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66화 (66/205)

< 66화. 2주분 확보 가즈아! >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은 아이돌 천국이었다.

“오늘의 아이돌! 김민 씨 나와 주세요!”

츄이의 소개 멘트와 함께 흥겨운 록 음악이 흘러나온다.

춤추기는 애매한 비트다.

그런데 여기 오프닝이 원래 이런 식이다.

춤을 보자는 게 아니라 애매한 노래가 나왔을 때의 반응이나 센스를 보자는 것이다.

한 마디로 웃길수록 좋은 거다.

그러니까 표정 연기와 립싱크로 승부를 본다!

둠칫둠칫!

거창한 춤사위 따위는 필요 없다.

온 몸으로 리듬을 타며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나아갈 뿐!

빰~빰빰! 빰빰~빠밤!

리듬만 타면 재미없으니 적절하게 섹시 댄스도 넣어주고.

"오우야

마침 아는 노래니 스탠드 마이크를 잡아채는 시늉을 하며 노래도 따라서 불러준다.

카메라를 향해 다가가며!

"으학학!"

다들 뒤집혔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번에는 츄이를 향해 다가간다. 배를 잡고 눈물까지 흘리며 웃고 있던 츄이는 내가 갑자기 다가오자 당황한 눈빛이다.

그러다 갑자기 커플 댄스를 시도하자.

"오오...!"

표정이 변하더니 요염한 표정과 동작으로 합을 맞춰준다. 그렇게 댄스 신고식은 마무리!

"와아아!"

스텝들의 표정이 매우 밝았다.

이 프로그램은 방금 댄스 신고식으로 꿀잼 노잼이 가려진다던데.

꽤 마음에 들었나보다.

일단 시작은 좋다.

내 경험상, 웃기려고 애를 쓰면 오히려 역효과만 일어나더라.

전생 스타더스트로 활동했을 때 그런 경험을 몇 번 해봤다.

"데뷔 과정이 궁금해요. 듣기로 연습이 아니라 프로듀서로 전속 계약을 하셨다고요? 그것도 고1 때?"

"네. 그런데 그것도 그냥 무슨 곡 몇 개 덜렁 보내고 심사 받아서 통과된 그런 방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특이한 방식이었어요."

"어떤 점이 특이했나요?"

"같은 반 친구가 어느 날... 그래서 문 라이트라는...."그래서 방송이 아니라 아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쭉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그게 아마 JJ 엔터테인먼트 역사상 가장 화려한 오디션이었을 거예요."

"오, 그러면 그 때 오디션에 응모했다던 그 음악 잠깐 들려주실 수 있나요?"

"아, 저도 그러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뮤직 넷 CP. PD님들이 이놈! 하실 걸요?"

"어? 왜요?"

"우리 회사하고 뮤직 넷하고 진행 중인 초특급 거대 프로젝트가 있는데...."

거기까지 말하고 슬쩍 눈치를 본다.

스텝들이 굉장히 당황한 얼굴로 엑스 자를 표시하거나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팔을 휘저어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츄이도 당황했다. 나만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린다.

"보셨죠? 츄이 씨 때문에 하마터면 아직 프로모션 기획조차 들어가지 않은 프로젝트를 스포일러 해버릴 뻔 했네요!"

"어... 그, 그게 저 때문이에요?"

"그 오디션 음악 듣고 싶다며 들려달라고 하셨잖아요. 제가 츄이님 열혈 팬인 거 뻔히 아시면서...가까이에서 그렇게 그런 표정으로 부탁하면 어떻게 안 넘어가요!"

그러면서 조금 과장해서 애교 가득한 표정을 카메라에 지어 보인다. 츄이가 당황해서 날 잡고 흔들어댄다.

"제, 제가 언제 그런 표정 지었어요!"

"의도적인 게 아니라 진짜 모르고 한 거면 더 굉장한 건데 미인계가 몸에 배어 있다는 거잖아요?"

"그게 아니라 전 처음부터 그런 적이 없다니까요! 제가 왜 미인계 같은 걸 써요!"

"미인이니까요."

