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데뷔 (1) >
어느 새 대기실이 시끌벅적해져 있었다.
“진짜 아이작 이스트에게 곡을 팔았어? 대단한데?”
“에이,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대체 운이 얼마나 좋아야 그래미 수상자에게 곡을 팔 수 있는 거지?”
“기본 실력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와, 들어보고 싶네. 아이작 이스트도 반한 힙합, 알앤비 음악이라니...!”
같이 대기실을 쓰게 된 이들은 6인조 보이 그룹 스위트 아이즈.
벌써 정규 앨범만 4번을 내고 팀 멤버 모두 솔로로 데뷔해 성공한 경험이 있는 8년차 A급 팀이었다.
해맑게 다가와 자신들의 히스토리를 나열하며 팬심을 고백한 어린 신인이 히트곡을 쓴 작곡가다.
그들은 금방 나에게 호감을 보였고, 그 결과가 지금 이 광경이었다.
“이건 제 생각인데요.”
“.......?”
“한국에서 건너 온 어린 애가 뭔가 해보겠다고 용을 쓰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그냥 응원하는 기분으로 곡을 사주신 것 같아요. 진짜 좋은 사람이었거든요. 그 부부.”
“너 몇 살인데?”
“저 고등학교 1학년생이니 17세죠. 미국식으로 따지면 만 15세예요.”
“헐.”
“17세? 너 고1이야?”
“와....”
다들 충격 받은 얼굴이다.
스위트 아이즈 멤버의 평균 연령대가 20대 중.후반이었기에.
“나하고 띠동갑이야. 세상에....”
“어우야. 갑자기 거리감 느껴져.”
“내 조카랑 동갑이네.”
한 마디씩 내던지는 드립에 내가 배를 잡고 웃으니 그게 또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너 아직 사춘기니? 애가 웃음이 많네.”
“솔직히 나 남자 후배들 징그러워서 별로 안 좋아하는데 넌 귀엽고 예뻐서 괜찮아.”
“성격도 좋고 음악도 잘하고... 붙임성이 있어 얘가.”
“야,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
“헛! 정말요? 감사합니다! 와, 나 성덕됐어!”
“성덕? 그게 또 뭐야?”
“성공한 덕후라고요.”
“아...하하하!”
웃고 떠들다 보니 금방 리허설 시간이 다가왔다.
“오, 시간 됐나보다. 같이 나가자.”
“네! 그런데 형님들은 순서가 언제예요?”
“다섯 번째. 너는?”
“전 여덟 번째예요!”
“크으! 기다리느라 힘들겠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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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아이즈 멤버들과 사이좋게 대기실을 나서는 김민을 보며 최명규는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붙임성이 뭐 저렇게 좋아?’
스위트 아이즈들이 워낙 성격 좋기로 유명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워낙 솔직하고 거침 없는 성격 탓에 삐딱한 인간들이 넘쳐나는 연예계에 적을 꽤나 만들기도 했다.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며 대화를 경청한다.
“너 나중에 형들한테도 곡 만들어줄 수 있겠냐?”
“얼마든지요. 원하는 장르, 스타일 말씀하시면 제가 다 맞춰드릴게요! 그런데 굳이 말씀 안하셔도 괜찮아요.”
“어, 왜?”
“제가 형들 팬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추구하는 음악 성향 정도는 진작 꿰고 있죠!”
“아, 정말?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 뭔지 맞춰봐!”
“굉장히 쉽죠! 우선 운이 형님은...!”
저런 건 대체 언제 조사를 끝마친 걸까?
아니, 설령 뒷조사를 완벽히 했다하더라도 그것을 상대방이 듣기 좋게 맞춰주는 건 별개의 문제다. 그 어려운 걸 이제 17세 소년인 김민이 해내고 있었다.
오늘 방송에 데뷔할 예정인... 생 초짜 신인이 말이다.
‘화술도 좋은데 일단 굉장히 영악하군. 자신의 장점을 잘 활용할 줄 알아.’
어지간한 미소녀들보다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비주얼.
그리고 어린 나이.
이 두 가지를 굉장히 능숙하게 활용한다.
원래 애교가 많은 성격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특히 장진영 대표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애늙은이가 따로 없었으니까.
