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84화 (84/205)

< 84화. 늑대와 여우와 양 >

이번에도 역시 약속 장소는 우리 엄마 가게였다.

명중이를 포함한 문 라이트 모든 멤버는 일찌감치 모여 파티를 준비했다.

“아니, 거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세아야. 네가 가서 좀 도와주거라.”

“네. 어머님.”

“명중이는 파 좀 예쁘게 잘 썰어봐. 다하면 말해주렴.”

“네!”

명중이와 여자애들 세 명이 주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요리를 한다. 나머지 멤버들은 나와 함께 파티 모드로 식당을 세팅 중이었다.

그렇게 준비가 모두 끝났을 때쯤.

[ 띠링 ]

[ 제이미 : 저 도착했어요. ]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그 앞에 모자를 눌러 쓰고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제이미가 보인다. 누가 보기 전에 냉큼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리고 외쳤다.

“자, 아시아의 빛! 슈퍼스타 제이미 선배님이 오셨습니다!”

“꺄아악!”

“제이미! 제이미!”

“우유빛깔 제이미!”

“언니 팬이었어요!”

심지어 무뚝뚝한 명중이 역시 들뜬 얼굴로 물개 박수를 치고 있었다. 팬이라더니 농담이 아니었나보네.

“어어... 다들 이렇게 반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다들 너무 너무 예쁘고 귀여워요!”

기분 좋았던 제이미가 발을 콩콩 구르며 기분 좋은 기색을 드러낸다. 그러다 주방에서 지켜보던 엄마를 발견하곤.

“어? 어머니! 안녕하세요! 어머니 음식 맛이 도저히 잊히지 않아서 또 찾아왔어요!”

쪼르르 달려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이번에 진짜 힘을 좀 썼으니 그때보다 훨씬 맛있을 거예요. 그러니 많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끝나면 잘 치우고 가. 엄마는 이만 퇴근할 테니까요.”

“고마워 엄마! 사랑해!”

“감사해요 어머니!”

“사랑해요!”

아이들의 우렁찬 외침 소리에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더해진다.

그렇게 엄마가 자리를 비워주고.

“자, 우리도 바비큐 파티를 시작해봅시다!”

“우와아앙!”

제이미가 함께하는 고기 파티가 시작됐다.

대다수가 미성년자고 제이미 역시 술을 입에 대지 않으니 음료수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언니, 민이네 어머니 요리 솜씨 진짜 굉장하지 않아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를 못해요.”

“우리 이제야 고백하는 건데, 지난 번 첫 방문 이후로 우리끼리 모여서 종종 식사하러 오고 그랬잖아. 그치?”

“응응!”

그랬어?

어쩐지 엄마와 애들이 유난히도 친해 보이더라니...!

현재 대화 주제는 바로 먹는 이야기였다.

“언니는 김치찌개 어떻게 먹는 거 좋아해요?”

“어, 맵고 칼칼하게 해서....”

정말 신기하다.

먹는 이야기만 가지고 벌써 한참을 대화할 수 있다니....

반지희는 물을 만난 듯 날뛰며 분위기를 리드했고 조용한 성격의 주세아도 먹는 이야기 앞에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너희들 텍사스 바비큐 먹어봤어? 그게 얼마나 맛있냐면....”

그 중에서도 이 분위기를 가장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 바로 제이미였다. 이런 부분에서 코드가 굉장히 잘 맞았던 모양이다.

“이태원에 텍사스 바비큐 제대로 하는 집이 있어. 아는 언니의 친오빠가 운영하는 가계야. 언제 우리 한 번 같이 가자! 내가 사줄게!”

“어머, 정말요?”

“이태원에 맛집 진짜 많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언니만 믿고 따라가면 맛집 제이미 로드를 완성할 수 있는 거예요?”

“맛집 제이미 로드? 하하하!”

반지희의 농담에 제이미가 빵 터졌다.

배를 잡고 웃는 모습에 반지희는 흐뭇해하고 다른 애들은 따라서 웃는다.

좋아. 잘하고 있어!

난 이번에 식사를 초대하며 굳이 제이미를 우리 커뮤니티에 넣어야 한다느니,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제이미 강탈 작전은 지극히 개인적인 계획이었으니.

하지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의 순수함. 그리고 어마 무시한 친화력이라면 분명 제이미도 공략할 수 있을 거라고.

“너희들, 영상 봤는데 진짜 춤 노래 실력이 굉장하더라. 언제부터 연습한 거야?”

“우리 언니 영상보고 따라하며 놀고 그랬어요!”

