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새로운 흐름이 될 거야 >
어느 새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잘 가!”
“다음에 또 보자고!”
“SNS로 연락할게!”
착한 블러핑 갱단과 헤어진 나는 우버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었다.
“이제 슬슬 파티를 즐기고 있겠군.”
마침 문자가 도착했다.
[ 너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것을... 이거 봐. 엄청난 아티스트들, 제작자들 다 모였어! 눈 뒤집어진다! ]
유명 인사들과 같이 찍은 사진 사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진 속 샐럽들이 대표님보다는 정연 팀장님께 더 친근감을 표시하는 듯한 기분이... 착각이겠지?
... 감히 누구에게.
손을 확 썰어 불라!
샤워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곡 작업을 시작했다.
Don’t Touch Me!
진정한 갱스터란 무엇이냐!
블러핑 갱단으로부터 전해들은, 그들만의 갱스터 철학을 녹인 곡이다.
갱스터와 관련된 곡이니 갱스터 랩으로 해볼까 했지만 뻔하고 재미도, 감동도 없다는 생각에 취소.
어떤 장르가 좋을까?
가이드를 급한 대로 멈블랩으로 했는데, 이게 듣고 보니 꽤 괜찮다.
멈블랩 받고, 이 시기 유행하기 시작한 싱잉랩을 더해보면 어떨까?
멈블은 발음을 뭉개거나 늘어뜨리면서 라임을 맞추는 형식의 랩이다.
하이햇을 따발총처럼 때리며 비트를 맞추는 트랩 힙합에서 대부분 적용되는 기법인데, 작년 이 기법을 유행시킨 힙합 아티스트가 트랩 힙합의 대가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싱잉랩은 랩을 노래하듯이 구사하는 랩 스킬을 뜻한다. 본토에서는 멜로디 힙합이라 칭한다.
사실 이 두 장르는 꽤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대중문화에 대세가 되는 것은 2010년 중 후반부터다.
이게 무슨 뜻이냐?
‘2014년 현 시점에 내가 이 장르를 하는 건 굉장히 새롭고 창의적인 시도로 보일 수 있다는 거지.’
아직 대세는 되지 못한, 하지만 크게 성공할 게 분명한 장르를 먼저 시도한 다는 것은 여러모로 플러스 요인이 된다.
‘곡 분위기가 희망적인 내용은 아니고, 어두운 소재를 기반으로 하니... Emo 스타일로 비트를 찍어 보자.’
록 기타 사운드가 우울하게 깔리며 일그러지고, 구슬프게 노래하는 랩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킥 드럼을 조금 더 어택감 있는 녀석으로 잡아볼까?’
촬영한 영상을 보면서 작업하니 랩 가사는 순식간에 써지더라.
대화할 때는 몰랐는데, 영상으로 보니 블러핑 갱단의 얼굴이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지독한 허무감, 상실감, 패배감... 지금 이 장르에 어울리는 우울하고 어두운 감정들이 가득하다.
진정한 갱스터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파하는 부분에서는 울분마저 섞여 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들에게도 말 못할 아픔이 있었으리라.
그 감정을 가사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함부로 갱스터라고 떠들고 다니지 마!
너희들은 그냥 패배자야.
범죄자일 뿐이라고!
날 건드리지 마.
내가 지키려는 것을 빼앗아가려고 한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느긋하던 목소리와 비트가 점점 급박해진다.
마지막에 그는 경고가 아닌 애원을 한다.
그러다 결국.
[ 탕! 탕! 탕! ]
총소리.
[ 아아악! ]
비명소리.
음악은 배드엔딩을 암시하며 허무하게 끝난다.
“이게 잘 된 건지 모르겠네. 도저히 감이 안 잡혀.”
왜냐면 정말 내 스타일의 음악이 아니라서.
이런 이모 힙합 스타일은 이전 삶에서도 건드려 본 적이 없었다.
어쨌든 Don’t Touch Me! 라는 음악은 여러모로 이질적인 곡이다.
왠지 내가 만든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대표님과 정연 팀장님은 이른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오셨다.
“크아아...크아아아아!”
