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민튜브 >
썬더볼트의 신곡 크리티컬 히트가 대한민국 가요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니 앨범에 수록된 모든 트랙이 차트의 최상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인천 공항을 빠져 나와 회사로 이동하는 승합차 안. 노래를 들으며 대표님은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와, LK 엔터테인먼트가 이번에 진짜 칼을 갈았구나. 곡들이 하나 같이 왜 이렇게 좋냐? 진짜 끝내주네.”
지금 들어봐도 명곡.
바로 이 시기부터 썬더볼트는 KPOP 탑 티어 그룹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여 돈과 인기를 쓸어 모으게 되지.
그들의 존재감은 동시기에 활동한 모든 뮤지션들을 뒤덮어 버릴 정도로 막강하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것 하나.
“민아. 네 음악이 아직도 10위권에 붙어 있다.”
“그러게요. 활동 끝내면 바로 떨어질 줄 알았는데....”
<별빛의 숲>이 7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9위.
당시 나를 압도했던 음원들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는데 난 아직도 끈질기게 붙어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네 곡이 확실히 생명력이 있는 거야.”
가수 인기의 힘입어 반짝한 곡이 아니라, 대중이 좋아해주는 곡이라서 생명력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썬더볼트 크리티컬 히트는 가수도 인기 있고, 곡도 워낙 좋아서 초대박이 난 경우다.
“메트로 보이즈도 이렇게 됐어야 했는데....”
한때는 경쟁 그룹이었던... 이제는 격차가 너무나도 벌어진 자사 그룹을 언급하는 대표님은 굉장히 씁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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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도착해서 바로 집에 가지는 않았다.
대표님의 이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정리해야 할 게 있어. 이야기 좀 하자.”
대충 떠오르는 게 몇 가지 있었다.
미국 하이스쿨 유학 문제라든가, ‘노아’ 영화 출연 문제라든가.
그런데 처음부터 꺼낸 말이 내 예상을 벗어났다.
“킴벌리 존스 대표가 너하고 해외 매니지먼트 계약 맺고 싶다네.”
“... 저하고요?”
“너 벌써 그 쪽에 두 곡이나 팔았잖아. 렛 미 댄스, 맨해튼 드리밍. 아니다. 세 곡이구나. Don’t Touch Me! 까지.”
“렛 미 댄스는 원래 있던 곡을 리메이크 한 곡이잖아요.”
“어쨌든 우리 허락을 맡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한 곡이잖아. 원작자가 너고.”
“그렇죠.”
“그러니 네가 판 곡으로 포함시켜야지. 어쨌든 킴벌리 존스 대표하고 아이작 이스트가 네 재능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는 모양이야. 오죽하면 하이스쿨 유학 제안까지 하면서 자기들이 숙식도 제공할 의향이 있다는 소리를 했을까?”
“아....”
“내가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좋은 제안이거든. 나중에 가수로서 미국 진출하는데도 용이하고. 조건도 굉장히 좋으니까 이 계약 제안은 무조건 받아들여.”
“알았어요. 저도 그게 좋을 것 같네요.”
“좋아. 그리고 두 번째, 네가 준 Don’t Touch Me! 의 주인이 정해졌어.”
“아이작 이스트가 부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본인도 욕심이 났었는데 듣다 보니 자기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이 떠올라서 기회를 주기로 했다네.”
“누군데요?”
“레이지라고. 브루클린 갱스터 출신 래퍼인데 작년 초에 데뷔해서....”
“레, 레이지요?!”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레이지라면 멈블랩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으로, 지금으로부터 2년 후인 2016년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될 미래의 랩 스타였다.
“아는 친구야?”
“네. 작년에 발매한 트랩 힙합 굉장히 감명 깊게 들었어요.”
사실 내가 알게 되는 건 멈블랩 붐이 일게 되면서 부터였지만....
“오, 그래? 일단 아이작 이스트는 갱 출신이고, 그래서 거칠지만 실력과 재능은 확실한 친구라고 하던데... 어때?”
“랩 실력은 뭐 제가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죠. 랩 스타로서의 자질은 충만해요.”
“그 정도야? 나도 한 번 들어봐야겠네. 사실 음악을 아직 못 들어봤어. 아무튼.”
대표님이 씩 웃으신다.
“Don’t Touch Me! 곡비도 최고 수준으로 맞춰줬어. 너 진짜 운 좋다. 물론 실력도 있지만... 블랙 로즈처럼 좋은 회사하고 인연 이어가는 게 결코 쉽지 않아.”
미국에서 최고 수준의 곡비라면 대략 1억 정도.
참고로 지난 번 맨해튼 드리밍도 그 정도 비용을 받았다. <시간 있어요?>리메이크 음악인 렛 미 댄스는 그보다 조금 못한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엄청났지.