‘한 마디로 가면이라는 건데....’
가식적인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면, 그것을 가면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또 다른 자아로 봐도 되지 않을까?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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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체 앞뒤로 큰 이름표를 달고 리허설을 진행하는 가수들의 모습이 꽤나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런 광경을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오는구나.’
드라이 리허설에 임하는 모습은 데뷔 연차에 따라 모두 다르다. 춤도 노래도 설렁 설렁, 동선 정도만 맞추는 이들은 주로 고인물.
그에 비해 연차가 적은 가수들은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최선을 다한다.
나는 오늘이 방송 첫 데뷔니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야겠지?
“우리 간다!”
“대기실에서 보자!”
마침내 스위트 아이즈 멤버들의 차례.
화사한 스트링 선율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꽃비.
내 기억으로 1위는 찍지 못했지만, 이 시기 꽤나 유행했던 팝 댄스 음악이다.
8년차 고인물이지만 그들은 대강 대강이라는 게 없었다.
최선을 다해 춤을 췄고 노래를 불렀다.
실력파 고인물 아이돌이라는 명성답게 라이브는 흔들림이 없었고, 랩과 화음, 보컬 파트가 정말 듣기 좋았다.
‘잘한다. 정말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곡을 한 번 써보는 것도 좋겠다.’
마침내 내 차례!
참 오래도 기다렸다.
최명규 매니저님이 몇 가지 조언을 건넸다.
“땅 보지 말고 카메라 똑바로 쳐다봐요. 리허설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해요. 알았죠?”
리허설은 총 두 번 한다.
지금 한 번.
저녁 식사 이후 두 시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지금은 오디오를 중심으로 보는 리허설이라 레드 스켈레톤 댄스 팀은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오후 두 시 타임에 맞춰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 말인즉 저 넓은 무대에, 쌩 신인인 나 혼자 올라가야 한다는 소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에게 신경 쓰는 가수들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객석이 텅 비어 있었다.
슬슬 아침 식사 시간도 됐고, 어디 식사라도 하러 간 모양이다.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크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인 가수 김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신인들이 하는 실수 하나.
인사를 힘차게 하는 건 좋은데, 그걸 마이크에 대고 한다는 것이다.
사운드 모니터링 중이던 분들이 깜짝 놀라시겠지?
사소하지만 미리 생각해둘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잠시 후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MR이 흘러나온다.
이번 삶, 나의 첫 드라이 리허설이 시작됐다.
객석에 사람이 없었기에 공황발작이 올라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무대 그 자체에 최대한 몰입했다.
처음이 아닌 마지막 무대인 것처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이어 바로 <별빛의 숲>이 이어진다.
다른 출연자와 달리, 나는 첫 데뷔 무대였기에 두 곡을 부를 예정이었다. 그것도 기존 세트장이 아니라, 오늘 위해 소속사에서 특별히 제작한...무려 1억 원이 넘는 특설 무대에서.
숲과 바다를 테마로 꾸민 무대였는데,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를 연상케 하는 퀄리티였다. 벽면과 바닥 전체에 깔린 커다란 디스플레이에 곡 분위기에 맞춰 시원한 바다, 혹은 별빛이 내려앉은 숲의 배경이 깔린다.
이른 아침이라 목이 잠겼지만 원 없이 노래를 불렀다.
마침내 다시 서게 된....
정말 그리웠던 무대였기에.
사전 녹화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후속곡 별빛의 숲을 녹화할 예정이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는 생방송에서 부를 예정이었다.
모든 세팅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준비하는데 너무나도 떨려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런 내 상태를 캐치한 매니저님이 물었다.
“청심환 하나 줄까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언제까지 약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들어가실 게요.”
방송팀 스텝의 알림에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한다.
복도를 지나 사전 녹화가 진행될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무대 뒤에서 잠시 대기하는 동안, 연출 스텝들이 다가와 몇 가지 당부 사항을 알려주고 마이크를 점검해준다.
사실 이런 것들은 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대 위로 올라가면... 오늘 나를 위해 모여준 팬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왔는지, 어떤 모습들인지 난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첫 만남은 언제나 두려움과 함께 기대감, 긴장감 같은 것들을 동반하는 법.
