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59화 (59/205)

< 59화. 쇼케이스 (1) >

[ 안녕하세요. 김민 군의 데뷔 쇼케이스 진행을 맡게 된 저는 김여은입니다. 반갑습니다! ]

블라우스와 스키니한 청바지를 맵시 있게 차려입은 장신의 최근, 행사 진행자로 유명한 아나운서 미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후로도 특히 가수 쇼케이스, 팬 미팅 같은 행사는 거의 독점하다 시피 할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다.

[ 2층에도 정말 많은 팬 분들이 와주셨네요. 무대 위에서 지켜보게 되니 가슴이 절로 웅장해지는데, 지금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일 김민 군의 심정은 어떨지.... ]

내 심정?

토 나올 것 같다.

이미 우황청심환도 하나 먹었는데 솔직히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표님이 몇 차례나 강조하신다.

“너 아직 신인이야. 뭔가 활약을 해야 한다는 욕심 부리지 마.”

“김여은 씨에게 네 상태 충분히 말해뒀어. 어지간하면 기자나 팬들은 보지 말고... 아니, 아예 인식 자체를 하지 마. 그냥 김여은 씨하고 둘이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몰입해. 알았지?”

“잘할 수 있어.”

어깨까지 주물러주며 계속 뭔가를 북돋아 주려고 하는 대표님.

그 옆에 이번 데뷔 쇼케이스를 담당한 아티스트 1본부 직원들이 보인다.

그리고 대천사 이정연 팀장님!

얼굴에 날 향한 걱정이 가득하다.

현 시점에서 회사 사람 대부분이 정신과에 다닐 정도로 심각한 공황 장애를 알고 있었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창백하고 살짝 땀이 흐르고 있었다. 덥거나 지나치게 긴장한 탓이라기보다는, 슬슬 공황 발작이 일어날 듯 말 듯 하는 상황이라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디에 몰입해야 하지?

심장이 점점 세게 뛰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 자, 김민 군을 무대 위로 초청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

“알았지? 다른 건 보지 마. 김여은 아나운서한테만 집중해!”

대표님의 조언을 뒤로하고, 난 무대 위로 이동했다.

“와아아!”

기자 외에 500명의 일반인들을 초청했다고 들었다.

무대 위로 나간 순간 나는 대표님의 조언을 깔끔하게 잊어 버렸다.

객석을 가득 채운 채, 나 한 명을 향해 박수와 함성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모른 척 할 수 있겠나?

“자, 김민 군. 이쪽에 서서 자기소개와 인사 한 번 해주시겠어요? 우리가 김민 군을 누구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차분하면서도 따스한 음성이 귓가로 파고들었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들고 첫 멘트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JJ 엔터테인먼트 전속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이고, 지금은 신인 가수로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김민이라고 합니다.”

“올해로 고등학교 1학년이 됐다고 들었는데, 정말 가수 연습생이 아니라 프로듀서로서 회사에 입사한 건가요?”

“네! 곡을 몇 개 써서 컨셉 제안서와 함께 보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장진영 대표님이 이번에 발표한 <시간 있어요?>라는 곡이었어요.”

“어? 그러면 또 다른 곡이 있다는 건데... 혹시 그 곡이 오늘 발표를 앞둔 음악일까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조만간 저처럼 데뷔 쇼케이스 기회를 갖게 될 신인 그룹에게 기회가 돌아갔어요.”

“아! 신인 그룹... 어? 잠깐만, 제가 듣기로 회사에 입사한 지 아직 몇 개월 안 됐다고 들었거든요? 대체 곡을 얼마나 써서 준거죠?”

“대표님, 신인 그룹, 엔 플라워....”

흘릴까말까, 살짝 고민하다가 그냥 흘리기로 했다.

“아이작 이스트까지 네 팀에게 곡을 줬네요. 저까지 합하면 다섯 팀이에요.”

웅성임이 퍼져 나갔다.

김여은 아나운서도 상당히 당황한 듯한 모습이다.

“엔 플라워라면 우리가 아는 그 엔 플라워 맞죠? 그 차기작을 김민 군이 썼나요?”

“네. 앨범 곡 제가 다 쓰고 프로듀싱도 했어요.”

“아...!”

탄성소리. 기자들이 타자치고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 같은 것들이 빠르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 절대 간과할 수 있는 이름을 들었는데, 아이작 이스트라면 재즈 힙합으로 그레미 어워드 수상한 그 미국 아티스트를 말씀하시는 거 맞죠?”

