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활동 종료. >
고품격 음악 토크쇼 <뮤직 가든>이 방송됐다.
이 프로그램이 꽤 늦은 시간에 방영한다. 덕분에 기족과 집에서 치킨을 뜯으며 시청할 수 있었다.
“하하하!”
우리 가족 모두 웃고 난리도 아니다.
서연이는 그 좋아하는 치킨 먹는 것도 잊은 채 TV 속 내 활약에 푹 빠져 있었다.
난 TV를 보며 생각했다.
‘뮤직 가든이 지상파 최장수 인기 프로그램이 된 게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사실 촬영 중에는 이게 나중에 어떤 식으로 방송에 나갈지 상상조차 못했다.
정말 토크 전쟁이 따로 없었기에.
나와 호스트들은 분량 확보에 열을 올렸다.
대화 주제가 단물이 조금 빠졌다 싶으면 가차 없이 버리고 새 주제로 갈아탔다. 그래야 신선한 단물을 서로 미친 듯이 빨아 제길 수 있었으니까.
다른 게스트들은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멍 때리거나 어버버 거리다 다시 입을 다문다.
약한 자들은 살아남지 못하는 야생의 세계!
와, 정말 가차 없다!
그 누구도 게스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들을 챙겨 줬어야할 호스트들은 어설프게 끼어들기라도 하면 면박을 주기 바빴다. 그런데 그런 광경이 웃기게 연출 되니 이게 또 참....
나와 호스트들은 매의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상대의 토크가 조금 길게 이어진다 싶으면 눈에 띄게 불안해한다. 그러다 상대가 필살의 드립을 쳤는데 재미가 없다?
[ 에이, 그게 뭐야! ]
[ 그걸 말이라고 해 지금? ]
[ 창피해서 같이 못 앉아 있겠네요! ]
[ 한창 분위기 좋았는데 거기서 똥볼을...? ]
가차 없이 비난을 가하며 주도권을 강탈!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끼리 치열하게 다툰다.
이런 식의 편집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하하하하!”
문제는 그게 굉장한 효과가 있다는 것.
우리 가족은 웃다 못해 울기까지 할 정도였다.
서연이는 드립에 실패한 호스트를 악에 받쳐 비난하는 내 모습을 보고 씹다만 치킨을 뿜기까지 했다.
날 무슨 토크에 환장한 놈처럼 연출해 놨다.
반응이 기대가 되는 게 아니라 걱정이 될 정도다.
이건 뮤직 가든 제작팀이 문제다.
저주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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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보는 내내 눈물 줄줄 흘림.ㅠ ㅠ]
┗ 오늘 간만에 정말 재미있었음.
┗ 나도 빼 찢어지게 웃으며 봄.
┗ 약한 자들은 살아남지 못하는 야생의 세계...ㅋ
┗ 어떻게든 자기가 조금 더 말해보겠다고 상대가 덜 웃기면 바로 비난하는 분위기...아주 좋았어!
내 취향과 별개로 뮤직 가든 이번 방송은 크게 호평 받았다. 고품격 음악 토크쇼라지만, 사실상 이 프로그램은 서로 가차 없이 물어뜯고, 타 방송에서는 민감해하는 이슈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거론하는 것으로 차별성을 두었던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이 인기가 생기고 계속 지속되면서 이런 분위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그 부분에 아쉬워하며 방송에 관심을 끊은 시청자들이 많았고.
그런데 이번에 그게 제대로 다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내 활약 덕분이라니....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좋은 일 아니냐고?
좋지. 방송이 잘 안 된 것보다야 훨씬 낫지.
하지만 방송에서 비춰진 이미지가 이상한 쪽으로 강렬해진 게 문제였다.
토크 분량에 환장해서 서로를 헐뜯고 비난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게 나인 것처럼 되어 버렸으니까.
[ 이번 방송 반응도 좋고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음에 또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해요. ^^ ]
이건 피디님의 문자 메시지.
[ 토크 진짜 잘하시던데요? 혹시 기회 된다면 일일 호스트로 한 번 출연해 보실 생각 없어요? ]
이건 작가님.
이 내용을 들려줬더니 회사는 오히려 좋다고 난리다.
대표님은 심지어 이런 말까지 하시더라.
