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88화 (88/205)

< 88화. 어셈블! >

히드로 공항 출국장을 걸어 나오며 한 마디했다.

“이곳이 올리비아 퀸 작가의 나라입니까?”

“.......”

“후후.”

어이없어 하는 대표님을 뒤로하고 마음껏 공기를 마셔본다.

내가... 내가 영국 런던에 와보다니!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하고 또 다른 감동이 느껴진다.

이곳은 바로 기사도와 마법과 드래곤의 나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환상 문학인 노아 시리즈를 비롯하여, 더 거슬러 올라가면 환상 문학 마니아들의 성전이라 불리는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가 탄생한 나라였다.

음악으로 미국을 동경했다면, 문학으로 영국을 사랑했다.

그런 내가 영국 런던에 이전 삶을 통틀어 최초로 와봤으니 어찌 감격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공항을 떠나 런던 중심가에 위치한 고급 호텔로 이동하는 내내 주위의 모든 것으로부터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확실히 미국과 또 다른 맛이 있네요.”

“약간 유럽 중세 시대에 온 느낌이지?”

“맞아요. 건물들도 그렇고... 제가 또 저런 것에 환장하잖아요! 판타지 본 고장이라 그런지 모든 게 판타지스러워요!”

마침내 호텔에 도착했다.

대표님이 예약한 런던 호텔은 미국에서 지내던 곳과 여러모로 다른 멋을 풍기는 곳이다.

중세 시대의 낭만이 담겨 있다랄까?

알고 보니 역사가 오래되고 굉장히 유명한 곳이란다.

“저녁에 식당에서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까지 여유가 좀 있는데, 어떻게 할래? 여기서 쉴래, 아니면....”

“나가야죠!”

“그래. 너라면 왠지 그럴 것 같더라. 난 좀 쉬어야겠다. 피곤해 죽겠다.”

간단히 옷만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 쓴 뒤 호텔을 나섰다.

날씨는 개떡 같았다.흐리고 바람도 불고 쌀쌀하고.

하지만 호텔 주위로 펼쳐진 런던 시내는 굉장히 고풍스럽고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었다.

척 보기에 예쁜 가게들이 굉장히 많았다. 심지어 화장품 가게조차도 굉장히 예쁘게 생겼다! 시선을 사로잡는 엔틱크한 카페에 끌리듯이 입장한다.

책을 지참하고,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뒤 통유리창 자리에 앉아 거리를 감상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해봤다. 마침 빈자리도 있었고, 내 손에는 미국에서 구매한 노아 양장본이 한권 들려 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노아 1부 첫 장면을 쭉 훑어본다. 사실 영어는 아직도 어렵지만, 미친 듯이 공부를 하며 실전에서 사용 중이니 실력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입안에 머금은 에스프레소를 목으로 넘기고, 진한 향을 턱 토해내며 창밖을 바라본다.

노아와 커피와 런던.

내가 사랑하고 동경하는 모든 것들이 이 순간 내 주위에 펼쳐져 있었다.

캬,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진작 런던에 와볼걸. 이전 삶에서는 왜 그렇게 쓸데  없이 눈치 보며 아등바등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직 가고 싶은 곳이 많으니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카페를 나선다.

무작정 거리를 걸었다.

모든 것이 새롭다.

상가. 교회 건물과 공원....

심지어 노점상의 풍경조차도 신선하고 재미있다.

휴대용 액션 캠으로 이 모든 광경을 촬영하며 생각했다.

나 아무래도 영국하고 잘 맞는 것 같아!

... 그런데 왜 영감님은 안 오시는 걸까?

참 좋은데.

지금 딱 좋은데....

어두워지기 전에 시간에 맞춰 호텔로 돌아왔다.

“잘 놀다 왔어?”

“대표님도 푹 주무신 모양이네요.”

“응. 잘 잤다. 정말 피곤했는데 이제 좀 나아졌어.”

샤워하고, 한껏 멋을 부린 대표님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자, 가자! 너 이 주위만 돌아다녔지?”

“네!”

“가는 길에 런던이 어떤 곳인지 보여줄게.”

렌트카를 타고 이동하는 길.

대표님은 자신의 호언장담을 지키기 위해 목적지까지 빙 둘러서 이동했다.

“저기 타워 브릿지 보이지? 저기 성처럼 생긴 건물이 런던탑이야. 그 유명한 정복왕 윌리엄 1세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곳. 그 앞에 흐르는 강이 템스 강이고.”

