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선물 (1) (유료 시작) >
도착한 곳은 삼성 역 초 고층 센터에 입점해 있는 고급 중식집.
이 아저씨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자사 직원, 혹은 아티스트를 데려가는 곳이다.
그만큼 좋아하고 아끼는 식당이라는 이야기다.
코스 요리를 주문하고, 날 무슨 땅에 떨어진 보물 바라보듯 하는 얼굴로 보며 묻는다.
“제가 지금까지 정말 수많은 아티스트를 발굴해서 육성했어요. 그 중에 천재들도 많았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굉장히 훌륭한 아티스트도 있었는데 김민 군 같은 타입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칭찬이죠?”
“하하. 물론이죠. 처음에 장진영 대표 노래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어요. 아니, 이걸 고등학교 1학년생이 만들었다고?”
그가 본격적으로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 나이에 미국 재즈와 KPOP 감성을 완벽히 이해하고 곡을 쓸 수 있었던 거죠? 대체 공부를 어떤 식으로 한 거예요?”
이전 같았다면 이 칭찬이 꽤나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다른 사감 없이, 정말 순수한 칭찬이라는 게 느껴졌으니.
하지만 신기와 같은 아이작 이스트의 역량을 보고, 큰 좌절을 체감한 지금으로서는....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네?”
“KPOP은 그나마 조금 알겠는데, 본토 재즈는 아예 급이 다르더라고요. 저 아직도 많이 부족해요. 가야할 길도 멀고요.”
그 말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아이작 이스트 하는 걸 보고 나니 내 최대 히트곡이랄 수 있는 <시간 있어요?>도 굉장히 아쉽고, 민망하게 느껴지더라.
날 묘한 얼굴로 바라보던 김만수 회장이 입을 열었다.
“혹시 아이작 이스트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네?”
“미국에서 이번에 아이작 이스트 만나고 왔죠?”
“네. 뭐... 그렇죠.”
“사실 저도 예전에 아이작 이스트 직접 만났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요?”
“예전 일인데, 제가 키우던 힙합 뮤지션이 한 명 있었어요. 그 친구가 아이작 이스트를 워낙 좋아해서... 곡 받겠다고 미국까지 날아갔던 적이 있었어요.”
누군지 알 것 같다.
2000년대 초반, KPOP 씬에 정말 혜성처럼 등장했던 힙합 뮤지션.
“The Red 말씀하시는 거죠?”
“오, 알고 있었군요.”
“저도 굉장히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은 뮤지션이니까요.”
김만수 대표가 굉장히 애착을 가지며 프로듀싱 했던 뮤지션.
힙합이 비주류 장르였던 당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랩스타였다.
“재능이 안타까웠던 사람이죠. 굉장히 빨리 떠오른 만큼 가라앉아 버렸으니.”
힙합으로 정상에 섰던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급속도로 망가졌다. 뒷말은 무성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만수 회장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대한민국 정상에 선 이후 계속 미국 진출을 시도했었는데 번번이 좌절됐죠. 심지어 만류까지 뿌리치고 미국 현지로 날아가서 성공하겠다고 몇 년을 고생했는데....”
아, 이유를 알겠다.
쉽게 말해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 밖을 보고 좌절했다는 이야기다.
“공감이 가네요. 저도 아이작 이스트 녹음하는 거 보고 완전히 같은 심정이었거든요. 아, 나는 절대 저렇게 할 수 없겠구나. 뭐 이런....”
“맞아요. 바로 그런 거죠.”
꿈이 꺾이고, 자신은 안 된다는 것을 마침내 인정한 순간에는 이미 모든 것을 상실한 후였다.
대한민국에서 어렵게 세운 입지도, 회사와 프로듀서의 신뢰도.
이 바닥은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이라도 오판 탓에 한 번 크게 휘청이면 다시 복구할 수가 없다.
‘미국 현지에서 마약 스캔들이 갑자기 터졌던 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
천재 힙합 뮤지션의 안타까운 몰락에 그런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김만수 회장 특유의 화법은 여전했다.
상대와 공통점을 찾아 그것으로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하고, 어느 정도 감정적 교류가 됐다고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게 본론을 꺼내드는 방식.
