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47화 (47/205)

47화. 뉴욕! 뉴욕!

“이것이 뉴욕 냄새...흐음.”

“아, 저 자식 창피하게... 빨리 와!”

“서두를 필요 있나요? 좀 천천히 가시죠! 언제 또 올지 모를 곳인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여기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거리니까?

나를 창피해하는 대표님의 손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두리번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뉴욕!

그렇게 동경했지만 단 한 번도 밟지 못했던 재즈와 힙합의 도시에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솔직히 인천 공항과 비교하면 시설 같은 것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접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것조차도 미국스럽게 보인다.

“오옷, 저기 롤렉스 벽시계가...?!”

“입 좀 다물어!”

블랙 로즈 레이블에서 보내 준 차를 타고 맨해튼 호텔로 향하는 길.

“야. 이정연 너 진짜 대박이더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우리 일행 아닌 척 떨어져서 걷다니...!”

“저도 사람인걸요.”

“아무리 그래도....”

“창피했단 말이에요!”

투닥 거리는 동안 마침내 맨해튼에 진입할 수 있었다.

차창 너머 비춰진 거대한 빌딩 숲의 풍경에 난 탄성을 참지 못했다.

“우와... 대박. 저거 봐요. 진짜 맨해튼이야!”

“신기한 건 알겠는데 촌티 좀 적당히 내. 기사님이 아까부터 우리 보고 웃으시잖아!”

그러건 말건 난 맨해튼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큰 도로에 차가 씽씽 지나다니든 말든 패기롭게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걸어 다니는 무리도 보인다.

크, 저것이 바로 뉴욕 클래스!

이게 뉴욕이지. 암!

도착한 곳은 센트럴 파크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고급 호텔이었다.

“민이 너는 나랑 방 같이 쓰는 거야. 내려다보이는?”

“네. 침대만 나뉘어져 있다면 아무 문제없어요.”

내가 그런 거 가릴 처지는 아니지.

언제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묶어보겠냐고!

객실에서 도착하자마자 바로 테라스로 향했다.

“크으!”

“그렇게 좋냐?”

“당연히 좋지요. 대표님은 별로예요?”

“난 하도 많이 본 광경이라....”

“저 예전부터 이런 곳에 집 얻어 사는 게 꿈이었어요. 이른 아침에 센트럴 파크 조깅하고 돌아오는 길 크랩 샌드위치, 커피를 주문해서 바깥 자리에 앉아 마시며 악곡을 구상하는 거죠!”

“나 해봤는데 처음 며칠만 신기하고 좋지,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서울이나 이곳이나 그게 그거더라.”

“그럴 리가 없어요. 이곳은 맨해튼인 걸요!”

흥분하는 날 빤히 보던 대표님이 피식 웃으신다.

“너 진짜 맨해튼 오고 싶었나보구나? 엄청 들떴네.”

“제 꿈의 도시였다니까요? 맨해튼 드리밍!”

“캘리포니아 드리밍도 아니고?”

“거긴 주거 지역, 상업 지역이 굉장히 떨어져 있고 그래서 제 취향에 안 맞아요. 전 이런 대 도시가 좋아요.”

“그래.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이런 곳에 집이든 작업실이든 하나 마련해봐.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어느 새 하늘이 어둑해져 있었다.

밤하늘 아래, 조명이 비춰진 센트럴 파크는 또 다른 멋이 있었다.

베란다에 앉아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영감이 떠올랐다.

즉시 노트북을 펼치고, 이어폰을 꽂은 뒤 꼬물꼬물 작업을 시작한다.

“뭐 하냐?”

“곡 작업이요.”

“무슨 곡인데?”

“... 피곤하시다면서요. 안 주무세요?”

“자려고 누웠는데 너 하는 거 보고 있으려니 신경 쓰이잖아.”

의자를 가져와 내 옆에 붙어 앉더니 노트북에 연결된 휴대폰 잭을 빼버린다.

그리고 볼륨을 높인 뒤 미디 파일을 재생했다.

“같이 좀 듣자. 무슨 작업 하고 있는 거야?”

피아노로 연주한 사계 중, 봄 1악장이 흘러나온다.

그대로 연주한 건 아니고, 팝 댄스 음악으로 만들기 위해 변주한 거다.

피아노 연주. 808 베이스와 드럼 셋.

말 그대로 기초적인 스케치 버전일 뿐이지만 대표님 정도 되는 프로듀서라면....

“사계 봄 1악장을 팝 댄스로 샘플링 하려고? 이거 엔 플라워 애들 중 음악 맞지?”

단번에 전체 그림과 목적 정도는 꿰뚫어 보겠지.

“네. 스칼렛 러브로 분노를, 엘레지로 아픔을 겪었고 Everyday 회복기를 거쳤으니 내면의 성장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겨울이 지났으니 봄이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봄 1악장을 샘플링하기로 한 거구나?”

“괜찮죠?”

“좋은 생각인데?”

장진영 대표님도 어쩔 수 없는 음악인이었다.

