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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로 돌아왔다-86화 (86/205)

< 86화. 미국 진출기 (1) >

또 다른 내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어찌 경이롭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모니터만 바라봤다.

“됐다.”

마침내 그림이 완성됐다.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은 그제야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때?”

가까이 다가가 조금 더 자세히 그림을 살펴본다.

굉장히 멋진 캐릭터 컨셉 아트였다.

“제가 영화 속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이 한 장면으로 확실히 설명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모습이지?”

“이드라실은 기본적으로 세상 모든 현상에 대해 긍정적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죠. 이것은 자연의 섭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요정족 특징이기도 한데, 이드라실은 그들조차 두려워하는 괴물, 몬스터, 악령이라 불리는 이들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들 역시 거대한 자연이 품은 섭리라 생각하고 있거든요.”

손가락으로 얼굴 표정을 가리킨다.

“포효를 터트리며 용맹하게 싸우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가 담겨 있어요. 서로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 상황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자연계를 지배하는 원리와 원칙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예요.”

“맞아. 바로 그거야.”

“모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섭리를 존중한다. 이런 부분들이 때로는 철부지, 사고뭉치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일 때도 있는 노아를 예사롭지 않은 인물로 만들어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죠.”

“좋아. 아주 완벽히 이해하고 있군!”

“지금부터는 이런 사고방식을 깊이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캐릭터를 분석해봐야겠네요. 요정족 특유의 민첩하고 춤추듯 우아한 동작을 표현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도 필요하겠어요.”

그 자리에서 우리는 이드라실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감독과 배우를 떠나, 원작 노아의 열혈 팬으로서 나누는 이야기라 굉장히 즐거웠다.

소외된 대표님은 무척 쓸쓸하고 외로워하는 듯 보였지만....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손수 만든 점식 식사를 대접했다. 그런데 식탁 구성이 굉장히 독특하다.

“노아에서 선보일 요리를 연구 중이야. 14세기 잉글랜드 요리서를 주로 참고 중이지. 이름도 거창해. 왕의 양고기 구이. 천사가 먹었던 타르트. 작은 새의 무덤....”

솔직히 맛은 여러 가지 의미로 독특했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하나 음미하며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

식후 커피를 마시며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묘한 눈빛으로 말한다.

“잠깐 안 본 사이 영어 실력이 굉장히 늘었군. 그런데 말투가 어째 아이작과 꼭 닮았는데...?”

“그럴 거예요 왜냐면 이곳에 방문 하기전, 무려 일주일을 아이작 집에서 숙식하며 엄격한 트레이닝을 받았거든요.”“오호, 아이작에게 트레이닝을 받았어? 그 친구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아무 일 없었고?”

“전 오히려 좋았어요. 그래미가 인정하는 전설적인 뮤지션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저를 가르쳐준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짜릿하더라고요.”

“그래? 그러면 나도 연기 수업 때는 엄격하게 대해도 되겠군?”

“물론이죠. 그거야 말로 제가 바라는 거예요. 전 성장이 고프거든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로군. 아, 그리고 또 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데... 그 전에 하나 묻지. 한국에 언제 돌아가지?”

그건 나도 잘 모른다.

그래서 대표님을 바라봤더니....

“이번 일정에서 그런 건 딱히 정해놓지 않았어요. 필요하면 세 달 꽉 채울 각오도 하고 왔으니까요.”

그건 몰랐는데...?내가 해명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니 대표님이 답변해 주신다.

“이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예상을 못하겠더라고. 방송 출연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작, 킴벌리, 그리고 여기 크리스토퍼까지 너에 대해 뭔가 말해주지 않은 계획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거든.”

“아하....”

“그리고 온 김에 네 학교랑 숙소도 미리 알아보고 정하려고 했지. 네가 아이작 집에서 머무는 일주일 동안 그것 때문에 조금 바빴다.”

아... 그런 일도 있었구나.

대표님이 뭔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전부 나하고 관련된 일 아닌가?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예요?”

“올리비아 퀸이 널 보고 싶다고 해서 약속을 잡아놨어.”