떨지 말고 잘해야 할 텐데.
실수하면 안 되는데.
공황 발작이 오면 어떻게 하지?
온갖 잡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후우, 후우....”
점점 숨이 가빠져 온다.
이런, 공황발작인가?
위기감을 느낄 때.
“뭘 또 긴장하고 그래?”
누군가 내 목을 휘감았다.
레드 스켈레톤 백종훈 단장님이었다.
그리고 댄스 팀이 날 둘러싸고 있다.
“병원 가서 진료도 받고, 그래서 많이 나아졌다며?”
“그런 줄 알았는데... 어우, 잘 모르겠어요. 너무 떨려서....”
“음....”
날 가만히 살펴보던 백종훈 단장님이 씩 웃는다.
“확실히 이전보다 괜찮아지긴 했네. 그런데 첫 방송에 떨리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너무 긴장 하지마. 아, 그리고 한 가지....”
“.......?”
백종훈 단장이 진지하게 말했다.
“널 보러 온 팬들이 기다리고 있어. 나도 놀랐는데, 꽤 많더라 야.”
“그, 그래요? 얼마나 많아요?”
“뭐, 그건 곧 보게 되면 알 일이고... 이거 명심해. 널 응원해주겠다고 귀한 시간 할애해서 와준 고마운 분들이야. 무대 시작하기 이전에 대기 시간이 좀 있으니 인사하고 어떤 거라도 좋으니 말도 좀 걸어주고 그래. 그래야 힘들게 여기까지 온 보람이 생길 거 아냐. 안 그래?”
맞는 말이다.
방송도 중요하지만, 여기까지 날 보러와 준 팬들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할 수 있어. 해보자.’
마음을 다지는 동안.
“올라가세요.”
큐 사인이 떨어졌다.
“자, 가자!”
댄스 팀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객석을 바라본 순간.
“......!”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많았다.
넓은 공간에 굉장히 팬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날 응원하기 위한 플랜카드 같은 것들을 들고.
놀랍게도.
한 순간 모든 생체 기능이 정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세상이 멈춘 듯한 느낌이라 표현해야겠다.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좋아해서 모여준 사람들.
눈치 보며 피해 다닌 시간이 워낙 많다 보니, 난 사람들의 감정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조금이라도 나를 싫어하거나, 심지어 질시하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 와아아아! ]
우렁찬 외침 소리.
[ 잘 생겼어요! ][ 멋있다! ]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광경이 눈에 보인다.
[ 형 왔다! ]
[ 쫄지 마! ]
사실 여성 팬들이 대다수일 줄 알았는데, 무려 남성 팬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뭐지?
이런 경우는 처음이고 생각지도 못해서 당혹스러운데?
“어... 안녕하세요?”
데뷔 첫 방송에서의 첫 마디가 이런 거라니....
그러나 후회할 새도 없었다.
내 입이, 의지를 배반한 채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형님들이 굉장히 많이 와주셨네요. 제가 사실 공황장애가 좀 있어서, 이번에도 그게 올라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형님들 얼굴 보니 급 차분해지네요.”
와 웃음이 터져 나온다.
“몇 분이 들어오신 거죠?”
[ 400명! ]
“식사는 하셨고요?”
[ 아니요! ]
“전 먹었어요.”
[ 우우! ]
“여러분의 사랑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불러요.”
[ 우우우우! ]
격한 야유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 리허설 시작할게요. ]
웃고 떠드는 것은 여기까지.
그래도 팬들 덕분에 긴장이 풀렸다.
이제 보니 나는 사람 많은 게 두렵다기 보다는, 그 중 섞여 있을 내 안티, 혹은 날 질시하는 자들의 존재 여부를 두려워했던 모양이다.
이 자리에 모인 400여명의 사람은 온전히 날 좋아하고 지지해주는 팬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별빛의 숲>.
각종 무대 특수 효과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조금은 어수선하던 현장이 비로소 공연장다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마이크를 들고, 댄스 팀과 함께 안무를 시작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마치 뮤지컬 무대에 선 듯이.
그 순간 함성이 울려 퍼졌다.
가슴 속에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조금은 떨리는 음성을 주체하지 못한 채 노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