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초격차
늦은 새벽 만취 상태로 돌아오신 대표님.
이래서야 피드백 받는 건 뒤로 미뤄야겠군.
신발과 양말만 벗겨 이불로 덮어 놓고, 조금은 차가운 내부 온도를 따뜻하게 조절한다.
우리 이정연 팀장님이 술에 떡이 된 킹콩 한 마리 케어한다고 고생 많으셨을 것 같다.
[ 고생 많으셨어요. 푹 쉬세요. ]
문자 메시지를 날리고 나 역시 침대에 몸을 묻었다.
푹신한 침대 덕분에 잠시 솔솔...
“크아아아...피유....”
“.......”
... 올 리가 없지.
저 양반 무슨 코를 고는 게 아니라 소리를 지르는 수준이네.
확 이불로 숨구멍들을 모조리 막아버릴 수도 없고.
“크아아...크아아...!”
“아, 잘 잤다.”
이른 아침.
샤워를 마치고 나온 대표님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분 좋아 보인다.
반면 내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코골이를 빙자한 고함과 싸우느라 심력을 소모했기 때문이다.
화가 나서 때릴 뻔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두 번 다시 숙소 같이 쓰나봐라.
“너도 빨리 씻고 나와. 아침 식사 호텔 말고 다른 곳에서 할 거야.”
“.......?”
이른 아침 도착한 곳은 맨해튼 80번가에 위치한 커다란 저택이었다.
여기 사람 사는 곳 맞아?
무슨 박물관이나 회사 건물 같은 게 아니라?
문이 열리고, 이정연 팀장님이 운전하는 차가 조심스레 내부로 진입한다.
분수가 쏟아지는 고풍스러운 정원 라인을 한 바퀴 돌아 도착한 곳은 커다란 차고.
“와.”
“세상에.”
“.......”
차고 안에 펼쳐진 풍경에 우리 세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화 아이언맨 차고마냥, 온갖 슈퍼카가 가득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랜트한 국산 중형 차량을 이런 곳에 주차하려니 민망할 지경이다.
“어서 와요. 우리 집에 방문한 것을 환영해요!”
슬리퍼에 반팔, 반바지 차림을 한 아이작 이스트가 마중나왔다.
대표님이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굉장히 멋진 차가 많네요. 이렇게 차를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는데.”
“이곳에 제 차 없어요. 다 제 와이프. 그리고 자식들 차예요.”
“아....”
“저는 차에 큰 욕심이 없거든요.”
“그렇군요.”
음, 역시 무슨 대화를 하는 지 전혀 모르겠다!
슈퍼카 전시 회장을 방불케하는 차고를 지나 마침내 저택 안에 진입했다.
미드에서나 볼법한 화려한 저택이었다.
가구, 장식품, 인테리어.
모든 것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저택 로비를 지나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간다.
개방감이 굉장한 거실이 펼쳐져 있었다.
그 중앙에 커다란 식탁이 있었는데 바비큐 등, 각종 요리가 가득했다.
... 아침부터 저런 걸 먹겠다고?
“자, 이 요리가 마지막이에요!”
킴벌리 존스 대표가 앞치마 차림으로 커다란 접시 두 개를 들고 등장했다.
무시무시한 크기의 티본 스테이크였다.
“........”
우리 세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맛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먹다가 혈관 막혀 급사할 것 같아서.
“자, 아침 식사를 시작해볼까요?”
맛은 있었다.
맛은.
단지 하나같이 기름지고 양이 많아서 그렇지.
“저, 자녀 분들은....?”
“일찍 학교에 갔어요. 둘 다 대학생이라 아침에 빨리 움직이는 편이거든요.”
“대학생이군요. 그런데 맨해튼에서 통학하는 학교라면 혹시...?”
“아들은 뉴욕 주립대. 딸은 맨해튼 음대에 재학중이랍니다.”
“와우, 자식 농사에 성공하셨군요!”
“네? 그게 무슨 뜻이죠?”
“아, 이건 한국에서 좋은 뜻으로 주고 받는 말인데 무슨 뜻이냐면....”
역시, 이번에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래도 추측 정도는 가능했지만 내 알바는 아니지.
지금은 그것보다는 느글거리는 속을 커피로 달래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설마 아침 식사를 매번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아니겠지?
티타임까지 마치고 회사로 갈 줄 알았다.
오늘은 녹음 일정이 잡혀 있었으니까.
