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90화 (90/205)

< 90화. 올리비아 퀸 >

인터뷰를 마친 뒤 대표님이 운전하는 렌터카를 타고 이동했다.

덩치 문제로 조수석에 앉은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말했다.

“다니엘과 샬럿 둘 다 런던에 거주지를 두고 있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픽업하고 가자고.”

바로 이것 때문에 내가 뒷좌석에 앉은 거다.

감독은 뒤에 앉기에는 몸집이 너무 풍만해서....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다니엘 레드몬드의 본가.

런던 중심가에 있는 거대한 저택이라니... 듣긴 했지만 진짜 어마어마한 환경에서 자란 녀석이구나.

“어젯밤 잘 잤어? 난 흥분 되서 한숨도 못 잤어. 내가 올리비아 퀸 작가님을 만나게 되다니...!”

차에 탑승하자마자 떠들어대는 이 녀석.

말이 진짜 많다.

촉새가 따로 없다. 그런데 얼굴이 워낙 잘 생겼고 워낙 선한 성품의 소유자인지라 그조차도 밉지 않게 느껴진다.

이어서 도착한 저택 역시 굉장히 호화스럽다.

차후 세계적인 미인 여배우로 부상하게 될 샬럿 왓슨 양은 바로 양장본을 꺼내들어 자랑한다.

“이거 노아 초판본인데 내가 정말 어렵게 마련한 거야. 여기에 작가님 싸인 받을 거야.”

“그 책 SNS에서만 본 건데, 진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처음 봐! 샬럿은 굉장한 노아 애독자였구나!”

“참고로 나 공식 커뮤니티 클럽에서도 우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한쪽은 만인이 동경하는 노아 시리즈의 주인공.

또 한 쪽은 만인의 로망이자 세계적이 미녀 여배우.

‘하지만 지금은 근질근질한 입을 참지 못하는 꼬꼬마들일 뿐이지.’

정말 수다스럽다.

두 우아한 촉새들이 양쪽에서 쏘아대니 고막이 아플 지경이다.

그리고 본인들만 이야기하는 거라면 상관없는데....

“민. 넌 작가님 만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이 뭐야?”“난 그것보다 작가님이 우리 세 사람을 보면 제일 먼저 어떤 말을 할지가 궁금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이것들이 계속 말을 시킨다.

으아 시끄러워!

잠시 후 도착한 곳은 런던 근교에 위치한 단독주택.

“와....

“동네가 굉장히 예쁘다. 무슨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소 같아.”

나조차도 감탄이 나올 만큼 환상적인 지역이다.

그리고 고급스럽지만, 디자인 자체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저택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목적지였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판타지 소설.

노아 시리즈의 올리비아 퀸 작가의 거주지.

얼핏, 평범한 런던 시민으로 보이는 백인 중년 여성이 어린 아이 둘의 손을 잡고 마중 나와 있었다.

차고지에 주차를 마치고 나오니 그녀가 굉장히 반갑게 맞아준다.

“어서 와요! 내 주인공들! 올리비아 하우스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해요!”

주택 내부 역시 크게 특징적인 부분은 없다.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고 알고 있는데, 진짜 소탈한 성격이구나.

“거실 소파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요. 마실 것을 내올게요!”

어딘가 들떠 보이는 그녀.

그녀가 떠난 자리에 작가님의 어린 두 자녀가 있었다.

남자 아이가 일곱 살, 여자 아이가 여덟 살이라고 들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나를 빤히 보고 있다.

왜 그러지?

그때 두 아이가 내게 쪼르르 다가오더니 조금 더 본격적으로 얼굴을 살펴본다.

그리곤.

“와우! 진짜 이드라실이야!”

“정말 요정이 있었구나!”

흥분하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민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구나.”

“우린 쳐다보지도 않네.”

두 촉새는 날 부러워하며 굉장히 쓸쓸해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요정으로 봐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내가 분명히 말했지 세상에는 요정이 존재한다고.”

그때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커다란 쟁반에 뭔가를 한가득 챙겨서 등장했다. 예쁘게 자르고 배치한 과일과 홍차, 쿠키 같은 것들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향해 으스대듯 말한다.

“엄마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야. 친구들에게 가서 똑똑히 전하렴.”

그녀는 날 보며 싱긋 웃는다.

“이 세상에는 정말 이드라실 같은 요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지.”

