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89화 (89/205)

< 89화. 갑작스런 인터뷰 >

한 아이돌 커뮤니티에 김민 목격담이 올라왔다.

[ 나 오늘 템스 강 근처 레스토랑에서 김민 봤음. 근데 그 자리에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랑 이번에 노아 영화 주연으로 발탁된 애들도 같이 있더라. 이게 과연 뭘 뜻하는 걸까? ]

┗ 진짜?

┗ 증거

┗ 기다려봐. 몰래 찍은 사진 올림.

그것이 시작이었다.

증거 사진은 흔들리긴 했지만 명확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 헐, 정말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인데? 왜 같이 있는 거지? ]

┗ 노아 주연으로 발탁된 애들도 같이 있네. 이거 혹시...?

┗ 헐, 잠깐만...!

정황이 워낙 분명했다.

관련 게시물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그것을 본 네티즌들은 모두 같은 추측했다.

[ 김민이 노아 실사화 시리즈에 출연하는 거야? ]

@

이른 새벽. 대표님은 한국으로부터의 급한 연락을 받고 잠에서 깼다.

“... 그래. 알았어. 응.”

통화를 마치고 한숨을 내쉬는 대표님.

덩달아 잠에서 깬 나도 누운 상태로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우리 어제 감독, 배우들이랑 만나 거 다 퍼졌댄다. 파파라치 샷하고 함께.”

“아하....”

“지금 회사로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는데....”

“가르쳐 주시면 되잖아요.”

“뭘 가르쳐 줘? 감독님이 제작사나 배급사에서 먼저 스탠스를 취하기 전까지는 비밀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던 거 잊었어?”

“음....”

잠시 허공을 응시하며 고민하던 대표님이 이내 생각을 정리하셨다.

“어차피 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고, 아침에 같이 식사하기로 했으니 그때 물어보고 행동 지침을 정하든 해야겠다.”

그리고 자리에 눕는 대표님과 달리 난 몸을 일으켰다.

“왜?”

“이왕 깬 거 거리도 좀 둘러볼 겸, 운동이라도 하고 오려고요.”

“... 무리하지는 마라.”

이내 눈을 감은 대표님은 금방 코를 골기 시작했다.

트레이닝복을 갈아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꾹 눌러 쓴 나는 호텔을 벗어났다.

영국 런던은 날씨 안 좋기로 악명이 자자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 치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짙었다.

해가 이제 막 뜨려고 하는 새벽 시간이었는데도 경찰들이 곳곳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시 한복판이라 그런지 치안은 굉장히 좋다. 뉴욕 맨해튼과 다르게 거리가 정말 깨끗하고 안전하다. 그래서 그런지 산책, 혹은 나처럼 조깅을 즐기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신나게 조깅을 하고, 벤치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어느 새 하늘에 뜬 태양이 바다 저 너머, 지평선까지 상세히 비추고 있었다. 나처럼 빈 벤치에 앉아 음식을 먹거나, 혹은 기타를 퉁기는 이들도 있었다. 확실히 런던의 아침은 맨해튼에서 찾아보기 힘든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영국만이 품고 있는 색다른 감성이 내 영혼까지 잠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 영국에서 또 보네? 잘 있었어? ]

“......!”

영감님이 오셨다!

아이고 어서 옵셔 영감님!황급히 스마트 폰을 꺼내 들고 녹음 모드 온!

폭주하듯 샘솟는 영감을 흥얼거리며 기록해둔다.

[ 어이쿠, 다른 곳에서 날 급하게 찾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좀 일찍 가봐야겠어! ]

뭐, 벌써?!

마구 샘솟았던 영감이 연기처럼 허망하게 흩어지는 것은 순식간.

그래도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보컬 멜로디는 대강 다 정리했으니까.

한 번 들어보려는데....

“음악 하는 사람이에요?”

어느 새 다가온 레깅스 차림의 금발 미녀가 흥미로운 얼굴로 묻는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앉아도 될까요?”

“어, 물론이죠! 제가 세 놓은 자리도 아닌데요!”

웃음 지으며 내 옆자리에 앉은 그녀는 종이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 하나 건네준다.

“과일 주스에요. 방금 구매해서 신선하고 맛도 좋아요. 먹을래요?”

“주시면 감사히 받죠.”

마침 목이 말랐는데.

병에든 오렌지 착즙 주스였다.

그녀는 똑같은 주스 병 하나를 꺼내고, 이어 베이글 하나를 꺼내더니 반으로 떼서 나에게 준다.

“이것도 먹어요.”

갑작스런 아침 식사.

우물우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나니 기운이 좀 돌아온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가볍게 물었다.

“아침부터 절 계속 따라오셨죠?”

“... 알고 계셨어요?”

깜짝 놀라는 그녀.

“호텔 나오자마자 눈이 마주쳤잖아요.”

“아...!”

“저렇게 예쁜 사람이 이 새벽에... 저런 차림으로 혼자 다니는 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그녀는 생기 있게 웃는다.

그러더니 빙긋 웃으며 자신을 소개한다.

