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53화 (53/205)

< 53화. 데뷔 준비 (2) >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시간 있어요?>는 차트 1위.

대표님은 아직도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기존 음악 방송이나 행사 같은 무대에는 나나 레드 스켈레톤 멤버들이 따라다니지 않는다.

대표님이 혼자 무대를 꾸밀 때도 많고, 회사 전속 댄스 팀과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큰 무대. 정말 각을 잡고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는 무대는 우리가 함께 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유명 가수들이 모두 모이는 ‘아시아 슈퍼 페스티벌’ 같은 무대라던가.

“워우, 데뷔 정해졌다면서?”

“민아. 정말 축하한다!”

지하 연습실에 들어서자 이제는 굉장히 친해진 레드 스켈레톤 댄스 팀이 인사를 건네온다.

난 인사 대신 바로 질문부터 던졌다.

“대체 제 안무는 언제 나오는 건가요?”

“아! 몸 좀 풀어볼까?”

“어? 갑자기 인트로 바뀐 부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누가 알려줄 사람?”

“나! 내가 알아!”

곧장 딴청을 부리는 단원들.

빤히 백종훈 단장님을 쳐다본다.

같이 딴청을 부리던 단장님은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푹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안무 시안 몇 개 만들어서 이미 넘기긴 했거든?”

“그랬어요? 그러면 나는 왜 아무것도 못 들었지?”

“나도 그게 불만인게. 우리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대표님이 계속....”

“야. 계속 이상한 거 끼워 넣으려고 하니까 커트 시킨 거지.”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며 대표님이 들어오신다.

모두의 시선 속에, 대표님은 우리에게 다가오며 말씀하셨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어떤 느낌이야? 굉장하고 순수하고, 맑고... 그래야 하잖아. 안 그래?”

“당연하죠.”

“그런데 얘네들 자꾸 은근히 섹스어필하는 동작이나 표정 같은 거 넣고 그런다니까?”

“.......”

내가 싸늘한 눈동자로 바라보니 백종훈 단장님이 황급히 변명한다.

“아니, 민이 비주얼이나 분위기 같은 게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그러니까 덕질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잖아요. 그걸 최대한 살리려고 했던 거죠.”

“야! 아무리 그래도 인마, 얘 지금 고등학교 1학년생인데... 미성년자, 그것도 남자애한테 그건 좀 아니지!”

“아니, 대놓고 섹스어필 한 것도 아니고, 정말 은밀하게 끼워 넣은 것뿐인데....”

“대체 어떤 것들인데요?”

듣다 보니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

대체 어떤 시안이 있었기에 저렇게 격렬한 컷을 당한 건지.

이에 대표님이 뭔가 하려다가 멈칫. 한참을 주저하더니.

“아, 난 차마 못하겠다. 야, 백 단장님 네가 보여줘.”

“평소에는 그런 거 잘하시면서?”

"빨리!"

"쳇."

투덜거리면서 시안 몇 가지를 시범 보여주는 백단장님.

“뭐, 이런 것도 있었고.”

몸을 살짝 S자로 틀고, 고개를 치켜 든 뒤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동작.

“이런 표정 연기도 넣었고.”

몸을 살짝 튼 채 카메라를 바라보며 짓는 야릇한 미소!

여기서 포인트는 우아하게 펼친 오른손으로 살짝 턱 밑을 받치는 모습이다.

“봐. 무슨 안무가 아니라 영상 화보집을 만들어 놨잖아! 그리고 재수 없어!”

“아니, 이렇게 하면 분명 대박이라니까요? 이걸 제가 해서 그렇지, 민이처럼 예쁘고 야릇한 비주얼을 타고난 애가 하면... 남녀 가리지 않고 비주얼 쇼크에 미쳐 버릴 겁니다. 환장할 거라고요!”

“내가 환장하겠다. 너 대체 나를 얼마나 욕 먹이려고 이러는 거야? 미성년자에게, 그것도 남자애한테 이런 거 시키면 팬들이 참 좋아할 거야. 그치?”

“좋아한다니까요? 오히려 아이고 저런 아이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럴 걸요?”

“야이...!”

왜 계속 안무가 늦어지는지 알겠다.

대표님과 백종훈 단장님의 의견은 모두 일리가 있었다.

순수하고 청량한 느낌만을 담아내기를 원하는 대표님.

내 매력을 최대한 녹여내서 대중을 자극하고, 홀리기를 원하는 백종훈 단장님.

