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떡밥 투척 >
제이미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로 메시지를 보냈다.
[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 김민입니다. 미국 진출 문제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통화 가능한 시간대에 언제든 전화 부탁드립니다. ]
제이미는 현 시점에 이미 KM 내부에서도 입지가 굉장하다. 대형 기획사 특유의 강력한 통제가 가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케어라면 몰라도.
‘바로 앞에서 나와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못했지.’
그녀 한 명이 국내 최고의 대형 기획사인 KM에 가져다주는 이익은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그 정도 되니 김만수 회장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거지.
[ 웅웅웅! ]
금방 연락이 왔다.
[ 이렇게 금방 연락이 올 줄은 몰랐어요! ]
들뜬 어조.
그녀 본인도 나와의 작업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사실, 프로듀싱 의뢰 수락 여부를 회장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은 상태에요. 그 전에 따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전화를 드린 거예요.”
[ 아.... ]
그녀는 단 번에 의도를 눈치 챘다.
[ 저 프로듀싱 안 해 주실 거예요? ]
장미처럼 화려한 얼굴이 울상 짓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이 같은 순수한 모습에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 문제 때문에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회장님 앞에서는 곤란한 내용이거든요.”
[ 그러면 직접 만날까요? 제가 고기 사줄게요! 소고기 진짜 맛있게 하는 곳 알아요! ]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데뷔 10년차가 된 그녀는 아직도 아이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천성도 있지만... 실은 미성년자 시절부터 톱 아이돌로 자란 탓에 제대로 된 사회 활동을 못한 탓이 크다.
사실 그래서 더 놀랍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케이스라면 대부분은 싸가지를 상실한 오만방자한 인격 파탄자가 되니까.
그리고 이것이 내가 그녀를 김만수 회장으로부터 빼앗아 오려는 이유였다.
인성이 굉장히 좋거든!
난 점잖게 말했다.
“고기 보다는 비밀스럽게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장소라면 좋을 것 같네요. 제가 장소를 예약해서 알려드릴 테니 믿을 수 있는 분만 대동해서 와주세요.”
[ 네! 그럴게요! ]
한 치의 의구심이나 망설임 따위 없이 대답하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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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밀스런 만남 장소로 선택한 장소는 바로 엄마의 식당이었다.
저녁 시간부터 통째로 비워 가게를 대절하기로 했다.
주방에서는 어머니가 열심히 식사를 준비 중이시다. 대접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음식 취향이나 유의점 등을 미리 전화로 알아 놨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한, 키 작은 여성이 혼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가게를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혼자 식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반가운 듯 다가왔다.
“여기가 김민 군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에요?”
“맞아요. 어머니는 지금 주방에 계세요.”
“어? 그래요? 인사 드려야겠다!”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쪼르르 주방으로 달려간 그녀가 밝고 힘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가수 제이미예요!”
“반가워요! 조금 기다리면 제이미 양이 좋아하는 김치찌개하고 계란 반찬 맛있게 만들어 줄게요!”
“감사합니다!”
인사성도 밝지.
그녀가 점점 더 마음에 든다.
저런 밝고 선한 에너지는 꾸며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성과 좋은 가정교육이 더해져야 나올 수 있는 성격이다.
맞은편에 앉은 그녀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해맑게 웃었다.
“저 사실 중식, 양식 같은 거 보다는 이런 한식을 더 좋아해요. 왜냐면 우리 엄마도 LA 한인 타운에서 순두부찌개 전문점을 하셨는데....”
묻지도 않은데 가정사를 술술 이야기하는 그녀.
그나저나 LA 순두부찌개 전문점이라면...혹시 거기 말하는 건가?
LA를 방문한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들려야 한다는 최고인 식당 맛집! 한국보다 맛있는 순두부찌개와 한식이 있다는 바로 그...?
의문을 확인 하려는 찰나.
“자, 음식 나왔어요!”
어머니가 음식을 가져 오셨다!
얼큰한 왕소금 김치찌개와 각종 계란 반찬!
“우와! 소시지 볶음이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한식이 가득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거 싫어하는 한국인 없잖아?
있으면 그게 한국인이야?
“맛있게 먹겠습니다!”
“엄마 잘 먹을게.”
식사를 마친 후 비로소 대화를 시작했다.