“응!”

“사진! 사진!”

아, 애들이 참 기운이 넘친다.

얼굴을 붙여서 친한 척 사진도 찍어도 괜히 마법 부리는 모습도 취해주고... 그렇게 한바탕 시달리고서야 겨우 해방될 수 있었다.

“자랑하러 갈 거야!”

“나도! 나도!”

우당탕탕!

힘차기도 해라.

저 애들은 아파트 같은 곳에서는 생활하기 힘들겠다.

아이들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광경을 보고 그녀가 웃으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정신이 하나도 없죠?”

“아니요. 굉장히 사랑스럽고 기운 넘치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저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아, 그런데 선물... 선물 준다는 걸 깜빡했네요.”

“선물?”

“뭐야, 치사하게 혼자만 챙겨왔단 말이야?!”

두 촉새는 크게 배신을 당한 표정을 짓는다.

난 옆에 내려놓았던 큰 쇼핑백 두 개를 그녀에게 건네줬다.

“이건 아이들 것. 싸울까봐 일부러 똑같은 구성으로 준비했어요.”

“세상에, 이런...!”

쇼핑백을 열어 물건을 확인해 본 그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들뜬 음성으로 크게 외친다.

“조이? 캐럴! 어서 이리 와보렴! 요정님이 너희를 위해 선물을 가져왔구나!”

그 말에 퇴장할 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렁찬 발 구름 소리가 들려온다.

“선물?”

“정말?!”

“자, 어서 확인해보렴.”

그 자리에서 선물을 모두 꺼내보는 아이들.

“와!”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촉새들은 물론 감독님과 대표님도 마찬가지.

투어 다닐 때 혼자 시간 내서 구매한 물건이었다.

가방, 로봇, 인형... 이런 건 다른 곳에서 많이 사줬을 것 같아서 조금 특별한 것을 준비했다.

지금 영미권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드래곤의 여왕 홀로그램 피규어 세트! 특히 저 나이 또래 애들이 환장하는 인기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라고 하더라.

굉장히 리얼하게 만들어진 레드 드래곤과 그 위에 타고 있는 적발의 씩씩한 공주님.

이게 싸구려 양산형 피규어 같은 게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굉장히 비싸고 리얼하게 만들어진 ‘홀로그램 피규어’다.

“자, 여기 버튼을 살짝 누르면....”

[ 콰우우우우! ]

강대한 포효 소리와 함께, 리얼한 레드 드래곤 동체와 공주님이 들고 있는 마법 봉에 빛무리가 번쩍거린다.

“우, 우와아아!”

아이들이 레이저 빔을 발사할 것 같은 반짝이는 눈으로 탄성을 내지른다.

“저, 저런 게 있었어?”

“나도 드래곤의 여왕 팬인데... 가지고 싶다.”

그런데 두 촉새들도 꽤나 놀란 모양.

홀로그램 피규어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난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내 선물, 마음에 들어?”

“네!”

“최고에요!”

후후, 이게 바로 선물이지!

애들도 비싸고 잘 만들어진 고급 제품 좋아하더라.

장난감을 막 다룬다고?

너무 싸구려 티가 나서 그런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다음에는 블루 드래곤, 그린 드래곤 피규어도 선물해 줄게.”

아이들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피규어를 소중하게 감싸 안고 떠났다.

그제야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말씀하신다.

“아이들 대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군요.”

“저도 어린 여동생이 하나 있거든요.”

촉새 남매도 날 보며 감탄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기들을 몰라준다며 서운해 하더니 말이다.

난 또 다른 선물을 꺼내 들었다.

“이건 작가님을 위한 제 마음의 선물입니다.”

“어머, 제 선물도 있어요?”

“당연하죠. 어서 풀어보세요.”

“어디....”

잠시 후 등장한 것은 최고급 기계식 키보드 2종.

“키보드... 와, 저도 이런 게 있다고 말만 들었지. 직접 쳐보고 만져보기는 처음이에요”

“작가님은 소설 대부분을 노아 시리즈 때 사용했던 노트북을 애용하시죠?”

“네. 맞아요.”

“그게 노트북들 중에서는 키감이 가장 좋은 녀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거 보고 아, 작가님 은근히 키감 신경 쓰시는 구나. 생각해서 제 경험상 가장 좋았던 집필용 기계식 키보드를 구매했죠.”

