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87화 (87/205)

< 87화. 미국 진출기 (2) >

웃음이 빵빵 터졌고 라이브도 훌륭했다.

특히 스튜디오에 있던 청중들이 떼창을 하는 장면에서 전율이 쫙 흘렀다.

그래서일까?

“아주 좋았어! 정말 환상적인 분위기였어!”

아이작 이스트가 잔뜩 격양됐다.

촬영 끝내고 스튜디오를 빠져나오자마자 나에게 손바닥을 내밀어 보인다.

아, 하이 파이브 하자고?

[ 짝! ]

이어서 대표님하고도 하이 파이브를 한 뒤, 중간에서 나와 대표님의 어깨를 감싼다.

“세상에, 방송을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는데... 혹시 그거 알아? 저메인 저 친구, 방송에서 크게 웃고 장난 잘 치는 그런 성격이 아니야! 얼마나 딱딱하고 사교성이 없는데....”

“그랬어요? 전 완전 다르게 생각했는데....”

“아니야. 전혀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고. 그런 친구에게 몇 번이나 웃음을 준 거야. 바로 네가! 방송 보던 사람들 깜짝 놀랐을 거야!”

그 정도였어?

아무래도 내가 정말 굉장한 일을 해낸 모양이다.

“오늘처럼만 하자고. 알았지?”

나를 향한 신뢰가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

확실한 기준이 생기지 않았나?

그러니까 오늘처럼만 하면 된다는 거지?

@

[ 굿모닝 아메리카(GMA)에 아이작 이스트와 깜짝 동반 출연한 김민! 미국인들을 웃기고 노래하게 하다! ]

[ 미국 전역에 울려 퍼지는 맨해튼 드리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속 열풍! ]

[ 김민의 갑작스러운 미국 메이저 방송 진출. 어째서 JJ 엔터테인먼트는 그 동안 언급을 하지 않았나? ]

김민의 미국 메이저 방송 진출 소식이 한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한국 뮤지션이 미국에 진출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방송이 무려 굿모닝 아메리카. 바로 미국인들이 가장 오랫동안 사랑해온 대표 아침 프로그램이 아닌가?

사실 출연한 시간만 놓고 보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세 시간짜리 프로그램에서 십여 분 잠깐 모습을 비춘 게 전부니까. 하지만 그 시간이 굉장히 중요했다. 세계 경제 문화의 중심인 미국 전역에 존재감을 알렸다는 뜻이니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겨우 십여 분이 아니라, 무려 십여 분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테니까.

인터넷 뉴스 기사는 물론 인터넷 크고 작은 커뮤니티는 관련 내용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김민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뮤튜브에 업로드 된 김민 출연 분량을 점심시간에 방송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교사들도 수업 시작만 시작하면 이번 일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를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그 와중에 또 다른 내용이 크게 주목 받았다.

[ 전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한국 하이스쿨에 재학 중인 평범한 청소년이었거든요. 정말 평범했단 말이에요. 소심하고, 여자 친구도 없고, 적당히 왕따도 당해보고.... ]

바로 마지막 대목.

적당히 왕따도 당해봤다는 것.

학교에서는 전설로 남은 사건이었다.

“사실 적당히 왕따를 당한 수준이 아니었지. 굉장히 심각했잖아?”

“때리고, 빵 셔틀 시키고... 난리도 아니었지. 김민이 뒤엎어 버리지 않았다면 뭔 일이 나도 크게 났을 거야. 그만큼 심각했으니까.”

이렇게 되니 왕따 가해자였던 최민석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다 끝난 일을 왜 이제 와서...!’

이미 협약(?)이 다 끝난 사항 아니었던가?

‘그 자식은 미국 방송에 출연했으면 그냥 노래만 조용히 부르고 돌아올 것이지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하지만 누구도 최민석의 억울함과 당혹감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

소문은 외부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 김민 왕따 사건 사실 먼 과거에 있었던 일도 아님. 바로 얼마 전에 있었음. ]

[ 김민은 적당히 왕따를 당했다고 말했는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

[ 진짜 심각했어. 저러다 자살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로.... ]

현재 대한민국은 김민 신드롬이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작은 정보 하나하나가 굉장히 크게 이슈가 되는 현 시점에 왕따 사건 재점화는 그야말로 사회를 뒤집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인터넷 커뮤니티에까지 빠르게 사실이 알려졌다.

