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의혹, 시기, 질투 >
[ 할렘도 많이 변했군요. 저 2004년에 갔을 때는 진짜 위헌했었는데, 차타고 가면 애들이 몰려와서 강제로 차 세우고.... ]
[ 저도 뉴욕에 살아서 가끔 할렘에 갈 때가 있는데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창 진행 중이라 예전만큼 위험하지는 않죠. 오히려 브롱스 지역이 수백 배는 위험함. ]
[ 나아졌다고는 해도 상점가 외벽이 죄다 강화유리로 되어 있고 어떤 곳은 철창도 처져 있고...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지역은 아니네요. 그런데 혼자 영상 촬영까지...용자네요. ]
[ 진짜 깡 좋다. ]
[ 두 번째 영상 언제 올라오나요? 기대되네요. ]
하룻밤 사이에 댓글만 수백 개가 달렸다.
조회 수도 수십만 대.
휴대전화 부재 중 메시지 숫자도 세 자리를 넘었다.
회사, 학교 친구들, 문 라이트 애들과 레드 스켈레톤 멤버들까지.
모두 왜 그런 위험 지역에 겁도 없이 혼자 찾아갔냐며 걱정해주는 한 편, 영상 잘 찍었다고... 정말 잘 봤다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뿌듯하다.
사실 이전 삶에서 처음 뮤튜브를 시작했을 때는 한동안 댓글 수 10개 넘기기도 힘들었다. 조회 수도 많아야 몇 천 수준이었는데....
물론 그때는 사정상 얼굴도 드러내지 못했고 당연히 아이돌 출신 명함도 사용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어떻게든 뮤튜브로 흥해보겠다며 일 년을 하루에 한 편씩 영상을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야 구독자 5만을 정말 힘들게 달성했었지.
그런데....
'하루 만에 구독자가 2만 명이네.'
뭔가 허탈한 기분도 든다.
얼굴과 프로필을 드러낸 채 활동하는 게 이렇게까지 차이가 컸다니.....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욕먹을 거 각오하고 내 마음대로 살걸 그랬어.'
아무튼.
'민튜브는 순항 시작. 기분 좋구먼.'
1차 목표는 10만 명을 달성하는 것.
음, 미리 미리 할렘 여행기 3부작 이후의 콘텐츠를 기획해 둘 필요가 있겠군.
오늘은 일요일.
백팩을 매고 전자 상가로 출발했다.
당분간 주요 콘텐츠가 일상, 여행, 맛집 브이로그가 될 것 같으니 휴대폰보다는 가볍게 운용 가능한 액션 캠이 좋겠지?
구입한 물건을 자주 가는 카페로 가지고 들어가 언박싱 영상을 촬영했다. 그리고 기종을 변경해서 액션 캠을 책상 한편에 고정시켜두고, 백팩에서 영어 교제를 꺼내 공부를 시작했다.
점심 식사까지 시간이 좀 많이 남아서....
무려 두 시간을 몰입해서 공부하다 보니 슬슬 배가 출출해진다.
아무리 그래도 혼밥은 좀 싫은데...
그래서 최명중에게 전화했다.
"주말인데 뭐해?"
[ 미디 공부. ]
"나와라. 밥이나 같이 먹자. 마침 할 말도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명중이 카페에 등장.
"그건 뭐하는 거야?"
"액션 캠이라고, 휴대성이 좋아서 마련했어."
"그걸로 뮤튜브 촬영하는 거야?"
"어. 야. 너도 뮤튜브나 한 번 해 봐라. 가볍게 브이로그 영상 같은 거 시작해 봐. 내가 도와줄게."
"하면 도움 되는 게 있나?"
"있지. 구독자가 많이 모이면 돈도 벌 수 있고."
공부 밖에 모르는 가엾은 비 문명인 친구를 위해 뮤튜브 수익 메커니즘, 그리고 전망에 대해 역설했다.
"그래? 듣고 보니 흥미가 가는데...."
"가볍게 시작해 봐. 그리고 그거 하면서 네가 만든 습작이나 카피 같은 거 촬영해서 올려도 되지."
"그렇군. 그러면 나도 한 번 해볼까?"
"해 봐. 너도 잘만하면 대기업 뮤튜버가 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
"그래?"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한 명의 어린양을 뮤튜브의 길로 끌어들였다.
@
JJ 엔터테인먼트와 뮤직 넷이 함께 진행하는 걸 그룹 서바이벌 프로젝트, 텐 믹스가 본격화 됐다.