“이제 보니 런던을 잘 아시네요?”

“내가 흑인 음악 이상으로 영국 록 음악도 굉장히 좋아하거든. 퀸, 비틀스, 롤링스톤스... 젊은 시절 음악 공부한다고 몇 년 살았던 적이 있었어.”

“우와... 미국에, 영국에... 진짜 어려서부터 글로벌하게 노셨네요.”

“어허, 나 범생 타입인 거 몰라? 음악 공부만 열심히 했어.”

“에이... 주세아도 안 믿을 소리를 당당하게 하시네.”

“여기서 세아가 왜 나와?”

“애가 진짜 착하고 순진무구하거든요. 어느 정도냐면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설령 농담조차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요.”

“순진무구? 세아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대표님.

“네. 왜요?”

“음... 아니야. 사진이나 많이 찍어둬. 지금 아니면 못 봐.”

“네? 왜요?”

“내일 일정 끝나면 밤에 바로 미국에 돌아가야 하니까.”

“엑? 그렇게 빨리 돌아가요? 더 있으면 안 돼요?”

“야, 안 그래도 해외 체류 기간이 너무 길다고 회사 내부에서 말이 많아. 빨리 일 다 끝내고 한국에 가야지. 너도 그럴 거 아니야.”

“그건 그렇죠.”

세아에 대한 것을 미처 묻지 못했다. 휴대폰 카메라에 저 멋진 광경을 최대한 담아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액션 캠이야 아까부터 작동시키고 있었지만 그건 그거고, 이때부터 휴대폰 카메라로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랑도 해야 하고, SNS와 뮤튜브 채널에 올릴 자료도 확보해야 하니까.

그렇게 잠깐의 런던 관광을 마치고 호텔 고급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템스 강과 타워브리지 뷰를 품은 호화로운 곳이었다.

“너만 아니었으면 더 조지 인 같은 펍에 가는 건데....”

“거기 뭐하는 곳인데요?”

“셰익스피어가 자주 방문하던 곳.”

“헉! 그러면 거기 가야지 왜 이런 곳을 와요?!”

“펍이라서 너 데리고 못 간다고. 너 미성년자잖아!”

“아....”

큽.

어리다는 게 처음으로 원통스러운 순간이다.

그러다가도 예약한 창가 자리에 착석하는 순간.

“와, 진짜 끝내주네.”

생각이 또 달라진다.

런던 야경이 정말 그림처럼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여기 진짜 비싸죠?”

“어마어마하지.”

“제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대표님 호강시켜드릴게요.”

“하하. 말만으로도 고맙다.”

“진짜예요. 효도 관광도 보내드리고 효도 크루즈 여행도 보내드리고....”

“... 너 가만히 보면 나 뒷방 늙은이 취급 못해서 안달이더라?”

얼마나 기다렸을까?

“어? 여기예요!”

마침내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도착... 했는데 이게 뭐시여?!

“어어...?!”

동행한 인물들을 보고 난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 또래의 백인 소년, 소녀.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또 굉장히 좋아했던 배우들이다.

우리 자리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씩 웃으며 말한다.

“런던에서 보니 또 새롭군. 아이작과의 일정은 잘 끝냈어?”

“민이가 고생 많이 했어요.”

“굿모닝 아메리카 생방송 봤는데 정말 잘하더군. 아무튼....”

대표님과 먼저 인사를 나누고, 날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맞춰봐. 지금 내가 데려온 아이들이 과연 누굴까?”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는 영화 출연전이고, 배우로 데뷔하기 전이었으니 아는 척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전 처음 보자마자 누군지 알았어요.”

“오, 그래?”

감독뿐만 아니라 백인 소년과 소녀도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다.

난 백인 소년의 왼편에 서서 말했다.

“노아 파티 어셈블!”

그리고 씩 웃는다.

“맞죠?”

“하하하! 역시 한 눈에 알아보는 군. 내가 말했지?”

“그러게요. 정말 신기해요. 어떻게 바로 알아볼 수가 있었을까요?”

“우리가 그렇게나 원작 주인공 캐릭터들과 닮았나요?”

날 향해 호감의 시선을 보내는 두 친구들.

이렇게 어린 시절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니 새삼 감탄이 나온다.

두 사람 다 외모와 분위기는 정말 타고났구나.

