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81화 (81/205)

< 81화. 조언하다 >

[ Manhattan Dreaming 빌보드 hot 100 차트 12위! ]

[ <시간 있어요?> 리메이크 곡 let me dance도 82위로 차트 진입. ]

아이작 이스트의 빌보드 메인 차트 등반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사실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인 그에게도 hot 100 차트 상위권 진입은 굉장히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이란다.

1위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번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이니 순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피처링, 리메이크 음원 발매를 준비 중이란다.

공연, TV, 라디오 방송 등의 출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작 이스트 측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천재 소년과의 동반 출연을 원하는 곳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허어...!”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미국에 가야 합니다. 준비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미국 미디어에 출연을 하게 생겼다는 것!

심지어 아이작 이스트가 내 피처링 버전으로 음원 추가 발매를 제안했단다.

“그런데 제 이름값은 크게 도움이 안 될 텐데, 왜 그런 제안을 한 걸까요?”

“제 생각이지만, 이번 인기를 계기로 김민 군의 미국 진출로를 열어주려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블랙 로즈가 김민 군의 현지 매니지먼트 아니겠습니까? 미리 미리 빌드업을 해두려는 거죠.”

“그렇군요.”

“도착했습니다.”

차가 청담동에 위치한 한우전문점 앞에 멈춰 섰다.

이곳이 바로 찬민, 대표님과의 약속 장소였다.

“끝날 때쯤 연락 주면 다시 데리러 오겠습니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바쁜 시간 쪼개서 날 챙겨주려는 최명규 매니저님께 고개 숙여 인사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점원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별실이었다.

“아, 왔어?”

“.......”

먼저 도착한 대표님과 찬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일어서서 날 맞아주는 찬민의 표정이 굉장히 어색해 보인다. 반면 딱히 거리낄 게 없었던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넸다.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팬이었고 정말 우상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니 정말 기쁘고 신기하네요.”

“.......”

“.......”

찬민은 그렇다 쳐도 대표님 표정까지 덩달아 어색해진다.

왜 그러지?

자리에 앉자마자 반찬과 음식이 나온다.

오늘 메뉴는 한우 풀코스!

찬민이 내는 거라니, 허리 띠 풀고 마음껏 먹을 생각이다.

미성년자라 술은 마시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쉬울 뿐이다. 나름 애주가를 자처하는 편이라.

그런데 열심히 집어 먹는 건 나와 대표님 뿐.

찬민은 뭐가 그리 불편하고 어색한지 혼자 그냥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다. 마땅히 시선 둘 곳도 찾지 못하고 있고.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달아나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난 이 맛있는 것을 두고 빨리 끝낼 생각이 없었기에 한 마디했다.

“맛있는데 왜 안 드세요? 선배님도 빨리 드세요. 여기 고기 진짜 좋네요!”

“아, 네....”

풀코스가 맛있고 다 좋은데 양이 조금 적었다.

그래서 찬민에게 물었다.

“양이 모자라서 그러는데, 풀 코스 한 판 더 시켜도 될까요?”

“... 얼마든지 시켜 드세요.”

식사를 마치고 입가심으로 준 식혜까지 모두 비우고 나서야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저, 사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몇 가지 있는데....”

머뭇거리는 찬민.

대표님은 관망자 포지션을 취할 뿐, 참견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왠지 거슬려서 한 마디 했다.

“대표님은 대체 왜 따라 나오신 거예요?”

“뭐? 나?”

“네. 대표님이요. 설마 찬민 선배님이 한우 사준다니까 그거 먹고 싶어서...?”

“야! 너 나를 뭘로 보고....”

대표님이 억울하고 당황한 얼굴로 항변한다.

“내가 명색이 너희들 대표야! 아무리 한우가 좋다고 해도 겨우 고기 때문에 체면 집어 던지고 그럴 것 같아? 너희 중재해주러 나온 거잖아!”

“딱히 하는 것이 없이 고기만 축내셨잖아요.”

“아하, 너 지금 내가 고기 많이 먹은 게 티꺼우니까 면박 주는 거지? 맞지?”

사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시비를 건 게 아니다.

찬민이 답답하게 말을 못하고 있으니, 슬슬 고기 값 좀 하라고 눈치를 주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대표님은 눈치가 빠른 분이다.

“야. 네가 답답하게 구니까 저 녀석이 날 갈구잖아. 그냥 남자답게 할 말 하고 깔끔하게 끝내자.”

“... 네.”

이런 상황이니 찬민도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일단 사과부터 할게요.”

“사과요?”

“SNS 저격 사건이이요.”

“.......”

“악플러 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김민 군을 저격한 게 정말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 의도와 다르게 김민 군이 휘말려서 피해를 입었으니....”

하, 저 성격 어디 안 가는구나.

끝까지 변명이다.

사실 누가 봐도 그 저격 대상은 나였다.

사람들도 그걸 한 눈에 눈치 챘으니 날 거론하면서 그의 속 좁은 언행을 비난했던 거였다.

대표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방관자 모드를 해제하고 적극 참견을 시작했다.

“야, 그게 아니잖아. 너 내가 제대로 사과하라고 말 했어 안 했어?”

“네? 그, 그래서 지금 사과하고 있는데....”

“그게 무슨 제대로 사과하는 거야! 그냥 변명이지. 너 김민 저격한 거 맞잖아. 다 아는 사실을 왜 눈 가리고 아웅이야? 넌 김민이 바보로 보이니? 어린 애한테 고개 숙이려니 자존심이 상해서 그래?”

“.......!”

입을 꽉 깨무는 찬민.

“사과 똑바로 해.”

단호하게 말하고 팔짱을 끼는 대표님.

“........”

찬민은 다시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자존심 때문에 이 이상은 무리였던 모양이다.

