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금의환향
엄청난 수준차이를 목격해서 그런걸까?
내 역량을, 음악을 온전히 인정받은 결과가 아니어서 그런 것일 지도 몰랐다.
그래.
이건 내가 선물한 게 아니라 오히려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곡 계약을 채결한 그 자리에서 편곡과 작사, 녹음이 이뤄졌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광경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마법 그 자체였다.
동시에 점점 커지는 생각이 있었다.
난 정말 한참 멀었구나.
가야할 길이 너무나도 멀구나.
대표님은 내 심정을 이해하듯, 조용히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신다.
“야, 나 한창 미국병 걸렸을 때 그렇게 고생해도 곡 하나 못 팔고 그랬어. 그에 비하면 지금 넌 양반이지 인마. 얼굴 펴. 굉장한 일 해낸 거야. 너.”
크게 위로는 안 된다.
나도 혼자 미국에 와서 뭔가 해보려고 했다면 아마 상황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건 나 혼자만의 공이 아니다.
대표님과 이정연 팀장님이 없었다면 이런 자리 자체가 성사될 일이 없었을 테니까.
오히려 칭찬 받아 마땅한 사람은 바로 이 두 사람이지.
@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은 일정이었다.
우선, 대표님과 엔 플라워가 블랙 로즈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다.
사실 대표님 계약은 뭐... 그렇게 될 것 같았으니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엔 플라워는 정말 예상하지 못한 성과였다.
이건 킴벌리 존스 대표가 추진한 내용인데, 엔 플라워 차기 앨범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앨범 성과에 따라 지원 규모가 달라지겠지만, 아직 발매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좋은 징조였고 훌륭한 성과라 평가할 수 있었다.
마지막 성과는 내가 아이작 이스트에게 곡을 팔았고, 그게 다음 앨범에 수록된다는 것 정도?
하지만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녹음실에서 목격한 경이로웠던 광경들.
그것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음악을 잘하고 싶고, 깊은 울림을 자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객실로 돌아와서도 계속 노트북만 붙잡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할 걸까?
이른 아침 장진영 대표가 내게 말했다.
“민아. 빨리 씻고 외출 준비 해.”
“.......?”
“일만 하다가 돌아가는 건 좀 야박하잖아. 마지막 날은 놀자. 내가 오늘 뉴욕 구경 제대로 시켜줄게.”
@
뉴욕은 굉장히 볼거리만큼 먹거리도 많은 곳이다.
가장 유명한 대중적인 먹거리 몇 개를 뽑으라면 역시....
“역시 쉐이크 버거를...”
“순두부찌개 먹으러 가자.”
“.......?”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곧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뉴욕과 LA에서 가장 유명한 한식이 바로 순두부찌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오오...!”
과연.
한국에서 먹던 것과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
맨해튼 한복판에서 먹는 순두부찌개와 수육이라니!
며칠 동안 기름진 음식만 먹어서 한식이 그리웠던 참이었다.
“한식이 최고지?”
“네. 햄버거고 뭐고, 역시 한국 사람은 한식이 최고네요.”
대표님도 그렇고 이정연 팀장님도, 미국 생활을 나름 오래했던 덕분인지 맛 집이나 볼거리 같은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유명하다는 디저트 가계를 찾아가서 우리 먹을 것과 선물도 잔뜩 사고. 소호의 로컬 패션숍에서 옷과 장신구도 구매했다.
“너 이거 사라. 내가 사줄게.”
이 양반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작정이라도 한 듯 나에게 돈을 퍼붓는다.
이정연 팀장님은 일일 스타일리스트를 자청.
날 꾸미는데 굉장히 몰입하고 계신다.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브로드웨이와 타임스 스퀘어 광장도 가보고.
미술관도 가보고.
돌아다니면서 결심했다.
나 미국에서 대학 다녀야겠어!
“그래. 너 그 말 할 것 같더라. 그러면 지금부터 피터지게 준비해야 할 텐데... 미국 대학은 공부만 잘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그건 알지?”
“네.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고 듣긴 했어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학비, 생활비도 굉장히 세게 들어가. 정연아, 하버드 1년 학비가 얼마였지?”
