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이슈의 중심에 서다 >
[ 진위 확인 요청에 화답한 아이작 이스트! ‘김민으로부터 두 곡을 선물 받았고 발표만 남겨 놓은 상황이다! ]
[ 아이작 이스트가 추천한 김민의 뮤직 비디오. 하룻밤 동안 조회 수 폭등! ]
“이게 또 이렇게 되네요.”
“그러게. 솔직히 이 정도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거든.”
잠시 무언가 고민하던 대표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너 아이작 이스트 휴대 전화 번호 알고 있지?”
“네? 뭐, 그야....”
“전화해서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
“... 제가요?”
“왜? 못 하겠어?”
“아니. 뭐....”
“영어 공부 열심히 했다며? 이럴 때 써먹어봐야지.”
“각 잡고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 잔소리 말고 빨리 전화해서 고맙다고 인사해. 그게 그렇게 어려워?”
“.......”
대표님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메신저 영상 통화를 시작했다.
‘받지마라. 제발 받지마라.’
나 아직 영어 자신 없단 말이야!
그러나 아이작 이스트는 금방 통화를 수락한다.
[ 민! 이게 무슨 일이야? 나에게 전화를 다 주다니...! ]
나를 반겨주는 사람 앞에서도, 난 웃을 수 없었다.
“어...아, 안녕하세요? 에 그러니까...!”
통화가 끝난 순간 난 소파에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크흡... 난 바보야. 멍청구리야.”
“그래.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결국 나를 대신해 통화를 마무리 해준 대표님이 내 머리 위에 앉아 물었다.
“너 아이작이 무슨 말 했는지 반도 못 알아 들었지?”
“절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은데요.”
“......?”
“10퍼센트도 못 알아들었단 말이에요!”
“자랑이다 인마. 공부 좀 더 해. 너 그런 실력으로 미국 대학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 여행도 혼자 못가니까.”
나도 절감했다.
미국 갔다 와서 영어 공부 나름 신경 써서 한 것 같은데... 아무리 기간이 짧았다고 해도 그렇지!
“영어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아냐. 쉬워. 귀 트이기까지 과정이 좀 험난해서 그렇지. 아무튼... 일어나 봐. 대화 내용 정리해줄게.”
날 내려다보는 대표님의 표정이 굉장히 진지했다.
“몇 가지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어.”
미리 정해진 일정을 변경해야 할 정도로 큼직한 이슈였다.
“조만간 새 싱글 발매 기념 파티를 열 작정인데 널 초대하고 싶다네.”
“만약 클럽에서 하는 파티라면 전 미성년자라 참석이 어려울 텐데요?”
“안 그래도 그렇게 말했더니 추가로 지인들만 따로 모아 집에서 한 번 더 파티를 열거라고, 그 자리에 오면 된다네.”
“집에서요?”
“가수, 방송, 음반 관계자... 뭐 이런 쪽에서 일하고 있는 오랜 지인들이라나 봐.”
“오오... 그거 좋은 기회 아니에요? 특히 대표님에게는 더더욱.”
“그렇지. 아이작 이스트 정도 되는 가수라면 지인들 면면도 화려할 테니까. 운 좋아서 그들 중 한 명하고 친분 관계를 만들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거야.”
대표님도 그 부분 때문에 꽤나 격양된 모습이었다.
“그래서 싱글은 언제 발매 된데요?”
“다음 달 초. 초대장은 이번 주 안까지 보내주겠데.”
“.......”
“왜?”
“아니, 제가 어버버하는 사이 그렇게 많은 대화가 오갔을 줄은 몰랐어요.”
대표님은 짜게 식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영어 공부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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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이스트의 SNS는 특히, 대한민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 뭐임? 그냥 곡주고 끝난 수준이 아니라 되게 친한 것 같은데? 심지어 뮤직 비디오까지 소개해줌. ]
┗ 심지어 한곡도 아니고 두 곡이라잖아. 곧 발매된다는데...
┗ 개쩌네. 그래미 수상자가 갓 데뷔한 신인 가수, 심지어 17세 소년의 음악으로만 디지털 싱글을 발매한단다.;;
┗ 이 정도면 그냥 천재 맞는 것 같은데?
악의적인 메시지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이슈가 점점 커지며 김민이 대체 누군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늘었고, 차트와 뮤직 비디오 조회 수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이에 대해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섭외를 쏟아냈다. 이슈가 가라앉기 전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장진영은 이 같은 상황이 꽤나 난감했다.
“그냥 무작정 거절하기는 곤란한데....”
“민이 씨의 치료가 어느 정도 끝날 때까지는 음악 방송 위주로 활동시키기로 했었죠.”
