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데뷔 (2) >
‘아. 후련하다.’
노래가 끝난 순간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정말 많은 연습을 해왔는데 지금처럼 재미있고 속이 시원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 우...와아아! ]
[ 잘한다! ]
“........!”
순간, 나도 모르게 사전 녹화 리허설 중이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백 명의 팬들이 열광하고 있었다.
[ 어.. 저기, 바로 공연 들어가도 괜찮겠어요? ]
어쩐지 지시를 내리는 스텝 분도 당황한 것 같다.
괜찮겠냐고?
“잠깐 모니터링 좀 하고 올게요!”
당연히 안 괜찮지!
핑계를 대고 내려가 숨을 좀 돌린다.
“리허설인데 그렇게 세게 하면 어떻게 해요? 괜찮아요?”
최명규 매니저님이 황급히 땀을 닦아주고 물을 건네주며 묻는다. 꿀꺽, 미지근한 물을 억지로 밀어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1분만 쉬면 괜찮아져요.”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칼 같이 끝내고 가는 게 팬과 촬영 팀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까.
정확히 1분을 세고 무대로 다시 올라가니 팬들이 환호성으로 반겨준다.
댄스 팀과 대열을 갖춘 뒤.
“준비 됐습니다!”
내가 직접 큐 사인을 보낸다.
객석을 보고 손을 흔들어보이자 응원의 함성을 보내온다.
마침내 시작된 사전 녹화.
이번에는 시작부터 깊게 몰입했다.
그 순간, 별빛의 숲이 실제로 펼쳐지는 듯 한 착각이 느껴진다.
별빛을 따라 도착한 곳에.
희망이 그윽한 숲이 있어요.
숲과 바람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내 전신을 감싼다.
바람이 날 인도했어요.
별을 품은 신비의 숲이.
날 따뜻하게 감싸줘요.
한없이 빠져든다.
과연 헤어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 생길 정도로, 깊고 강하게.
그 순간 날 현실로 일깨워주는 소리가 있었다.
난 버림 받았어요.
지치고 힘들었죠.
이게 무슨 소리지?
세상은 회색빛이었고.
희망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난 어둠속에 홀로 버려졌어요.
먼 곳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
그것은....
별빛의 숲이 내게 속삭여요.
이곳이 저를 위한 곳이래요.
참 다행이에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요.
아른거리는 파도보다도 더 강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이것은...?’
정체를 파악한 순간.
“......!”
눈이 번쩍 뜨였다.
순간, 별빛의 숲 이상으로 더 아름다운...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바람을 따라 도착한 곳에.
별을 품은 숲이 있어요.
팬들이 열정적으로 노래를 열창하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바다와 숲과 노래 말고도.
이제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이들이 생겼다는 것.
그곳은 별빛의 숲이에요.
이 순간 나와 함께 해주는 팬들을 위하여.
내 모든 것을 다해 최고의 무대를 선사하고 싶다.
이 순간.
난 바람보다도 자유롭게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오후 다섯 시.
시계를 흘끔거리며 식당일을 하던 김민의 어머니, 정선임 여사는 기다렸다는 듯 TV켰다.
‘뮤직 파워라고 했지?’
방송이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생방송 뮤직 파워! ]
[ 오늘도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션들이 여러분과의 소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오프닝 멘트 이후 오늘의 출연자들이 소개된다.
바쁜 와중에도 정선임 여사는 TV를 계속 흘끔거린다.
그러다가 마침내.
[ 김민 ]
아들의 이름과 영상이 큼직하게 띄워진 순간.
“민이다. 민이야!”
자신도 모르게 입을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말았다. 순간 시선이 집중됐지만 정선임 여사는 그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자 주방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나와 묻는다.
“응? 민이 나왔어?”
“응! 저기 봐! 우리 아들이야!”
“어디... 정말이네. 하, 잘 생겼다!”
주방 아줌마는 씩 웃으며 손님들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 아줌마 아들이 방송 출연하는 날이거든요. 신인 가수로 데뷔한다나봐요 글쎄.”
“오, 정말요?”
“누군데요? 이름이 뭐에요?”
한쪽에 앉아 있던 여고생 무리가 반짝이는 눈으로 묻는다.
주방 아줌마가 냉큼 대답했다.