“다니엘 레드몬드라고 해요.”

“샬럿 왓슨이에요.”

두 사람이 나에게 호감 섞인 미소를 지으며 통성명을 해온다.

아, 진짜 감격이다.

이런 이벤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다니엘과 샬럿.

노아 시리즈의 남녀 주인공을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나 역시 설렘을 감추지 못한 채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 이름은 김민이에요. 여러분과 같이 노아 시리즈로 배우 데뷔를 눈앞에 둔 신출내기예요.”

노아 시리즈로 인연이 되어 평생을 삼총사로 지내게 될 운명의 만남이었다.

다니엘 레드몬드는 시리즈의 주인공인 노아.

샬럿 왓슨은 여주인공인 아리아.

디테일 괴물이라는 별명을 가진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공들여 뽑은 주연 배우였다. 원작 캐릭터와 굉장한 싱크로율을 자랑했고 귀족가 특유의 기품,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모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게 된다.

다니엘 레드몬드가 노아 여성 팬들의 로망이라면, 샬럿 왓슨은 남성 팬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내 또래의 팬이라면 그녀를 한 번쯤 짝사랑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머리가 굉장히 좋아서 영국 최고의 명문 옥스퍼드 영문학과에 진학했고,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앞을 다투어 러브콜을 보낼 만큼 특출나게 아름답고 우아하다.

“저 맨해튼 드리밍 굉장히 좋아해서 요즘도 계속 즐겨들어요. 작곡가가 한국 출신의 제 또래 소년이라는 거 알고 정말 만나보고 싶었어요.”

“민이 이드라실을 연기하게 됐다는 이야기 듣고 커리어를 모두 확인해봤어요. 개인적으로 데뷔곡 뮤직 비디오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그 음악들도 모두 직접 만든 거죠?”

그런 두 사람이 내게 엄청난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고 만나기도 전부터 날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니, 감동이다!

아무래도 우리는 진작 만났어야 할 예정된 운명이었던 것 같다.

일단 대화가 굉장히 잘 통했고 마음도 맞았다.

내 가수 커리어에 대한 것으로 시작된 대화는 금방 노아 원작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나 데뷔 이전부터 소설 노아 시리즈의 열혈 팬이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주인공들과 함께 노아 덕질을 할 수 있는 기회라니, 얼마나 굉장한 순간인가?

난 들뜬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대화에 몰입했다.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호칭을 편하게 할 정도로 금방 친해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다니엘이 이런 질문을 했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민은 빌보드 1위 음악을 만들었을 정도로 굉장한 뮤지션이잖아. 우리가 출연하는 영화 음악도 민이 만드는 거야?”

“그러고 보니 민 데뷔 중 하나인 Starlight Forest가 우리 음악에 딱 어울리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민이 만들면 재미있겠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노아 사운드 트랙을 만들어?

그 쪽은 이미 적임자가 있는데.

무려 현대 클래식 영화 음악계의 신이라 불리는 ‘헨리 윌리엄스’가....

“오호, 그거 재미있는 아이디어로군.”

...응?

“김민이 우리 음악을 만든다? 이거 정말 재미있는 생각이야. 그리고 기발해!”

어? 잠깐만!

감독 당신이 흥미를 보이면 안 되지!

뭔가 잘못되고 있다.

노아 사운드 트랙은 무조건 헨리 윌리엄스가 맡아야 하는데....

설마 이 시기에는 아직 영화 음악 감독이 정해지지 않은 건가?

물론 나에게는 좋은 기회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말년의 헨리 윌리엄스가 만든 노아 6부작 사운드 트랙은 전 세계적으로 불멸의 명곡으로 추앙을 받게 된다.

참고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운드 트랙이기도 했다.

빨리 사실을 바로 잡아야겠다.

난 감독님께 말했다.

“그러지 말고, 제가 다른 적임자를 추전하면 안 될까요?”

“적임자?”

“사실 노아 시리즈를 보면서, 영화가 만들어지면 음악 감독은 무조건 이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생각도 했단 말이지? 그게 누구야?”

감독은 물론, 대표님과 두 친구도 큰 관심을 보인다.

난 당당히 말했다.

“헨리 윌리엄스요.”

“...응?”

당황하는 사람들.

난 음성에 힘을 실었다.

“헨리 윌리엄스. 우리 영화 음악은 무조건 그 사람이 맡아 줘야 해요. 무조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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