“대략 4만 달러 정도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원화로 하면 대략 5000만원 약간 안 되는 돈이네. 참고로 학비만 이 정도고 생활비 모두 포함하면 한 해에 최소한 억은 쓴다고 봐야지. 감당할 수 있겠어?”
“........”
자신감이 쪼그라든다.
까짓것 벌면 되지 않냐고
어차피 투자로 대박 터트릴 거 아니냐고?
그건 계획일 뿐이지 당장 손에 쥐고 있는 건 별로 없으니 이러는 거지.
“왜, 갑자기 자신 없어졌어?”
“쉬운 일이 아니죠. 설령 돈이 있어도 문화가 굉장히 달라서... 대부분은 여기서 적응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오기도 해요.”
도발하는 미소의 대표님과 달리, 이정연 팀장님의 표정은 순수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경고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맨해튼에 푹 빠져서 갑자기 그런 결심을 한 것 같은데, 맨해튼 평균 월세가가 대략 3000~4000달러 수준이에요. 그만큼 물가도 굉장히 높은 편이고요. 미국 유학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 오래 고민해 보셔야 해요.”
“팀장님은 그걸 전부 감당하신 거고요?”
“전 여러 곳에서 장학금을 받은 덕분에 재정적 부담은 크게 느끼지 않았어요.”
“여러 곳이라면... 하버드 외에 다른 곳에서도 장학금을 받으신 건가요?”
“네.”
“정연이는 우리 같은 사람하고 클래스가 달라. 너 킴벌리 존스 대표가 단순히 대학 동문이라고 잘 대해준 것 같지?”
그게 아니었어?!
“정연이가 학교에서 워낙 유명했고, 교수님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받은 덕분이야. 친하게 지내는 동기들 중에서도 스펙이나 배경 빵빵한 친구들도 엄청 많아. 얘는 우리 회사 아니어도 어딜 가든 에이스로 활약할 수 있는 애라고.”
“우와아...!”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아무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그래도 정말 마음이 간다면 저에게 말해줘요. 최선을 다해 도와줄 테니까요.”
천사다!
그것도 대천사!
이런 심정이 얼굴에 드러난 걸까?
정연 팀장님이 다급히 경고한다.
“또 오버하면 했던 말 다 취소해버릴 거예요.”
“오버가 아니면 되는 거죠?”
“하지 말아요. 하지 말라고 했어요? 하지....”
“이정연! 이정연!”
“.......”
“민이 쟤 가끔 보면 미치광이 같아. 하하.”
한숨 쉬는 팀장님과 배를 잡고 웃는 대표님.
시선 따윈 아랑곳없이 난 열심히 날개 없는 대천사의 이름을 연호했다.
“사랑해요 이정연! 우유빛깔 이정연!”
@
3박 5일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 동안 한국은 난리도 아니었다.
[ 장진영. 미국 유명 매니지먼트 ‘블랙 로즈’와 미국 진출 계약 체결! ]
[ 블랙 로즈 매니지먼트는 어떤 곳?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 세계적인 재즈 힙합 아티스트 아이작 이스트의.... ]
[ 장진영 메가 히트곡. <시간 있어요?>미국에서 울려 퍼진다. ]
무슨 기사가 소나기 마냥 쏟아지고 있었다.
이에 대한 팬들의 반응 역시 반으로 갈린다.
[ 그놈의 미국병 또 도졌냐? ]
[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만.... ]
[ 하여튼 저 놈의 회사, 미국 병이랑 언플만 아니면 참 괜찮은 곳인데.... ]
이래서 사람은 과거가 중요한 것이다.
대표님의 업보가 쌓인 결과라고 해야 할까?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대표님은 생각 이상으로 무덤덤했다.
“아무렇지 않으세요?”
“욕 한 두 번 먹는 것도 아닌데 뭐. 그나저나 넌 어때?”
“뭐가요?”
“오늘 첫 저작권료 들어왔잖아.”
“아....”
바로 오늘.
<시간 있어요?> 첫 저작권료가 입금됐다.
내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실감이 안 나요.”