“김민이라고 하는데 들어봤어요?”
“어? 잠깐, 들어본 적이 있는데....”
“나도....”
화면에서 김민의 모습은 이미 지나갔다.
곧 음원 사이트를 검색해보던 여고생들이 소리쳤다.
“아, <별빛의 숲>? 맞아. 이 노래 오늘 아침에 들었었어!”
“학교 점심 방송 때도 소개됐었잖아.”
“그건 별빛의 숲이 아니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 노래 였어.”
“노래 좋았는데, 오늘 데뷔하는구나! 진짜 아줌마 아들이에요?”
정선임 여사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진다.
주방 아줌마가 빈자리에 잡아 앉히며 말했다.
“지금 일할 때가 아니잖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잠시 앉아서 아들 얼굴이나 좀 보고 있어!”
“아, 아니 안 그래도 되는데....”
“괜찮아. 빨리 앉아!”
못 이긴 척, 계산대 옆 자리에 앉은 정선임 여사는 떨리는 마음으로 TV를 지켜본다.
한 가수에게 할애된 시간이 3분 내외였기에 순서가 빠르게 지나간다.
‘다들 춤도 잘 추고 노래 잘 부르네.’
사실 노래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역량이 하나 같이 대단한 수준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리고 마침내.
[ 자, 여러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소문의 천재 소년이 마침내 그 베일을 벗는 순간입니다! ]
[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도록 만드는 마성의 그 노래. ]
[ 김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Power On! ]
‘시작한다!’
김민의 생방송 데뷔 무대가 시작된다.
해변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세트장.
나이 대에 걸맞은 컬러풀한 캐주얼 의상을 걸친 검은 머리의 미소년이 조명보다 화사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와아!”
“진짜 예쁘게 생겼네.”
여고생 무리에 탄성이 터져 나온다.
커다란 TV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년의 미모가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
시작부터 한껏 흥을 끌어올려주는 드럼과 영롱한 피아노 연주가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동시에 댄서들과 함께 펼치는 소년의 춤은 굉장히 우아하고 자유롭게 보인다. 바람을 타고 노는 요정과 같은 신비함과 자유로움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노래.
여행을 떠나요
휴대폰 끄고
가방만 매고.
비행기 타고
저 하늘 너머
어디론가 떠나요
“흔들림 없는 편안함... 설마 립싱크?”
“라이브.”
“립싱크 같은데?”
“라이브 맞아. 뮤직 파워 생방송 무대는 라이브가 원칙인 거 몰라?”
별 거 아닌 것 가지고 설전을 벌이는 여고생들,
그러면서 시선은 TV속 김민에게 고정되어 있다.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
충격적일 정도로 화사한 비주얼뿐만 아니라 놀라운 수준의 무대 그 자체가 강렬한 흡입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웃음이 나와요
지금 이 순간.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에요.
이어 화면이 전환되며 별빛이 가득한 숲의 전경이 신비롭게 펼쳐진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뀌었고 김민 역시 컬러풀한 캐주얼 룩이 아니라 청바지에 새하얀 와이셔츠 차림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사락, 사락.
바닥에 깔린 모래사장을 밟고 지나 숲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김민의 모습이 펼쳐진다.
그렇게 시작된 무대는 잠시나마 할 말을 잃고 넋 놓게 만든다.
별빛이 가득 내려앉은 숲 중심에서.
소년은 누구보다 자유롭게 노래하고 춤을 춘다.
특히 후렴구.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에 맞춰 목청 높여 열창하는 장면에서는 전율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두 번의 무대가 끝나고.
‘우리 아들. 정말 고생 많았어.’
정선임 여사는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
황급히 촉촉해진 눈가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제 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여고생 무리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다가와 물음을 쏟아내는 게 아닌가?
“아주머니! 김민이 정말 아주머니 아들이에요?”
“정말 제 아들이에요! 못 믿겠으면 같이 찍은 사진 보여줄까요? 이것 봐요!”
“어머! 정말이네? 그런데 옆에 있는 아이는 딸이에요? 몇 살이에요?”
“초등학생이에요
“진짜 예쁘고 사랑스러워!!”
“오디션 보면 여기저기서 데려가려고 할 것 같은데?”
“그냥 유전자부터가 남다른 거였네.”
