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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로 돌아왔다-52화 (52/205)

< 52화. 데뷔 준비 (1) >

JJ 엔터테인먼트 사옥 지하 연습실은 가수 데뷔가 결정된, 혹은 이미 데뷔한 이들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벽면에는 해외 아티스트의 포스터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마이클 잭슨, 마돈다, 퀸, 프린스....

전 세계인이 존경하고, 장진영 대표가 개인적으로 우상처럼 여기는 이들이었다.

그 중 가장 큰 연습실은 컴백, 혹은 데뷔를 코앞에 둔 아티스트 전용 공간이었다.

뭐, 나한테는 꽤나 익숙해진 곳이다.

< 시간 있어요?> 무대 준비를 하며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장소였으니.

출입문을 열기 전,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내부를 확인해본다.

[ .......! ]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컴백 준비에 들어간 엔 플라워가 맹연습을 하고 있었다.

들어가는 게 잠시 고민됐다.

내부 평수도 넓고 환기 시스템 같은 게 잘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지하실이고 기본적으로 밀폐된 공간이라 땀 냄새가....

“뭐해? 안 들어가고.”

“.......!”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문이 열리고 안으로 떠밀려졌다.

황망한 얼굴로 돌아보니.

“너 땀 냄새 때문에 들어가는 거 망설이고 있었지?”

“아닌데요?”

“야, 표정 관리나 좀 하고 거짓말을 해. 그냥 숨 쉬어. 안 죽어.”

혀를 차는 대표님.

나는 춤을 추고 있는 멤버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천천히 호흡을 시작했....

“크읍!”

아, 안 돼!

이곳은 화생방 지옥이야!

도, 돔황챠!

“아, 진짜!”

“야, 잠깐만. 멈춰 봐.”

“나 민이 쟤 거슬려서 연습 못하겠어!”

“쟤 뭐하는 거야 지금?”

스칼렛 러브에 맞춰 덩실 덩실 춤을 추던 엔 플라워 멤버들이 버럭 성질을 낸다.

마음 여린 일본인 멤버들은 울상을 지으며 대표님께 하소연했다.

“민이 때문에 연습 못 하겠어요! 속상해요!”

“열심히 연습해서 땀나는 건데....”

“.......”

그런데 대표님도 멤버들이 다가오니 슬쩍 한 걸음 물러섰다.

내가 똑똑히 봤어!

“야, 장난 그만하고 이리 와.”

“저 지금 장난 아닌데요? 그냥 여기서 이야기 하면 안 될까요?”

“너 진짜... 이리 안 와?”

“쟤 끌고 와!”

“덮쳐!”

결국 성난 화생방 소녀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게 모진 고초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그만!

나 사실 피부 민감해서 불결한 거 묻으면 뒤집어 진단 말이야!

“뭐?”

“불결? 야, 매우 쳐!”

기어이 맞고 말았다.

장진영 대표님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너희 언제 그렇게 친해졌냐?”

“며칠 전 숙소에 초대해서 파티 했을 때부터요.”

“그때부터 그냥 서로 편하게 누나 동생으로 지내기로 했어요.”

“금방 친해지네. 매트로 보이즈 애들한테도 좀 그래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멤버들 전원이 치를 떨었다.

“어우, 그 오빠들 싫어요.”

“스타병 말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하고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아요.”

“뭐, 다른 건 아닌데 대체적으로 밥맛이에요.”

와, 이렇게까지 평판이 나쁘다고?

하긴, 생각해 보니 나랑 문 라이트 애들 오디션 보는 현장에서도 대놓고 질색하는 모습을 보였었지.

장진영 대표는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같은 소속사 식구인데 그렇게까지....”

“식구 아니거든요?”

“누구 맘대로 식구에요? 그런 사람들 몰라요!”

“.......”

거, 인성 중요하게 여긴다는 양반이 교육 제대로 안 시키고 뭐했어요?

내가 힐난하는 눈으로 바라보니 의미를 알아챈 대표님이 황급히 변명했다.