사실 정신 연령이 삼십대인 내 입장에서, 백종훈 단장님의 안무는 참 징그럽게 느껴진다.

우우웅? 순수한 척 묘하고 야릇한 표정을 짓는 거라든지.

구미호 마냥 한껏 눈웃음을 치거나, 삐진 표정을 지으며 계속 끼를 흘리는 부분이라든지.

특히 저 ‘우우웅?’ 이 표정은 정말 어려운 거다.

덕심을 굉장히 세게 자극하는 필살의 표정 연기니 만큼, 요구 조건 역시 굉장히 까다롭다.

일단 가장 중요한 미모가 받쳐줘야 하고, 풍부한 표정을 타고나야 한다. 마치 디즈니 캐릭터들처럼.

대신 부작용도 있는데, 엄청난 인기만큼이나, 잠재적 안티 팬을 양산하게 된다는 거다.

고래로 미모가 뛰어난 사람은 그 자체로 엄청난 질투를 받게 되는데, 이걸 활용해 끼를 줄줄 흘리며 이익을 잘 챙기는 이들은 역적보다 더한 미움을 받게 되는 법이니.

실수를 안 해도 까이는데,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뭐....

내가 이런 걸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가차 없이 거절하고 싶긴 하지만, 백 단장님의 안무 구성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는 게 문제였다.

고민하는 동안, 백종훈 단장은 필사적으로 대표님을 설득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분명 대박 난다니까요? 정 못 미더우면 일단 민이에게 시켜보고 판단하면 되잖아요. 어차피 민이 이런 안무는 한 번 보면 바로 카피할 수 있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모두의 이목이 나에게 쏠린다.

난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일단 연습부터 끝내고 시도해보도록 하죠.”

연습이 끝났다.

“이거 이틀 후 일산 킨텍스에서 하는 거 알고 있지? 오전 아홉 시까지 의상 챙겨서 회사로 와. 식사 같은 것들을 회사에서 지원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무려 두 시간을 쉬지 않고 날뛴 덕분에 체력이 바닥났다.

물을 마시고, 땀을 젖으며 쉬고 있는데 백종훈 단장님이 말했다.

“연습 끝났으니, 우리 안무 한 번 봐줄래?”

“아, 아까 말했던 제 안무 시안 보여주시려고요?”

“응. 대표님. 괜찮죠?”

머뭇거리던 대표님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셨다.

“그래. 일단 시도해보기라도 하자. 해봐.”

허락이 떨어지자 레드 스켈레톤 멤버 중, 여성 댄서들과 단장님이 일어서 대열을 갖춘다.

지치지도 않나보다.

심지어 지금까지 연습했을 때보다 표정이 더 빛나고 있었다.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내가 예상한 것 이상의 끼 흘림으로 점철된 안무가 펼쳐졌다.

들린다.

안티들이 마구 생성되는 소리가.

보인다.

나를 향해 뻗어오는 매서운 눈빛과 악플 공세가!

“어때?”

난 진지하게 대답했다.

“우리 솔직해집시다.”

“무슨 소리야?”

“경쟁사 사주 받고 저 묻어 버릴 작정으로 이러시는 거죠? 어디에요? LK는 아닐 테고, 설마 KM?”

“.......”

@

눈을 감고 서서 안무를 되새겨보는 김민을 바라본다.

장진영 대표는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차라리 여자 아이돌이었다면 이렇게 망설이지도 않았을 텐데....”

“우리도 처음에는 정상적인 안무로 짜봤어요. 그런데 너무 아쉽더라고요. 노래 속의 컨셉만 있고 정작 김민 본연의 매력은 안 담긴 느낌?”

“그래서 나온 게 그런 안무라고?”

“우리야 보여주는 입장이라 포인트가 될 만한 부분을 강조하는 버릇이 있으니 과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해요. 하지만 가수에게 적용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어차피 컨펌 나도 그대로 쓰지 않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원본부터가 워낙 세니까 하는 말이지.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장진영은 고개를 저었다.

“하아, 모르겠다.”

“어울린다니까요. 절 믿어요.”

“야, 그럴 것 같아서 지금 이렇게 걱정하는 거 아냐.”

그때 김민이 눈을 뜨더니 살짝 살짝 몸을 풀기 시작했다.

“정리 끝났나보네. 음악 틀어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원곡이 울려 퍼진다.

그 순간, 김민으 표정과 분위기가 반전됐다.

“......!”

