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72화 (72/205)

< 72화. 파티 피플! >

"하하하! 제임스!"

"아이작! 어제 참석 못해서 미안해. 그리고 신보 발매 진심으로 축하해!"

"미안할 게 뭐 있어? 오늘 와줬잖아?"

포옹하고 있는 백인 미남자는 제임스 게일.

캐나다 출신, 할리우드에서 맹 활약 중인 액션 배우였다.

아이작 이스트는 곧바로 옆에 있던 내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소개할게. korea의 뮤지션이야! 내 이번 앨범과 다음 싱글까지 작업해 준 천재 소년이기도 하지!"

"오오, 그래? 이 친구가 바로...?"

이런 식으로.

손님이 도착하면 굉장히 반갑게 인사하고 곧바로 나를 소개해준다.

곡이 정말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해주는 것을 보니....

아무튼, 덕분에 나는 미국 유명 샐럽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아이작 이스트는 날 챙겨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우리 꼬마 친구가 뮤튜브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하니 자네들도 협조 좀 해줘!"

"민! 저 친구랑 사진 촬영하자고! 워낙 유명해서 효과가 굉장할 거야!"

어... 슬슬 부담스러워지는데.

이 아저씨 지금 하는 거 보면 내 양부라도 되어줄 기세다. 문제는 킴벌리 존스 대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의 손님은 주로 여성 샐럽이었는데, 그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라도 알법한 기업의 임원도 있었고 배우, 가수, 심지어 모델도 존재한다.

그냥 모델이 아니라 저 유명한 빅토리아 시크릿 엔젤!

블랙 로즈 매니지먼트와 아이작 이스트 부부가 굉장한 유명인사라는 건 알았지만... 이제 보니 내 상상을 초월한다.

웃긴 게 뭐냐면 대표님과 정연 팀장님도 얼어붙어 있다는 거다.

난 슬며시 다가가 물었다.

“어제 다들 만난 사이 아니었어요? 왜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 못하고 계세요?”

"뭐 마려운? 이 자식이 꼭 말을 해도...."

발끈하는 것도 잠시.

대표님은 음료를 마시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어제 클럽 파티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야."

"네? 그러면 어제 누가 왔어요?"

"주로 같은 힙합 뮤지션들... 그 사람도 꽤 유명한 사람들이었는데 지금 이 자리는 뭐...."

정연 팀장님의 포커페이스도 산산이 부셔져 있었다.

"어쩌면 좋죠?"

"뭐가요?"

"저기 저 사람. 제가 학창시절부터 굉장히 존경했던 제 롤 모델이에요! 정말 대단한 기업가인데...."

이 분도 우상을 만나 넋이 나가버렸다.

소녀팬 마냥, 먼발치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훗. 두고 볼 수가 없군.

더 이상 영어가 두렵지 않은 이 몸이 도움이라도 줘볼까?

크게 마음먹고 나서려는 순간.

"Hey! Min!"

아이작 이스트와 킴벌리 존스 대표가 날 애타게 찾는다.

잠시 떨어졌더니 그 새를 못 참고...하, 이 놈의 인기 정말.

@

이후로 나는 두 부부의 손에 끌려다니 수많은 이들을 소개받고 대화를 나눈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영화배우. 가수. 모델. 기업가....

그 중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만남은 바로 지금 이 사람.

“영화 만드는 친군데, 혹시 알고 있으려나?”

“잘 알고 있죠!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님이시잖아요! 최고의 공포 영화 이블 포레스트부터 SF 대작 시리즈 유니버스 워 3부작을 디렉팅, 프로듀싱까지 하신...!”

영화 팬으로서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집에는 내로라하는 샐럽들이 있지만, 이 남자가 뒤늦게나마 등장한 순간 모든 관심을 독점해 버렸다.

거장이라 칭하기에는 너무 젊은 40대 초반이고, 신성이라 칭하기에는 이미 우주 명작을 몇 차례나 완성해낸 세계적인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잭슨!