가장 기세가 흉흉한 곳은 현 시점에서 가입 회원 수 30만 명을 돌파하며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 김민 팬 카페였다.

[ 우리 민이 왕따 시켰던 그 자식 이름이 뭔가요? 혹시 아는 분? ]

[ 같은 반 최민석 이래요. 고교 축구 선수로 활약 중이라고.... ]

[ 최민석? 넌 김민이 용서했어도 내가 가만 안 놔둔다. ]

학교로 항의전화가 폭주했고 최민석과 가족뿐만 아니라 학교 측에도 비난 여론이 쇄도했다.

그런데 여기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 최민석이 김민만 왕따 시키고 괴롭힌 게 아님. 초등학교 시절부터 누구 괴롭히는데 일가견이 있던 놈임. 참고로 나 최민석 초. 중학교 동창이다. ]

[ 축구부에서도 최민석에게 당하고 살았던 애들이 한 둘이 아님. 갠 미성년자를 가장한 깡패 새끼임. ]

터져 나오는 증언!

어떻게든 최민석을 보호하려고 했던 학교 측과 심지어 부모조차도 뒷목을 잡을 상황이었다.

사태가 정말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확대됐다.

최민석은 축구부에서 퇴부 조치 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또 문제가 터졌다.

조사 과정에서 감독과 코치가 이를 알면서도 부모로부터 뒷돈을 받은 사실 때문에 묵인했고, 심지어 보호까지 했다는 정황이 밝혀진 것이다.

기가 차서 웃음 밖에 안 나오는 상황!

[ 뭐가 이렇게 계속 줄줄이 엮여서 나오냐? ]

[ 정말 그 부모에 그 자식이네. 뒷돈 쓰는 부모나 그 부모 믿고 제 세상인 양 설치는 자식새끼나.... ]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민석과 가족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하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조사와 처벌을 받는 것.

그리고 아주 조용한 곳으로 이사와 전학을 가는 것.

축구 선수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죄인 낙인이 깊숙이 찍힌 상황이니 앞으로 세상 살아갈 걱정을 해야 할 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매된 김민 버전의 맨해튼 드리밍은 국내 스트리밍 차트 올킬을 달성했다. 한창 엄청난 위용을 과시 중이던 최고의 남자 아이돌 그룹, 썬더볼트의 기세를 잠깐이나 짓누른 것이다.

한국 여론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왕따까지 당하며 지내던 청소년이,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스토리에 주목했다.

[ 그냥 금수저 출신에 재능까지 타고 나서 쭉 탄탄대로를 걸어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

[ 나 이제부터 김민 팬 할래. ]

@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내게도 공유됐다.

“야, 너 이런 일이 있었으면 말을 해야지!”

“이게 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떠들고 다녀요?”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는 언급 정도 해줄 수 있었잖아! 명색이 기획사 대표고 네 스승인데 이 녀석아!”

섭섭해 하는 대표님을 신경 써 줄 때가 아니었다.

가만히 있어보자.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사실 이미 합의금도 충분히 받았고, 최민석이 거슬리는 짓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나서서 묻어 버릴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인터뷰 중 ‘적당히 왕따도 당해보고....’ 이 대목이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뭐, 내가 미투를 해서 사건이 커진 것도 아니고, 다른 애들이 자기가 보고 들은 사실을 인터넷에 퍼트린 게 시발점이었잖아?

사건에 방점을 찍은 것은 나 외에 다른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이 나섰던 부분이었다.

결론이 났다.

내 책임은 눈곱만큼도 없다.

이번 일은 최민석이 그간 쌓아온 업보가 폭발한 것이다.

오케이. 정리 끝!

... 돌아가서 가족,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이긴 한데, 뭐 그건 어떻게든 되겠지!

그나저나 미국 방송, 공연 스케줄이 정말 만만치가 않다. 뉴욕을 방송국을 돌아다니는 것도 힘든데, 전용기를 타고 전미를 누비는 건 정말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색할 수도 없다.

어쨌든 엄청난 기회니까.

