미국 진출로가 확보됐다는 거죠. 그리고 그쪽에서 바란 것이 한 가지 있었어요.”

“어떤 건데요?”

“일단 뮤직 비디오 오프닝에서 연주했던 <시간 있어요?> 재즈 피아노 버전 완곡 음원 파일을 요구했어요.”

“어, 그런 거 없는데....”

“그러니 이제부터 작업을 해야죠.”

“.......”

“새 음악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이미 연주까지 한 전적이 있는 곡을 완성하는 것뿐이니 부담이 크지 않으리라 믿어요.”

아닌데요.

굉장히 부담이 큰데요!?

“이번 협상은 사실상 절반의 성공이라고 봐야죠. 아이작 이스트가 재즈 버전 음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

“일이 잘 안 된다고 해도 절대 민이 씨를 원망하거나 하지 않을 테니 부담 가지지 말고 작업해 주세요.”

작업실로 돌아온 소파에 몸을 묻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결국 협상의 행방이 나한테 달렸다는 거네.”

재즈.

좋아하긴 하지만 그리 자신 있는 장르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주류 장르가 아니라 많이 다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이 인트로 연주의 어떤 점에 꽂혀서 그런 건지도 잘 모르겠어.’

곡을 들어보고 느낀 것은 새로운 시도에 과감하다는 것. 그리고 그레미가 인정할 만큼 뛰어난 재즈, 힙합 뮤지션이라는 점.

솔직히 말하면 나 따위의 영감이 그에게 자극을 줬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약한 소리만 할 수는 없지. 모처럼 온 기회인데.’

이렇게 되면 엔 플라워 앨범 작업은 또 다시 딜레이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 시점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작 웨스트를 납득시키는 일이니까.

“으쌰!”

박차고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시간 있어요?>의 재즈 피아노 버전을 연주해 본다.

당시 내가 어떤 기분으로 이 곡을 처음 연주했는지, 감각을 떠올리려 애를 쓰며.

하지만 내가 재즈 뮤지션도 아니고.

갑자기 작업을 해서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리가 없다.

특히 이 곡을 그래미 어워드 뮤지션에게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하루, 이틀....

내 시간과 노력을 모조리 쏟아 부어도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점점 초조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 좋은 기회를 붙잡으면 최소한 준수한 결과물이라도 만들 수 있어야 할 텐데....

@

[ 똑똑. ]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몰입에서 깨어났다.

어느 새 작업실에 들어온 장진영 대표가 한껏 인상을 쓰고 있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너 집에 안 가?”

“네?”

반사적으로 벽시계를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밤 아홉시.

“벌써 시간이 이렇게....”

“너 저녁 식사 안 했지?”

“뭐... 그런 것 같네요.”

“오늘은 이만 끝내고 나가자. 나가서 같이 뭐라도 좀 먹자."

"안 그러셔도 되는데....”

“내가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그래. 빨리 저장하고 나와.”

내 핑계를 대긴 했지만 사실은 본인이 먹고 싶었던 게 아닐까?

“속이 좀 풀리네. 맛있다.”

참 야무지게도 드신다.

순대국밥이 지겨워진 내 입맛에 군침이 돌게 할 만큼.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뒤 기습적으로 말을 건네신다.

“부담 갖지 마. 나 미국 진출 안 해도 상관없어.”

“.......”

뻥치시네.

“야, 너 지금 내 말 안 믿지?”

“대표님 미국병 걸린 거 한국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인데요.”

“야,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불과 5년 전 이야기인데요?”

메트로 보이즈 이전에 JJ 엔터테인먼트를 견인하던 보이 그룹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룹이었고, 베이스 장르가 흑인 음악이었다.

어려서부터 미국 메인 스트림을 갈망해오던 장진영 대표는 이들을 데리고 미국 진출을 시도했다.

‘그리고 시원하게 말아먹었지.’

누가 봐도 엄청 애를 쓴 것이 보이는데...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

그런데 이게 JJ 엔터테인먼트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당시는 KM, LK 같은 경쟁사도 해외 진출, 특히 미국 시장 공략을 시도하던 시기였다.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지만 무의미한 시도는 아니었다.

이때 출혈을 감수하고 과감한 도전을 시도했던 대형 3사는 세계 시장 공략에 성공하게 되니까.

심지어 KM은 꽤 화려하게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지.

그러나 그것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

지금은 실패의 쓴맛과 충격만이 남아 있을 시기였다.

“내가 실패를 계기로 확실히 깨달은 게 있어.”

표정이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현지화고 나발이고, 타국 문화 시장 진출이라는 게 의도해서 되는 일이 아니더라고. 운이 좋아야 하고 시기도 맞아야하고... 무엇보다도 오랜 빌드업이 필요한 일이야. 갑자기 뭔가 해보려고 하면 안 돼. 절대로.”

“음....”

“이번 일은 복권 긁는 거라고 생각하자.”

“복권이요?”“당첨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마는 거고.”

“.......”

“그냥 대충 만들어. 너 당시에 아무 생각 없이 연주했었잖아. 이번에도 그렇게 하라고. 슥 만들어서 휙 던져. 그리고 머릿속에서 지워. 나도 그럴 테니까. 알겠지?”

장진영 대표의 말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재즈에 진지했다고....’