"어..음..."

"츄이 씨 미인 아니에요?"

"아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거봐."

"그거하고는 다르죠!"

"무서워라.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아, 진짜...!"

츄이의 리액션이 굉장하다.

일부러 놀리는 맛이 나게끔, 억울함을 견디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등의 행동이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역시 예능은 치는 쪽 이상으로 맞아주는 쪽도 중요하지.

어느 새 스텝들도 흐뭇한 미소로 우리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돌 천국은 본래 많은 시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로그램이었다.

쟁반 노래방을 패러디한 물 폭탄 댄스방이라던지,

하지만 그런 건 그룹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였다.

혼자 출연한 나한테는 써먹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토크만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분량을 알차게 뽑아먹을까 고민을 좀 해봤거든요? 그런데 마침 좋은 아이템이 있더라고요."

츄이가 눈을 반짝인다.

"춤의 천재라고요?"

"어...."

난 당황해서 작가 누나를 쳐다봤다.

난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는데...?

작가님이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써서 들어올렸다.

[ 대표님께 들었어요! ]

"하하...."

대표님하고 또 따로 통화를 했구나.

츄이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장진영 선배님이 그렇게 자랑을 하셨데요. 곡도 잘 쓰고 노래도 잘 부르지만 우리 민이는 사실 춤의 천재라고."

뭐,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다른 건 모르고 한 번 보고 따라하는 건 자신 있어요. 츄이 님이 라일라 댄스 보여주시면 보고 따라할 게요."

"그럴까요?"

바로 나서서 춤을 추려던 츄이가 멈칫한다.

"잠깐, 그런데 우리 팬 이시라면서요. 그러면 춤을 미리 외워놨을 수도 있잖아요?"

"아, 그러면 따로 연습한 춤 보여주시면 제가 그거 보고 따라 해볼게요."

"아, 그럴까요?"

음악을 고민하는 츄이에게 말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웬만큼 알려진 그룹의 노래는 자제해주세요."

"네? 어째서요?"

"제가 웬만큼 댄스곡 안무는 다 알고 있거든요. 라일라 히트곡 후속곡까지 포함해서요."

"...그래요?"

갑자기 츄이가 반격을 해온다.

"그러면 그거 한 번 쭉 보여주시면 되겠다! 분명 웬만한 댄스곡 다 알고 있다고 했죠? 우리 라일라 안무도?"

"어, 그, 그렇긴 한데...?"

"무작위 재생할 테니 틀릴 때마다 뿅망치 한대. 콜?"

"코, 콜?"

일이 이렇게 되나?

좀 편하게 가볼까 했더니... 역시 예능돌이라 그런지 순발력이 남다르다.

노래가 나온다.

라일라 1집 타이틀... 이 아닌 정말 조용히 묻힌 비운의 후속곡이었다.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는 츄이를 한 번 슥 보고.

"......!"

안무를 시작한다.

한 번 본 춤은 그대로 카피할 수 있는 나.

이게 무슨 소리냐면, 뮤직 비디오든 뮤튜브든, 인터넷에 한 번 업로드 된 전적이 있는 어지간한 댄스 음악의 안무라면 내가 다 알고 있다는 소리지!

심지어 라일라의 댄스는 출연 전에 다시 한 번 쭉 훑어보기까지 했다. 그러니 뭐가 나와도 두렵지 않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난 한껏 몰입하기 시작했다.

@

노래를 많이 알고, 잘 하는 사람을 흔히 인간주크박스라고 표현한다.

그러면 어떤 노래를 틀어도 즉각적으로 반응해 완벽한 안무를 선보이는 사람은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처음에는 자신들의 안무를 놀라울 만큼 따라하는 어린 후배의 모습이 신기했던 츄이였다. 스텝들의 표정도 그때까지는 꽤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을 목격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리액션을 하는 것조차 잊을 만큼 경악에 휩싸였다.

유명 댄스곡은 기본, 심지어 음악 감상이 취미인 자신조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국내 댄스곡들까지 완벽히 섭렵하고 있지 않나?