“네. 우리 회사에 이정연 팀장님이라고, 자타공인 대천사 한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의 은총으로 좋은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네요.”

“이정연 팀장님...?”

“저기 저 분이요.”

무대 왼편에서 날 지켜보던 이정연 팀장님을 가리킨다. 순간 카메라에 의해 팀장님의 모습이 전광판에 크게 비춰졌다. 당황하며 얼굴을 가리지만 이미 늦었다.

“와....!”

터져 나오는 탄성.

김여은 아나운서도 감탄했다.

“저 분이 회사 팀장님이세요? 배우나 모델이 아니라?”

“저도 처음에 보자마자 아나운서님처럼 그렇게 생각했어요. 참고로 절 캐스팅해서 오늘 이 자리에 세워준 분이기도 해요. 저 분 아니었으면 저도 없었을 거예요.”

“그렇군요. 이정연 팀장님? 얼굴 가리지 말고 손 한 번만 흔들어 주세요!”

당황하던 이정연 팀장님이 마지못한 듯 손을 흔들어주신다. 전광판에 비춰지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비주얼에 다시 한 번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온다.

“그런데 대표님이 섭섭해 하시겠어요. 제자라고 엄청 애지중지하던데....”

“에이, 그렇게 쪼잔한 분이 아닌....”

말을 하다 말고, 떨떠름한 얼굴로 이정연 팀장님 옆에 있던 대표님께 물었다.

“... 아니죠?”

와 웃음이 터져 나온다.

김여은 아나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얼굴로 물었다.

“아니, 왜 확답을 못하세요?”

“갑자기 에피소드 하나가 떠올라서요.”

“무슨 에피소드죠?”

“미국에서, 제가 아이작 이스트 만나고 막 대단하다. 음악 실력이 굉장하다. 잘 생기고 돈도 많다! 젠틀하다. 엄청 흥분해서 계속 칭찬을 하니까 처음에는 공감해 주시더니 점점 표정이 안 좋아지시더라고요.”

“삐졌군요!”

“네. 아시다시피 뮤지션으로서 자존감이 어마어마하게 높으신 분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계속 다른 아티스트만 칭찬하니 그게 거슬렸나 봐요. 야, 그럴 거면 아이작 이스트한테 제자 삼아달라고 해! 왜 나한테 음악 배우냐? 이러시는데....”

“우우우!”

쏟아지는 야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대표님을 보고 난 흐뭇하게 웃었다.

토크의 기본은 친한 주변 지인들을 에피소드로 털어먹는 게 기본이지!

“그렇게 안 봤는데... 쪼잔한 거 맞는 것 같은데요?”

“데뷔 앨범 이야기 한 번 해볼까요? 이것도 직접 곡을 쓰고 프로듀싱도 하신 거죠?”“맞아요. 이 중에서 별빛의 숲이라는 음악은 제가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이미 완성했던 음악이었어요. 혹시 차박이나 캠핑 같은 거 좋아하시나요?”

“굉장히 좋아해요! 저 캠핑이 취미라 SNS에 사진, 영상도 막 올리고 그러는데... 혹시 그것과 관련이 있는 곡인가요?”

“혹시 강원도 삼척 원평 해수욕장이라고 아시나요? 거기가 특히 차박으로 유명한 곳인데....”

“잘 알죠! 뒤에는 소나무 숲이 있고 앞에는 동해 바다가 있는... 아, 그곳에서의 경험을 담은 곡이군요!”

“맞아요. 첫 번째 트랙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과 별빛의 숲이 하나로 연결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데, 모두 그곳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음악이에요. 캠핑 좋아하는 분들, 그 중에서 원평 해수욕장 가본 분들은 제 곡, 뮤직 비디오 보면 반갑기도 하고, 기분이 새로울 거예요.”

작곡, 뮤직 비디오 비하인드 썰을 풀어내며 본격적으로 쇼케이스를 진행한다.

앨범 패키지 구성을 짚어보고, 화보 몇 개를 전광판에 띄워 에피소드를 말해주기도 하고.

굉장히 자연스럽게 앨범 홍보가 이어진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이, 두 트랙을 모두 뮤직 비디오로 제작했어요. 보통은 타이틀 정도만 제작하지 않나요?”

“스토리가 연결되는 곡이기도 하고, 일단 회사분들은 굉장히 좋게 평가해주신 덕분에 자연스레 추진 됐어요. 아, 정상구 감독님 추천도 영향이 있었다고 들었네요.”

