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58화 (58/205)

< 58화. 얼굴 도장 찍기 (2) >

“잔인하고 비교육적이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엄중한 시선이 내게 향한다.

흥미로움도 담겨 있다.

지적을 했으면, 이에 대한 대처 방안도 내놓아야지?

물론 마련되어 있다.

“일단 이 프로그램의 주제부터 확인해볼까요? 끝까지 남을 짓밟아 신분을 강타한 자만이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작가님. 이거 맞죠?”내 말을 멍하니 듣고 있던 여자 작가님이 화들짝 놀라 변명한다.

“네? 아, 아니 그게 아닌데....”

“뭐가 아니에요. 지금 프로그램 전체가 이 주제 구성으로 짜여 있는데.”

“어....”

차마 대답은 못한다.

내가 이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준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과도 경쟁 사회라지만... 애들 꿈을 보여주는 방송에까지 이런 걸 유도하는 건 너무 가혹한 거죠. 교육 정책이 꾸준히 욕먹는 이유가 뭔데요. 바로 이런 거 때문이잖아요.”

“음....”

“채점 방식을 바꾸죠. 그냥 오디션에 임하는 열 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평가해서 그 중 탈락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단 춤과 노래 실력 그 자체에 기준을 맞추면 안 되고, 이런 것들을 활용해서 ‘팬덤’을 구축하는 능력을 평가해야 해요.”

“팬덤을 구축하는 능력?”

“오호....”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이거 댄서나 보컬을 뽑는 게 아니라 아이돌 그룹 멤버를 뽑는 프로그램이잖아요. 가장 중요한 게 팬덤인데, 당연히 그걸 봐야죠.”

“그렇지.”

“그게 맞지.”

“실력 순으로 뽑으면 낭패 볼 일이 많겠지만, 팬덤 투표율을 기준으로 뽑으면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이게 결국 최종 멤버 선정의 핵심이 될 겁니다”

이 시점에서 또 하나 건드릴 게 있다.

“인성 투표 항목이 보이는데, 이건 그냥 빼죠. 아니, 왜 이런 걸 왜 집어넣어요? 이러면 순위가 낮은 사람들은 인성 나쁘다는 이야기 밖에 더 되요? 그룹이 인기가 생기면 필연적으로 안티도 늘어날 건데, 이건 그들에게 불필요한 공격 여지만 줄 뿐이잖아요. 재미도 감동도 없는 뭐 하러 이런 걸....”

시무룩해하는 대표님.

왠지 그럴 것 같은데 역시 당신이 범인이었군!

이전에 이 프로그램이 어떤 부분 때문에 욕을 먹었는지 나는 정확히 꿰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내가 보이는 자신감의 근원이기도 했다.

이건 그냥 빼버리고, 이건 이렇게 수정하고.

회의가 끝날 무렵에는 많은 부분이 바뀌어져 있었다.

“억지로 갈등 관계 유발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프로그램 특성상 가만 놔둬도 그런 이벤트들은 알아서 발생할 테니까요. 혈기왕성한 십대들이 꿈을 위해 경쟁하는 자리니까요.”

내 말을 경청하던 CP님이 피식 웃으며 말씀하신다.

“누가 보면 김민 군은 십대가 아닌 줄 알겠네. 아니, 대체 정체가 뭐예요? 왜 이렇게 말을 잘하고 생각이 깊어? 이런 인재를 대체 어디서 데려온 거예요? 장 대표?”

호감이 가득한 모습.

대표님도 이 부분에 자신감을 얻으신 듯하다.

“초록동색이라잖아요. 그 스승의 그 제자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에이, 그건 너무 장 대표 스스로를 올려치는 발언인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김민 군이 장 대표님보다 훨씬 나아요.”

“아, CP님!”

터져 나오는 웃음.

나는 그 모습에 내심 안도했다.

승부수가 먹혔구나!

회의 끝나고 인근 한우 전문점으로 이동해서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시점에 CP님은 내게 무한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김민 군이 엔 플라워 후속 앨범을 담당했다고요?”

“네. 총 네 곡이 들어가는데, 혼자 다 만들었어요. 곡도 좋은데 이번에는 엔 플라워 멤버들과 함께 의견을 조율해가며 만든 작품이라 더 기대하고 있어요.”

“그래. 내가 봐도 김민 군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오늘도 봐요. 회의를 아주 본인이 혼자 이끌었잖아요. 아, 범상치 않아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맞장구치는 대표님과 어른들.

