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56화 (56/205)

< 56화. 망했다 >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어요!”

일주일간의 여정이 모두 끝났다.

축하 파티를 위해 현장에 방문한 대표님께서는 마지막 촬영 분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말씀하셨다.

“숲이 워낙 아름답게 연출되서 특별한 CG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보이지? 그런데 여기서 CG가 입혀지면 더 멋있어 질 거야. 그리고 그렇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잔뜩 연출해놔야 마지막 쿠키 영상에 더 의미가 붙는 거고.”

“무언가 소리를 듣고 별빛의 숲으로 홀린 듯 들어가는 연출 말이죠?”

“그렇지!”

“무슨 다음 작을 미리 예고하는 것 같은데....”

대표님이 날 보고 질문한다.

“이거 예정된 거 맞아?”

“뭐가요? 다음 곡 구상해 뒀냐고요?”

“응.”

“당연히 구상해뒀다. 김민의 두 번째 여행 일기. 다음 싱글이 이미 작업 중이에요.”

“들려줘봐.”

“에이. 작업 이제 시작했어요. 가이드까지 완성한 뒤 들려드릴게요.”

“야, 우리 사이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러지 말고....”

“아이고, 장 대표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봐야 소용없어. 나하고 우리 현장 스텝들이 그렇게 애원해도 냉정하게 거절하더라고.”

현장에서 고생한 이들을 위한 성대한 고기 파티가 열렸다. 삼겹살뿐만 아니라 소고기까지 포함되어 있었기에 모든 스텝들이 무서운 기세로 먹어치운다.

반면 나는 고기에는 손도 대지 못하는 신세였다.

활동 준비 기간 때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넌 성장기에 살도 잘 안 찌는 체질이라 그럴 필요 없다니까?”

대표님은 그런 내가 안타까웠던지 한사코 고기를 권하셨다.

“에이, 세상에 살 안 찌는 체질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지금 먹어 버리면 그 간의 고생이 도로 아미타불이 되는 거예요. 그럴 수는 없죠.”

가급적이면 최상의 상태로 방송에 출연하고 싶었다.

첫 이미지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니까.

그래도....

[ 꼬르륵. ]

노릇노릇 잘 구워진 고기를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은, 너무도 힘겹고 내 스스로가 애처롭게 느껴진다.

고기. 나도 고기 좋아하는데....

@

잠시 세상을 떠난 일주일 사이, 내 주위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첫 번째 바로 이것.

[ 아이돌 명가 KM 엔터테인먼트. 강력한 남자 신인 아이돌 그룹 데뷔 예고! ]

[ 베일에 가려져 있던 KM 엔터테인먼트의 슈퍼 루키팀! 마침내 그 서막이 드러나다! ]

꽁꽁 싸매고 있던 남자 데뷔조를 드러낸 KM 엔터테인먼트.

이전 삶에서 내가 소속되어 있던 팀이었다.

[ 스타더스트 단체 이미지 첫 공개. ]

[ 8월 말 출격 준비 완료! ]

폐허 속, 검은 수트를 멋지게 차려 입은 여섯 명의 미소년이 각자 치명적인 표정으로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다.

“현민. 카일, 제논, 베스, 루아.”

이상 다섯 명이 나와 함께 데뷔했던 녀석들이고.

“지호.”

이 녀석은 나중에 합류한 녀석.

나보다 한 살 어린 중학교 3학년생으로, 주세아와 함께 KM 비주얼 양대 산맥으로 불리던 녀석이다.

초대형 기획사의 신인인 만큼 대중의 관심도 폭발적이다.

[ 비주얼 미쳤다. ]

[ 예쁘다 지호 오셨네. ]

[ 다들 진짜 트렌디하게 생겼다. KM 아이돌들이 다른 건 몰라도 비주얼하나만큼은 대한민국 톱인 듯. ]

[ 제일 왼편에 있는 아이 누구임?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예쁘게 생길 수 있는 거임??? ]

┗ 지호라고. 올해 중 3이래.