“이번에 뮤직 비디오 제작 담당해주신 감독님이시죠?”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실력자 분이시죠. 정말 운 좋게도 그분과 인연이 닿아서 멋진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어요.”

“오늘 이 자리에서 뮤직 비디오 공개가 예정되어 있죠? 어서 빨리 보고 싶네요. 일단 감상부터 하고 뒷  이야기 이어서 해보도록 할까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시작부터 청량한 배경이 펼쳐진다. 즐겁고 흥겹게 숲길을 걷는 내 모습.

땀방울이 흐르지만 아름다운 숲의 전경을 보며 즐거워하고, 그러다 마침내 눈 앞, 저 멀리 펼쳐진 푸른 동해바다와 맑은 하늘을 보며 활짝 웃는다.

시원한 트로피컬 하우스 느낌으로 펼쳐지는 전반부.

어택감 있는 드럼 셋이 흥겨움을, 맑고 깨끗한 소리로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연주하는 피아노가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을 만들어낸다.

기자들은 얼굴은 전광판의 뮤직 비디오에 향한 채, 두 손은 쉴 세 없이 키보드를 치며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반면 500명의 팬들은 몸을 가볍게 들썩이며 음악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과연 이 노래와 뮤직 비디오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건 그렇고.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뮤직 비디오 속 내 모습이 대책 없을 만큼 해맑다.

문제는 저게 대본에 꾸며진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한 게 아니라, 전생 내 모습 그대로라는 거다.

감독님은 내 본연의 경험과 당시의 모습을 최대한 그대로 드러내기를 요구하셨다.

그 결과가 지금 저 뮤직 비디오니....

‘민망하네.’

제일 민망한 것은 바다, 팬션, 숲길 등을 배경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며 노래 부르는 내 모습이다.

아, 저건 정말 못 봐주겠다.

예쁜 척, 사랑스러운 척, 청순한 척, 귀여운 척....

전생 아이돌 그룹 시절에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을 여기서 다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내 표정이 저렇게 다양했구나. 감탄이 들기도 한다.

밝고, 화사하고,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가 지나고.

마침내 클래시컬한 사운드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껏 살린 <별빛의 숲>이 펼쳐진다.

어두운 밤.

까만 동해 바다를 뒤로 하고 은하수를 따라 숲길로 들어가는 나.

그곳에서 별빛이 내려앉은 신비의 숲과 마주하게 된다.

“와...!”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번만큼은 나조차도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환상적인 화면이 펼쳐진 것이다.

별빛의 숲 중심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또 웃으며 노래를 부르는 내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나의 모습과 너무나도 달랐다.

민망한 표현이지만, 굉장히 아름답고 신비롭게 보였다.

새삼 정상구 감독님과 촬영 팀에 대해 존경심이 마구 샘솟는다.

날 무슨 요정으로 만들어 놨다.

후렴구,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목 놓아 부르는 노래.

밤하늘의 은하수가 숲에 쏟아져 내리는 광경이 일제히 펼쳐지는 장면에서 가슴이 웅장해졌다.

그렇게 두 편의 뮤직 비디오 상영이 끝나고.

“와아아아!”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런데....

“아, 저도 모르게 눈물을....”

진행자인 김여은 아나운서의 눈동자에 물기가 가득했다. 그녀는 당황해서 황급히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뮤직 비디오 보면서 이렇게 울어보기는 처음이예요. 두 곡 모두 슬픈 노래하고는 거리가 멀었는데, 첫곡은 너무 가슴이 벅찼고 두 번째 곡은 굉장히 위로를 받는 느낌이어서... 다들 어떻게 보셨어요?”

연출인지 진심인지....

분명한 건 현장 분위기가 지금까지와 또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기계적으로 사진 촬영하고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기자들. 진행자의 유도에 따라 박수와 함성을 터트릴 뿐이었던 사람들 모두.

[ 와아아 ― !! ]

굉장히 열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확실히 이전과 다른 반응이었다.

진심이 느껴졌다.

그 중, 태도가 가장 변한 사람은 바로 진행자인 김여은 아나운서였다.

“정말 이 곡을 직접 만들었어요? 정말 굉장해요! 저 오늘부터 진심으로 김민 군 팬이 될 것 같아요! 아니, 이미 된 것 같아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리는 눈동자.

누가 봐도 잔뜩 들뜬 모습이었다.

이게 연출이라면... 이 여자는 진행이 아니라 연기자로 나서도 크게 성공할 것이 분명했다.

... 이거 지금 잘 되고 있는 거 맞지?

나 잘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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