증거 사진을 확인한 여고생 무리는 결심한 듯 말한다.
“좋아. 나 오늘부터 김민 팬 할래.”
“저 이 가게 단골할게요!”
“친구들도 많이 데려올게요!”
오늘처럼 유쾌하게 웃었던 날이 또 있을까?
손님들을 보내고 잠깐의 여유를 틈타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 TV 봤어. 우리 아들이 제일 멋있더라. 수고 많았고 사랑해. ]
@
생방송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순간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헉, 허억....!”
긴장이 풀려서?
뭐, 그런 것도 있지만....
“으아, 죽겠다.”
“왜 이렇게 힘드냐?”
“다 저 녀석 때문이야. 평소부터 날뛰는 바람에 그거 맞춰준다고....”
방전.
댄서들의 말처럼 페이스를 무시하고 텐션을 잔뜩 높여 날뛴 탓에 벌어진 일이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다. 단순히 약한 체력 문제만은 아니었다.
당장 레드 스켈레톤 댄스 팀도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비틀비틀 대고 있었으니.
“괜찮아요? 물 좀 마셔요.”
최명규 매니저가 챙겨주는 물을 마시고, 땀을 닦으며 물었다.
“방금 어땠어요? 저 잘 했어요? 실수 같은 거 하지 않았어요?”
그는 확언했다.
“오늘 제일 잘 했고 가장 멋있었어요! 지금쯤 아마 아이돌 판 난리 났을 걸요?”
“에이, 그 정도는....”
그러면서 내심은 흡족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괜찮은 무대였으니까.
그리고 이것은 나 혼자 잘한 결과가 아닌, 오늘 무대를 위해 함께 호흡을 맞춰온 댄스 팀과 스텝들, 그리고 컨디션을 계속 조절해 준 최명규 매니저님까지.
모두의 공이었다.
@
내 순서는 끝났지만 방송이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음악 방송 출연자라면 마땅히 감내해야 할 오랜 관례가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오늘 출연한 모든 아티스트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복도에서 대기 중이었다.
사실 모인 이유 자체는 영 탐탁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출연자들과 모여서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바꿔 생각하면 꿀 같은 시간인데, 그냥 흘려보내는 건 아까운 일이지.
“스위트 아이즈 선배님들 오늘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선배님. 사진 한 번만 같이 찍어주시면 안 돼요? 제가 선배님 열혈 팬이라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은데....”
“정말 나중에 메신저로 연락해도 돼요? 와!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간 보내기를 잠시 후.
오늘 출연한 뮤직 파워의 프로듀서를 비롯한 주요 스텝들이 등장한다.
그 순간 대화가 멈췄다.
그리고 앞자리, 데뷔 년차가 가장 높고 인기 많은 그룹부터 인사를 시작한다.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부탁드립니다!”
오랜 관례란 바로 방송을 위해 고생한 피디와 스텝들에게 인사하는 것.
나중에는 악습이니 뭐니, 굉장한 지탄을 받아 없어지지만 이 시점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인기 가수라고 예외는 없다.
난 이런 거 싫으니 그냥 가겠다고?
다음부터 불이익을 당해도 상관없다면 얼마든지 그래보던가.
사실 이 시간 이전에도 벌써 한 차례 방문해서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인사의 목적이 다르다.
낮에는 잘 좀 부탁한다고.
이번에는 고생 많았고 다음에 또 부탁드린다는 뭐 이런 거지.
짬 순서대로 쭉 인사가 이어져오고 마침내 내 차례였다.
그런데 날 향한 피디님의 눈동자에 호감이 담겨 있다.
“잘하던데요? 두 곡 모두 직접 만든 거죠?”
“제가 만들긴 했지만 대표님과 회사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 그래요? 전반적인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네요.”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감격을 이기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다.
피디는 흡족한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음 주에 또 봐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구십도 인사까지 마치고 돌아다보니 날 향한 다른 아티스트들의 시선이 복잡 미묘했다.
왜 저러지?
스위트 아이즈 멤버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 마디씩 던졌다.
“너 정말 고1맞지?”
“지금이라도 솔직히 말해. 너 병장 만기 전역했지? 인사가 완전 군대식이잖아!”
“너 꿈이 직업 군인이었어? 기본기가 훌륭한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