“뭐가?”
“너무 큰 금액이라서요.”
“하긴, 나도 첫 히트곡 저작권료 받았을 때 그런 기분 들었지. 큰 금액이 들어온 건 알겠는데 딱히 와 닿지가 않는 그런 기분이잖아.”
“맞아요. 몇 백도, 몇 천도 아니고....”
무려 억대로 들어왔다.
첫 저작권료가.
무슨 앨범도 아니고, 디지털 싱글 한 달치에 대한 정산액이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수익이라 할 수 있었다.
“원래 저작권료는 첫 달이 제일 크고 갈수록 뚝뚝 떨어지는 게 보통인데 넌 어떨지 모르겠다. 이번 곡 결국 월간 차트 1위 찍을 정도로 대성공했잖아. 호재도 많고.”
“.......”
“버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관리하는 거야. 큰 돈 들어왔다고 무턱대고 쓰지 말고 현명하게 판단해. 너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대표님은 신뢰가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넌 나이에 맞지 않게 생각도 깊고 현명한 아이니까.”
천만 원만 남기고 비트 코인을 매수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여유 자금은 있어야지.
‘코인도 슬슬 뻥튀기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는군.’
안 그래도 이 부분 때문에 국. 내외로 난리였다.
비트 코인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서서히 끊어 오르고 있었다.
그만큼 찬. 반론도 거세졌고.
어떤 입장이든, 미래를 알고 있는 이미 대처한 내 입장에서는 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활활 타올라라. 그래서 나도 좀 억만장자가 되어보자!’
@
1위 작곡가!
위상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곳은 바로 학교였다.
“아이작 이스트 만나고 왔다며? 어땠어?”
“그 사람 억만장자라던데, 부인도 굉장한 사람이라며?”
날 가만 놔두지 않는다.
예전 같았다면 이 상황에 당황하는 시늉이라도 했겠지만....
‘반 아이들의 관심은 익숙해져서 말이지.’
이런 일도 가능해졌다.
“다들 모여 봐. 내가 개 쩌는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까.”
“김민 군 맞죠?”
학교 앞 정문에 정장을 입은 젊은 청년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금빛의 명함.
[ KM 엔터테인먼트 신인 개발팀 박회용]
“저는 JJ 엔터테인먼트 전속인데요?”
“스카웃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찾아왔습니다.”
“곡 의뢰라면 회사를 통하셔야죠.”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는 한쪽을 가리켰다.
정문 건너편에 주차되어 있는 검정색 고급 세단.
가까이 다가가니 살짝 창문이 열린다.
그리고 드러나는 익숙한 얼굴.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
굉장히 잘 아는 얼굴이었다.
KM 엔터테인먼트 김만수 회장.
노년층에게는 배우로, 우리 세대에는 KPOP 장르를 개척한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프로듀서 김만수.
장진영 대표 이전에 그가 있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히트곡과 톱스타를 만들어낸 황금의 손이다.
사사로이는 나를 발굴하고 키워낸 첫 프로듀서이기도 했고.
“제가 김민 군하고 대화하고 싶어서 정말 어렵게 시간 내서 찾아왔어요.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나이도 많고, 한국 연예계에서 위상이 어마어마하지만, 그는 절대 오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냉철한 능구렁이.
업계에서 그의 또 다른 별명이다.
‘그냥 가버려? 아니면....’
판단은 길지 않았다.
난 조용히 타 안에 탑승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고급 세단 안에서, 그가 날 보며 활짝 웃는다.
“정말 보고 싶었어요. 지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최연소 히트 프로듀서를 말이죠.”
참고로 말하자면.
이 사람은 같은 편이라면 다 퍼주지만, 자신을 배신했거나 혹은 적이라고 판단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장 시켜버리는 악취미가 있다.
이전 삶에서의 나 역시 그 희생자 중 한명이었다.
뭐만 하려고 하면 비난 여론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게 정말 안티 팬들만의 소행이었을까?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자.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단축버튼으로 녹취 모드를 가동한다.
‘이 영감, 언제 어떤 식으로 날 물 먹이려고 할지 모르니 미리 대비해둬야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