외부에 티저 이미지와 영상이 뿌려졌고, 녹화, 방송 일정이 공지됐다.
이에 따라 사내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회사 작업실, 모니터 화면을 보고 씩씩 대던 강민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어디론가로 이동하는데 그 장소가 바로 신인 개발팀이었다.
"팀장님 저하고 대화 좀 해요!"
대화는 카페테리아 창가자리에서 이뤄졌다.
강민철은 눈에서 불을 뿜어낼 기세로 따졌다.
"저 방금 공문 확인했어요. 신인 걸 그룹을 무슨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뽑는다면서요?"
"네. 그런데요?"
"그 중요한 사실을 제가 왜 공문으로 확인해야 하는 거죠?"
".......?"
따지고 싶은 게 대체 뭐야?
영문을 몰라 하는 얼굴에 강민철은 부아가 치밀었다.
"저도 jj 엔터테인먼트 전속 프로듀서잖아요. 맞죠?"
"맞죠."
"그런데 저는 방금 공문으로 그 사실을 알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공문 내용 보니 저보다 한참 늦게 들어온... 심지어 나이도 어린 김민이가 프로듀서로서 참가한다고 되어 있더라고요."
"아...."
"프로듀서 대접이 왜 이런 거죠? 누구는 미리 알고 심지어 프로젝트에 참가까지 하는데 저는 아무 이야기도 전달 받지 못한 상태에서 방금 공문으로 알게 됐고....."
신인개발팀장은 혼자 열을 내서 따지고 드는 강민철 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민철 씨가 왜 그런 걸 신경 써요? 이번 프로젝트하고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관련이 없어요? 저도 프로듀선데!"
"민철 씨 외에 다른 프로듀서 중에서도 오늘 공문으로 이 사실 처음 접한 분들이 많아요. 그 분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왜 민철 씨만 그래요?"
"......."
"김민 프로듀서가 합류하는 거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이건 어쩔 수 없어요. 신인 걸 그룹의 핵심이 될 멤버를 데려오기도 했고 이미 곡도 썼어요. 그리고...."
"네? 곡이라뇨? 벌써 신인 걸 그룹 데뷔곡이 정해졌어요? 그걸 그 김민이가 썼고요?"
그 순간. 신인 개발팀장의 얼굴에 표정에 사라졌다.
움찔하는 강민철에게 신임 개발팀장이 나지막이 경고한다.
"민철 씨, 혹시 김민 프로듀서하고 친해요?"
"그건 왜...?"
"친해요?"
"아, 아니요."
"그러면 자꾸 반말하지 좀 마세요. 신인이고, 나이도 어리지만 민철 씨와 같은 프로듀서고 또 가수예요. 존중합시다. 네?"
"......."
자존심이 상했던 강민철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내심을 꿰뚫어 본 신인 개발팀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리고 이게 결정적인데, 뮤직 넷 cp님을 비롯한 이번 프로젝트 제작진이 김민 프로듀서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해요. 왜내면 이번 서바이벌 프로그램 기획 전체를 본인이 나서서 재설계 해버렸거든요."
분한 와중에도 말뜻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던 강민철이 의문을 내뱉앴다.
"그게... 무슨 말이죠?"
"이게 원래 굉장히 잔혹한 승강제 방식이었는데, 문제점을 막 지적하면서 훨씬 나은 방식을 제안했다는 뜻이에요. 그걸 뮤직 넷 중진들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채택했다는 이야기고."
"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저, 저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당연히...."
"그러면 지금 자리 마련해 드릴 테니 지금 기획 캔슬시키고 더 좋은 기획 제안해서 오케이 사인 받아 볼래요?"
"......."
"아시죠? 뮤직 넷 중진들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라는 거. 그 사람들을 설득하고 기획력으로 납득시키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요?"
"......."
"저도 자신 없는 걸 그 어린 김민 프로듀서가 해낸 거예요. 키포인트로 최대한 활용하자는 제안도 방송국 쪽에서 한 거예요. 우리가 억지로 밀어붙인 게 아니라. 아시겠어요?"
홀로 남겨진 강민철은 분노와 열등감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팀장 회의가 열렸다.
신인 개발팀장을 비롯한 팀장들이 피곤한 얼굴로 들어와 착석했다.
마지막에 들어온 장진영의 얼굴 표정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팀장들의 표정을 확인한 장진영이 물었다.