만취해서 돌아온 대표님은 침대에 눕자마자 요란하게 코를 골았다. 그런데 놀라운 건 정연 팀장님도 조금 취한 듯 보였다는 것.
대표님... 정말 안 되겠다.
불쌍한 정연 팀장은 개고생 시켜놓고 본인은....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고문관 후임 대하듯 갈궈댔다.
“제정신이에요? 아무리 클럽 파티라고 자기 뒤처리를 정연 팀장님에게....”
“아, 아니... 어제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뭐가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자제했어야죠! 무슨 K 회식 문화 체험하러 가신 것도 아니고....”
“저... 정말 어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여기저기서 하도 술을 권해서....”
“지금 팀장님이 나서서 대표님 커버 칠 때가 아니에요! 제가 왜 화를 내고 있는지 몰라서 그러시는 거예요?”
“미, 미안해요.”
머쓱해하는 정연 팀장님을 쓱 째려보고는 다시 대표님을 갈군다.
“진짜 코를 얼마나 심하게 골았는지, 로비에서 몇 번이나 자제 부탁 연락 왔어요. 그 방 왜 이렇게 소리 지르냐고, 같은 층 사람들에게 항의가 미친 듯이 들어오더래요 글쎄!”
아침 식사를 하는 내내 갈구고, 후식으로 커피를 먹으러 가서도 계속 갈궜다.
“진짜 마지막 경고에요. 또 그러시면 저 앞으로 대표님하고 미국이든 어디든 해외 출장 같이 안 가요. 정연 팀장님도 못 데려 가게 막을 거고요.”
“......”
굉장히 시무룩해진 대표님과 반대로, 난 개운해졌다.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뱉어낸 덕분이다.
갈궜으면, 이제 좀 풀어줘야겠지?
“사실 제가 어제 재미있는 일을 경험했어요.”
그러면서 Don’t Touch Me!를 쓰기까지의 과정들을 들려줬다.
“뭐? 할렘에 혼자 찾아가?”
“심지어 갱단이랑 어울렸다니... 미쳤어요?!”
두 분은 경악했지만 난 사진, 영상자료까지 보여주며 말했다.
“알려진 것처럼 위험하고 지저분한 곳이 아니었어요. 그냥 사람 사는 곳이더라고요.”
내 설명이 끝났을 때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부분에 관심을 드러냈다.
“Don’t Touch Me! 라고? 어디 들어보자.”
“뮤튜브 채널 운영이라. 좋은 전략이네요. 사실 저 역시 미래 콘텐츠 시장의 패권은 이미 뮤튜브로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확실히 정연 팀장님이 미래를 보는 안목이 좋다.
그에 비하면 이 양반은....
“뭐야. 너 왜 또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제 눈이 어떤데요?”
“날 한심해하고 있잖아!”
“그거야 당연하죠. 방금 제 이야기를 들었으면 정연 팀장님처럼 반응하며 미래 콘텐츠 시장의 흐름과 그 대처 방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어야 하는데....”
“........”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대표님과 놀란 표정의 정연 팀장님.
“뭐, 일단 곡부터 들어보고 이야기 계속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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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파티는 오후 네 시부터 아이작 이스트의 맨해튼 저택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우리는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
파티 이전에 따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 이스트가 웃으며 내게 악수를 권한다.
“영어 실력은 좀 많이 늘었어?”
“듣는 건 나아진 것 같아요. 다만 말하는 게 조금....”
“오, 아니야. 말도 잘하는데? 일단 발음이 좋아. 역시 똑똑해서 그런지 실력이 빠르게 느는 군!”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런데 아까부터 묘하게 엉덩이를 계속 들썩거리던 촉새 대표님이.
“아이작!”
“.......?”
“민이가 사고 쳤어요! 그것도 엄청나게 큰 사고요!”
“사고라니... 무슨 말이죠?”
나와 정연 팀장님은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머릿속에 이어질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우리 촉새 대표님은 방금 선물 받은 변신 로버트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도착한 날 킴벌리 존스 대표님이 민이에게 곡을 하나 부탁했어요. 그리고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면....”