이정연은 찡그린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특히 뮤직 넷 같은... 당장 우리 회사와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채널의 요청은 거절하기 어려워요.”
1순위로 챙겨줘도 모자랄 판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장진영이 말했다.
“일단... 당사자의 의견을 물어보도록 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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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찾는 곳이 그렇게 많단다.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겠죠.”
담담한 내 모습에 대표님과 팀장들이 꽤나 놀란 얼굴이다.
“괜찮겠어?”
“할 수 있어요.”
“회사 입장 생각하지 말고 네 입장을 생각해. 다시 물어본다. 정말 괜찮겠어?”
대표님과 팀장님들은 내 의견을 무조건 존중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난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 괜찮아요. 꾸준히 진료와 처방 받으면서 노력했더니 빨리 나아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요즘은 잘 떨지도 않아요. 맞죠?”
내 시선에 최명규 매니저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요 근래에 여유가 좀 생겼습니다.”
내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의 증언이었다.
장진영 대표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성공할 줄은 알았는데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 그 공황증이 다 낫고 가면 훨씬 좋을 것 같은데....”
모두들 날 안쓰러운 얼굴로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송에 출연해서 뭔가 또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아이작 이스트 관련 이슈를 확인하다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 뭐야, 아이작. 네 새로운 애인이야?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 보니 이미 진도 나갈 만큼 나간 모양인데? ]
┗ 농담 가려서 해.
┗ 왜?
┗ 이 친구 미국식으로 15세 밖에 되지 않은 미성년자야.
┗ ...응?
[ 잠깐, 여기 댓글을 보고 놀라서 묻는 건데, 자작곡으로 데뷔한 15세 KPOP Star가 그래미 수상자에게 곡을 팔았다는 거지?
┗ 응. 잘 정리했네.
┗ 혹시 팔았다는 곡이 저런 KPOP 스타일 음악이야?
┗ No. 완벽한 전통 힙합 알앤비 음악에 가까워. 맨해튼의 감성을 굉장히 잘 표현한 음악이지.
┗ 저 소년이 맨해튼 출신인가보군.
┗ 천만에. 그날 내 초청 받고 처음 미국에 온 거야. 영어 한 마디도 못해.
┗ 어... 그, 그래?
참고로 한국 커뮤니티에서 짤방으로 접한 거다.
이런 내용들이 번역되어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상상하지도 못한 답변에 질문자를 포함한 사람들이 당황하는 것.
‘예능에 나가면 이런 내용을 위주로 코멘트 요청을 받겠군.’
예상이 맞았다.
며칠 후, 뮤직 넷의 인기 예능 ‘아이돌 천국’의 작가와 사전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 혹시 지금 인터넷에 돌고 있는 짤방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
이런 질문을 받은 것이다.
“물론 알고 있죠.”
[ 여기에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더라고요. 제가 질문 몇 가지 뽑아봤으니 답변 좀 부탁드릴게요. ]
사전 인터뷰는 무려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작가님이 정말 궁금했던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에 대해 참 열심히 조사했다는 것이 느껴졌던 인터뷰라 지루할 틈은 없었다.
[ 녹화일이 기대되네요. 인터뷰에 성실히 응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때 봬요! ]
“네. 작가 누나. 녹화 때 제대로 찾아뵙고 인사드릴게요.”
[ 누나라고요? 호호호. 네. 그때 봐요! ]
다른 프로그램 작가님들의 사전 인터뷰 패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점은 내게 주어진 한정된 이슈를 어떻게 잘 분배하느냐.
기껏 방송 출연해놓고 똑같은 패턴의 정보만 나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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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넷 아이돌 천국 녹화가 있는 날.
아침부터 서연이가 난리였다.
“오빠가 정말 아이돌 천국에 출연한다는 거지?”
“왜, 아무리 생각해도 안 믿겨?”
“응! 그 프로그램은 아이돌만 출연하는 곳인데, 오빠는 아이돌이 아니잖아.”
“그러면 난 뭐야?”
“음...싱어 송라이터?”
“오, 네가 싱어 송라이터가 뭔지도 알아?”
“알지! 작사 작곡 다 하는 가수 말하는 거잖아.”
“그러면 작사 작곡 할 줄 알면 아이돌이 아닌 거야?”
“그건 아닌데 보통 그룹으로 데뷔해야 아이돌이라고 불러주잖아. 그런데 오빠는 아니고.”
“정리하면. 작사 작곡 다하는데 혼자 데뷔해서 노래 부르면 나이가 어려도 아이돌은 아니다?”
“바로 그렇지.”
“넌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경계가 굉장히 명확하구나.”
생각해보니 틀린 비유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왜 나 스스로를 아이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집 앞에 마중 나온 최명규 매니저님의 차를 타서 이동하는 동안, 난 질문을 던졌다.