나를 향한 CP님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그런 천재성을 일종의 찬스로 활용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찬스요?”

“김민 찬스를 경연 상품으로 제공하고 일회 쓸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심지어 춤도 기가 막히게 잘 춘다면서요?”

“네! 우리 민이가 프로듀싱, 화술... 다 뛰어나지만 춤의 천재에요. 우리나라 최고의 춤꾼들이 인정한 사실이에요!”

나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이번에는 모자와 안경을 착용한 젊은 pd님이 호기심을 갖고 물어보신다.

“춤의 천재라니, 그게 사실이에요?”

“아니, 그걸 어떻게 제 입으로....”

“천재 맞아요. 어떤 춤이든 한 번 보면 다 따라하는데... 아, 유정연의 슈퍼스타 때 보여줬으니 어디 한 번 확인해보세요!”

“그래요? 지금 한 번 확인해볼까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열심히 나를 어필하는 대표님과 이에 쏠리는 제작, 방송사 관계자들.

대표님은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유정연의 슈퍼스타 클립본을 즉각 찾아 재생한다.

옹기종기 모여 휴대폰 영상을 한참 바라보던 방송 관계자들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진짜 천재 맞는 것 같은데요?”

“유니버스 크루 세계 최고의 댄스 연합팀입니다. 그 팀에서 인정할 정도면 진짜배기라는 뜻이에요.”

날 향한 시선에 탐욕이 깃들기 시작한다.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인 대표님은 굉장히 뿌듯해하고 있었다.

CP님이 말씀하셨다.

“김민 찬스 외에 활용 방안을 더 구상해 봅시다. 잘 만하면 흥행의 키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는데?”

한참을 시달리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갈 수 있었다.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따라오기를 잘 했지? 응?”

여기서는 내가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오늘 날 뮤직 넷 방송 관계자들에게 얼굴 도장을 뚜렷하게 찍었다.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대표님의 공적이었고, 내게는 엄청난 기회가 온 것이기도 했다.

“스승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 하나 더 먹을 수 있는 법이야.”

“아이고 예.”

“받들어 모시란 말이야. 알았어?”

“물론입죠.”

“영혼 없이 건성건성 대답하지 좀 말고 인마!”

@

토요일 아침, 정상구 감독님 스튜디오를 찾았다.

감독님이 날 보자마자 다가와 호되게 질책하신다.

“야! 촬영 끝난 다음 날 바로 오라고 했더니 이제 오면 어떻게 해?”

“죄송해요. 깜빡 잊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래저래 일이 좀 있어서....”

가볍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 그거 재미있겠네.”

“제가 만든 곡이 그 팀 데뷔곡이 될 예정이라는데... 한 번 들어보실래요?”

날 빤히 바라보시던 정상구 감독님은.

“너 지금 영업하는 거지?”

“감독님 실력은 제가 잘 아니까요. 음악 들려드릴까요? 블루 웨이브라는 여름 노랜데....”

“그건 나중에, 야, 너 기다리다가 원래 너에게 주려던 배역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넌 진짜 큰 기회 놓친 거야. 알아 들었어?”

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제목이 뭔데요?”

그 질문만을 기다렸다는 듯, 굉장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하신다.

“러브 아이즈! 감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야. 넌 그 주인공의 남동생으로 출연할 예정이었다고!”

러브 아이즈?

음. 못 들어봤는데.

참고로 나는 이전 삶에서 영화, 드라마 중독자였다.

대부분 작곡가가 그렇겠지만, 나 역시 영감을 얻기 위해 정말 영상물뿐만 아니라 온갖 소설, 만화 등의 콘텐츠를 섭렵했다.

그런 내가 단 한 번도 못 들어본 제목이다?

‘처참하게 망했거나, 모종의 이유로 중간에 엎어진 프로젝트.’

일단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 최고의 뮤직 비디오 디렉터, 정상구 감독님의 영화라면 망작이라도 찾아가서 봤을 나였다.

“응원할게요. 열심히 만들어보세요.”

“.......”

“왜요?”

“너 왠지 굉장히 상쾌해 보인다?”

“제가요?”

“왜 아무 미련이 없어 보이지? 너 혹시 연기하기 싫어서 일부러 바쁜 핑계대고....?”

“에이. 설마요.”

“.......”

“아니라니까요!”