“집에 녹음실 있으니 그곳으로 갑시다.”
이 부부는 또 한 번 우리의 상상을 깨뜨렸다.
세상에, 저택 안에 녹음 스튜디오가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크고 화려한!
“와, 스피커도 그렇고 장비들이 무슨....”
“우리 회사에서도 없는 장비가 가득 하네요.”
“너무 비싸기도 하고 찾는 곳이 많아서 예약해도 몇 년을 대기해야 받을 수 있는 장비들 뿐이야.”
스튜디오의 진가를 이해하는 것은 나와 대표님 뿐이었다.
정연 팀장님에게는 내가 간단히 놀라는 이유를 소개해줬다.
“자.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겠다. 방금 전 수다로 목도 충분히 풀었으니 바로 녹음하도록 합시다.”
“제가 디렉팅 볼까요?”
“하하. 안 그래도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대표님과 아이작 이스트의 녹음이 시작되고 난 모든 것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
솔직히 말하면, 충격적이었다.
모든 것이 내 구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저게 진짜 본토 감성이구나.
바로 어제 미국스러운 힙합, 알앤비 음악 하나 만들었다며 기뻐했던 일들이 민망해졌다.
내 음악이, 감성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다.
뭘 그 분이 오셨다며 으스대고 그랬는지...
어쩌면 나는 평생이 지나도 저 특유의 소울을 흉내내지는 못할 것 같다.
‘그냥 들려주지 말자.’
기껏 좋게 쌓아 놓은 이미지, 괜히 나서서 망쳐버릴 필요는 없지 않나?
“원곡자의 소감이 궁금하대요”
녹음이 끝난 후 그가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지금 들끊고 있는 이 감정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고민 끝에 내가 내놓은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엄청난 벽과 마주한 기분이에요.”
놀란 표정을 짓던 이정연 팀장이 침착하게 말을 전달한다. 대표님은 이해한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
아이작 이스트가 크게 웃었다.
그라고 뭐라고 말했는데... 난 당연히 못 알아 듣지. 이정연 팀장님이 통역해줬다.
“미안하기도 하고 어린 천재에게 새로운 자극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고 그렇다네요.”
“아....”
통역은 계속 이어진다.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하지 말래요. 본인이 이 장르의 음악만 수십 년을 파고 들었는데 이 정도도 못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냐며....”
“베이스가 된 연주가 굉장히 좋아서 어느 때보다도 좋은 곡이 나온 것 같다며 고마워하고 있어요.”
“괜찮으면 같이 앨범에 수록될 다른 곡도 들어보겠냐고 제안하시네요.”
그 제안을 거절할 내가 아니었다.
“네! 들려주세요!”
내가 그의 음악을 듣고 좌절한 이유를 알았다.
‘편곡은 메시지를 위한 수단일 뿐.’
일단 담아내는 메시지의 깊이감이 남다르다.
그렇다고 편곡이 별로라는 건 아니다.
모든 악기를 미디 가상 악기가 아닌 실제 세션들의 연주로 가득 채웠는데, 녹음 실력도 그렇고 하나의 곡으로 담아내는 솜씨가 예술의 경지였다.
그의 말이 맞다.
이런 건 그 같은 천재 뮤지션이 오랜 세월을 뼈 빠지게 노력해야만 얻어낼 수 있는 정수 같은 것이다.
이를 테면 수십 년 내공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뚝딱 만들어 낸 그런 음악이 아니라.
또 다시 민망함이 밀려왔다.그런 것도 모르고 짧은 생각과 단어로 그의 오랜 노력을 재단하려 했으니....
점점 위축되는 내가 안쓰러웠던 걸까?
그가 위로를 건넸다.
“세월은 깊은 울림을 주지만, 그 대신 신선한 창의력을 앗아간다고. 자신에게는 민이 씨와 같은 기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
“민이 씨의 음악은 분명 깊이는 부족하지만 그것을 매우고도 남을 아이디어가 있다고. 괜찮으면 이제부터는 그것을 듣고 싶다고 말하고 있어요.”
“제 음악을 듣고 싶다는 건가요? <시간 있어요?>가 아닌 다른 음악이요?”
“네. 아, 엔 플라워 곡은 술 자리에서 대표님이 이미 들려줬어요.”
“음... 블루 웨이브는 조금 그렇죠?”
“굉장히 KPOP 스러운 계절송이라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렇다면....”