그래서 지금까지 쌓아놓은 드럼, 베이스 기타, 브라스 등등... 모든 트랙을 날려 버리고 피아노 하나만 남겼다.

원래 악기가 이것저것 들어갔던 풍성한 연주곡이 아니었으니까.

그 사람은 샘플링에 참조하려고 피아노 연주 원곡을 보내달라고 한 건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너무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이 가는대로 연주한 뒤 마무리지어 버렸다.

‘이거 아니어도 할 게 많은데... 빨리 끝내고 다른 일 해야지.’

내 활동 계획이 잡히기 전에 엔 플라워 앨범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믹싱과 마스터링을 끝낸 뒤 대표님과 이정연 팀장님께 메일을 보냈다.

‘이걸로 끝! 머릿속에서 지우자.’

비로소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에이, 진작 이럴 걸.

@

솔직히 말하면 며칠 동안은 결과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지우려고 해도 그게 쉽지 않더라.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으니 정말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 동안 나는 하던 일을 꾸준히 진행했다.

엔 플라워 앨범 작업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문 라이트 애들하고 만나 같이 춤, 노래 연습도 하고.

최명중의 미디 실력이 무섭게 올라오고 있었는데, 이 녀석 작업 방식이 조금 특이했다.

“성공한 음악들은 공식이 있을 거야. 난 그것을 찾아내고야 말겠어.”

“글쎄. 같은 사운드와 비슷한 구성, 내용을 적용해도 실패와 성공이 갈리는 거 보면 딱히 의미는 없을 것 같은데... 음악은 어디까지나 감성, 성공은 운과 확률의 영역이니까.”

그 순간 최명중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이것은 마치 고전역학파와 코펜하겐 학파의 대립.”

“음?”

“세상의 모든 현상은 수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 아인슈타인”

자신을 가리키고.

“불완전이야말로 미시 세계의 본질이라고 주장한 닐스 보어.”

그리고 날 가리킨다.

그러니까 내가 닐스.. 뭐라는 사람과 같다는 거야?

“참고로 난 양자역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아직 과학이 그 정도로 발전하지 못해서 측정하지 못한 것뿐인데 지금의 지식만으로 모든 문제를 결론 지으려 하니 말이지.”

대체 뭔 소리야?

“두고 봐라. 난 반드시 히트 곡의 비밀을 수학적으로 풀어내고 말 테니.”

너 외과 의사가 꿈 아니었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는 잘 안 됐지만, 녀석의 시도가 효과가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사운드 만들어내는 수준이 점점 아마추어를 벗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어쨌든 열심히 해 봐. 여기서 더 성장하면 조만간 편곡 일부를 맡겨볼 의향도 있으니까.”

“......!”

@

또 하나의 엔 플라워 수록곡이 완성됐다.

이제 마지막 트랙 작업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이번에는 좀 독특하게 구성을 해볼까?’

이번 엔 플라워 앨범은 트랙 전체가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된다.

연인의 배신에 분노하는 <스칼렛 러브>

폭풍이 지난 후 남은 상처에 아파하는 <엘레지>

이번에 작업을 끝낸 것이 일상을 통해 천천히 상처를 치유하는 .

메이저 코드의 맑고 예쁜 발라드 음악으로, 후렴구에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 편곡과 멤버들의 예쁜 화음이 킬링 포인트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사랑에 대한 상처는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하는 법이지.’

주제가 떠오른다.

또 다시 찾아온 사랑.

그러면 제목은 일단 또 다른 사랑. 혹은 새로운 사랑으로 정해 놓을까?

‘아니 그건 너무 단순하잖아.’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신선하지도 않고.

경험상, 편하게 가려고 하면 반드시 망조가 들었다.

원래 도 잔잔하고 구성지게 피아노, 기타 정도로만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들어보니 이건 아니다 싶더라.

그래서 부랴부랴 화음도 넣고 오케스트레이션도 추가하고... 그렇게 완성하고 보니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

창작자가 고민하는 만큼 대중은 즐거워한다.

‘다른 구성을 찾아보자.’

굳이 이야기를 여기서 끝낼 필요가 없잖아?

‘다음 앨범에서 펼쳐질 또 다른 이야기를 예고하고, 기대감을 잔뜩 심어주며 끝맺는 구성은 어떨까?’

< 성장 >

새롭게 떠오른 키워드를 적어 놓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와 같은 외향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성장을 보여주는 거라면...?’

충분히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법한 노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에서 운을 띄웠으니, 마지막 트랙은 밝고 청량하게 분위기를 바꿔도 어색하지 않을 거야.”

마치 겨울이 지나고 화사한 봄이 찾아온 것처럼.

... 어라? 봄?

“오호, 이거 잘하면 꽤 재미있는 곡이...?”

[ 벌컥! ]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장진영 대표가 난입해왔다.

“민아! 다음 주 미국 가야하니까 준비해.”

“네? 미국이요?”

“너 여권 있지?”

“있을 리가요.”

“그러면 오늘 당장 신청해. 다음 주에 너랑 나랑 이정연 팀장 까지 셋이서 뉴욕 가야해.”

“.......?”

“아직 안 늦었으니까 당장 서울 시청 가서 신청하고 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면 정연 팀장이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 청하고. 알았지? 다 하고 연락해!”

그렇게 말하고 급히 떠난다.

난데없는 상황에 난 눈만 끔뻑거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뉴욕행이라고?

잠깐, 이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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