잠시 사고 회로가 정지 됐다.

“노아 작가님이요?!”

대표님의 경악스런 반문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맞아. 내가 영상을 보여줬더니 굉장히 흥분하더라고. 책속에만 존재했던 이드라실이 어떻게 현실에 튀어나올 수 있냐고, 이거 CG 아니냐고 굉장히 다그치기에 못 믿겠으면 직접 만나게 해주겠다고 말했지. 이미 뮤직 비디오도 다 보여줬어.”

“세상에... 정말 제가 올리비아 퀸 작가님을 만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일정을 물어본 거야. 영국 방문 일정을 조율해봐야 하니까. 언제가 좋겠어?”

“아, 그건 저하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표님과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올리비아 퀸 감독에 대해 생각했다.

영국 런던 출신 여류 작가.

본인은 스릴러물을 좋아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장르로는 재주가 없었다. 월세와 생활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썼던 마법 판타지 소설, 노아 시리즈의 출판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 노아 시리즈는 현 시점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다. 이전 삶에서 영화 6부작이 초대박이 터지고, 그게 애니메이션, 코믹북, 테마파크 등으로 콘텐츠가 확장됐는데, 줄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대영제국 훈장 4등급까지 수여 받았다.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유일한 작가였다. 재산이 영국 여왕을 가볍게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하니 말 다한 거지.

그런 굉장한 인물이 날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라서 더 그렇다!

만나면 하고 싶은 일이 굉장히 많다.

책에 사인도 받아야 하고, 다정하게 사진 촬영도 하고 싶다!

뮤튜브 출연도 부탁하고 싶긴 한데... 이건 조금 어려울 것 같다. 방송 출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무작정 요구하는 것도 염치없는 짓이니 적절한 대가도 준비해야겠다. 오고가는 선물에 정이 싹트는 법이니!

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다시 태어나기를 정말 잘 했어!

@

이른 새벽, 호텔에서 나와 아이작 이스트의 저택으로 이동했다.

굉장히 분주했다.

아침 시간에 굉장히 중요한 방송 출연이 예정되어 있기에 블랙 로즈 스텝들이 와서 이것저것 준비 중이었다.

나 역시 같이 출연할 예정이니 아이작 이스트와 나란히 앉아 스타일링을 받았다.

의상도 블랙 로즈 측에서 이미 준비해놨는데, 이것은 내 현지 매니지먼트가 블랙 로즈이기 때문이다. 계약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대우 하나는 끝내주게 잘해준다.

“준비 다 됐지? 가볼까?”

“갑시다!”

아이작 이스트, 나, 대표님. 이렇게 세 사람이 같은 차에 탑승했다.

목적지는 타임스 스퀘어 ABC 방송 스튜디오.

“아, 떨린다!”

출연하는 우리 두 사람보다 대표님이 더 긴장하고 있다.

“네가 아직 감이 잘 안 오는 모양인데, 곧 출연힐 방송, 정말 굉장한 거야! 내가 과거에 저기 한 번 출연해보겠다고 그렇게 고생했었는데 결국 실패했거든. 문턱이 터무니없이 높아서....”

“그랬어요?”

그건 몰랐네.

긴장을 풀어주려는 건지, 본인이 풀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잔뜩 흥분해서 쉴 세 없이 떠드는 통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아이작 이스트 역시 긴장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고, 계속 물을 마시며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스튜디오가 굉장히 분주했다.

오늘 출연하기로 한 곳은 ABC 방송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인 굿모닝 아메리카!

미국인들이 아침에 출근이나 등교를 하며 무조건 시청하는 국민 방송이다.

생방송 시간은 뉴욕 시간으로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총 3시간.

참고로 이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토크와 라이브 방송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당대 톱스타들뿐이다.  이런 굉장한 방송에 내가 출연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한국에도 소식이 전해졌을 테니 난리가 났겠네.

사전부터 떠들썩하게 홍보됐던 내용이 아니라 정말 갑작스럽게 전해진 이슈였을 테니까. 이게 나와의 동반 출연이 확정된 게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건데, 그렇게 된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뭐냐면 바로....