“저는 팬으로서 선배님의 미국 진출을 결사반대하는 입장이에요.”
“네? 어째서요?!”
“선배님 앞에 펼쳐진 가시밭길이 뻔히 보이니까요."
그녀가 울상을 짓는다.
“저 미국에서 안 먹힐 것 같다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대표님에게 들었던 사업적인 이유를 간략히 설명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전망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죠."
“우와, 진짜 똑똑하다, 김민 군은 나이도 저보다 어린데 그런 어려운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저도 야망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이 정도 사항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죠.”
사실 대표님에게 주워들은 내용을 그대로 흘린 것뿐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제이미는 나란 사람을 또 한 번 다시 봤다는 표정을 보낸다.
거기에 더해 나만의 몇 가지 추가적인 이유를 말했다.
“그 자리에서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지만, 저 곧 맨해튼 하이 스쿨로 유학 가요. 대학도 거기서 다닐 예정이고요.”
“아....”
“제 일생에 몇 안 될, 가장 정신없을 시간이 될 것이 분명하잖아요. 그러니 프로듀싱을 못할 수밖에 없죠.”
“그렇구나. 확실히 이해했어요! 그러면 제가 싫거나, 부족하게 느껴져서 거절하려는 건 아니죠?”
“절대 아니죠. 제이미 선배님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특히 저 같은 프로듀서라면 선배님을 싫어할 수가 없어요!"
“정말이에요?"
“물론이죠. 제이미 선배님은 인성, 춤, 노래, 외모...모든 것이 완벽해요.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보물 같은 아티스트라고요!”
“그, 그래요? 정확히 어떤 점 때문에 그런 걸까요? 전 도무지 모르겠는데....”
내심 칭찬이 더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혓바닥 부스트 온!
"일단 제이미 선배님은 이목구비가 굉장히 뚜렷하고 피부가 우유처럼 새하얘서 동. 서양 모두에게 매력 어필이 가능한 미인이죠! 선배님 웃는 모습을 보면 귀여움에 몸부림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 그런가요?"
"듣기 좋은 미성을 타고 난데다, 아이돌 시절부터 다양한 장르에 대한 훈련이 잘 된 덕 소화 가능한 보컬과 댄스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죠. 아마 어떤 장르를 시켜도 평균 이상을 해내실 거예요."
"음, 그 부분은 조금 자신 없는데...."
"충분히 가능해요. 제 눈에는 똑똑히 보여요!"
"우와...!"
화색을 띠던 그녀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급속도로 시무룩해진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거죠?"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이에요."
"제가 맨해튼 드리밍 같은 음악을 불러도요?"
"그건 아이작 이스트가 불렀고 블랙 로즈가 매니지먼트 해준 덕분에 뜬 거예요. KM 미국 법인 소속의 선배님이 가서 부른다면... 아무래도 상황이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
시무룩한 얼굴.
한껏 기가 죽은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게 있어요."
".......?"
"선배님은 아무 문제없어요. 타고난 클래스가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분명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겠죠. 문제는 그 기간 동안 미국에만 올인할 수 있느냐. KM은 어디까지 이걸 감당할 수 있느냐."
"아...."
"전 사실 지금이라도 가능하면 말리고 싶은데... 힘들겠죠?"
"네. 이미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니까요. 무엇보다도...."
그녀가 차마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내가 건드렸다.
"회장님이 말린다고 들을 분이 아니죠. 미국 진출이야 말로 평생의 꿈이었으니까요. 맞죠?"
"하아."
그녀는 수긍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
분위기가 굉장히 무거워졌다.
이쯤에서 조금 환기시켜 볼까?
"선배님 미국 진출해서 활동할 시기 되면 저도 미국에 있을 거예요."
"맞다! 맨해튼에서 하이스쿨 다닐 예정이라고 했었죠?"
"네. 그런데 혼자 미국에서 활동하다 보면 외롭고 지칠 때가 많을 거예요. 그럴 때 저에게 연락주세요. 제가 힘이 되어 드릴 테니까요."
"정말요?"
"물론이죠. 그때가 아니라도 언제든 연락 주세요."
난 방긋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이 부르면 바로 달려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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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과의 만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며 제이미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했던 말 중 어느 것 하나 잘못된 것이 없어. 지극히 상식적이야."