“프로듀싱이라는 게 참 쉽지 않죠? 아티스트를 자신의 틀에 끼워 맞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가 온전히 맞춰줄 수도 없고. 중간점을 찾는 게 참 어려워요. 안 그래요?”
“네. 맞아요.”
전생과 달리.
지금의 나와 김만수 회장 사이에는 깊은 공감대가 있었다.
프로듀서.
나와의 공감대, 친밀감 형성을 위해 선택한 대화 소스였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본래 목적을 꺼낼 때가 된 것 같은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김만수 회장은 본론을 꺼내지 않았다.
헤어지기 전. 그는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오늘 대화 정말 즐거웠어요. 조만간 좋은 인연으로 재회했으면 좋겠네요.”
그 말이 그나마 조금 의미심장했지만... 이건 사실 누구에게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
다음에 식사 같이 하자~. 뭐, 이런 류의.
주구장창 음악이야기만 하다가 끝났다.
KPOP. 흑인 음악. 미국 시장. 프로듀싱의 고충 뭐 이런...?
사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맘때 데뷔 준비에 들어간 신인 그룹의 곡을 맡기려는 게 아닐까? 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볼 일이란 그거 하나 밖에 없다.
저 사람이 이미 타 소속사에서 아무 문제없이 활동 중인 아티스트를 빼가려 할 정도로 무모한 사람은 또 아니거든.
그런데 내 예상이 깨진 것이다.
혼란스럽구만!
주머니 속에 있던 녹취 앱 재생을 멈추고, 일단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다.
“방금 전....”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전해져서 쓸데없이 오해 사는 것보다는 이런 자진 납세가 훨씬 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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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김만수 회장은 아무 연락이 없었다.
정말 내가 궁금해서 찾아왔던 모양이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나는 그 날의 만남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해야 할 일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엔 플라워 마지막 트랙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제목은 < 또 다시 봄! >
비발디 사계 중 봄 1악장을 샘플링한 음악이다.
스트링으로 화려한 선율을 넣었는데, 아이돌 댄스곡 치고는 BPM이 조금 편이었다. 그래서 따발총 마냥 하이햇을 난사하는 트랩 비트로 긴장감과 박자 감을 부여했다.
오케스트레이션이 들어가긴 했지만 최대한 악기를 많이 쓰지 않고 미니멀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일단 엔 플라워 음악은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았다. 멤버들의 취향도 있지만, 이렇게 해야 무려 아홉 명이나 되는 멤버들의 존재감을 최대한 채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곡에 대한 리더 루아의 반응은....
[ 이 곡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우아하고 너무 빠르지 않은데 박자감이 있어서 춤추기에도 편하고.... ]
그렇다고 수정 요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도 몇 가지 수정사항이 따라왔다.
[ 스트링 퀄리티가 아쉬워요. 이 부분이 사는 만큼 곡의 생동감이나 우아한 분위기가 더 좋아질 것 같은데. ]
내심 걱정했던 부분을 정확히 지적했다.
쉽게 말해 미디로 연주한 스트링 세션이 현실감도 안 나고, 연주적인 부분에 있어서 아쉽다는 평가였다.
내가 왜 걱정하면서도 굳이 이 곡을 들려줬냐면... 제작비 좀 아껴보려고 그랬지 뭐.
이게 오케스트레이션 의뢰비용이 꽤 세거든.
정말 세션을 쓰려고 한다면, 해당 부분 악보 제작부터 연주, 녹음까지 전문가에게 뭉텅이로 의뢰하는 편이 낫다.
... 근데 샘플링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야, 너는... 우리 회사를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야, 우리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 소 회사가 아니야.”
이런 생각에 대한 대표님의 반응이었다.
굉장히 단호했다.
“일단 곡이 좋게 뽑혔으면 퀄리티 올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어야지. 돈 아까워하지 말고 최대한 좋은 세션 써!”
그래서 오케스트레이션 녹음까지 마치고 다시 곡을 들려줬더니.
[ 이거죠! 진작 이랬어야지... 이제야 곡이 훨훨 날아가는 느낌이 드네요! ]
나비도 아니고, 훨훨 날아간다니 무슨....
아무튼 수정 작업은 그렇게 끝.
보컬 디렉팅과 후반 작업은 대표님이 알아서 진행하기로 했으니 내 임무는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내가 작업한 엔 플라워 미니 앨범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Scarlet Love.