“하, 진짜 부럽다.”
“뭐가요?”
“아이작 이스트 새 싱글에 네가 참여한 곡만 무려 두 곡이잖아. 그 중 하나가 성공해서 빌보드 상위권에 진입하기라도 하면... 진짜 저작권료가 엄청 들어올 거거든.”
“아...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거 알고 있어? 예전부터 미국에서 음악을 시작하는 많은 젊은 애들 꿈이 뭐냐면, 딱 한 번만 대박내고 인생 즐기면서 사는 거래. 자기가 만든 곡이 빌보드 hot 100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는 순간 대략 몇 십억 정도의 돈이 들어온다고 하니까....”
“그게 정말일까요?”
“난 모르지. 미국에 곡 팔아본 적은 있어도 내가 만든 곡이 아직 빌보드에 오른 적은 없었으니까.”
“그렇군요.”
“곡비는 오늘 입금될 거야. 중간에 수수료 같은 거 떼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세금 처리 같은 건 해줄게.”
대표님은 별 거 아닌 듯 말하지만 이게 정말 대단한 일이다.
사실 내가 미국에 가서 아이작 이스트에게 곡을 들려줄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대표님과 회사의 조력 덕분이었으니.
그럼에도 그 수익을 온전히 나에게 준다는 것이다.
“자, 그리고 세 번째. 너 하이스쿨 유학 문젠데... 내가 보기에는 바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텀을 좀 갖는 게 필요할 것 같아. 영어 공부 해야지.”
“그렇죠.”
“너 활동도 끝났고 딱히 누구 곡 안 줘도 되니... 최소한 반년은 죽었다 생각하고 그냥 영어, 음악 공부 같은 것만 해. 내가 도와주면 좋겠지만 엔 플라워에 신인 걸그룹에... 나도 좀 바쁠 것 같아서 어렵겠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부모님하고는 내가 상의해서 일정 조절 할 테니까 넌 바로 영어 학원을 끊든 과외를 하든 해. 그리고 유학 절차나 비용은 내가 알아서 진행할게. 일단 킴벌리 존스 대표하고 아이작 이스트가 숙식 제공해 준다고 했으니 네 부담은 적을 거야.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 투자가 들어갈 테고.”
“회사에서요?”
“넌 우리 회사 아티스트잖아. 아티스트 트레이닝 비용 같은 것도 다 투자 개념으로 들어가는 건데, 너도 그쪽으로 뺄 수 있어.”
“오오! 굉장하네요. 제 유학 생활을 회사에서 지원해준다니....”
“대신
“아무튼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 궁금한 거 있어? 따로 하고 싶은 말 같은 건?”
잠시 고민해보고 대답했다.
“없어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씻고 침대에 누웠다.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비행기 안에서 잠을 그렇게 많이 잤는데 피로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역시 잠은 침대 위에서 자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깨어난 시각은 아침 여덟 시.
[ 일어나! 밥 다 됐어! ]
방문을 두드리는 엄마 외침에 절로 눈이 떠졌다.
‘오늘 토요일이지?’
조금 느긋해져도 될 것 같다. 슬금슬금 자라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니.
“일어났어?”
엄마가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깊은 허기를 느끼고 식탁에 앉으며 묻는다.
“오늘 가계 안 나갈 거야?”
“너 밥 해주고 가려고.”
“아하.”
때마침 화장실에서 아버지가 나오신다.
내 옆 자리에 앉더니 무심한 듯 말씀하신다.
“너 많이 피곤했나보다? 자면서 계속 코를 골 던데...”
식사 시간에 맞춰 서연이도 제 방에서 꼬물거리며 걸어 나온다.
“잘 먹겠습니다.”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본래 사정상 이렇게 아침, 저녁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경우 낮에는 회사, 밤에는 대리 운전에 바쁘시고, 어머니는 식당을 책임지고 운영하고 계신다. 그리고 서연이는 양궁 유망주로 협회의 지원까지 받는 입장이라 메일 연습에 집중해야 하지.
그런데 이렇게 모였다는 것은 온전히 나 하나 때문이다.미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해줬다.
맨해튼 번화가를 헤집고 돌아다니다가 그것도 모자라 기어코 할렘가에 찾아간 이야기.
식당에서 마음씨 좋은 현지 친구들(사실은 갱스터였지만....)을 만나 함께 돌아다니다가 곡을 썼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아이작 이스트의 극찬을 받으며 판매한 이야기.
“그 직후 나를 무슨 거의 아들 대접을 해주더라고요. 여기저기서 돌아다니며 무슨 유명한 기업가,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 가수, 배우... 막 소개해주더라고요.”
“그랬어?”
“어우, 굉장하네.”
“사진, 사진 있어? 난 증거 안 보여주면 안 믿어!”