“제 소개를 제대로 해야겠군요. 더 선의 기자 애나 테일러예요.”

“.......”

뭐, 더 선?

그 악명 높은 황색언론?!

순간 굳은 표정을 수습하지 못했다.

“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나는 조용히 일어서서 말했다.

“베이글하고 주스 고마웠어요. 그러면 저는 이만....”

“농담! 농담이에요!”

황급히 내 팔을 붙잡으며 소리치는 그녀.

“저 사실 더 가디언 소속 기자에요."

와... 더 선 진짜 징하다.

이렇게까지 한다고?!

난 싸늘하게 반문했다.

“소속 사칭까지 하다니....”

“저 진짜 더 가디언 소속이에요! 명함이 있는데... 어? 잠깐만, 어디 있지?”

“.......”

“정말이라니까요! 저 더 선 소속 아니에요! 저도 그 쪽 싫어해요!”

“직장인이 몸담고 있는 회사 싫어하는 건 당연하죠.”

“그게 아니까요! 저 정말 더 가디언 기자에요!”

“네. 잘 알겠으니까 이 손 좀 놔주실래요? 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론 중 더 선을 제일 싫어하거든요!”

“어? 그건 또 궁금해지네. 이유가 뭐예요?”

“마이클 잭슨 살아생전 가장 집요하게 괴롭혔던 곳이잖아요! 감히 내 영웅을...!”

“아하. 아무튼 저 정말 더 선 기자 아니에요! 심지어 저 리버풀 출신이고 콥이며 비틀스 팬이라고요!”

오해는 한참이 지나서야 풀렸다.

“맞죠? 저 더 선 아니라 더 가디언 소속 기자 맞죠? 이제 확실히 아셨죠?”

“네. 뭐....”

최근자로 그녀의 얼굴이 담긴 특집 기사가 개제되어 있었다.

난 그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더 선 소속 기자가 가디언에 투고 하는 게 가능했던가?”

“계속 그럴 거예요?!”

뾰족한 반응에 난 싱긋 웃었다.

“저도 농담이었어요. 그런데 더 가디언이면 파파라치와 거리가 먼 언론지로 알고 있는데...?”

“사실 해외 출장 갔다가 어제 오후 런던에 도착했는데, 저기 호텔에 민 군이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온 김에 인터뷰라도 따볼까 싶어서 숙박하며 기다렸던 거예요.”

“더 가디언에서 저를요? 왜요?”

혹시 노아 출연 때문인가?

그렇게 의심해서 던진 질문이었지만....

“지금 미국에서 굉장히 핫한... 빌보드와 스트리밍 차트를 휩쓸고 있는 메가 히트 곡의 작곡가잖아요! 참고로 맨해튼 드리밍이 UK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 중이에요!”

내 예상을 벗어난 대답을 들려준다.

음, 영화 때문이 아니었구나.

생각은 틀렸지만 다른 의미로 또 한 번 놀랐다.

“UK 차트 1위라고요? 정말요?”

“모르셨어요? 차트 보여줄까요?”

“아니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아무튼 그것 때문에 절 찾아오신 거예요?”

“핫한 뮤지션이잖아요! 우리 가디언지가 문화 비평 쪽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는 거 알고 계시죠?”

알다마다.

단순히 관심만 많은 게 아니라 그 수준이 굉장히 높고 취급 범위도 방대해서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굉장하다는 것도 잘 안다.

이곳과 독점 인터뷰를 한다는 건 그 자체로 성공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이 알려지면 한국이 또 한 번 떠들썩해질 일이다.

성숙한 아름다움과 소녀처럼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를 지닌 미인 여기자가 들뜬 기색으로 묻는다.

“인터뷰, 해 주실 거죠?”

노아 이야기 해달라는 게 아니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네! 그렇게 하시죠!”

가디언 기자라더니, 인터뷰 스킬이 굉장하다.

단순히 이슈에 대해서만 조명하는 게 아니라 나란 사람에 대해 깊고 풍부하게 파고 든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가장 힘들었을까요?”

“곡 만드는 광경을 계속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단순히 집중력이 좋은 수준을 넘어 필사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어떤 심정으로 곡 작업을 하는 거죠?”

그녀는 질 좋은 질문만 던질 줄 아는 게 아니었다.

잘 듣는다.

휴대폰으로 모든 과정이 녹화되고 있었지만, 아직 어설픈 내 영어 실력에 답답해하는 기색 없이 집중력 있게 경청한다.

크고 맑은 눈동자와 아름다운 얼굴에서는 수시로 다채로운 반응이 나온다. 이런 상황이니 대화하는 나도 몰입하게 되고,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린다.

정신 차리고 보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 너 지금 어디야? 무슨 일 있어? 왜 안 들어와? ]

그 사실을 대표님이 걸어온 전화를 통해 깨달았다.

그녀가 아쉬운 듯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네요.”

오늘은... 이라고?

의아한 시선에 그녀는 해맑게 웃었다.

“음악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영화 이야기도 해봐야죠. 어제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과 다니엘 레드몬드 군, 샬럿 왓슨 양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죠?”

“.......!”

깜짝 놀랐다.