"야, 요즘 시대에 음악인이라고 어떻게 음악만 하면서 살 수 있겠어? 내 경험상 이런 건 기회가 오면 무조건 잡는 게 맞는 거야. 너 지금 잘하고 있어. 이미지 같은 거 신경 쓰지 마!"
다들 당장의 결과에 만족해한다.
방송국 사람들이야 뭐 어쩔 수 없지만 대표님은 그래서는 안 되지!
굉장히 조심스럽게 관련 기사 악플들을 확인해본다.
이런 거 나도 보기 싫은데, 지금은 꼭 확인해볼 게 있어서 그렇다.
뭐냐면....
[ 음악으로는 세상에 지쳐서 여행을 떠났다고 말하던 애가 정작 방송에서는 돈 버는 이야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방송 분량 뽑겠다며 상대방 비난까지... 괴리감 크게 느껴지네. ]
┗ 나도 그 생각함. 처음에는 좋게 봤는데... 얘는 볼수록 캐릭터가 뭔지 모르겠음. 지금은 그냥 다 가식 같음.
┗ 이렇게 예능 이미지 이상한 걸로 굳히면 안 될 텐데....
내심 염려했던 말이 역시나 나오고 있다.
사실 이런 내용은 굳이 기사 댓글이 아니라도, 내 팬 카페에서조차도 나오고 있는 이야기였다.
이번 뮤직 가든에서 활약한 건 좋지만 그 방식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다.
[ 저런 컨셉으로 계속 밀고 나가는 게 이제 막 가수로 데뷔한 김민에게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
┗ 개인적으로 예능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이 조금 염려되기도 하고 그러네요.
┗ 벌써부터 저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무슨 세상 단맛 쓴맛 다본 노장 같은 느낌이 들어서 별로임.
┗ 벌써부터 신인 특유의 상큼하고 새로운 느낌이 옅어지면 어쩌자는 건지... 회사는 뭐하고 있는 건가 싶네요.
사실 연예인에게 있어 팬은 든든한 지원군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냉혹한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걱정이 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이래야 하는 건지.
이러는 게 맞는 건지.
물론.....
[ 출연한 방송 다 봤는데 아주 좋아요. 우리 방송에서도 그렇게 막 날뛰어 주시면 돼요! ]
방송국 작가들은 그렇게 해달라며 요구를 한다.
이슈가 된 컨셉이니 당연히 본인들도 이용하고 싶겠지.
하지만 그건 그쪽 입장.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조언이 필요한 시점.
고민 끝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저녁.
스케줄을 마치고 강남 한 카페로 이동했다.
구석에 모자를 쓴 채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으려니 전화가 걸려왔다.
[ 제이준 선배님. ]
받는 대신 고개를 들어 입구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다. 나를 발견한 제이준이 다가와 마주편 자리에 앉는다.
"설마 우리 카페에서 만나자고 할 줄은 몰랐는데...."
"제가 아직 어려서 선배님 좋아하시는 막창 집이나 그런 곳은 갈 수가 없거든요. 참 아쉽지만...."
"어휴, 미성년자 후배를 저녁에 막창집 데려갔다가 무슨 욕을 먹으려고... 잠깐 기다려 봐요. 음료랑 디저트 몇 개 가지고 올게요."
잠시 후 제이준은 커다란 쟁반에 커피, 과일주스, 마카롱 등의 먹거리를 잔뜩 가지고 온다. 본인 업장이라 가능한 위용이었다.
"먹으면서 이야기 하죠."
나는 고민을 털어 놓기 전에 말했다.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선배님."
"그럴까? 너도 그냥 선배님 말고 형이라고 불러."
"네. 제이준 형님."
비로소 고민을 털어 놓는다.
"뮤직 가든에서 저도 모르게 폭주하는 바람에 예능 이미지가 너무 이상하게 잡혀서...."
난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
한참 진지하게 경청하던 제이준이 내 앞의 음료를 가리키며 묻는다.
"일단 그것부터 좀 마셔라."
"네? 네!"
후루룩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제이준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정체성 고민 같은 게 제일 쓸데없는 거야. 난 뮤지션인데...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인데...."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주어진 일에 무조건 최선을 다해. 나도 한창 때 너랑 똑같은 고민을 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다 의미 없는 짓거리였어."
"어째서요?"