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대표님 얼굴 봐서 어쩔 수 없이 나오긴 했는데, 저도 기분은 썩 좋지 않아요. 난 처음부터 계속 가만히 있었는데 난데없이 뒤통수 맞고, 논란에 휘말리고....”

그리고 흘끔 대표님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얌전히 사과 받기를 강요당하고 있네요.

“야. 그건....”

변명하시려던 대표님이 끙 한숨을 내쉰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선배님, 지금 저 뿐만 아니라 대표님한테도 크게 실수하신 거예요. 괜히 도와주겠다고 나섰다가 이게 뭐예요? 저한테 면박만 받았잖아요.”

찬민이 입술을 꽉 깨문다.

“기회가 항상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 명심하세요.”

더 이상 말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고, 대표님도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찬민만 혼자서 안절부절, 표정이 수시로 바뀐다.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일인 걸까?

자기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고, 다시 그런 일 없을 거라고 약속하는 것이?

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했다.

이런 자리, 나도 불편하고 싫다.

찬민은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저 녀석은 쓸데없는 자존심과 오기가 가득한 놈이라.

대표님을 바라보고 말을 꺼내려는 찰나.

“미안해요.”

떨리는 음성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다 인정해요. 김민 군을 저격한 게 맞아요.”

그는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열등감 때문에 그랬어요. 나는 못하는 걸 김민 군은 너무 쉽게 해버리니까... 다 제가 속이 좁아서 그런 거예요. 미안해요.”

찬민이 또 한 번 내 예상을 깼다.

설마 진짜로 사과를 할 줄이야.

한편 대표님은 어지간히도 애가 탔던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인간도 제자라고, 자기 아티스트라고 챙겨주려는 내심이 존경스럽다.

찬민 이상으로 날 애절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대표님에게 받은 것이 굉장히 컸으니까.

앞으로 받아야 할 것도 많기도 하고 말이지.

찬민이 용기를 냈기 때문이 아니라, 대표님 때문에 용서하는 거다.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도록 해주세요.”

이후로 일 이야기를 했다.

“샘플링이 될지, 래퍼런스로 잡고 창작을 하게 될지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어요. 일단은 양쪽 모두 일을 진행해보고 나은 결과물을 선택하려고 해요.”

또 하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찬민이 음악에 대해 내 생각 이상으로 진지하고 열정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작업해 둔 곡이 하나 있는데... 들려드려도 될까요?”

“네. 뭐....”

이미 대표님을 통해 듣긴 했지만 모르는 척했다.

음악 재생이 끝나자 녀석이 솔직하게 물어온다.

“어떻게 들으셨어요?”

표정과 음성에 기대감이 담겨 있다.

칭찬이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걸까?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 새끼들이 좋고 싫고를 떠나.

어쨌든 내 음악을 베이스로 곡을 만든다는데 이대로 개판 치게 놔둘 수는 없다.

“일단, 대표님이 공들여 맞춰놓은 악기 소스를 이상하게 바꿔놔서 밸런스가 모두 무너졌어요. 아니, EDM, 그것도 하우스 음악에나 쓸법한 드럼을 왜 가져다 놓은 거예요? 밸런스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

충격 받은 얼굴.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댄스 브레이크는... 하, 그냥 이럴 거면 좋은 샘플 따와서 샘플링하시지 굳이 어설프게 만들어서 곡을 무슨 잡탕으로 만들어놨잖아요.”

“그, 그건 요즘 트렌드에 맞게....”

“아무리 요즘 트렌드가 곡 하나에 두 세 개의 장르를 때려 박는거라고 해도 최소한의 흐름 정도는 지켜야죠. 그냥 무지성으로 이것저것 섞어 넣는다고 맛있는 퓨전 음식이 되는 게 아니에요. 밸런스, 조화! 이런 거 안 배우셨어요?”

“어어....”

“안 배웠겠죠. 어설프게 미디만 가지고 독학하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저도 독학이지만 인증 받은 교본 자료들 찾아가면서 제대로 공부를 했단 말이에요. 혹시 파형과 주파수 개념은 떼셨어요?”

“어어....”

“화성학 잘 아세요? 지금 여기에 EDM, 록, 팝, 클래식, 총 네 가지 장르를 섞었는데, 이 장르들 제대로 다룰 줄 아세요? 판매 가능한 수준의 곡 만들 수 있어요?”

“그건....”

“장르에 대해 기본 지식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죠. 그래야 여러 장르를 일정한 흐름으로 엮어서 하나의 곡으로 완성할 수 있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고급 기술인지 잘 모르시죠?”

찬민은 완전히 기가 죽었다.

반면 대표님은 굉장히 뿌듯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찬민의 옆구리를 툭 치며 한 마디 하신다.

“새겨 들어. 지금 빌보드 핫백 차트 상위권에 오른 천재 프로듀서가 강의해주고 있는 거잖아. 이게 얼마나 소중한 기횐지 알아?”

이 양반은 갑자기 또 왜 이래?

난 한숨 쉬며 말했다.

“일단 뭘 어떻게 하고 싶은 지부터 명확히 정하세요. 컨셉, 음악 장르, 메시지 같은 것들. 이것도 없이 무작정 곡부터 만들면 죽도 밥도 안 돼요.”

몇 가지 팁을 알려주고 나니 목이 아팠다.

원래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 자식, 어느 순간 내 말을 굉장히 경청하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목을 좀 축인 뒤 말을 끝맺기로 했다.

아마도 이것이 내 마지막 조언이 될 것이다.

“이 바닥에서 음악으로 롱런하고 싶다면 계속 미친 듯이 트렌드 연구하며 음악 공부 하세요. 그거 멈추는 순간이 바로 뮤지션 수명이 다하는 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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