떠오르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방금 전 영원히 봉인해두기로 마음먹었던 비장의 음악.
“사실 어제 뉴욕을 돌아다니다가 삘 받아서 만든 음악이 하나 있긴 한데....”
대표님이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그 잠깐 사이에 또 곡을 만들었어? 장르가 뭐야?”
“알앤비 힙합이요.”
“편곡은 제대로 끝냈고? 여기서 들려줄 수 있는 퀄리티 맞아?”
“가이드, 가믹싱까지 다 끝냈어요.”
“야, 그런 게 있었으면 나한테 먼저 들려줬어야지!”
“어제 몇 시에 어떤 꼴로 오셨는지 잊으셨나봐요.”
“.......”
잠시 말문이 막혔던 장진영 대표가 말했다.
“제대로 만든 거 맞지?”
“아침까지는 자신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그러네요. 넘사벽을 목격해 버린 터라.”
“그건 뭐 어쩔 수 없지. 솔직히 나도 기가 확 죽더라. 어쨌든 틀어 봐. 기다리잖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노트북 볼륨을 최대한 높여 음원을 재생한다.
세계적인 도시 뉴욕.
그 중심부 맨해튼을 표현할 웅장한 여덟 마디 화음!
무려 몇 시간을 작업해서 완성한 댐핑감 넘치는 드럼과 808 베이스가 힙합 느낌을 물씬 풍겨준다.
내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이 거대한 도시에서, 각자 다른 영감을 받아 자신을 드러내는 예술가들의 모습이었다.
사실 내가 가장 동경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전 세계 각지.
꿈을 가진 수많은 이들이 한 도시로 모여 꿈을 향해 육체와 영혼을 불사르는 그러한 광경.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지만, 난 그런 모습 자체가 굉장히 아름다워 보였다.
나도 그 일부가 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을 정도로.
“오....”
터져 나오는 탄성!
흥미로운 표정을 짓던 아이작 이스트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덩실 덩실 춤을 추기 시작한다.
본인이 느끼는 흥을 눈치보지 않고 드러낸다.
분명히 처음 들어봤을 음악을 한참 즐겁게 듣던 그는 음악이 끝나자 박수를 치며 말했다.
“굉장히 멋진 음악이에요! 가사가 없는데 이렇게 그 주제와 내용이 머릿속에 상세히 펼쳐지는 경험은 참 새롭게 느껴지네요. 어떤 내용이죠?”
굉장히 흥분한 듯 보인다.
난 내가 담아낸 영감에 대해 알려줬다.
거대한 도시.
각자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수많은 예술가들.
그곳에 포함되고 싶다는 충동감 등등.
“하하! 재미있네요. 아주 창의적인 음악이에요. 단 여덟 마디 테마로 예술의 도시 맨해튼 이미지를 굉장히 잘 표현햇어요. 이건 재능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영역이네요. 그런데 말이죠.”
이어지는 광경에 내 입에서 실실 새어나오던 웃음이 극적으로 멈췄다.
“이걸 이런 식으로 바꿨다면 더 멋졌을 거예요. 피아노는 이런 느낌으로....”
내 곡이, 진화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드럼은 좋으니 그대로 두고, 그냥 기타 대신 디스토션이 걸린 일렉기타로 다이나믹한 느낌을 깔아주고...”
[ 둥둥둥! ]
“후렴구에서는 메인 테마를 코드를 살짝 변경해서 오른손으로는 높은음을 세계 짚어주고 왼손으로는 가장 낮은 음악을 극적으로 연주해주면....”
“........”
정말 말이 나오지 않는다.
대표님과 정연 팀장님 역시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놀라운 광경이었다.
퀄리티를 떠나,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음악을 그 자리에서 분해해서 더 나은 형태로 진화시켜버리는 광경이라니....
오랜 숙련도고 뭐고.
이것이야말로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가 보여주는 클래스의 차이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랩과 보컬도 조금 더 만지고 싶지만 아직 가사가 나오지 않았으니... 아, 제가 한 번 해볼까요?”
“네? 네, 뭐... 그렇게 해주시면 고마운데... 곡 쓰시려고요?”
“이거 저 주려고 만든 곡 아니었나요? 이렇게 좋은 음악인데, 당연히 제가 써야죠! 이번 앨범에 수록하고 싶네요!”
아, 팔았다!
분명 기쁜 일인데....
‘왜 하나도 안 기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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