"텐 믹스 프로젝트 발표 이후 사방에서 문의가 많이 들어오죠?"
여기저기서 한숨이 새어 나온다.
"특히 신인 개발 팀장 표정이 제일 안 좋은데... 좀 어때요?"
"말도 마십쇼. 죽을 맛입니다."
"누가 제일 난리에요?"
"연습생 부모님들이죠. 왜 우리 애는 그 서바이벌에 참여 못하냐. 돈이 필요하면 말을 해라. 데뷔조 애들에게 대체 얼마나 받아 처먹었기에 그러냐. 우리 애 연습생 안 시키겠다. 등등."
쏟아져 나오는 말에 모두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자신들이 겪는 고충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데뷔조 학부모들은 조용해요?"
"그럴 리가 있나요. 한 번 만나자. 만나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 애 이번에 안 뽑아주면 다른 회사로 옮길 거다 등등... 회유와 협박이 굉장하죠."
"그 외에 또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잠깐 망설이든 그가 심각한 얼굴로 묻는다.
"이번 일을 미리 공유 받지 못했던 전속 프로듀서, 작곡, 작사들이 굉장히 서운해 하는 것 같더군요."
"어떤 식으로요?"
"왜 자기들이 공문으로 알아야 하냐. 그리고 뭐...."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신인 개발팀장을 대신해, 장진영이 대신 입을 열었다.
"주로 민이하고 관련된 내용이겠죠. 왜 김민만 밀어 주냐. 차별 대우 하는 거냐. 이런 식으로... 맞죠?"
"네. 뭐... 그렇죠."
장진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도 방금 전까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왔기 때문이었다.
"매트로 보이즈 애들이 특히 난리더라고요. 왜 김민만 밀어주고 챙겨 주냐부터... 정말 온갖 소리를 다하더라고요. 어지간히도 섭섭했나 보더라고요."
심지어 사무실까지 찾아와서 항의를 하더랬다.
김민이 국내와 미국에서 이뤄낸 성과들을, 본연의 실력 보다는 회사의 적극적인 푸시 덕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케팅 팀장도 한 마디 했다.
"외부에서도 사실 비슷한 문의가 많아요. 대체 김민을 이렇게까지 밀어주는 이유가 뭐냐며.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거죠. 매니저들은 본인들이 상대적으로 덜 지원을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절 찾아와서 하소연을 하더군요."
"심지어 이번에 시작한 개인 뮤튜브 채널. 그거 그냥 본인이 채널 개설하고 영상 촬영한 뒤 편집해서 올리는 거잖아요. 회사에서 아무런 지원도 안 해줬는데 그것도 회사에서 김민 만 챙겨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내부에서부터 시기 질투와 각종 의혹이 휘몰아치는 상황이다.이런 분위기가 외부로 퍼지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테면 메트로 보이즈의 강력한 팬덤이 김민을 적대시한다던가.
그 전에 오해를 수습해야 한다.
장진영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해명한다고 들어 줄 지나 모르겠네요."
회사 입장에서 김민은 복덩이나 다름없다.
계약한 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시간 동안 해준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장진영에게 제 2의 전성기를 만들어줬고, 미국 진출로를 개척했으며 엔 플라워와 현재 준비 중인 신입 걸 그룹에게 엄청난 가능성을 열어줬다.
문제는 질투에 눈이 돌아간 사람들이 이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다.
김민은 이제 17세의 고등학교 1학년 소년이 아닌가?
장진영은 이번 이슈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중이었다ㅓ.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 만으로도 이 정도라면....'
지금 모여 있는 팀장들에게조차 공유하지 않은... 더 엄청난 이슈가 밝혀진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연출할 판타지 블록버스터 '노아' 시리즈에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 된 것.
블랙 로즈 매니지먼트의 제안으로 이뤄진 전속 계약 건.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투자하고 있는 신인 아티스트, 레이지에게 곡을 준 것.
알려지는 순간 대한민국이 뒤집힐 일들이다.
'그리고 회사도 뒤집히겠지. 안 좋은 의미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래는 블랙 로즈와 잭슨 스튜디오 측에서 사실을 공개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으려고 했는데....'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팀장들에게는 미리 공유해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
결심을 끝낸 장진영이 입을 열었다.
"사실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할 사실 몇 가지가 있어요. 같이 미국에 출장 갔던 정연 팀장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
이어지는 이야기.
팀장들은 벌어지는 입과 경악으로 물드는 얼굴 표정을 수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