┗ 하, 취향 저격... 기대된다!

두 번째 흥미로운 사건은 바로 JJ 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데뷔조 결성 소식. 바로 여기에 주세아가 합류했다.

반지희는 어떻게 됐냐고?

[ 주세아는 비주얼이 워낙 압도적이라 신인개발팀 내부에서도 데뷔조 승격이 만장일치로 결정됐어. 하지만 반지희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 분명 좋은 인재긴 하지만 대처가 불가능한 정도까지는 아니거든. ]

소식을 전해들은 그날 저녁.

두 사람을 외부 카페로 따로 불러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실력은 지희가 나보다 더 좋은데....”

주세아는 자기 혼자만 데뷔조가 된 것에 대해 굉장히 미안해했다.

반면 반지희의 경우.

“난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왜냐면 실력이 독보적인 것도 아니고, 세아처럼 말도 안 되게 예쁘고 매력적인 것도 아니니까.”

애써 무덤덤한 척을 하지만 내 눈에는 뚜렷이 보인다.

많이 실망한 모습이.

"아직 게임 끝난 거 아니니 연습 열심히 하고 있어봐."

".......?"

의아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두 명.

난 씩 웃었다.

“분명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질 거야.”

@

오후 네 시.

지상층 연습 공간이 순식간에 또래 연습생으로 가득 찼다.

본격적인 트레이닝에 앞서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때 두 명의 또래 소녀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반지희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어우, 저 자신만만한 표정...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 뻔히 짐작되는 건 왜일까?"

가까이 다가온 두 소녀 중, 긴 생머리의 미소녀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한다.

"어? 잠깐만. 설아야 너 혹시 기억나? 오디션 때 그 팀 이름이 뭐였더라?"

"문 뭐였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반지희와 주세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두 소녀는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외쳤다.

"맞다! 문 라이트!"

"아, 이제 기억났다. 여섯 명이었던가? 엄청 화려하게 등장했던 것 까지는 기억나는데...."

두 소녀의 눈썹이 반달을 그린다.

"결국 한 명만 살아남았네? 뭐라도 되는 듯 굴더니...."

"......."

교환하는 눈빛이 굉장히 날카롭다.

반지희가 짜증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시비 걸지 말고 그냥 가라."

"넌 이게 시비 거는 걸로 보이니? 그냥 안부 물어보는 거잖아."

"알아서 뭐하려고?"

"그냥 궁금해서 그래. 꽤나 임팩트 있던 팀이었으니까."

피식 웃는 소녀.

"나 연습생 오디션 그렇게 화려하게 본 애들은 처음이었거든."

갑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가까이 다가와 속삭인다.

"네 친구가 뭐래? 넌 도저히 안 되겠데?"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있잖아. 꼴에 프로듀서랍시고 잘난체하는 그 남자애."

김민을 말하는 것이다.

“개가 너희 스폰서잖아. 그래서 너희도 낙하산으로 입사할 수 있었던 거 아니야.”

“......!”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반지희가 뭐라고 쏘아붙이려는 찰나.

"말 가려서 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주세아가 나섰다.

차분하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소녀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던 그녀는.

콱!

".......!"

머리를 움켜쥔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까이 끌어당기며 속삭인다.

“네가 장난하듯 손쉽게 거론해도 되는 상대가 아니야.”

살벌한 눈빛과 마주한 소녀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만큼 주세아가 내뿜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다 모였지? 연습 시작하자!"

그때 들려온 댄스 트레이너의 외침이 소녀들 사이에 감돌던 긴장감을 깨뜨렸다. 두 소녀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주세아는 분노에 치를 떠는 반지희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민이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을 거야. 참고 기다려보자."

반지희는 말없이 입술을 꽉 깨물 뿐이었다.

@

그날도 어김없이 내 작업실을 급습한 대표님이 한 가지 사실을 공지했다.

“네가 예전에 써서 준 블루웨이브 있지? 그거 여자 데뷔조에 주기로 했어.”