이 양반 의심 많네!

“그래도 카메라 테스트 한 번 받아보자.”

“왜요? 이미 배역도 결정됐다면서요?”

“좋은 기회는 날아갔지만 혹시 아냐? 좋은 기회 생기면 너 밀어줄지.”

“오...!”

“싫으면 마라! 무슨 기회를 주겠다는데도 반응이 뜨뜻미지근이야?”

“아니요! 제가 언제 싫댔어요? 할게요! 하면 되죠!”

그렇게 시작된 갑작스런 카메라 테스트.

연기는 그리 익숙하지 않지만 스튜디오에 직원을 포함해 세 명이 넘지 않아서 공황발작도 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감독님과 이미 호흡을 맞춰본 경험도 몇 번 있으니....

“야, 그럴 때는 조금 더 오버해도 괜찮아. 연기가 무조건 자연스러운 게 좋은 게 아니야. 때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표출을 해줘야 임팩트가 살지!”

“아, 그런가요?”

“그래. 그거 명심하고 방금 그 장면 다시 한 번 찍어보자!”

그래서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편하게 연기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나는 레드 아이즈에 대해 대박까지는 바라지 않아. 어쨌든 내 영화 입봉작으로서 관객과 투자자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될 정도의 성적만 얻으면 돼.”

말은 그렇게 하지만... 긴장감, 기대감, 그리고 부담감으로 꽉 차 있는 모습이 내 눈에는 보인다. 그래서 더욱 안쓰러웠다.

하지만.

‘영화 개봉 소식은 없었지만 이후로 뮤직 비디오 감독님으로서 계속 승승장구하니 뭐....’

지금도 충분히 실력이 있고 유명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훨훨 날아갈 분이었다. 내가 걱정할 상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블루웨이브 뮤직 비디오 맡아 주시는 거죠?”

“뭐, 공식으로 의뢰 들어온다면 생각은 해볼게. 아무튼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오디션 기회 또 한 번 줄 테니까 그때는 놓치지 마라. 그 동안 연기 트레이닝도 좀 하고.”

사실 이때는 이 말을 그냥 넘겼다.

데뷔 일정이 슬슬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오늘부터 티저 이미지 공개를 시작으로, 런칭 전까지 본격적인 마케팅에 돌입할 거예요. ]

[ 데뷔 쇼케이스를 다음 달 1일에 진행할 거고, 온라인 생중계 될 예정이에요. 그 자리에서 기자님이 많은 질문을 하실 텐데, 예상 질문 뽑아 드릴 테니 작성해주세요. 피드백 해드릴게요. ]

내 데뷔 프로젝트를 맡은 곳은 장진영 대표님을 포함, 주로 솔로 아티스트를 담당해온 아티스트 1본부. 이 시점부터는 1본부장님을 비롯하여 직원들과 무수히 많은 소통을 하며 데뷔 준비에 돌입했다.

[ JJ 엔터테인먼트 남자 솔로 데뷔 ‘Min’ 화보 공개 ]

원평 해수욕장과 제주도에서 촬영한 티저 이미지가 차례로 공개됐고.

[ <시간 있어요?>의 작곡, 프로듀서. ‘천재소년 Min’ 데뷔 트레일러 공개! ]

티저 트레일러 역시 공개됐다.

[ 오, 남자 솔로 신인인가? ]

[ 아이돌이... 아니네? 그런데 얼굴이 왠지 익숙하다. ]

[ 장진영 <시간 있어요?> 뮤직 비디오에 나왔던 애잖아. ]

[ 심지어 그 노래 작곡가라고 들었음. ]

[ 오, 그러면 데뷔 싱글도 본인이 다 만든 건가? ]

[ 고등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왠지 기대된다. 일단 티저는 마음에 들어. ]

데뷔가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굉장히 떨리고 긴장된다.

심지어 디지털 싱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물 패키지 앨범까지 만들어졌다니... 더더욱 부담감이 밀려온다. 지금 회사 측에서 펼치는 마케팅 공세는 전생 소속사이자, 대한민국 최고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KM의 그것에 결코 밀리지 않는 규모였다.

날 얼마나 신경 써주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기대를 담고 있는지 충분히 느껴진다.

기대에 부응해 줘야 할 텐데....

그리고 마침내.

Min Debut Showcase : <김민의 첫 번째 여행 일기>

팬 500명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생중계 데뷔 쇼케이스의 날이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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