그녀는 순수하지만 절대 바보가 아니다.
그랬다면 험한 연예계에서 톱스타가 되지 못했겠지.
'정말 날 생각해서 해 준 조언이야. 누구도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은 없었어.'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난 17살 때 뭐하고 있었지?'
아이돌로 데뷔해서 5년 동안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전역을 누비며 그룹 활동을 했다.
스물한 살 때는 재계약을 했고, 싱글을 발매해서 개인 활동에 매진했다.
스위트 데이 일부 멤버의 재계약 불발로, 당분간은 모이기 어려워졌지만 그렇다고 팀이 해체된 건 아니다. 친분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진출 문제에 대해서도 다들 걱정과 격려를 해주긴 했지만... 이렇게 상세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짚어주지는 못했지.'
다들 똑똑하고, 영리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조차도 모르는 것을, 자신들보다 한참 어린 김민은 냉정히 계산하고 있었다.
'음악에 대한 재능만 뛰어난 게 아니야. 굉장히 어른스럽고, 의젓하고, 무엇보다도 생각이 깊어.'
아무래도 자신이 굉장한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된 것 같았다.
'김민이 날 프로듀싱 해주면 참 좋을 텐데....'
다음 날.
김만수 회장이 어두운 얼굴로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
"김민 그 친구가 네 프로듀싱을 해주지 않겠다는 구나."
"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 이유까지 굉장히 상세히 전해 들었지만 모르는 척 경청했다.
김만수 회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 마디 했다.
"일정이 도저히 안 된다느니... 이래저래 변명을 늘어 놓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리를 경계해서 거절한 게 분명해.
"우리를 경계한다고요?"
"네 미국 진출이 성공하면 필연적으로 회사 역시 크게 성장할 테니 적의 몸집을 불려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을 내린 거겠지."
"........"
"이건 장진영 대표의 결정일 거야. 그 친구가 아직 젊어서 그런 지 생각이 짧아. 성급해. 우릴 경계할 것이 아니라 같이 협력해서 미국 진출 활로를 뚫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어.
"........"
"그 친구는 프로듀서로서 재능은 확실히 뛰어나지만 가수로서는 분명 한계가 있어. 정말 아쉽군. 장진영이 아니라 나에게 왔다면 그 능력을 제대로 키워줄 수 있었을 텐데...."
김만수 회장은 은연 중 말하고 있었다.
김민과 필요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회장님은 아직도 날 통제하려 하고 있어.'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자신은 더 이상 품 안에 가둬둘 수 있는 어린 여자애가 아니니까.
'김민도 이걸 예측하고 비밀리에 자리를 마련해서 사정을 설명해 준 거야.'
그 만남이 없었다면, 분명 조금은 오해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민의 진가를 평생 모르고 살았겠지.
김만수 회장이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기존 계획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겠구나. 조만간 미국으로 건너가야 하니 준비해. 나도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네."
제이미는 끝까지 속마음을 감춘 채 김만수 회장의 집무실에서 벗어났다.
@
[ 저 미국 출국일 정해졌어요. 생각보다 일찍 떠나게 됐는데,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어머니 요리를 맛볼 수 있을까요? ]
제이미의 메시지였다.
두달 후 출국이라.
김만수 회장이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싶은데....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답변했다.
[ 그 자리에 제 친구들을 초대해도 될까요? 다들 선배님 열혈 팬이에요. 문 라이트라는 팀으로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인데.... ]
[ 아! 뮤튜브 영상에서 봤어요! 병원에서 자선 공연 같이 했던 친구들이죠? 다들 정말 귀엽고 예쁘던데... 저도 만나보고 싶어요! ]
이 사실을 즉각 아이들에게 전했다.
[ 지희 : 정말? 정말 그때 제이미 선배님과 같이 식사도 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거야?! 아싸! >_<) ]
[ 세아 : 우리 제이미 선배님 영상 보면서 노래 춤 연습 많이 했었지? 정말 존경하는 분인데... 기대된다. ^^ ]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것을 그대로 캡쳐해서 제이미에게 전송했다
[ 제이미 : 좋아해줘서 다행이에요! 선물을 준비해야겠어요! ]
됐다!
이 기회에 아예 우리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만들어 버리자.
그러면 훗날 내 아티스트로 만드는데 더 도움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