그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아서 사실을 모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구나. 그냥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내 놀란 얼굴로 보고 그녀가 배시시 웃는다.

“제가 설마 이 인터뷰 하나 때문에 집 놔두고 호텔에 숙박했을까요? 거기가 얼마나 비싼 곳인데."

“아....”

“이 건에 대해서는 감독님과 함께 다니는 소속사 대표님께 정식으로 요청 드려서 진행할게요.”

“네. 뭐... 그렇게 하시죠.”

정식 절차를 거친다면 나로서는 거절할 명분이 없지.

그래서 빨라야 내일쯤에나 다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안녕하세요.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님. JJ 엔터테인먼트 장진영 대표님 맞으시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는데 나타났다.

깔끔하고 우아한 화이트 컬러 세미 정장 차림으로.

화사한 금발을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채.

그녀는 자연스레 명함을 건네주며 자신을 소개한다.

“더 가디언 기자 애나 테일러예요.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 드리고 싶어서 아침부터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었어요.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눈이 마주치자 의미심장하게 웃는 그녀.

절로 감탄이 나왔다.

와, 추진력 어마어마하네.

인터뷰 결정권한은 오로지 감독님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감독님은.

“그럽시다.”

인터뷰를 승낙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터뷰.

그녀의 첫 질문은 바로 나와 관련된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맨해튼 드리밍의 천재 소년, 김민 군이 노아 시리즈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하며 다양한 추측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에 대해 정확한 답변 부탁드려요.”

“민은....”

감독님은 날 보고 말씀하신다.

“이드라실 캐릭터를 연기하게 될 겁니다.”

“아! 노아 파티의 요정족 마법사 맞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에요! 그런데 어떤 이유로 김민 군을 이드라실로 낙점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말보다는 직접 보여드리는 게 좋겠군요.”

설마 여기서 그걸 공개하려고?

그런데 설마가 사람잡았다.

감독님은 오디션 때 분장을 모두 마치고 촬영한 티저 테스트 샷을 공개했다.

그런데 그걸 보고 나와 대표님도 놀랐다.

우리가 당시에 확인했던 것은 원본이었는데, 지금 이 사진은 보정까지 완벽하게 끝낸, 당장 티저 이미지로 공개해도 좋은 퀄리티였다.

“아...!”

그녀, 애나 테일러 기자는 굉장히 놀란 나머지 잠시 할 말을 잃어 버렸다. 하긴, 당사자인 나조차도 놀랄 정도인데 오죽할까?

감독님은 변함없이 무뚝뚝하고 묵직하지만, 왠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어조로 물었다.

“납득 됐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건 정말 납득할 수밖에 없겠네요. 원작 팬이라면 모두 방금 저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재미있는 영상을 하나 더 보여드리죠. 전 이 장면을 보고 민을 무조건 붙잡아둬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디션 영상이었다.

갑옷과 레이피어 까지 장착한 채 검술을 펼치는 장면.

정령을 부르는 의식이랍시고, 현대 무용 비슷한 춤을 추는 광경.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대한 즉흥 연기 등등.

난 그것을 보고 한 가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영상은 나중에 블루레이 등에 수록할 작정하고 작업한 편집 본이었다. 웅장한 에픽 오케스트라 BGM에 이미지 컷과 오디션 영상들이 정말 화려하게도 편집되어 있었다.

무려 10분에 달하는 영상을 모두 감상한 그녀의 소감은 다음과 같았다.

“아마 노아를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 이 자료를 보게 되면 흥분하며 열광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제가 지금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어요! 이건 정말... 아, 굉장해요!”

어제 식사 자리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던 영상이었다.

노아 원작이 영국 작품이고, 더 가디언은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영향력 있는 언론이니 이왕 인터뷰 하는 거, 제대로 공개하기로 한 모양이다.

“이 자료, 제가 사용해도 될까요?”

“나중에 블루레이에 공개할 내용이라 원본을 드릴 수는 없고, 홍보 자료로 따로 만든 파일을 보내드리죠.”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고마운 일이죠!”

그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노아의 촬영 일정이나 개봉 시기 등에 대한 내용이 다뤄졌다.

우리 대표님 역시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김민 군과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된 거죠?”

“처음부터 김민 군을 배우로 데뷔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요?”

“두 분의 영국 진출 계획이 궁금하네요.”

꽤나 길게 이어졌던 인터뷰는 한 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그런데도 그녀는 힘든 기색 없이, 오히려 밝은 얼굴로 말했다.

“정말 멋진 기사가 될 것 같아요. 제 생각인데, 이 인터뷰가 공개되는 순간 노아 실사화 시리즈는 물론이고 김민 군에 대한 영국인들의 관심도 크게 높아질 거예요. 대표님은 이 부분에 대해 미리 충분히 대비하시는 게 좋을 같네요.”

그녀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다음에 또 연락드릴게요!”

뒷모습이 굉장히 들떠 보인다.

특종을 건졌다고 생각해서겠지?

그런데 이건 모를 거다.

오늘 오후.

주연배우들과 함께 올리비아 퀸 작가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

인터넷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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