“정말 팬이에요!”

유니버스 워 3부작도 명작이지만, 곧 제작이 발표될 ‘노아’ 6부작은 내 인생 명작으로, 나와 수많은 영화 팬을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로 끌어들이게 되는 계기가 된다.

노아 시리즈 너무 좋아!

“하하하. 이 친구가 정말 자네 팬인가 봐. 기분이 어때?”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은 스모 선수를 연상케 할 정도로 풍만한 덩치의 백인 남자였다.

체구는 둔해보이지만, 얼굴... 그 중에서도 특히 눈빛은 매우 날카롭다.날 가만히 살펴보던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묵묵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요정 같이 생겼군.”

“내 말이 맞지?”

“당장이라도 카메라 테스트를 해보고 싶을 정도야. 최고의 재료가 될 것 같군.”

“거 보라니까! 내가 자네에게 괜히 뮤직 비디오를 보여준 게 아니야!”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요정? 카메라 테스트?

어느 새 다가온 정연 팀장님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차기작 ‘노아’ 시리즈 배역 캐스팅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노아 6부작의 배우가 될 지도 모른다고?

그때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물었다.

“혹시 노아 읽어 봤나?”

“네? 그야 물론이죠!”

주인공 노아가 마법에 입문해 현실과 마법 세계를 지키고 중간계의 수호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대 모험 서사시.

영국에서 출판되어 지금까지 1억 부가 넘게 팔린 대작이다.

소설만 봤을까?

난 영화의 엄청난 팬이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6부작을 각각 백 번 이상은 감상했을 정도였으니.

노아 원작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가 질문을 던지고 내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주인공 노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재미있는 이야기죠.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들이 존재하는....”

“.......?”

그게 끝?

이런 눈빛으로 반문하는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에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작가님은 노아를 통해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해야 특별한 재능과 배경을 타고난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셨지만...아시잖아요. 이 분이 굉장히 오락가락하시는 거.”

“흠.”

“노아의 저자 올리비아 퀸 작가님은 원래 세계관, 시나리오 설정 같은 것을 상세히 잡고 글을 쓰는 분이 아녜요.”

“전작들도 읽어봤나 보지?”

“모두 읽어봤죠. 그래서 내린 결론이에요. 아 이 분은 그냥 손이 가는 대로 글을 쓰는 분이구나. 전 사실 노아 시리즈를 얻어 걸렸다고 보는 입장인데... 문제는 그 이야기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는 거죠.”

“얻어 걸렸다라....”

무심한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떠올랐다.

“내 생각과 비슷하군. 대화 중 설정 하나가 수차례나 바뀌었던 적도 있었어. 어떤 건 본인도 기억을 잘 못하더군.”

“그 작가님 성향으로 보면 이미 노아 시리즈는 안중에도 없을 거예요. 원래 스릴러를 좋아하던 분이니 지금 그 쪽을 건드리고 있을 것 같은데... 실제 책 5부, 6부에서 갑자기 그런 쪽으로 장르가 전환되었잖아요.”

“잘 아는 군.”

배역이고 뭐고....

어느 순간 나는 감독님과의 대화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과 함께 노아, 유니버스 워 같은 내 생에 최고의 작품을 주제로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래서 감독님이 지나가듯 이런 제안을 했을 때도.“맨해튼에 내 작업실이 있어. 한국으로 돌아가기전 시간나면 한 번 방문해보는 게 어때?”

“초대해주시면 당연히 가야죠! 그곳에 가면 유니버스 워 설정, 대본집 같은 것도 구경할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지. 그런 건 언제든 보여줄 수 있어!”

“내일 갈게요! 어차피 내일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점심시간 맞춰서 갈까요?”

“좋군. 점심과 저녁을 같이 하면 되겠어.”

그는 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이 늦었으니 난 이만 가야겠군. 내일 보지.”