피곤해 죽으려고 하더니, 내 아이디어를 듣고 난 지금은 흥분한 소년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스트링으로 우아한 선율감을, 따발총 같은 트랩 비트로 긴장감과 트렌디함을 넣으려고 해요.”

“나쁘지 않아. 첨부하면 봄 1악장을 통으로 쓰지 말고, 유명 소절을 잘라서 후렴구 정도에만 사용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뭔가 좀 아쉬우니 바로 이어서 강렬한 멜로디를 만들어 붙이면 임팩트가 생기는 거지.”

“오오...!”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한 대표님은 새 벽 세 시에 침대로 리타이어.

난 아직 여력이 충분했다.

기내 안에서 질릴 정도로 잤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이번 여정에 내 역할은 그다지 많지 않다.

블랙 로즈 매니지먼트 방문, 그리고 미팅.

아이작 이스트 녹음 현장 참관.

이게 두 가지가 전부다.

무슨 견학이라도 온 거냐고?

그게 아니라 내 방문 자체가 아이작 이스트와 매니지먼트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루어진 사안이다.

나를 꼭 만나서 대화하고 싶다나?

아이작 이스트.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굉장한 뮤지션이었다.

음악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SNS와 뮤튜브 계정을 운영하며 팬과의 소통을 열심히 이어가고 있는데 그 영향력이 굉장하다.

다 떠나서, 그가 나이키와 손을 잡고 런칭한 한정판 신발이 엄청나게 인기라고 하니 말 다한 거지 뭐.

나이키와의 콜라보레이션이야 말로 톱스타의 상징이랄 수 있으니.

이렇게 굉장한 사람이 대체 왜 나 같은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여기서 아무리 생각해봐야 답도 없지. 일단은.. 현재를 즐기자.’

나는 지금 뉴욕 맨해튼에 있고, 내 앞에서는 센트럴 파크가 펼쳐져 있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어디에 있겠나?

3박 5일이라는 짧은 일정.

조금이라도 더 많이 진짜 맨해튼은 온몸으로 느끼고 싶을 따름이다.

호텔 조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소호로 이동했다.

“블랙 로즈 매니지먼트는 바로 저 빌딩이야.”

“와... 여기 임대료 무지막지하게 비싼 곳 아니에요? 어지간한 기업도 버티기 힘든 곳이라고 들었는데....”

“저거 블랙 로즈 회사 건물이야.”

“......!”

맨해튼 중심가에 저런 큰 건물을 가지고 있다니... 알수록 놀라게 되는 곳이로군.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가려는데 대표님이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맨해튼은 주차 공간이 워낙 협소해서 전용 주차장을 하나라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가 된다더라.”

“그래요? 이런 주차 공간이 얼마라고....”

“저 작은 평수 하나가 4,5억 정도 될 걸?”

“컥!”

건물 로비 안에 들어서는 순간 이정연 팀장님이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부터는 장난 좀 자제해 주세요.

“네.”

“알았어.”

“......?”

잠깐만.

나는 그렇다 치고 댁은 우리 회사 대표잖아요.

정말 이정연 팀장님께 모조리 맡기기로 한 건가?

... 탁월한 선택일 수도?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모던한 인테리어의 집무실이었다.

그곳에 지적인 이미지의 흑인 중년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금테 안경을 벗고 일어서서 환한 얼굴로 맞아줬다.

“어서 와요! 블랙 로즈 매니지먼트에 온 것을 환영해요!”

킴벌리 존스 대표는 지적인 외모와 달리, 유쾌하다 못해 수다스럽기까지 했다.

중요한 건 무슨 말을 하는 지 내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점이다.

장진영 대표님이 옆에서 간간이 통역을 해주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서러워서 빨리 영어를 마스터하든가 해야....

“지금 네 이야기 하고 있어. 정연이가 온 힘을 다해 금칠 중이야.”

그래? 그러면 웃어야지!

지루한 티, 무식한 티 절대 내지 말고!

“......!”

“......!”

간간이 들리는 단어와 제스처, 분위기 등으로 대화 내용을 파악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헛수고.

아무것도 못 알아듣겠다!

그래. 돌아가면 바로 영어 학원부터 찾아가자!

그때 킴벌리 존스 대표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당황한 티를 애써 억누른 채 이정연 팀장을 쳐다봤다.

“<시간 있어요?> 말고 또 다른 음악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다고 하시네요.”

“물론이죠. 그런데 어떤 음악을 들려드려야 할까요?”

“흑인 음악 전문 회사니, 제 생각에는 엔 플라워 차기작 스칼렛 러브를 들려주면 될 것 같아요.”

곧 장진영 대표 휴대폰으로 엔 플라워 버전의 스칼렛 러브가 울려 퍼졌다.

녹음 상태, 믹싱, 마스터링까지 굉장히 훌륭했다.

킴벌리 존스 대표는 음악을 듣는 내내 흥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 회사 규모가 국내 대형 3사 합친 것보다도 크다던데, 참 거침없고 솔직한 사람이다.