이 시점에서 제작진도 작정하고 음악 재생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저희들끼리 모여 실시간으로 쑥덕거리더니 계속 뜬금없는 댄스 음악만 틀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또 무슨 곡이야? 사운드 들어보면 대략 90년대에 유행했던 음악 같은데....'

그런데 그조차도 완벽히 따라한데.

음악이 나오면 어? 이거 무슨 노래더라? 뭐였지? 이렇게 고민하는 텀이라도 좀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없었다.

음악이 바뀌면 곧바로 육체가 반응을 했다.

'다 떠나서....'

츄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춤을 굉장히 아름답게 춘다.'

아직 어린 소년인데... 이러면 안 되는데 계속 시선을 빼앗긴다.

옷과 머리카락이 땀에 흠뻑 젖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이 우아해 보이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아이돌 천국을 진행하며, 수많은 아이돌 댄서들을 만났지만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경외감.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재능 앞에 한 가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춤의 천재네.'

랜덤 댄스는 무려 열 몇 곡의 음악을 재생하고서야 끝이 났다.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그야말로 환상적인 무대를 보여준 김민에게.

"우와아아!"

"굉장하다!"

츄이와 촬영 팀은 일제히 기립해서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데미는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미소 짓는... 김민의 눈부신 미소였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린 관계로 녹화가 잠시 중단됐다. 제작진이 김민을 배려해 잠시 씻고 옷을 갈아입을 시간을 준 것이다.

김민이 들어간 사이 츄이와 제작진이 모여 대화를 나눴다.

내용은 김민이 보여준 경이로움에 대한 감탄이었다.

"이럴 거면 춤 위주로 콘텐츠를 구성할 걸 그랬어요."

"아니, 춤 잘 추는 거 다 떠나서 안무 제대로 따라한 거 맞아요? 확인해 봤어요?"

"지금 녹화 본하고 공연 영상 대조해서 확인중인데 완전히 똑같아요."

"그러면 우리 이런 것도 한 번 해볼까요? 즉석에서 안무 영상 보면서 따라하게 하는...."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진짜 이 정도면 어떤 음악 틀어줘도 이미 다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아...."

심지어 이 논의 과정 역시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이 자체도 시청자들에게는 좋은 콘텐츠가 될 것이기에.

"그래도 한번 해봅시다. 잘하든 못하든 어느 쪽이든 좋잖아요. 콘텐츠는 최대한 많이 뽑아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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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옷을 갈아입고 나왔더니 츄이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저, 춤 좀 더 추셔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콘텐츠를 하려고요?"

"안무 복사라고... 뮤튜브에 올라온 아이돌 그룹들 안무 연습 영상 보면서 바로 따라하는 거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민이 씨가 잘하든 못하든 흥미 요소는 충분하다고. 일단 콘텐츠 최대한 많이 확보해두는 차원에서 한 번 해보자고 하시는데...."

츄이는 계속 미안해서 눈치를 본다.

그런데 듣고 보니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콘텐츠를 최대한 많이 확보한다?

'잘하면 2주 분으로 내보낼 의향도 있다는 거지?'

이러면 무조건 가야지.

"콜! 한 번 해봅시다."

아이돌 천국은 춤 하나로 조지게 생겼구나!

하지만 이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콘텐츠 분배 차원에서 보면 말이지.

잠시 후 이동식 TV가 등장했다.

츄이가 설명한다.

"저 TV 화면에 나오는 안무 영상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하시면 되는 거예요."

"실시간으로 말이죠?"

"김민이 씨는 어지간한 안무는 다 알고 계시다고 자신 하셨으니 이번에도 랜덤으로 영상을 재생할 거예요!"

"네. 얼마든지요!"

내가 의욕에 가득 찬 모습을 보이니 제작진과 츄이도 신이 나서 코너는 진행한다.

첫 번째 순서는 현재 차트 1위를 기록 중인 최고 인기 그룹의 타이틀 곡!

... 솔직히 말하면 체력 부족으로 죽을 맛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2주 분 확보를 위해서라면 춤추다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악물고 해야 할 판이다.

'2주분 확보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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