2. Elegy
3. Everyday
4. 또 다시 봄!
참 이상한 일이지?
다 끝나고 나서야 아쉬운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그래도 이 이상 손댈 수는 없으니 여기서 미련을 접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리더 루아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 우리 요청 들어준다고 정말 고생 많았어요! 빠른 시일 내에 연락드릴게요! 어떻게 보답하는 게 좋을지 논의 중이거든요! ]
과연 그럴 시간이 있을까?
이번 앨범은 엔 플라워 역대 최고난이도를 자랑한다.
춤도 그렇고 노래도, 굉장히 힘들게 준비해야 겨우 기준에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다이어트와 피부 관리도 강도 높게 해야 할 텐데....
‘뭐, 그건 그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큰 산을 하나 넘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큰 피로가 몰려온다.
정말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치킨 한 마리 시켜먹고 빨리 잠이나 자야겠다.
아니, 며칠 동안은 아주 푹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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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 활동 언제 끝내지?”
“이런 분위기라면 당분간은 못 끝내죠.”
“아니 왜?”
“아직도 종합 차트 1위잖아요. 인기가 떨어지기는커녕 해외 진출 이야기까지 나오며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활동을 끝내요? 계속 해야지.”
운전 중인 매니저의 말에 장진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일정이라도 좀 줄여보자. 지금 너무 타이트해. 나 이제 곧 엔 플라워 앨범 녹음도 해야하고 안무도 봐야 하고 회사 업무도....”
일정표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었다.
매니저는 룸 미러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래도 하나 같이 호재라서 기분은 좋으시죠? 몸은 힘들어도.”
“그야 그렇지.”
“민이가 인물은 인물이에요. 그쵸?”
“복덩이지. 야, 나 사실 제 2의 전성기니 뭐니, 그거 남 이야기인 줄 알았거든? 그걸 설마 내가 누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넌 알았어?”
“전 사실 <시간 있어요?> 노래 처음 듣고 알았어요.”
“뭐? 정말?”
“직원들도 다들 그랬어요. 이 노래 잘 될 것 같다고. 잘하면 차트 1위도 가능하겠다고.”
어깨를 으쓱한다.
“그 1위가 설마 월간 차트 1위일 줄은 몰랐죠. 지금 분위기 봐서는 이번 달도 무난히 1위 수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설마 그럴까?”
대화하는 동안 사옥에 도착했다.
장진영은 집무실이 아닌 회의실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표정들이 좋아 보이네.”
JJ 엔터테인먼트의 귀한 공주님들!
바로 엔 플라워 모든 멤버가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수수한 모습으로.
“바로 회의부터 진행하자. 빨리 결정해서 일정 넘겨줘야해.”
오늘은 트레이닝 기간과 녹음 일정을 확정짓는 날이었다.
오늘 이후부터 활동 종료까지.
엔 플라워 멤버들은 굉장히 혹독한 시간을 보내게 될 터였다. 회사가 이를 제대로 서포터하기 위해서는 세부 일정을 짜서 빨리 확정지어야 했다.
회의를 마치고, 정해진 일정을 타 부서에게 넘기고 나서야 여유가 맴돌았다.
장진영이 푹 늘어진 멤버들을 보며 물었다.
“민이랑 작업해 본 소감이 어때?”
“작업이 굉장히 편하고 재미있었어요.”
“우리 의견을 진지하게 수용하고 잘 적용해 주는 게 좋았어요.”
호평 일색.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었다.
장진영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민이가 너희 곡 작업한다고 고생 많이 했어. 일정 들어가기 전에 따로 시간 내서 맛있는 거라도 좀 사줘.”
그렇게 말하고 다음 일정 장소로 향하는 장진영.
차안에서 생각했다.
‘나도 뭔가 해줘야 할 텐데.’
따지고 보면 받은 게 가장 많은 사람이 바로 자신 아닌가?
제 2의 전성기를 만들어 준 것은 돈으로도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가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미국 진출로를 뚫어줬다.
엔 플라워에게 멋진 앨범도 만들어주기도 했고 또....
‘아무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성인이었다면 차라도 한 대 뽑아줬을 텐데....
내심 안타까워하며 고민을 시작한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