[ 여러분, 지금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고 있는 곡의 주인공들이 등장할 겁니다. ]

저번 주. 내가 스튜디오에서 험난하게 구르고 있을 동안 맨해튼 드리밍이 결국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찍고야 말았거든!

그 작곡가가 미국 나이로는 15세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란다. 심지어 한국에서 갓 데뷔한 신인 싱어 송라이터라니 촬영 팀도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겠지.

[ 아이작 이스트와 Min을 소개합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

큐 사인과 함께 나와 블랙 앤 화이트 컨셉으로 정장을 갖춰 입은 우리 두 사람이 입장한다.

[ 와아아아 ― !! ]

터져 나오는 환호성.

스튜디오에 무수히 많은 촬영 장비와 스텝들, 그리고 청중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맨해튼 드리밍이 BGM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환호하던 이들이 다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나와 아이작 이스트는 두 명의 남녀 호스트들과 포옹으로 인사 하고, 객석을 돌며 하이 파이브를 했다.

“자, 자리에 앉아주세요.”

어찌나 환호가 뜨거운지, 호스트들이 그렇게 말하고서야 간신히 현장 분위기가 수습됐다.

흑인 남자 호스트가 말을 건넨다.

“아이작. 당신이 또 다시 전 세계를 감동시키는데 성공했어요. 요즘 기분이 어때요?”

“처음부터 끝까지 드라마틱한 일의 연속이었죠. 신이 절 도운 거예요. 그리고 지금 제 옆 자리에 앉아 있는 한국의 천재 소년이 기적을 안겨줬어요. 사실 지금도 잘 실감이 나지 않아요.”

인터뷰는 아이작 이스트 위주로 진행된다.

물론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기에 서운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이런 자리는 내게 버거운 감이 있다.

그래도 아예 나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초청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과연 내게 어떤 것을 물어볼까?

잔뜩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마침내 내게 첫 질문이 날아왔다.

“아직 어린 나이에 히트 곡을 쓴 작곡가가 된 기분은 어떤가요?”

왔다!

충분히 각오는 하고 있었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머릿속이 탈색되는 기분이다. 심지어 영어 실력도 짧으니... 최대한 간략히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트루먼 버뱅크가 된 기분이에요.”

“트루먼 쇼!?”

남자 호스트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진다.

그도 굉장히 감명 깊게 봤던 모양이다.

“전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한국 하이스쿨에 재학 중인 평범한 청소년이었거든요. 정말 평범했단 말이에요. 소심하고, 여자 친구도 없고, 적당히 왕따도 당해보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웃으라고 한 말이 아닌데....

“그런데 갑자기 아이작 이스트의 작곡가가 됐데요. 제가 쓴 노래가 빌보드 1위를 했고 전 지금 미국 국민 아침 방송에 출연했네요?”

흠칫 놀라는 시늉을 하고, 수상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린다.

“이거 정말 트루먼 쇼 같은 건 아니겠죠?”

[ 하하하! ]

“지금이라도 빨리 말해주세요.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뭔가 잘못됐어. 빨리 그 대사 치고 퇴장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유난히도 신나게 웃고 흥미롭게 듣던 남자 호스트가 운을 띄운다.

“In case I don't see ya!”

어?

재빨리 받았다.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슬쩍 아이작 이스트를 바라본다.

그래도 그가 이 쇼의 주인공이나 막타는 넘겨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는 영화를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게 아닌가?

[ 우우우! ]

[ good night 이라고 했어야지! ]

사방에서 웃음과 야유가 터져 나온다.

오, 분위기 좋은데?

난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즉각 비난을 퍼부었다.

“이럴 수가! 아이작이 영화를 안 봤나 봐요! 이게 믿겨져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아이작, 어떻게 이 명작을 안 볼 수가 있어요?”

“미, 미안해요. 바로 집에 가서 봐야겠네. 나 이것 참....”

그가 난감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니 또 다시 폭소가 터진다.

우리의 애드리브가 성공한 것이다.

뭔가 대단한 것을 해낸 듯한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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