아들, 오빠가 미국 땅에서 크게 활약하고 왔다는 이야기에 다들 신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과의 이야기는 기밀 사항이니 제외하더라도 들려줄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다.
특히 이거.
“그래서 블랙 로즈 매니지먼트에서 나에게 몇 가지를 제안했어.”
유학에 대해서는 대표님이 부모님과 상의해서 처리하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들 된 도리로 먼저 보고하는 게 맞겠지?
그래서 하이스쿨 유학에 대한 내용을 말씀드렸다.
“이거 내가 가고 싶다고 조르는 게 아니야. 블랙 로즈와 JJ 엔터에서 먼저 제안했고, 숙식과 생활비까지 모두 지원해줄 테니 해보자고 한 거야.”
“.......”
아들의 활약상에 잔뜩 신이 났던 부모님이 당황한다.
뜬금없이 미국... 대학도 아니고 하이스쿨로 유학가고 싶다는 소리를 했으니....
가족 중 아버지가 가장 먼저 평정심을 회복하셨다.
“대표님이 직접 설명해주신다고 하셨으니.. 일단 그때 이야기를 들어보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겠구나. 넌 가고 싶은 거지?”
“응. 맨해튼의 명문 하이스쿨에서 교육 받고, 졸업하면 바로 맨해튼 음대, 줄리어드 음대 같은 명문 음악 대학교에 지원하려고요. 가능성도 충분하고.”
굳이 명문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강조한 이유는 다른 게 없다.
어린 아들을 혼자 타지에 보내야 한다는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해소시켜드리기 위해서.
“아들이 미국 명문 학교에 후원을 받으면서 다닌다는 거. 굉장히 멋진 일 아니야?”
“그건 그렇지.”
“음....”
고개를 끄덕이는 부모님.
난 일부러 서연이에게 허세를 부렸다.
“너도 나중에 미국 유학 도전해 볼 마음 있다면 지금 미리 영어 공부 열심히 해 둬. 학비, 생활비 같은 거 내가 다 해결해 줄 수 있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서연이가 그럴 마음만 있다면 얼마가 들더라도 도와줄 의향이 있다.
이전 삶에서는 천금으로도 갚지 못할 만큼 큰 신세를 졌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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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노트북과 헤드폰을 들고 카페로 이동했다.
‘뮤튜브 계정을 개설하자.’
지금도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뮤튜버에서의 활약이 굉장히 중요해지는 시대가 온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스커피 한 잔을 주문한 뒤 구석진 창가 자리에 앉는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노트북에 영상 파일을 전송하는 것.
이후 영상 프로그램을 구입하고 설치한 뒤 편집 작업을 시작한다.
첫 콘텐츠는 뉴욕 튜브!
메인 콘텐츠는 바로 할렘 여행기.
이 시기에도 한국인 뮤튜버, 그 중에서도 여행이나 일상 브이로그를 촬영해 올리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악명이 자자한 도시, 예를 들면 할렘 같은 곳을 혼자 돌아다니고 갱스터들과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이들은 아직 없다.
‘플레이 타임은 편당 10분. 총 3부작으로 구성해서 업데이트하면 되겠지.’
마음 같아서야 더 우려먹고 싶긴 한데, 그래서는 알찬 영상을 만들 수가 없다.
심호흡을 하고 편집을 시작한다.
곡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시간도 오래 걸리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십 분 짜리 영상 한 편의 편집을 끝낼 수 있었다.
BGM은 굳이 내가 만든 것을 넣기보다는 무료 음원 중 분위기에 맞는 것들을 세 개 정도 선택해서 삽입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한 번 감상해본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그 이유가....
아, 인트로!
인트로가 없네!
잠시 고민하다가 뉴욕 관광, 혹은 아이작 이스트 파티 때 찍은 사진, 영상들을 적절히 편집하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후렴구를 잘라 추가한다.
그렇게 인트로 영상 완성!
채널 이름은 내 데뷔곡을 따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은 개뿔. 그냥 민튜브로 하자.’
무엇이든 복잡한 것보다는 짧고 굵은 게 좋다.
채널을 개설한 뒤 할렘 여행기 1부를 업데이트했다.
그리고 대표님과 정연 팀장님. 가족, 친구들에게 채널 오픈 소식을 알렸다.
[ 저 뮤튜브 시작했어요! 방문해서 좋아요 구독 추천 부탁해요! ]
내 공식 SNS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건 회사에서 관리하고 운영해주는 곳이다.
엄밀히 따지면 나만의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이 민튜브는 다르지!
내가 개설했고, 내가 직접 만든 영상을 올리는 개인 공간이다.
그래서 기대감에 두근거린다.
채널을 방문한 사람들은 내 영상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그 날은 뮤튜브 채널이 신경 쓰여 하루 종일 다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