아까 내가 한 이야기를 마치 자기의 영웅담 말하듯 신나서 펼쳐놓는 우리 대표님.
말솜씨는 또 쓸데없이 좋다.
두 사람은 금방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결국.
"듣고 싶군요!"
"이렇게 된 이상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네요!"
그래. 이게 수순이지.
내 곡에 대한 기대감이 최대치로 상승해 버렸다.
왠지 Empire State Of Mind 정도 되는 곡을 들려주지 못한다면 실망의 눈초리만 받게 될 것 같다.
"자. 민아! 어서 들려드려!"
심지어 대표님 본인도 기대감에 벅차올라 있다.
곡 자체 보다는, 그 곡에 대한 두 부부의 반응을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 저 양반 진짜 때려주고 싶다.
왜 저러지?
나 엿 먹이려고 혹시...?
울며 겨자 먹기로 곡을 재생한다.
타격감이 묵직한 힙합 드럼.
날카롭게 박자를 맞춰주는 트랩 비트.
우울한 록 기타 사운드 리듬과 마이너 스케일의 일렉트릭 피아노.
모든 것이 우울함 그 자체!
이어지는 것은 일부러 발음을 뭉갠 멈블 스타일의 랩. 심지어 그 랩이 마치 R&B 보컬처럼 리듬감 있게 발성된다.
화자는 우울한 반주 속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갱스터에 대해 역설한다.
처음에는 담담하게, 점점 격양된 어조로.
갱스터의 가치를 해치는 이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어조가 점점 급박해지고 우울해진다.
이건 갱스터가 아니야.
그러니 날 건드리지 마!
내가 미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날 건드리지 말아줘.
제발. 오 안 돼.
[타앙!]
갱스터 노릇까지 하며 지키려던....
너무나도 소중한 것을 잃을 사내는 울부짖고.
그렇게 노래는 끝이 난다.
"......."
"......."
아이작 이스트와 킴벌리 존스 대표는 굉장히 충격을 받은 얼굴이다.
"다, 다시 한 번...."
"한 번 더 들어보고 싶어요."
그 후로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을까?
이제 파티 시간이 점점 가까워져 오는데, 부부는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움직일 생각조차 안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 촉새 대표님은 환호성을 지르지 못해 안달 난 얼굴이다. 정연 팀장님과 내가 매서운 눈빛으로 억누르지 않았다면 지금쯤 좋아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이작 이스트는 한숨을 쉬며 몸을 뒤로 묻는다.
"후우, 굉장히 충격적이야. 세상에 이런 음악이... 이게 제목이 뭐지?"
"Don’t Touch Me!"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대표님이 낼름... 아, 진짜 얄밉네! 저 양반.
물론 그 심정은 이해한다.
처음 이 곡을 들려줬을 때 대표님의 반응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으니.
날 무슨 게이트를 열고 나온 S급 몬스터를 보는 얼굴로 쳐다보더라.
아이작 이스트는 제목을 몇 번이나 읊조리더니.
"하아!"
커다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말했다.
"대체 이 음악에 얼마의 가치를 부여해야 할 지 상상이 되지 않는군. 지금까지 많은 데모를 들었지만... 이처럼 혁신적이고 충격적이며 내 가슴을 울리는 음악은 없었어."
킴벌리 존스 대표가 격양된 반응의 이유를 알려준다.
"애써 묻어두었던 끔찍한 악몽이 떠오르게 만드는 곡이군요."
그 순간 우리 일행의 표정이 조심스러워졌다.
대표님도 얼어붙은 얼굴로 더듬더듬 묻는다.
"어, 저기... 그 말뜻은 혹시...?"
"크게 알려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갱스터였던 제 동생을 총격 사건으로 잃은 적이 있었죠. 기특하게도 우리를 계속 지키려던 아이였어요."
"아...."
"그 아이가 항상 하던 말이었어요. 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갱스터가 된 거야. 누나. 형. 내 사랑하는 조카들...."
킴벌리 존스 대표는 울먹이는 얼굴로 말한다.
"우리 부부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음악에 공감할 거예요."
아이작 이스트도 한 마디 했다.
"이건 새로운 흐름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