그를 배웅하고 돌아오는데 정연 팀장님과 대표님이 흥분해서 아이작 이스트, 킴벌리 존스와 대화 나누는 광경이 보였다.

뭐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거야?

다가가니 대표님이 날 붙잡고 말한다.

“너 방금 노아 오디션 제안 받은 거야! 모르겠어? 이거 정말 엄청난 사건이라고!”

“... 네?”

제가요?

그게 왜 오디션 제안이야?

그냥 스튜디오에 놀러오라는 거였는데.

아이작 이스트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

“이런 답답한... 그게 바로 오디션 제안이야!”

“아...!”

“사실 그 친구가 이전부터 노아 캐릭터 중 요정 이드라실 배역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

“... 아이작, 노아를 읽어봤어요?”

“그 친구가 차기작으로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호기심에 읽어봤지.”

“아하.”

“아무튼, 자네 뮤직 비디오를 보자마자 이드라실이 떠올라서 뮤직 비디오 링크를 보냈지.”

아이작 이스트는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려줬다.

“그 친구가 오늘 파티 참여한 것도 사실은 자네를 직접 보려고 그랬던 거야. 그게 아니었으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일 생각조차 안 했겠지. 내가 아무리 빌고 사정해도 말이야.”

“아....”

놀라서 멍해 있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시원한 미소를 짓는다.

“만약 일이 잘 되면 보답하는 거 잊지 마. Don’t Touch Me! 같은 곡 하나 더 만들어주면 될 것 같군.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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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간단히 아침 식사를 끝마치고 허드슨 야드에 위치한 ‘잭슨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대화는 나중에. 잠깐 따라 와. 해야 할 게 몇 가지 있어.”

아이작 이스트의 말이 사실이었다.

나를 본인의 스튜디오로 부른 목적이 바로 오디션이었던 것이다.

사방에 카메라가 가득한 공간에서 그가 일방적인 오디션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자, 화면을 보고 한 번 웃어보자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빙글빙글 돌아보기도 하고, 다양한 표정과 그에 걸맞은 리액션을 취해 보이기도 했다.

“표정이 굉장히 다채롭군. 연기자 재능이 있어.”

“그래요?”

“눈이 크고 이목구비가 굉장히 뚜렷해서 작은 표정 변화만으로도 감정 전달이 쉬워. 이건 분명 굉장한 장점이야. 결정적으로 감정과 상관없이, 무슨 표정을 지어도 예쁘고 아름답군.”

“어....”

“신비로운 색채도 짙고... 점점 욕심이 나는데?”

그의 살벌한 미소에... 살짝 두려움이 느껴진다.

어, 으음... 설마 그 쪽 취향은 아니겠지?

“대본 리딩 한 번 해보지. 아, 그런데 영어... 괜찮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되죠.”

이정연 팀장의 도움을 받아가며 1부 시점으로 어린 요정. 이드라실의 대본을 암기한다.

‘정식 대본이네. 어떤 장면인지 잘 알겠다.’

원래는 영국 아역 배우가 맡았던 배역이었다.

외모와 연기력이 뛰어난 인재였는데, 안타깝게도 마의 16세를 넘지 못한 탓에 3부에서부터 비중이 극단적으로 줄어 들었다. 조금은 요정스러웠던 외모가 술 취한 백인 아저씨처럼 폭삭 늙어버렸으니....

“준비 됐으면 언제든지 시작해도 돼.”

그 말에 난 즉시 앞으로 나섰다.

“벌써? 괜찮겠나?”

“다 외웠어요.”

말했지만, 난 이 원작 소설과 영화의 광팬이었다.

이미 모든 캐릭터가 내 안에서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설령 떨어진다고 해도 난 안타까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감독의 눈에 들어 오디션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덕이라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어차피 내게 주어진 배역도 아니었으니 난 정말 아무 부담감도, 아쉬움도 없다.

오히려 빨리 오디션 끝내고 같이 밥 먹으며 영화 이야기나 마음껏 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분명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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