그래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 일정에서의 내 역할이었다.

서포터.

이번 미국 일정은 내가 잘나서 얻은 기회가 아니었다. 순전히 아이작과 매니지먼트의 배려 덕분이다.

이걸 기회로, 더 잘나가 보겠다고 필요 이상으로 내대다가는 모두에게 안 좋은 이미지로 낙인찍힐 수 있었다.

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는 리액션에만 열중했다. 박수치면서 웃고, 놀라워하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주기도 하고.

그러다가 마이크가 넘어왔을 때 짧고 강하게 툭툭 쳐주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 이상은 금물이었다.

“벌써 마지막 일정이군. 굉장히 아쉬워. 조금 더 같이 하면 좋을 텐데....”

“저도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사전에 논의된 일정은 여기까지인데요.”

“이 방송 끝나자마자 바로 런던으로 이동하는 건가? 거기서 크리스토퍼와 합류해서 함께 올리비아 퀸 작가를 만나러 간다고 했지?”

“네. 사실 방송 출연보다 그것 때문에 더 떨리고 긴장되네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님이거든요.”

설렘을 숨길 수 없었다.

이제 며칠 정도 지나면 뉴욕에서 내 인생 작가와 만나게 될 테니까.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이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이작이 급격히 퉁명스러워진 표정으로 툭 묻는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나 굉장히 존경한다고 했던 말, 기억해?”

“물론이죠. 그런데 그게 왜요?”

“내가 좋아? 아니면 올리비아 퀸 작가가 좋아?”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물론, 대기실에 함께 있던 대표님과 스텝 모두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아이작 이스트는 굉장히 진지했다.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야. 아니, 이렇게 하지. 우리 두 사람이 물에 빠져서 한 사람만 구할 수 있어. 그러면 누굴 구할 거야?”

장난치려고 이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아이작을 선택하죠. 올리비아 퀸 작가를 존경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작 만큼은 아니죠.”

“그렇지?”

“그럼요! 저에게 베스트는 언제나 아이작이죠!”

비로소 표정이 나아졌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대표님께 조용히 물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예요?”

“괜히 셈이 나서 저러는 거지 뭐.”

“셈이 난거라고요?”

“응. 네가 자기와 함께 하는 것보다 올리비아 퀸 작가의 만남을 더 기대하고 그쪽에 훨씬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으니까.”

“아....”

“너 앞으로 최소한 아이작 앞에서 만이라도 누굴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티 내지 마. 저런 성격일 줄을 몰랐네.”

목을 풀기 시작하는 아이작을 흘끔 보며 대표님은 피식 웃었다.

“뭐, 그만큼 너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뜻이겠지.”

... 아무리 그래도 남자의 질투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데.

우리 대표님이 쿨해서 다행이다.

마침내 마지막 일정이 시작됐다.

NBC 유명 토크쇼였는데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수많은 방청객과 촬영팀 앞에서 진행하는 쇼였기에 시작 전부터 상당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약도 미리 챙겨먹었는데 공황증이 벌써부터 살짝 올 듯 말 듯...

이번에도 역시 쇼는 아이작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마지막 쇼에서도 내 역할은 리액션이구나!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덕분에 리액션도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웃고, 또 웃고....

그렇다고 아예 병풍 노릇만 한 것은 아니다.

“혹시 맨해튼 드리밍 후속작을 준비 중인가요?”

“열심히 시도 중이에요.”

“첫 미국 진출곡이 너무 성공해서 부담스럽죠?”

“전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더라고요.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아이작의 높은 기준을 충족시키는 거죠.”

나름 문답도 주고받았다.

굳이 레이지가 부르기로 한 Don’t Touch Me에 대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이 아니기도 했고, 아이작이 받아야 할 관심을 다른 뮤지션에게 잠시라도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막 일정은 큰 이변 없이 무사히 끝났다.

“고생 많았어. 런던 구경 잘 하고 와. 아, 다시 뉴욕 오는 거 맞지?”

“그래야죠.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더 있으니까요.”

“그러면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다시 하자고. 잘 다녀와.”

아이작 이스트와 헤어진 나와 대표님은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장 고대하던 시간.

노아 시리즈의 저자 올리비아 퀸 작가와의 만남의 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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