호감 가네.

그 모습을 본 킹콩 한 마리... 아니 대표님까지 덩달아 어깨를 들썩 들썩, 고개를 앞으로 뒤로 앞으로 뒤로....

나와 이정연 팀장님은 난감한 시선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 나도 슬쩍 따라서 해볼까?

왠지 미국이니까 거리낌 없이 흥을 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와, 이 곡 굉장히 좋네요! 일단 사운드가 굉장히 훌륭해요. 내용은 어떻게 되나요?”

“아, 그게요.”

신이 난 대표님이 스칼렛 러브에서 시작되는 분노, 상처, 치유, 성장으로 이어지는 차기작에 대한 내용을 쭉 설명한다.

“멋지네요!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있는 앨범 구성이라니... 나머지 음악도 모두 힙합 음악인가요?”

“그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 상처로 이어지는 다음 트랙은 엘레지한 느낌을....”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

난 정확히 대화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지금 엔 플라워 차기 앨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지금 <시간 있어요?>계약 이야기 하러 온 거 아니었나? 왜 엔 플라워 이야기를 더 많이, 열심히 하는 것 같지?

바로 그때.

[ 웅웅웅! ]

“어? 잠시 만요!”

킴벌리 존스 대표가 대화를 멈추고 휴대폰을 확인한다.

“아이작!”

이건 알아들었다.

통화 상대가 아이작 이스트 맞지?!

그녀는 통화를 짧게 끝마치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아이작이 회사에 도착했다네요. 여러분 왔다는 이야기 듣고 빨리 만나고 싶다며....”

“아, 그래요?”

나도 이야기를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원래 그와의 만남은 바로 내일, 녹음 참관 일정으로 잡혀 있었기에.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인터넷에서만 봤던, 캐주얼 패션에 날렵한 체구, 잘 생긴 외모를 지닌 흑인 사내가 들어섰다.

그는 활짝 웃으며 우리를 한 번씩 포옹했고 환영한다는 말을 건넸다.

이어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폭풍 수다가 시작됐다.가끔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 봐서는 내 이야기도 간간히 나오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뭘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

아... 집에 가고 싶다.

@

오후 두 시.

나쁜 어른들은 나만 호텔 객실에 내버려두고 저희들끼리 어디론가로 떠나 버렸다.

나는 노트북 가방과 지갑을 챙겨들고 홀로 호텔을 나섰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고, 모처럼 뉴욕에 왔는데 이대로 객실에 처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영어?

콩글리시랑 제스처, 번역 앱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가장 먼저 센트럴 파크로 향했다.

호텔 바로 앞에 있으니 도착은 금방이었다.

가장 활발한 시간대라 그런지 공원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마침내 말로만 들었던 뉴욕 센트럴 파크를 경험해보는구나! 감동이다.

버스킹을 하는 스트릿 뮤지션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춤을 추는 이들도 있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이들도 보인다. 이런 사람들이 공원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날씨가 굉장히 화창하고 좋았던 덕인지, 청중들의 인심도 제법 후하다.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지, 유난히 한국 사람들이 눈에 띈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둔 것도 모자라 스마트폰 라이브 방송을 켜두고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남자.

근처 벤치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필기하고 있는 남자.

오래전부터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바로 이곳, 센트럴 파크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왠지 나도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앉아 곡 구상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해가 지기 전 공원을 벗어나 호텔에서 가까운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를 한잔 주문한 뒤 노트북을 펴고 앉아 창 너머 맨해튼의 하늘을 바라본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금방 어두워졌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담긴 기분 좋은 온기가 가슴과 머릿속을 자극하는 듯 했다.

불현 듯 영감이 밀려왔다.

순간 나는 정신없이 곡 작업에 돌입한다.

머릿속에 피아노로 여덟 마디 테마가 연주되고 있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맨해튼을 표현한 듯한 압도적인 화음.

여기에 808 베이스와 드럼이 삽입된다.

이것만으로도 꽤나 그럴 듯한 힙합 루프가 완성되었다.

듣는 순간 느낌이 왔다.

[ 이봐. 나 또 왔어! ]

그 분이 또 다시 나를 찾아와주셨다!

우리 영감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정말 잠깐이면 돼요!

미친 듯이 편곡과 가이드 멜로디를 완성했다.

그 순간.

[ 나 이제 가도 되지? ]

영감님이 다시 먼 길을 떠나가신다.

난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고마웠어요. 언제든지 또 오세요!

시간이 늦은 관계로, 객실로 돌아간 나는 새벽 시간 까지 미디를 붙잡고 곡을 완성했다.

장르는 힙합 알앤비.

놀라울 만큼 KPOP 스럽지 않고 미국 본토스러운 음악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는데... 일단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부르기에 적합한 음악은 아니다.

소울 풀한 흑인 감성 뮤지션이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예를 들면 아이작 이스트라든가.

어렵겠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는 거잖아?!

대표님 돌아오면 말이라도 꺼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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