“맞아요. 지희네 언니나 저기 민이한테도 많이 배우긴 했는데 굳이 따지면 언니가 우리 선생님이나 마찬가지죠!”

“여기서 보여드릴 수도 있어요! 우리 언니 춤하고 노래 다 따라할 수 있어요! 보여드려요? 야, 다들 일어서!”

내가 보기에 제이미는 벌써 저 애들에게 공략 당했다. 굳이 내가 무슨 말을 안 해도, 톱스타 제이미와 가까워질 기회를 잡으려 드는 것이다.

하여튼 여우가 따로 없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명중이었다.

옆에 꼭 붙어 앉아서는 묵직하게, 조용히 이것저것 챙겨주고 있다. 있는 집, 격식 있는 부모 아래에서 잘 자란 녀석이라 그런가 매너도 참 좋다.

그런데 눈빛만큼은 강렬한 흠모의 빛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저 녀석은 늑대로 봐도 좋겠지?

가장 재미있는 것은 제이미의 반응이다.

얼핏 보면 분위기에 완전히 녹아 들어 아이들의 페이스에 휘말린 듯 보인다.

하지만 내 눈에는 똑똑히 보인다.

다 알면서도 넘어가주는 모습.

이래서 연륜은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난 이미 확신하고 있다.

제이미가 이 모임, 우리 문 라이트 커뮤니티에 푹 빠져 들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 노래방 가요!”

“맞아! 밥 먹었으니 소화 시켜야줘야지!”

“여기 빨리 정리하고 노래방 가즈아~!”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지?

저 애들의 페이스에 조금씩 젖어들게 되면 나중에는 결국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야! 김민! 너 빨리 좀 움직여!”

“왜 이렇게 굼뜨냐? 명중이 좀 본받아!”

“아 답답해. 비켜!! 주방 우리가 치울 테니까 넌 바깥이나 정리해!”

... 내가 이미 그러고 있으니까.

@

노래방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고, 결국 휴대 전화 번호 교환에 성공했다.

여자애들은 그녀를 꼬드겨 문 라이트 단체 톡방에 참여시키는 위엄을 토했는데, 이것은 그녀가 정식으로 우리 커뮤니티의 일원이 됐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문 라이트 톡방까지 이용해서 그녀와 본격적으로 친해져 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 띠링, 띠링, 띠링...! ]

그 뒤로 집에 돌아가서 씻고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톡방 알림 메시지가 끊이지를 않더라.

자고 일어나니 안 읽은 메시지만 무슨 세 자리수가 쌓여 있는데... 여자 애들이 평상시에도 말이 많은 편이지만 이건 상상을 초월했다.

그런데 애들도 애들인데, 제이미도 말이 굉장히 많더라.

채팅창 상당 지분을 그녀가 차지했다.

어디에 있는 맛집이 굉장히 맛있다느니, 날 잡고 다 같이 가서 먹자느니.

들뜬 게 눈에 보이더라.

더 이상은 특별히 내가 뭔가 하지 않아도 저희들끼리 알아서 잘 친해질 것 같다.

그렇다면 당분간은 신경을 좀 꺼도 되겠군.

@

며칠 후 대표님과 단둘이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정연 팀장님은 함께 하지 못했다.

엔 플라워 컴백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아졌다는 모양이다.

“뭔가 불안하네요.”

“넌 정연이를 무슨 네 보호자쯤으로 여기는 것 같더라? 야, 내가 있는데 뭐가 불안해?”

난 짜게 식은 눈으로 말했다.

“대표님 때문에 불안하다고요. 컨트롤 해주던 분이 없으니... 이제 막 폭주할 거 아니에요. 난 버려두고 자기 혼자 클럽이나 바에 놀러가서 술 마시고 여자 만나고....”

“야,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리고 이번 출장은 정말 정신없이 바쁠 예정이라 딴 짓할 시간도 없어. 너 방송 출연하는 거 때문에 매니저 노릇 해줘야지, 녹음 디렉팅 도와줘야지. 진짜 할 거 많단 말이야.”

“항상 핑계는 그럴듯하네요.”

“진짜라니까!”

이번 숙소 역시 센트럴 파크에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고급 호텔 스위트룸이었다.

“사실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본인이 혼자 살고 있는 집 내주겠다고 말했거든.”

“어? 그러면 거기 가죠! 세계적인 감독님 집이니 엄청 클 거 아니에요?”

“야, 그래도 어떻게 다른 집에 가서... 그냥 정중히 거절했어. 대신 너하고 한 번 놀러가기로 했어.”