“회사에서는 절 아이돌로 분류해요 아니면 일반적인 싱어 송라이터 아티스트로 분류해요?”
“그건 갑자기... 아, 오늘 출연하는 아이돌 천국 때문에 하시는 질문입니까?”
“네. 생각해 보니 그 방송은 보통 아이돌만 출연하잖아요? 회사와 촬영 팀이 방송 출연에 동의한 것을 보면 전 아이돌로 분류되고 있었던 걸까요?”
최명규 매니저님이 피식 웃으며 말씀하신다.
“그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죠. 그거 아십니까? 셀린 디온에게 마이클 잭슨은 아이돌이었다는 거.”
“그래요?”
“우리나라는 아이돌에 대해 유난히도 정형화된 공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아이돌의 사전적 의미가 우상 아닙니까? 확장하면 대중으로부터 굉장히 인기 있는 사람을 뜻하니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민이 씨는 아이돌이 맞죠. 인기가 있으니까요.”
“오오...!”
“그러면서 싱어 송라이터이고 아티스트이기도 하죠. 결국 이런 건 같다 붙이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특히 우리나라는 요 근래 아이돌과 아티스트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추세니 말입니다.”
“그건 그러네요. 그러면 전 아이돌로 분류되기도 하는 거죠?”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뭔가 예상치 못하게 굉장한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그때 최명규 매니저님이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말해줬다.
“그리고 사실 아이돌 천국이 정말 아이돌만 출연했던 건 아닙니다. 이름처럼 그랬다가는 이렇게 오래 프로그램 유지를 못했겠죠.”
“......!”
숍에 도착해서 머리와 메이크 업을 진행하는 동안, 매니저님은 업소로 따로 이동, 회사 측에서 미리 협찬 받아 놓은 의상을 챙겨오셨다.
그리고 마침내 방송국으로 이동.
“안녕하십니까!”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먼저 피디와 스텝들을 찾아가 인사한 뒤 아이돌 천국의 진행자를 만나러 간다.
츄이.
“안녕하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날 반겨주는 사람은 연분홍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미소녀였다.
츄이.
아이돌 그룹 라일라의 리드 보컬인 그녀는 본업보다는 예능인으로서 맹활약중이다.
나중에 국민 가수 수준의 위상을 떨치게 되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
지금은 그냥 뛰어난 예능감을 무기로 소속사와 그룹을 먹여 살리는 소녀 가장 이미지가 강하다.
“라일라 정규 1집 다섯 번째 수록곡인 <달빛 아래에서> 처음 듣고 선배님 팬이 됐습니다. 아마 그 음악이 작곡가로서 입봉작이었죠?”
“어머, 맞아요! 신기하다. 그거 아는 사람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건 사람들이 그 곡의 제대로 된 가치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 그 곡이 츄이 선배님의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자질을 훌륭하게 증명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말요? 와, 신기하다. 그 곡 사실 솔로 가수 데뷔 준비했을 때 만들었던 곡이었어요.”
“그랬군요. 어쩐지 한 사람이 불렀어야 했을 곡을 억지로 그룹 노래로 변경한 티가 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무튼 전 선배님의 음악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유쾌했던 첫 대면 마치고 대기실을 나서는데 최명규 매니저님의 묘한 시선이 느껴진다.
“왜 그렇게 보세요?”
“예전부터 느꼈는데... 민이 씨는 겉모습과 다르게 굉장히 능청스러우시군요.”
“제가요?”
“츄이 씨 신상은 또 언제 그렇게 철저히 조사 한 겁니까?”
“조사라뇨? 순수한 팬심을 그렇게 왜곡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데요!”
“.......”
안 믿는 눈치다.
“진짜 팬이었어요!”
“민이 씨는 팬이 아닌 가수들이 없군요. 제 기억으로는 방금 했던 대사를 토시 조금 바꿔서 스위트 아이즈와 다른 가수들에게도 그대로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분들도 팬이었어요.”
“네. 물론 그러시겠죠.”
내 매니저가 나에 대한 불신이 벌써부터 이렇게 팽배하다니...!
사실 이것과 별개로 아이돌 천국 출연이 결정된 순간부터 결심한 것이 있었다.
진행자인 츄이와 어떻게든 깊은 친분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것.
훗날 최고의 히트메이커로 성장하게 되는 그녀는 작곡가 입장에서 보면 발굴되지 않은 보물과 같은 존재였다.
뿐만 아니라 인성도 굉장히 좋아서 기부 천사라는 별명도 얻었었다.
슬슬 계약 만료 시기가 다가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이 채가기 전에 내가 빨리 채가야지!
이런 이유 때문이라도 잠시 후 촬영에서 정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