“엔 플라워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원래 그러려고 했는데, 시기가 안 맞아. 그 팀은 이미 컴백곡이 정해졌잖아. 그렇다고 가만 놔두자니 곡이 아까워서 여자 데뷔조 주기로 한 거야.”

이 대목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반지희도 데뷔조에 승격시키지 그러셨어요. 문 라이트 애들 중에서도 그 곡 가장 잘 소화했던 애가 주세아랑 반지희였는데. 심지어 개네 둘이 센터였어요.”

“일단 데뷔조 승격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지금 데뷔조가 그대로 데뷔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월말 평가, 쇼케이스... 이런 행사들 거치다 보면 지금 구성에서 많은 부분들이 달라질 테니까.”

“아, 쇼케이스....”

맞다. 대형 3사는 그런 것도 했었지.

그 중에서도 JJ 엔터테인먼트는 연습생 쇼케이스에 진심이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대중에 남녀 데뷔조를 선보이고 평가하도록 하는 자리인데, 여기서 많은 유망주들이 퇴사하기도 한다.

“혹시 쇼케이스 일정 잡혔어요?”

“올해는 쇼케이스를 좀 색다르게 진행 보려고.”

“예를 들면요?”

“서바이벌 방송인데, 연습생 열 명이 승강전 형식으로 경쟁하는 거야.”

올게 왔구나!

이전 삶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유명했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작되려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냐면....”

열 명의 연습생들은 여러 가지 미션을 통해 승자, 패자가 되어 메이저 팀과 마이너 팀으로 갈리게 된다. 미션에서 승리해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언제든 메이저 팀으로 이동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마이너 팀으로 떨어지게 된다.

“메이저, 마이너 팀 대우에 구분을 둘 생각이야.”

“구체적인 방식이 뭐예요?”

내 질문에 대표님이 신나서 계획을 늘어놓는다.

“경쟁심 향상 의도인데, 일단 연습실 사용에 차별을 둘 거야. 메이저 팀은 오전과 오후 시간대, 마이너 팀은 밤부터 아침에 이용하게 하는 거지.”

“음, 또 다른 건요?”

“메이저 팀은 소속 아티스트의 코칭을 받을 수 있지만 마이너 팀은 그런 거 없이 알아서 연습해야해.”

“와우.”

“식사 메뉴 선택에서도 급 차이를 조금 주면 다들 울컥해서 더 열심히....”

[ 짝짝짝! ]

난 기립해서 박수를 치고 말았다.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유명했던 이유.

오디션 프로그램 역사상 전례 없을 정도로 치사하고 더럽고 악명 높아서.

난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사탄이 형님 하시겠어요.”

“왜?”

“잔인하고 치사한 게 악마를 초월한 수준이라서요.”

대표님이 충격 받은 얼굴로 진지하게 물었다.

“그렇게 별로야?”

“엄청요.”

“진짜?”“어우, 정말 최악인데요? 이거 누가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이디어 내고 추진한 직원 해고시켜야 해요.”

“왜?”

“대표님이랑 우리 회사 욕 먹이고 타격 입히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잖아요. 어쩌면 타 회사 첩자일 수도 있어요!”“.......”

“참가 연습생들은 PTSD 세게 올 것 같은데....”

어쩐지 말이 없다.

“왜 그러세요?”

“아니....”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우물쭈물 거리던 대표님은 내게서 시선을 피하며 엄청난 사실을 고백하신다.

“이 프로그램 기획자가 바로 나야.”

“.......”

“이미 제작사, 방송사도 다 정해졌는데....”

그런데 표정을 보니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보였다.

싸늘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설마 그 프로그램에 저도 같이 출연하는 거 아니죠?”

“어, 음....”

“장난하지 말고 빨리 진실을 말해줘요. 아니죠? 그렇죠?”

슬며시 시선을 피하는 대표님.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망했다.”

내가 어쩌자고 그런 프로그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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