“경험상이라면...?”

“저도 사실 소설 쓰는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집필은 손맛이죠. 그게 마니아들 사이에서 최고로 호평 받는 모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가장 편하면서 맛있는 모델이었죠.”

“맛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식으로 표현하거든요. 오, 키보드는 키감이 쫀득하고 맛있는데? 혹은, 손가락을 마구 튕겨내는 느낌이 쏠쏠한데? 이런 식으로요.”

“하하.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아무튼 고마워요. 저 사실 태어나서 이런 선물은 정말 처음 받아 봐요. 흥미로운 경험이에요.”

일단 점수 따는데 성공한 모양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잊은 채 막 열중하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작가님은 노아를 쓰면서 그런 기분을 얼마나 느꼈나요?”

“글 쓰는 게 취미라더니 과연... 저는 사실 글을 쓰면서 그런 순간이 오지 않았을 때 쓴 글은 다 지워버리는 타입이에요. 대부분은 보면 별로더라고요.”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화.

이전 삶에서 나는 못해본 게 없다.

주식 투자, 카페 운영, 여행튜버, 그리고 심지어 웹소설 작가까지.

그래서 글 쓰는 사람들과 공감대 형성하는 걸 굉장히 쉽게 할 수 있다. 지금 나와 작가님 사이에서는 분명 진한 교감이 이뤄지고 있었다.

심지어 노아의 엄청난 팬이고, 그녀가 쓴 모든 소설, 필명으로 발매했던 스릴러물까지도 섭렵한 사람이다. 이 시기에는 아직 구상일 뿐인, 집필 예정의 소설도 알고 있지!하루 종일 대화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래서는 너무 욕심쟁이지?

나 때문에 병풍이 되어 버린 촉새 남매와 두 어른을 챙겨줘야 할 것 같다.

“사실 여기 있는 다니엘이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고... 작가님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어요.”

“샬럿은 저조차도 구하기 힘든 초판 양장 희귀본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거기 싸인 받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나랑 같이 받자. 나도 책 챙겨왔거든!”

작가님이 직접 준비해주신 음식까지 먹고 나니 어느 새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대표님이 살짝 눈치를 준다. 이제 슬슬 떠날 시간이라는 것이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초대해도 될까요?”

우리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감독, 배우 이전에 노아 시리즈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열혈 팬들이니까!

“그리고....”

작가님이 나를 보더니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사실 아이작 연대기를 더 이상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시작부터가 배고파서, 아이들 먹이려고 쓴 글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장르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오늘 마음이 바뀌었어요. 민과 대화하고 말이에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감독님과 아이들의 두 눈도 휘둥그레졌다.

“그 말씀을 설마...?”

그녀는 빙긋 웃었다.

“후속 작을 써보려고 해요. 제목은 이드라실. 독자들이 굉장히 사랑했지만, 태생적 한계 때문에 많을 것을 보여줄 수 없었던 조연 캐릭터를 주연으로 격상시켜볼까 해요. 그리고....”

이드라실?

이전 삶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그런데 이어진 말이 더욱 놀라웠다

“감독님이 저에게 제안했던 시나리오와 각본. 제가 맡아볼게요.”

“저, 정말입니까?”

우리 묵직이 감독님이 크게 놀란 모양이다.

두 눈이 왕방울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우리 세 사람을, 마치 자녀를 대하듯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원작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고 있었죠.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졌어요.”

뭔가... 뭔가 굉장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

그녀는 우리 모두를 향해 말했다.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눠보자고요.”

올리비아 퀸 작가님을 저택을 떠난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감독님은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셨고, 두 촉새... 그러니까 다니엘 레드몬드와 샬럿 왓슨은 트레이닝 준비에 들어가야 할 시점이란다.

두 사람이 굉장히 서운한 얼굴로 내 손을 하나씩 붙잡았다.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오랜 친구, 아니 형제를 떠나보내는 것 같아. 이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여기 더 있으면 안 돼?”

“맞아. 조금 더 놀다 가! 우리 집도 가봐야지! 가족, 친구들 소개해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내가 정말 마음에 들긴 했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로 이별이 서운한 상황이다.

정말 좋아했던 배우들이고, 지금은 친구, 혹은 동생 같은 느낌이라서....

그렇게 이별하고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는 몰랐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이유로 영국에 재방문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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