“잘 됐네요. 그러면 오늘은 특별한 일정도 없겠다. 센트럴 파크 산책이나 하고 올게요.”

“나도 같이 갈까?”

“아니요. 그냥 혼자 갈게요. 그냥 놀러가는 게 아니라 영감 얻으려고 가는 거라서요.”

“그러면 나는 혼자 뭐해?”

“그건 뭐... 알아서 하셔야죠?”

나이에 걸맞지 않게 계속 궁시렁 대는 대표님을 뒤로 하고 센트럴 파크로 출동.

화창한 날씨와, 생기 넘치는 도심 속 공원의 아름다운 전경이 날 맞아준다.

음, 바로 이거야.

내가 뉴욕을 사랑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

뉴욕 특유의 감성을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

난 이 센트럴 파크가 굉장히 그리웠다.

햇살과 푸르름을 즐기는 사람들.

곳곳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스트리트 아티스트들!

이 모든 풍경이 나에게 깊은 감흥과 특히 영감을 선사한다.

나에게 맨해튼 드리밍이라는... 첫 빌보드 진입 곡을 선사한 곳이기에 더더욱 애착이 간다.

나 정말 이곳 근처에서 살고 싶어!

조금 돌아다녔을 뿐인데 배가 고파졌다.

푸드 트럭에서 핫도그와 음료수를 구매한 뒤 벤치에 앉아 식사를 한다.

굉장히 한가롭고 여유 있다.

한줄기 바람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온다.

‘영감님이 오셨다!’

급히 식사를 중지.

스마트 폰을 꺼내 녹음 앱을 키고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런 내게 영감님이 인사를 건넨다.

[ 오랜만에 왔네? 나 안 보고 싶었어? ]

참 희한한 게, 이 영감님은 어째서 내가 미국, 그것도 센트럴 파크에 있을 때만 찾아오시는 걸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은 바람처럼 급작스럽게 휘몰아쳐오는 멜로디를 녹음하는 게 우선이다.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흘러 들어오는 족족 녹음 앱에 쑤셔 담아 본다.

[ 만나서 반가웠어. 다음에 또 보자고? ]

아!

조금만 더 있다가 가시지...!

그래도 많은 것을 담았으니 기분은 좋았다.

녹음한 허밍을 듣고, 따라서 흥얼거려본다.

초록의 싱그러움과 훈풍의 상쾌함.

이 거대한 공원에 가득한 생명의 활기가 연상되는 멜로디였다. 다른 사람이 이것을 들었다면 그래서 이게 대체 뭐야? 의문을 떠올리겠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려진다.

이것이 하나의 곡으로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이.

그것은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이 거대한 센트럴 파크 그 자체일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숙소로 달려가서 곡 작업을 하고 싶지만....

‘아직은 아니야. 멜로디가 완성되지 않았어.’

아무래도 우리 영감님이 급한 일이 좀 있으셨던 모양이다. 오자마자 바로 떠나가셔서 끝부분이 완성되지 않았다.

‘오늘은 이곳을 더 돌아다녀보자.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미칠 듯 아름다웠던 노을이 지며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녹음 앱을 종료한 뒤, 처음부터 재생해본다.

맑고 화창한 날.

센트럴 파크의 하루를 떠올리게 만드는 멜로디가 나왔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있다.

‘블랙 뮤직 쪽은 아닌데, 이걸 어떤 장르로 표현하지?’

장르 선정이 첫 번째.

‘어떤 이야기를 채워 넣어야 할까?’

주제, 가사 정하기가 두 번째.

맨해튼 드리밍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장르부터 내용까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나왔다.

처음부터 아이작 이스트를 생각하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게 없었다. 불현 듯 찾아온 영감이었다. 특정 아티스트를 생각하지 않았고 내 주위에 펼쳐진 센트럴 파크 하나만을 생각해서 만들었다.

‘이거 어려운 작업이 되겠네.’

그래도 멜로디가 나왔으니 이 두 가지 문제만 해결되면 곡은 금방 만들어질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아이작 이스트의 저택에 방문해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이어 녹음실로 이동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다.

“녹음 들어가기 전에 잠시 연습 좀 해보자고. 어디, 맨해튼 드리밍을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봐.”

내가 만든 곡을, 내가 준 가수에게 트레이닝 받는 상황이라니....하지만 굉장히 좋은 기회다.

그래미가 공인한 최고의 실력자가 아닌가?

그 노하우를 조금이라도 얻어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었다.

충분한 떨림을 가지고, 최대한 진지하게 노래를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