“야, 원래 가수들이 데뷔 초창기부터 2집 발매 때까지는 말을 참 잘 듣거든?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부터 자신감 생기기 시작하면 통제를 벗어나서...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어. 얘들도 그렇고.”

갑자기 지목당한 엔 플라워 멤버들이 반발했다.

“우리가 뭐 어쨌다고요!?”

“아, 기분 나빠! 그 오빠들하고 싸잡아서 힐난하지 좀 말아주실래요? 우린 안 그러거든요?"

“우리가 얼마나 착한데... 말 잘 듣잖아요!”

무시무시한 기세 앞에 쩔쩔 매는 불쌍한 대표님.

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궁지에 몰린 대표님은 손뼉을 두 번 치며 분위기 환기를 시도한다.

“오늘 스칼렛 러브 첫 점검 하는 날이지? 연습 제대로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거 충분히 감안 할 테니 한 번 해봐. 우리가 평가해줄게.”

엔 플라워는 공사 구분이 확실한 팀이었다.

오늘은 안무와 노래의 첫 점검이 있는 날.

평가 구성은 나와 대표님 두 사람.

조촐해 보일 수 있지만 굉장히 효율적이며 적절한 편성이다.

곡 구성, 노래, 안무.

모든 것을 완벽히 숙지하고 있으니까.

사실 안무 같은 경우, 여러 팀에게 의뢰해서 받은 작업물을 조합하고 변경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서 모든 것을 완벽히 숙지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야 모니터링을 하고 피드백도 해줄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춤 장르는 음악에 걸맞은 고난이도의 걸스 힙합!

박자를 이리저리 가지고 놀면서, 그루브한 맛과 걸 크러시한 멋을 확실히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엔 플라워에게는 새로운 시도였고, 엄청난 도전이었다.

지금까지 대중성 있는 캔디 팝 스타일 댄스 음악과 포인트 안무 위주로만 활동해 왔었으니.

그래서 내심 걱정했다.

과연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생각보다 잘하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장르의 맛을 잘 살린다.

이후 노래 점검이 이어졌다.

보컬은 전반적으로 깔끔한 편이긴 하지만....

“연습을 좀 많이 해야겠네요.”

“음. 어쩔 수 없지. 이런 스타일의 음악이 저 애들에게는 굉장히 생소할 거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는 것 같은데?”

깔끔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분배된 파트에서 장르적 맛을 잘 살림과 동시에 본인들만의 멋과 개성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독기가 좀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뭐, 이제 시작하는 단계잖아.”

춤과 노래 첫 시연이 끝나고.

“음.”

장진영 대표는 고민하다가 한 마디를 던졌다.

“백문이 불여일견.”

“.......?”

의아해하는 멤버들을 두고.

나에게 짤막하게 말한다.

“네가 직접 보여 줘.”

제가요?

나 역시 장난을 칠 때는 때와 장소를 가린다.

그게 안 되면 그냥 미친놈이지.

특히 대표님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렇게 말할 때는 두 말 없이 따르는 편이다.

“춤과 노래. 두 가지를 따로 떼서 보여주는 건 조금 귀찮으니까 그냥 한 번에 보여줄게요.”

놀라는 멤버들과 대표님.

난 스칼렛 러브 MR을 틀고, 그녀들 중 한 명이 들고 있는 무선 마이크를 건네받아 라이브 퍼포먼스를 펼쳐보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쳐 간 음악이다.

안무도 이미 숙지를 완료한 상황.

현 시점에서, 이 곡을 나만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표님이 어떤 마음으로 내게 직접 보여주라고 했는데,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노래와 춤.

이 두 가지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표정 연기.

이 노래는 배신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이 순간 나는 이전 삶에서 같은 팀 동료와 회사로부터 받은 배신감. 그리고 불같은 분노를 천천히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 곡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펼쳐보여야 하는지.

원곡자로서 똑똑히 알려주리라.

@

팔짱을 낀 채 지켜보던 장진영은 엔 플라워 멤버들에게 말했다.