아예 사람 자체가 바뀌어 버린 듯했다.

한없이 청순한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야릇하고 사랑스럽다.

장진영 대표는 혀를 찼고 백종훈 단장과 댄스 팀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만큼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범상치 않은 미모를 타고난 김민이, 국내 최고의 안무 팀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안무로 작정하고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장진영 대표는 심각하게 말했다.

“봐. 느낌이 너무 강하잖아. 노래고 뭐고 다 가려버릴 정도로. 저러면 앞으로 활동하는데 지장 생길 수 있단 말이야.”

“제 생각은 다른데요?”

“뭐?”

“땀 잔뜩 흘려서 엉망인 상태로 하는 것도 저 지경인데, 각 잡고 무대에서 하면 어떨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안무 없이 가만히 서서 노래 불러도 사람들 막 홀릴 것 같은데요?”

그 말을 차마 부정하지 못하는 장진영이었다.

백종훈 단장은 피식 웃었다.

“저런 기질은 절대 못 눌러요. 차라리 판 깔아주고 마음껏 발산하게 하는 게 낫죠. 그리고 저 정도는 해야 주목 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 듣자하니 KM, LK에서도 지금 남녀 신인 아이돌 그룹 이 갈고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

“음....”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보세요. 저희도 계속 고민해볼 테니까.”

다음 날 오전.

JJ 엔터테인먼트 팀장 급 인원들과 매니저, 최명규가 모인 자리에서 회의가 진행됐다.

“어제 연습하다가 촬영한 안무 시안 영상 하나 보여드릴게요.”

곧 회의실의 빔 프로젝트로 김민의 안무 영상이 공개됐다.

바로 전날 촬영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첫 영상이다.

영상 재생이 끝나자 장진영이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저는 계속 이 안무 시안을 반대했었어요. 아이돌도 아니고,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컨셉도 맞지 않고, 자칫하면 이상한 고정 이미지가 입혀질 수도 있고... 물론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에요.”

하지만 백종훈 단장을 비롯한 레드 스켈레톤 댄스 팀 전원의 의견은 달랐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갑자기 오늘 회의가 열린 이유이기도 했다.

이정연 팀장이 물었다.

“민이 씨는 뭐라고 했어요?”

“본인 성격과는 안 맞다고, 자기는 이런 거 못하겠데요.”

순간 모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신인 개발팀장이 중얼거렸다.

“실컷 잘 해놓고서는....”

“바로 그게 문제에요. 잘 어울려. 이게 내가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민이는 여러분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말했어요.”

“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 좀 주세요.”

여기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너무 과하네요. 제 생각에는 차라리 안무가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꼭 필요하다면 그냥 가벼운 동작을 추가하는 정도면 될 것 같고요.”

“에이,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저런 게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되잖아요. 누가 봐도 잘하는데 그걸 숨길 이유가 있어요? 저건 강력한 경쟁력이고 무기에요. 무조건 저 안무로 가고, 빡세게 이미지 메이킹 해서 신인상 노려봅시다.”

이처럼 내부 의견도 엇갈리니 장진영은 더더욱 결정을 못 내렸다.

“명규 씨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공석 자리이기에, 존중을 담아 의견을 묻는다.

회의를 조용히 지켜보던 최명규는 신중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저는 <나는 찾아 떠나는 여행> 만큼이나 <별빛의 숲>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분명 그 노래도 대중에게 크게 어필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그런데 처음에 저런 무대를 보여주고 그 다음에 힐링송을 부르게 되면....”

최명규를 어깨를 으쓱했다.

“두 노래의 연결 고리가 굉장히 희미해질 것 같습니다."

"연결 고리라...."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두 트랙을 하나의 뮤지컬 작품 구성으로 연결시키되, 안무 팀이 드러내고자 했던 민이 군의 매력을 스리슬쩍 담아내는 방향이죠.”

그는 씩 웃었다.

“여러분이 잊고 계시는 게 있는데, 두 트랙은 사실상 하나의 작품입니다. 따로 떼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죠. 사실 어떤 컨셉이든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그것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장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트랙을 하나의 뮤지컬 작품처럼... 이거 괜찮은데? 어때요?”

“좋네요!”

“마음에 드네요. 두 트랙의 컨셉과 연결성을 살리고 그러면서 은은하게 매력을 발산시키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의견이 모였다.

장진영은 밝은 얼굴로 결론 내렸다.

“그러면 그렇게 안무 팀과 민이에게 전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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