"너 평생을 지금처럼 순수한 꿈과 희망만 노래할 건 아니지?"
"네? 그야 그렇겠죠."
"앞으로 계속 활동하다보면 자의든 타의든 다양한 모습을 노출하게 될 거란 말이야. 그때마다 부정적인 여론 올라오면 지금처럼 계속 고민하고 그럴래?"
"음...."
"원래 팬덤이라는 게 그래. 빠져나가기도 하고 새로 유입되기도 하고... 그 원인이라는 것도 너무 쌩뚱 맞은 게 많아서 파고들수록 혼란스러워져. 야, 내 동료는 울 때 안 예쁘다고 팬덤 우르르 빠져나간 적도 있었어."
"진짜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심지어 어떤 애는 나름 애교 부린다고 귀여운 표정으로 메롱 한 번 했는데 혀에 백태 낀 게 그대로 퍼져서...."
"와...."
"팬덤 여론 신경 쓰지 마. 기사 댓글 반응은 더더욱 그렇고. 소신대로 해. 그리고 이 업계 최고의 소신은 딱 하나야.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한다."
인생은 모르지만, 아이돌과 연예인으로서는 한창 선배인 그의 조언이었다.
"꾸준히 자기 개발을 해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도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야. 그런데 감추고 자제하고... 이래서는 얻는 것보다는 잃는 훨씬 많아. 기회가 오면 뭐가 됐든 일단 잡고 봐. 사람 일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거든."
그건 맞다.
아 글쎄 살다 보니 회귀라는 것도 하게 되더라고!
"나도 뮤직 가든 봤는데, 네 캐릭터 진짜 신선하더라. 원래 그런 파격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면 여기저기서 말이 많이 나오는 법이야. 감추지 말고 더 드러내. 할 수 있으면 더 치고 나가 봐.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하는 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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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준의 면담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줬다.
감추지 말고 드러내라.
가능하면 더 치고 나가라.
직후 나는 예능에 출연하면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또 하나.
"김민 군은 음악 만들 때 어떤 생각하면서 만들어요?"
"차트 1위하고 싶다는 생각이요. 요즘 들어 1위가 더욱 간절해지네요. 될 듯 안 되니 참...."
"최대 관심사가 뭔가요?"
"코인이요. 주식하고 부동산도 진짜 관심 많아요. 뉴스는 거의 그쪽 위주로 챙겨보고 있어요."
내 캐릭터를 애써 숨기거나 감추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인터뷰 할 때 괜히 예쁘고 좋은 말로 나 자신을 포장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차트에서도 반영됐다.
< 별빛의 숲 > 2위.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5위.
아, 1위...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힘들 것 같다.
대표님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씀하신다.
"1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나도 잘 알겠는데, 이번에는 그냥 마음 접자. 그래도 신인이 이 정도면 엄청 선방했다. 상위권에 오래 있었잖아."
"그래도...."
"아무튼 공식 활동은 여기서 끝내고 우리는 미국 라이프나 즐기자. 1위는 뭐... 엔 플라워가 알아서 해주지 않을까?"
"그건 제가 한 게 아니잖아요. 나도 내 이름으로 차트 1위 해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공식 활동 종료.
사실 조금 짧은 감이 없잖아 있긴 하다.
예능 출연이나 음방 섭외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는데... 조금만 더 노력해보면 1위도 어찌저찌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하고 깔끔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썬더볼트. 세 번째 미니 앨범으로 컴백! ]
[ 타이틀곡은 힙합 댄스곡 '크리티컬 히트' ]
3대 소속사 중 하나인 LK 엔터테인먼트의 주력 남자 아이돌 그룹.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도 인기가 굉장한 톱 티어 그룹이다.
심지어 이 크리티컬 히트라는 곡은 썬더볼트 커리어 사상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메가 히트곡이다.
이제 정말 1위는 정말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미련을 버렸다.
안 버리면 어쩔 건데?
이후 내 관심은 아이작 이스트의 신곡 발매 기념 파티로 향했다.
"준비 됐지?"
"네!"
"여권 챙겼고?"
"정연 팀장님에게 드렸어요."
"그럼 출발하자!"
나와 대표님. 정연 팀장님까지 세 사람은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내가 미국에서 겪게 될 어마어마한 일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