“특히 표정 연기 위주로 잘 봐. 너희도 저렇게 해야 해.”

“........”

안 그래도 몰입해서 보고 있었던 참이었다.

엔 플라워 전원은 전율을 느끼며 김민이 펼치는 무대를 감상했다.

뜨거운 분노가 느껴지는 얼굴과 음성. 그리고 춤 동작.

이 세 가지가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섬뜩함마저 느끼게 하고 있었다.

“진짜 잘한다.”

어떤 멤버의 혼잣말에, 모두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

“후우.”

시범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온다.

환호성 같은 건 없었다.

일단, 박수를 치는 멤버들의 표정이 진자하다 못해 심각해보이기까지 했다.

뭐, 생각이 많겠지.

피드백까지 끝마치고 대표님과 함께 연습실을 나섰다.

작업실에 가서 작업이나 이어서 할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 좀 따라와.”

“네?”

“보여줄 게 있어.”

도착한 곳은 아티스트 사진들이 붙어 있는 벽장식 앞이었다.

“여기 봐.”

대표님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 내 사진이 있었다.

사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지만, 아무리 봐도 여기는 JJ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 배우 등의 활동 아티스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너도 슬슬 활동 해야지?”

“.......!”

마침내 때가 다가왔다는 이야기.

가슴이 미친 듯 두근거린다.

“네 개인 락커도 만들어놨어.”

벽장식 바로 옆에 아티스트들의 락커들이 쭉 나열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끝 부분에 내 이름이 있었다.

“이제부터 여기가 네 전용 공간이야.”

그리고 어깨를 으쓱했다.

“개인 작업실도 있는데 이런 게 뭐 필요할까 싶긴 하지만, 어쨌든 상징성이 있는 곳이거든.”

대표님은 멍한 표정의 날 보며 씩 웃었다.

“데뷔를 앞 둔 소감이 어때?”

“뭔가... 실감이 안 나네요.”

“그래?”

“사실 제가 이 회사 들어와서 작곡가로서 1위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도 잘 실감이 안 나요. 롤 모델로 삼던 대표님과 같이 활동하며 음악을 배우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요.”

정확히 말하면, 회귀한 시점부터 일어난 모든 일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가끔, 집에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가끔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다 학교에 와서, 달라진 내 위상을 확인하면 그제야 안심하게 된다.

그래. 꿈이 아니구나.

현실이구나.

...하고.

“그러면 내가 더 실감나게 해줄까?”

이번에는 지상 2층으로 올라간다.

매니지먼트 실.

그곳 회의실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우리가 들어오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체격과 인상이 어마어마했다.

무엇보다 귀가 만두귀다!

한 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남자였다.

“인사해. 이름은 최명규. 내일부터 널 전담해 줄 매니저야.”

“안녕하십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최명규입니다.”

남자답게 웃으며 악수를 권하는 사내.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보는데, 과장 없이 내 손 크기의 두 배 이상은 되는 것 같고 뼈대가 굵으며 굳은살도 많다.

곧 출신 이력이 드러났다.

“학창 시절에 레슬링 선수로 활약해서 매달까지 땄었고, 그 후 미국에서 격투가로 활약하다가 특전사 입대한 친구야. 사실 우리 회사에 피지컬 트레이너로 입사했었는데 보직 변경해서 지금은 매니저로 활동 중이야.”

엄마야.

레슬러에 격투가에... 심지어 피지컬 트레이너 출신이라고?

정말이지....

“운동만 한 게 아니라 미국 명문대 출신이라 스마트한 면모도 있어. 여러모로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운동이라든지, 영어 공부라든지....”

원래 대형 3사의 주요 아티스트 매니저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스펙의 소유자들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로 빵빵한 사람은 처음인데?’

그만큼 회사에서 나에게 신경 써주고 있다는 뜻이다.

가슴이 다시 한 번 벅차 올랐다.

앞으로 나를 위해 굉장히 헌신하며 많을 것을 해주게 될... 정말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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